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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의 투기 열풍] [불로소득 주도 성장] ....

뚝섬 2025. 5. 22. 06:52

[식민지 조선의 투기 열풍]

[불로소득 주도 성장]

['흑석 선생'의 재테크는 진짜 끝난 것일까]

 

 

 

식민지 조선의 투기 열풍

 

부동산에 주식 도박까지… 100년 전에도 '영끌' 투자

 

지난 2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1분기 가계 신용 잔액이 1928조7000억원으로 나타났어요. 가계 신용이란 개인이 빌린 대출 금액에 결제 전 카드 사용 금액을 더한 ‘포괄적 가계 부채’로, 이번이 역대 최고 기록이라고 해요.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부동산 투자’를 위한 대출이 큰 비율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의식주를 포함한 물가가 크게 오르고 살기가 점점 팍팍해지는 환경에서, 당장 많은 돈을 빌려서라도 미래의 수익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죠. 주식과 비트코인으로 향하는 관심도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최근에서야 시작된 현상이 아닙니다. 한국인이 처음 자본주의와 마주했던 한 세기 전에도 돈을 벌기 위한 열풍은 대단했습니다.

 

‘시골 항구’를 둘러싼 투기 열풍

 

1932년 8월 25일, 함경북도 청진에서 주민 700여 명이 궐기대회를 위해 모였습니다. 이들은 비장한 열변을 토하고 서울에 사람을 보내 항의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거리는 온통 눈물바다였고 초상집처럼 숙연했다고 합니다. 총독부마저 이 분위기에 겁을 먹을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독립운동이나 만세 운동이었을까요? 

 

1930년대 촬영된 함경북도 청진항 풍경. 길회선의 종단항으로 청진 대신 나진이 결정되자, 청진 주민들은 1932년 궐기 대회를 열었어요. /위키피디아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대륙 침략을 염두에 두고 만주 지린(吉林)과 함북 회령을 잇는 철도인 ‘길회선’을 계획했습니다. 여기서 길회선의 종단항(종착역이 닿는 항구)이 어디가 되느냐가 중요했는데, 일본에서 바다를 건너 오가는 물자가 반드시 그곳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들 이런 기대를 했던 겁니다. ‘대륙과 일본을 잇는 국제 항구가 될 테니 돈벼락이 쏟아질 게다!’

 

일제 당국은 1925년부터 청진, 나진, 웅기를 종단항 후보로 올리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뜻밖에도 인구 100여 명의 한적한 어촌이었던 나진을 종단항으로 결정했습니다. 청진 주민들이 ‘종단항을 되찾자’며 궐기 대회를 연 것은 이틀 뒤의 일이었습니다. 돈 앞에선 조선인·일본인, 민관 구분 없이 일치단결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나진과 인근 웅기는 부동산 투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습니다. 땅값은 넉 달 만에 1000배 가까이 올랐고, 아시아 여러 곳에서 몰려온 브로커와 투기꾼들이 거리를 메웠습니다. “웅기에 가면 개도 100원(당시 월급쟁이 두 달 치 봉급)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미 나진의 토지 450만 평을 미리 사들여 1200만원의 수익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일제 당국이 나진의 토지를 ‘종단항 발표 이전 가격’으로 수용하겠다고 발표하자 부동산 열풍은 싸늘하게 식어 버렸습니다.

 

‘럭키경성’을 쓴 전봉관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나진의 종단항 결정을 둘러싼 사건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일었던 집단적 땅 투기 열풍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부터 소외당한 식민지 조선인이, 처음 맛본 자본주의의 ‘돈맛’ 앞에서 커다란 열망을 품었던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백만장자를 꿈꾼 투기꾼 청년의 추락

 

당시 조선 사람들은 부동산과 주식, 금광뿐 아니라 정어리나 미두(米豆)처럼 돈이 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투기 대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미두’는 당장 현물 없이 약속만으로 쌀을 거래하는 것으로, 요즘 선물(先物) 거래와 비슷한데 대단히 투기성이 강했습니다. 하루에 한 사람이 현재 가치 1억~2억원을 따거나 잃는 일이 흔했다고 합니다. 

 

쌀 선물 거래가 이뤄졌던 인천 미두취인소 풍경. 지금의 증권시장과 비슷한 역할을 했어요. /인천광역시

 

인천의 미두 시장에서 큰돈을 번 ‘스타’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중매점 하인 출신인 스물한 살 청년 반복창이었습니다. 시장에서 이를 악물고 모은 400~500원을 밑천 삼아 미두꾼으로 나섰고, 1920년 쌀값이 갑자기 치솟은 타이밍을 타고 하루아침에 백만장자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반복창에게는 ‘미두의 신(神)’이란 별명까지 붙었죠.

