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에서 공격받는 한국 민주주의… 붕괴 위기다]
["세상을 바꾼다고? 너부터 바꿔라"]
좌우에서 공격받는 한국 민주주의… 붕괴 위기다
[朝鮮칼럼]
탄핵 때문에 열린 대선에
탄핵 반대한 인물이 후보
자유민주주의 경시 아닌가
불리한 재판 한 판사 '청소' 대상
인신공격… 다른 재판부까지 위협
삼권 장악 시도… 독재 아닌가
反민주 세력간 대결 된 대선
그나마 덜 망칠 후보 골라야
한국 민주주의는 좌우 양대 정당의 협공으로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정권 유지와 쟁탈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도전하고 법치를 함부로 훼손하는 것도 용인되는 위험한 풍조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킬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조차 외부의 정치적 압력과 내부의 분란으로 흔들리고 있고, 권력기관을 감시할 시민단체들도 순수성을 잃고 정당의 하부 조직처럼 정치에 동원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정치적 갈등과 분열은 가히 내란 수준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과연 자정 능력과 복원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마치 민주주의 파괴 경쟁을 벌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힘은 보수의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자처해 온 만큼 보수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최고의 사명으로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12·3 비상계엄을 계기로 민주주의 수호자로서의 자격과 정체성을 포기했다. 12·3 비상계엄은 자유민주적 헌정 질서를 저격한 불법 무도한 폭거로서 대통령의 파면을 자초할 만한 중대한 과오였다. 보수의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이라면 보수의 핵심 가치를 파괴한 대통령을 즉각 규탄하고 탄핵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대다수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에 불참한 데 이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도 반대함으로써 헌법과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보다 대통령과의 의리를 더 중시하는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헌정 질서 파괴 시도가 탄핵당할 만큼 엄중한 과오가 아니라고 믿는 세력이, 탄핵 때문에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 탄핵에 반대해 온 인물을 후보를 내세우는 ‘용기’ 자체가 자유민주주의를 얼마나 경시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도 민주주의 파괴에 이성을 잃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이 대통령의 독단적 계엄 선포를 처음부터 대통령의 책임으로 한정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자발적으로 공범이 되는 우를 범한 반면에, 민주당은 노골적이고 지능적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입법권을 무기로 민주주의와 법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를 압박하여 이재명 후보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주당에 이 후보에게 유리한 재판은 정의이고, 불리한 재판은 불의다. 불리한 재판을 한 판사를 ‘청소’의 대상으로 지목하여 탄핵 위협이나 인신공격을 가하여 이 후보 관련 사건을 맡고 있는 다른 재판부까지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수법도 사용하고 있다. 판사가 탄핵이나 인신공격을 각오하지 않고는 이 후보에게 불리한 판결을 할 수 없다면 재판의 독립은 무너진다.
지난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항소심 무죄 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자 민주당은 이를 ‘사법 쿠데타’로 규정하여 조희대 대법원장과 사법부를 겨냥한 전방위 공격에 나섰다. 민주당은 파기환송에 대한 보복으로 13일 ‘조희대 대선 개입 의혹 특검법’을 발의한 데 이어 14일에는 ‘사법부 대선 개입 의혹 청문회’를 개최했다. 대법관 정원의 대폭 확대를 위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는가 하면, 대법원의 판결도 헌법재판소의 심판 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한 ‘헌법재판소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이는 대법원의 구성을 민주당에 유리하게 개편하여 불리한 재판을 막고, 그럼에도 대법원이 불리한 판결을 할 경우에는 헌법재판소를 통해 이를 무력화하려는 기발한 발상이다. 민주당은 이 후보 처벌 근거를 제거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안과 함께 이 후보가 당선만 되면 그가 받고 있는 재판 5개를 모두 중단시키는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 놓았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입법이다.
민주당의 공격이 개시되자 사법부는 일단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재판 등 이 후보와 관련된 모든 재판을 대선 이후로 연기하는 조치를 취했다. 사법부가 국회 다수당의 압력에 굴복하면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의 존재 이유인 권력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은 무너진다. 국회 다수당이 행정부와 사법부까지 장악하여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면 독재를 막을 길이 없다. 사법부와 재판의 독립이 무너지면 자유 대한민국도 무너진다.
