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처음으로 대한민국이 사라질까 걱정했다
이 스산한 기운의 진원지는 대통령의 지독한 침묵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무엇인지 밝힌 적 없다
벌레 먹은 과일 속부터 썩듯 나라가 붕괴되고 있다
매년 이맘때면 올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도 내가 쓴 글들을 되돌아보며 10대 가수 뽑듯 올해의 키워드를 찾아보았다. 시론(時論)의 글감은 당시 사회를 지배하는 파장이 정한다. 그러니 내가 추적한 건 올해 우리 사회를 유행가처럼 휘감은 공기의 주제다.
돌이켜보니 올해 나는 국제정치 전문가도 아니면서 대한민국 주변 열강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고, 역사학자도
아니면서 사료를 뒤적이는 일을 자주 했고, 실향민도 아니면서 늘 북한이 머리끝을 떠나지 않았다. 어떤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마치 핏줄로 연결되듯 그런 주제들과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건강이 위협받으면 의학 정보에 민감해지듯, 대체 국가란 무엇이고
세금은 왜 내는지, 계몽주의 언저리 사상가들의 논리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래서 찾아낸 키워드는 '국가' '자유' 그리고 '걱정'이었다. 올해 나는
처음으로 대한민국이 사라질까 걱정했다.
사실 경제가 나빴던 적은 이전에도 많았다. 정치인들은 잘했던 기억이 없고, 핵을 머리에 인 국방이야 말할 나위조차 없다. 그래도 그땐 이러다
못 살면 어쩌나 하는 정도의 걱정이었지, 나라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은 해 본 적이 없다. 진짜 나라가 소멸된다면 1905년 을사조약 당시 황성신문 장지연
주필이 쓴 '시일야방성대곡'처럼 통곡할 일이다.
도둑이 들어오는데 아무도 대문을 지키려 하지 않는 이 스산한 기운의 진원지는 무엇보다 대통령의 지독한 침묵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는 그게 어떤 나라인지 밝힌 적이 없다.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주적이냐?"는 질문에 끝내 답하지 않았다. 집권 절반을 돈 지금 친북
단체는 미국 대사관 담을 넘고, 미국 대사의 참수식을 시내 한복판에서 벌인다. 대법원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희대의 악마로 묘사한 '백년전쟁'이라는 영상물에 '문제없음'이라고
손을 들어주었다.
미국은 멕시코 국경에 담을 쌓고 쿠바에 관타나모 수용소를 운영하며 미국 국경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유럽은 비교적 처방이 쉬운 미국을 부러워하며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넘어오는 난민 때문에 국가가 희석될까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과 유럽도 국경을 고민하지만 공통적인 건 바깥에서 유입되는 이민족이 원인이라는 점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벌레 먹은 과일이 속부터 썩듯 내부로부터 붕괴된다는 점이 다르다. 무엇보다 집권 세력이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의지가 박약하고, 실력도
부족해 보인다. 나라는 둘로 갈라져 아우성인데 찢어진 국민을 봉합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각종 의혹이 들끓는 권력 주변에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야당 대표는
목숨 건 단식을 한다. 정치인들은 초대형 예산을 1분 만에
처리하고, 피땀 어린 세금으로 다시 국민의 표(票)를 산다. 선거에서 이긴다면 나라가 무너져도 개의치 않을 기세다. '시일야방성대곡'도 "저
돼지와 개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이 영달과 이익만을 바라고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두려움에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다고 당시 지배층을 비판했다.
선거 개입 의혹의 한가운데 있는 청와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경제가
나빠지는 게 피부로 느껴지고 눈으로 보이는데 유리한 경제지표로 국민을 호도한다. 청와대 관리들의 집값이 10억이 뛰었는데도 부동산이 안정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나라에 무엇이 문제인 줄 모르고, 청와대 대변인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와중에 올해 3분기 출산율은
0.88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인구만 보면 이미 국가 소멸
단계에 진입한 지 오래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이성이 국가를 만들었고, 19세기 미국의 언론인 윌리엄
개리슨은 국민의 자유를 거부할 때 국가는 사라진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과연 그런 이성과 자유가 존재하는가.