 

반복창은 인천에 마련한 400평 집터에 ‘조선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서양식 저택’을 지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1921년 조선호텔에서 치른 결혼식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신부가 장안에 소문난 미모의 신여성이었는 데다, 현재 가치 30억원의 비용을 들이고 하객을 위해 서울 시내 자동차 3분의 1을 동원한 초호화판 결혼식이었기 때문입니다. 

 

1925년 6월 11일 조선일보 연재 만화 '멍텅구리'의 일부. 주인공 최멍텅이 인천에 가서 미두시장에 뛰어들었다 낭패당하는 이야기를 그렸어요. 미두취인소를 알게 된 최멍텅이 "옳지 돈 벌 일이 났다(생겼다)"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조선일보DB

 

그러나 결혼 뒤 반복창은 번번이 시세 예측에 실패해 파산했고, 사기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이혼 뒤 서른 살에 중풍으로 쓰러졌고, 지팡이를 짚고 매일 미두 시장 근처를 돌아다니며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쌀값이 오른다… 쌀값이 떨어진다.”

 

“일확천금을 하려거든 사람 노릇을 포기하라”

 

식민지 조선의 주식시장에는 지금은 자취를 감춘 ‘합백(合百)’이란 것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합백이란 사설(私設) 증권 거래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주가의 등락을 놓고 벌이는 도박이었습니다. 주식시장이 있던 서울 명치정(지금의 을지로 2가와 명동 일대)이 주 무대였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돈 가진 사람들이 합류하기 시작해 10~20원 하던 합백판의 단위가 만 원대까지 치솟았다고 합니다.

 

합백꾼이 주식시장 근처 도로에 가득 차서 행인의 통행까지 어려워지자 경찰은 명치정 곳곳에 “거리에 서 있지 말라”는 경고문을 붙였다고 합니다. 합백꾼 출신으로 증권회사 사장까지 된 김귀현이라는 신화적인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38년 일본군이 장고봉에서 소련군과 충돌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일 전쟁’이 일어나리라 잘못 예측한 결과 재산 대부분을 잃었습니다. 부자가 된 지 3년 만에 다시 빈털터리가 됐던 것이죠.

 

당시에 이미 식자들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적은 밑천으로 일확천금의 꿈을 꾸려거든 사람 노릇을 포기하고, 여차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땀과 수고의 결과로 얻은 돈이 아니라 너무 쉽게 얻은 돈은 마찬가지로 쉽게 잃을 수 있는 데다 패가망신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거죠. 이 진리는 100년 후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해 보입니다.

 

경성 명치정(현 명동)에 있었던 우리나라 최초 주식거래소 경성주식현물취인소. 주가를 놓고 도박을 벌이는 합백꾼들은 주식 시장이 있는 명치정으로 몰려들었어요. /한국거래소 자본시장역사박물관

 

-유석재 기자/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조선일보(2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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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소득 주도 성장

 

시민단체 경실련이 문재인 청와대 근무 공직자 65명이 보유한 아파트 가격을 조사해보니 문 정부 출범 전 8억2000만원에서 현재 11억4000만원으로 평균 3억2000만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 평균 상승률이 40%에 이른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설계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과천시 아파트 시세는 9억원에서 19억4000만원으로 배 이상 뛰었다. "내가 강남 살아봐서 아는데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필요가 없다"고 했던 장하성 전 정책실장의 서울 송파구 아파트는 10억원 이상 올랐고, 김상조 현 정책실장의 서울 강남구 아파트도 4억4000만원 상승했다. 자기 집값이 얼마나 뛰었는지 뻔히 알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어떻게 보고했는지, 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가격이 안정돼 있다"는 황당 발언을 내놨다. 

 

▶서울과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지방에선 집값이 거의 변동이 없거나 떨어진 곳도 많다. 그래서 전국 평균을 내면 집값이 마치 안정세를 보이는 것처럼 상황을 호도할 수 있다. 전국 평균 집값보다는 살고 싶은 동네의 실거래 가격이 중요하다. 한 부동산 정보 업체가 문 정부 출범 이후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 24만채의 실거래가를 조사한 결과 2년여 사이 평균 41%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집 없는 사람은 박탈감에 시달리고, 집 있는 사람도 세금 부담 때문에 괴롭다. 일부 투기꾼을 빼고 모두를 힘들게 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한다. '집값 올리기'에 자신 있다는 말로 들렸다는 사람이 많다. 경실련은 "소득 주도 성장 아닌 '불로소득 주도 성장'만 나타나고 있다"고 풍자했다. 전(前) 정권의 부동산 부양책을 그토록 비난했던 정부가 유례없는 아파트 값 상승을 만들고 있으니 이런 역설이 없다.