이렇듯 6·3 대통령 선거는 반(反)민주 세력 간의 대결이다. 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여기는 유권자들에게는 찍을 후보가 없는 희한한 선거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더라도 대한민국과 민주주의를 덜 망칠 후보를 골라야 한다.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조선일보(2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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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다고? 너부터 바꿔라"
신경림 시인의 유고시집에
갈라진 나라 통합할 제언 담아
"다른 생각과 말에 귀 열어야
세상을 바꾸는 개혁 가능해"
1572년 8월 파리에서 발생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위키피디아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는 22일로 타계 1주기를 맞는 신경림 시인의 유고 시집이다. 수록 시를 읽다가 ‘미세먼지 뿌연 날’에 눈길이 멈췄다. ‘텔레비전을 보고 신문을 읽으며/ 증오에 찬 구호를 들으며/ 나는 우울해진다’는 시행에서 극단적인 진영 대결을 펼치는 우리 정치 현실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타계 여러 해 전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도 떠올랐다. 시인은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 대부분이 자신은 안 바뀌면서 다른 사람만 바꾸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는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동시에 그 사람이 지적하는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는 데서 이뤄진다”고 말했다.
신경림 시인 자신도 1972년 첫 시집 ‘농무’를 냈을 때는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쪽이었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중략)/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라며 그 시절 농촌의 절망과 울분을 토했다. 그 후 평생토록 그는 부조리한 현실의 개혁을 추구한 진보적 문인이었다. 그런데 말년에 이르러 쓴 시와 세상에 남긴 말에서 내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했던 것이다.
유럽이 종교 개혁 이후 신교와 구교로 갈려 싸웠던 역사는 오늘날 우리의 진영 대결보다 더 지독하고 유혈이 낭자했다. 프랑스 국왕 앙리 4세는 종교를 이유로 국민이 피 흘리는 비극을 끝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정치인이었다. 신교도였던 그가 지금 우리 정치인이었다면 개혁을 빌미로 구교도를 적폐로 몰아 척결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앙리 4세의 개혁은 구교도 일소가 아닌 자신의 개종이었다. “내가 구교도로 개종할 테니 더는 하느님 믿는 사람끼리 싸우지 말자”고 했다. 그런 개혁 정신을 담아 발표한 것이 화해와 포용으로 새 프랑스를 만들자고 호소한 낭트칙령이었다.
이 땅에서 정치하는 이들이 말끝마다 올리는 게 개혁이다. 그런데 한결같이 자기는 바뀌지 않고 남만 바꾸겠다는 주장뿐이다. 그 결과, 숱한 개혁에도 서로를 향한 삿대질만 무한 반복될 뿐,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껏 이어지는 방송법 개정 논란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민주당은 공영방송 사장을 대통령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게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냈다. 그런데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자 태도를 바꿨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송법 개정을 중단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를 공영방송 사장에 앉히며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 되겠는가”라 했다. 진보 진영 인사들조차 그 말에 어이없어했다. 공영방송 수장이 기계적 중립을 지킬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야말로 방송 개혁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단했던 방송 개혁을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 재개하며 “정권에 따라 방송이 흔들리던 과거와 결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곧 있을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면 방송 개혁은 다시 흐지부지되거나 민주당의 장악력을 높이는 쪽으로 바뀔 공산이 크다. 국민의힘도 할 말은 없다. 정권을 넘겨받기 전엔 민주당의 방송 장악을 그토록 비판하다가 막상 정권을 쥐자 “방송법 개정은 민주당 주장이었다”며 개혁 기회를 외면했다. 민주당이건 국힘이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권력을 강화하는 정치적 핑곗거리로 개혁을 소모했다. 정치가 타락하면 언어가 혼탁해진다는 사실을 우리 정치처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신경림 시인의 유고 시집엔 ‘당신의 목소리가 들린다’란 작품도 실려 있다. ‘생각이 다르고 말이 다른 사람들이/ 귀를 열고 마음을 열 때/ 세상은 아름다워진다’고 했다. 지금 우리 정치에 이보다 더 절실한 말도 없을 것 같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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