국가가 사라진다면, 우리가 터키와 시리아 변방을 헤매는 쿠르드족과 다를 게 무엇일까. 국가가 우리를 잘 먹여 살리지 못한다면 영국의 얼음 컨테이너에서 죽어간 베트남 사람들과 우리가 무엇이 다를까. 중국이 우리나라 한복판에 와서 당당하게 중국 편에 설 것을 요구한다면 우리가 홍콩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며, 장지연이 통곡한 일제강점기 때와 무엇이 다른가. 마침내 대한민국 '최악의 해(annus horribilis)'가 도래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한시름에 올해를 넘기고 있다.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조선일보(19-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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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실세들의 막장 드라마
부동산처럼 요지 선점하고 빨대 꽂아 이권 챙기는 실세… 공수처로 보호막 삼으려 할 것
폭정은 결코 스스로 멈추지 않아
미국의 유명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는
워싱턴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권력 암투를 리얼하게 그려냈다. 화려한 무대 뒤에 감춰진 권력의 추악한 속성이
너무나도 흥미진진해서 드라마에 몰입하다 보면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허구를 다룬 막장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미국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봐야 하는 교과서 같은 드라마라는 말도 있다. 워싱턴의 노회한
정치인 프랭크 언더우드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갖은 술수를 쓰고 때로는 악행을 저지르는데, 여기서 나오는
유명한 대사 가운데 하나가 "권력이란 부동산과 같은 것이야.
무엇보다 위치 선정이 중요하지"라는 것이다.
요즘 우리 정치를 보면 이 대사가 정말 실감 나게 느껴진다. 문재인 정부의 실세들이 권력
핵심부에 어떻게 위치를 잡고 국가 시스템을 사유화하고 농단해 왔는지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권을
잡자마자 권력 핵심으로 연결되는 가치 있는 부동산을 재빠르게 선점했다. 적폐라는 딱지를 붙여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것 역시 그들이 선점한 부동산의 상대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민정수석을 방패 삼은 조국 일가의 탈선은 시작에 불과했다. 재선 국회의원 출신 백원우씨를
급에도 맞지 않는 민정비서관에 앉힌 것도 이상하더니 그 뒤에 대통령 친구, 아우가 줄줄이 달려 나왔다. 확인 안 된 정치 공세라고 주장하지만 냄새가 나도 너무 고약하게 나니 국민은 고통스럽다. 대통령을 형이라고 부른다는 한 인사는 금융위의 핵심 요직에 앉아 금융계 인사를 주물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눈치 없는 청와대 감찰반이 움직였지만 '이너
서클'의 핵심들이 SNS 대화방을 만들어 구명 운동을 벌였다.
이게 다가 아니다. 계급 정년에 막혀 퇴직을 앞두고 있던 경찰 간부가 승진해서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선거를 앞둔 지역으로 발령받아 간 것도 우연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우연이라면 야당 후보가 공천장을 받는 날 비리 혐의로 압수 수색을 당하는 또 한 번의 절묘한 우연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권력 핵심으로 통하는 주요 길목을 모조리 장악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일찌감치
권력의 타락을 눈치챈 한 특감반원이 용기를 냈지만, 대통령까지 나서 그를 깨끗한 우물에 흙탕물을
일으킨 미꾸라지로 몰아붙였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 절반이 지났을 뿐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치부는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박근혜 정부가 최순실이라는 이름의 무허가 건물을 청와대 경내에 들였다가 허무하게 무너진
것처럼 앞으로 어떤 고난이 닥쳐올지 예상하기 어렵다. 이런 치부를 감추기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에 목을 매고 있다고 야당은 의심하고 있다. 이제 전장(戰場)은 법원과
공수처로 옮아갈 것이다. 그 핵심에 또 누가 위치 선정을 할 것인가 지켜볼 일이다.
'폭정'의 저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20세기 인류가
겪은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현재 정치 상황을 민주주의의 위기로 진단한다. 그리고 그는 민주주의의 오랜
유산이 우리를 폭정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잘못된 생각이라고 잘라 말한다. 물론 한국을
콕 집어 말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진보
정치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운동권 민주주의 경향이 지속된다면 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다고도
했다. 이제 우리에게는 이 막장 드라마를 멈춰야 하는 역사적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신동욱 TV조선
뉴스9 앵커, 조선일보(19-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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