주택 소유자들이 집값 상승에 기뻐하며 지갑을 더 열면 '불로소득 주도 성장' 모델이 정말 작동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종부세에 건보료 폭탄까지 맞은 주택 소유자들은 "집값은 정부가 올려놓고 왜 우리한테 벌 주느냐"며 지갑을 더 닫고 있다. 엊그제 미국 하버드대의 저명 경제학자는 문 정부 경제정책을 '소득 주도 성장'이 아니라 '소득 주도 빈곤(income-led poverty)'이라고 비판했다. 잘못된 정책이 빈곤층을 더 가난하게 하고 집값까지 양극화시키고 있다. 현실을 직시하고 정책 오류를 인정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싶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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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 선생'의 재테크는 진짜 끝난 것일까

 

김의겸 前 대변인의 8.8억 수익, 인맥·지위·정보 총력전의 승리

기부 약속 지켜봐야 하겠지만 혹시 꼭지라서 판 건 아닐까 

 

역시 그는 승부사(?)였다. 모든 것을 다 걸었고, 그 결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자자'라는 워런 버핏의 연평균 수익률 20%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자기 자본 10억원으로 1년 5개월 만에 올린 수익이 중개업소 말로는 12억3000만원, 본인 말로는 8억8000만원이다. 연(年) 환산 수익률은 70~98%. '흑석 선생'이라 불렸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이야기다.

영혼까지 끌어모았다는 김 전 대변인의 이른바 '영끌 투자'는 기존 재테크 서적을 훌쩍 뛰어넘는 역발상의 연속이었고, 범인(凡人)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전략과 전술의 극한을 보여줬다.
 


흑석 선생의 전략·전술은 '총력전'(Totaler Krieg)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쉽게 말해, 그는 승리를 위해 사소한 인맥, 지위, 정보까지도 모두 동원했던 것이다. 
핵심은 인맥이었다. 한강 이남 흑석동에 있는 상가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데, 자동차길로 11㎞ 떨어진 강북 성산동 은행을 이용했다. 이 은행은 주변에 널린 감정평가업체를 놔두고 다시 북서쪽으로 20㎞ 떨어진 경기 고양시 소재 업체를 찾아 의뢰했고, 결국 '10억2000만원' 대출이 나왔다. 어떻게든 거래를 성사시켜야 하는 입장의 중개업소조차 '대출 가능액 6억여원'으로 광고했던 상가주택이었다. 그 중심에 있는 은행 지점장이 흑석 선생 고교 동문이었다. 관사(官舍) 재테크를 통해 기존 전세보증금을 빼서 집값에 보탠 배경에는 그의 지위가 있었다그의 상가주택이 포함된 흑석9구역이 이후 흑석동 일대에서 가장 빨리 관청 인허가 절차를 마친 배경에는 정보력이 있었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인간 승리였다. 조국 전 법무장관처럼 물려받은 재산과 사학재단도, 유재수 전 부산 부시장처럼 화려한 금융권 인맥도 없었던 흙수저 흑석 선생은 주변 풀 한 포기까지 동원하는 총력전을 펼친 끝에 기어이 대박의 꿈을 이룬 것이다.

혹자는 '그 정도 인맥·지위가 있다면 나도 하겠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평범한 월급쟁이는 '채무 14억원'이 주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다. 실제로 내야 할 한 달 이자만 400만원(은행 286만원, 지인 130만원)이 넘었다. 김 전 대변인은 실직, 그 아내는 퇴직 상태였다. 자칫 패가망신의 위기 상태로 8개월을 견뎠고, 소위 '시세 분출'의 한복판에 도달한 지금, 드디어 집을 판다.

어지간한 사람에게 이런 방법을 알려줬더라도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그 물음에 흑석 선생은 결과로 대답했다. '이래서 그렇게까지 해야 했다'라고.

남은 의문은, 왜 지금 파느냐는 것이다. 강남 아파트 시장에서 시작된 아파트값 상승의 불길은 강북 뉴타운까지 옮겨붙었고 쉽사리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를 두고 실로 오랜만에 최근 다시 언론에 등장한 그가 답했다. "아내와 차를 마시다가 찻잔에 적힌 '사람이 먼저다' 문구를 봤다"라고. '사람이 먼저다'는 3년 전 선거 때부터 지금까지 쓰고 있는 캐치프레이즈인데, 갑자기 안 보이던 눈이 보이기 시작했거나 안 들리던 귀가 들리기 시작한 건지 모를 노릇이다.

그러면서 그는 "차익(差益)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했다. 그가 진짜 기부할지, 기부처가 친여(親與) 재단은 아닌지 등은 알 수 없다. 약속이 실현된다는 것을 전제로 나오는 전망이 '총선 출마설'이다. 실제로 그는 최근 고향인 전북 군산에 두어 차례 출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이 대명천지에 국회의원 배지의 가치가 10억원의 이익을 포기할 정도의 것이냐'는 지점에 도달하면,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재테크 내공에 비춰 마침내 이런 추론도 해보게 된다. '혹시 집값 폭등의 시대가 끝나는 것 아닐까?' 

 

-장상진 사회부 기동취재팀장, 조선일보(1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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