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국에 '남북 올림픽' 유치, 정말 라라랜드 사는 듯
정부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2032년 하계올림픽 남북 공동 유치와 개최를 추진하기 위한 계획안을
의결했다. 남북 공동 올림픽이 북의 실질적 개혁·개방을 이끌어내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면 이를 반대할 국민은 없다. 미·중 '핑퐁 외교'처럼 스포츠는 평화와 화해의 매개가 되기도 한다. 다만 북한이 그런
길로 나아가려는 최소한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북이 그런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북핵 협상은 끝났다'면서 '새로운
전략무기' '충격적 실제 행동' 운운하겠는가. 최근 반년 새 미사일·방사포로 우리를 위협한 것만 13번이다. 올림픽 정신은 기본적으로 인간애이기도 하다. 김정은 집단에 인간의
기본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북한 주민 전체를 노예화했다. 평양
호텔에서 선전물 한 장을 가지려 했다는 이유로 관광 온 외국 청년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것이 북한
체제의 본질적 속성이다. 이 폭력적, 야만적 속성에
추호의 변화도 없는 상황에서 '평화의 제전'을 열겠다는 것
자체가 올림픽 정신에 대한 모욕이다.
정부는 평창올림픽 이후 조성된 잠깐 동안의 평화 무드를 되살리고 싶은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평창올림픽조차 대북 제재를 무산시켜 핵을 보유하고자 하는 북에 의해 이용당한 것이다.
올림픽 공동 개최는 재작년 평양 정상회담 합의문에 관련 구절이 포함된 후 북측에선 단 한 마디 나온 적이 없다. 북은 당장 올해 도쿄올림픽 공동 입장과 단일팀 구성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 여자축구는 다음 달 제주도에서 열리는 도쿄올림픽 아시아 예선 참가를 포기했고,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월드컵 예선은 관중이 한
명도 없는 경기장에서 TV 중계도 없이 치러졌다. 우리
정부 혼자 "공동 올림픽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한다.
정권 전체가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서울시장은 남북 올림픽을 위해 "2032년까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이라는 당근을 제시하자"고
했고, 통일부는 북 외화벌이에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안전 대책도 없이 우리 국민에게 북한 관광 가라고
등을 떠밀려고 한다. 위험 지역에 관광 가라고 부추기는 정부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부국장은 올림픽 공동 개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라라랜드' 같은 다른(꿈꾸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했다. 더 적확한 표현이 없다.
-조선일보(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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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 강행은 국가적 자살 행위
국제 공조와 북한 편들기 사이의 외통수 피하려 '금강산 개별 관광' 꼼수
대북 제재 현실 모르는 무지한 시대착오적 발상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대북 제재의 틀을 벗어나서라도 금강산 관광 등 대북 협력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15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미·북 대화에 앞서 남북 협력을 먼저 할 수 있음'을 전달했다. 미국은 양자가 같이 가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함으로써 우리 측 제안을 사실상 일축했다. 문 정부는 노골적으로 한·미 동맹과 국제 공조를 버리고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며 파멸로 갈 참인가.
김정은은 지난해 말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정면 돌파'를
선언하며 이를 신년사로 대신했다. 예년과 달리 남북 관계는 언급조차 없었다. 지난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은 문 정부에 '주제넘게
중재자 노릇' 하지 말라고 기상천외한 막말을 총동원해 경고를 계속했다.
문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북(對北) 스토킹(stalking) 강도를 높여 가고 있다. 김정은은 왜 문 정부의
애타는 구애를 면박주다 못해 무시까지 하는 걸까.
김정은에게 생애 최고의 시간은 2018년이었을 것이다. 핵
능력은 강화하면서 선대(先代)도 놀랄 정도로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한·미 동맹은 흔들렸고 소원했던 북·중·러 관계는 회복됐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에게 '고생 끝,
대박 시작'이라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러나 김정은의
봄은 1년 만에 하노이에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중재자로서
공적을 부풀리기 위한 문 정부의 허풍을 믿고 트럼프 대통령을 너무 쉽게 생각한 탓이다. 실수를
인정해선 안 되는 전지전능한 김정은에겐 속죄양이 필요했다. 문 정부는 최고 존엄에게 거짓을
아뢴 괘씸죄에다 '잡아놓은 물고기'니 미끼를 줄 필요도 없고
어떤 구박에도 맹종만 거듭하니, 속죄양으론 안성맞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핵 포기 전략적 결단을 했다'는 거짓말을 믿고 화려한 쇼에 동참했으나 중간선거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했다. 과실은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한 문 정부가 독차지했다.
남북 공조 꼼수에 속은 것이 분하긴 하나 실수를 감춰야 했다. 그래서 "김정은과 좋은 관계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실험, 전쟁을 막았다"고 자랑을 계속한다. 하지만 이를 믿거나 관심 가지는 미국 사람들은 날로 줄고 있다. 역풍이
우려돼 북핵 문제를 다시 띄우기도 조심스럽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핵은 먹을 건 없지만 버리긴 아까운
계륵(鷄肋·닭의 갈비) 같은 존재다.
북한은 미국이 셈법을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큰소리친다. 미국이
국제적 망신을 각오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런 허세가 통할 리 없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고강도 국제 제재와 미 군사 공격까지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도발을 하긴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안전엔 문제없어. 작은 도발이야. 늘 그래 왔어. 김정은과
여전히 좋은 관계야"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의 도발은 언제든 가능하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제외한 미사일이나 위성 발사, 한국만을 겨냥한
군사 공격 등이 이에 해당한다.
김정은의 대남 무시는 문 정부에 대한 무언(無言)의
최후통첩이다. 미국이 셈법을 바꾸면 최선이겠지만 현실적으론 어렵다. 그래서 '꿩 대신 닭'으로
우리 셈법을 바꾸라고 한다. 문 정부는 총선 승리 후 한·미 동맹을 희생해서라도 민족
공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그때까지 못 기다리겠다 하니 지금 국제
공조와 북한 편이란 외통수 갈래 길에 서게 됐다.
문 정부는 외통수를 피해갈 묘수로 '금강산 개별 관광'을
밀어붙일 기세다. 북한은 여행의 자유가 없는 독재국가라 개별 관광 자체가 불가능하다. 2008년 북한 경비병의 사격으로 우리 국민이 사망한 데 대해 여태 사과 한마디 없다. 단체 관광마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단 의미다. 미국은 국제 공조를
허물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북한도 이 정도 당근으로 문 정부가 목을 매는 총선용 이벤트에
동참할지 미지수다.
국가안보실 내 이른바 동맹파와 자주파의 갈등이 보도된 적 있다. 대통령의 신년사와 최근
정부·여당 고위직의 언행을 볼 때 동맹보다 남북 관계를 우선시하는 자주파가 이긴 것 같다. 급기야 통일부
대변인은 대북 정책은 주권 문제라 했다. 여당 중진 의원은 주한 미 대사에 대해 조선 총독이냐고 일갈하기도
했다. 대북 제재가 어떻게 변했는지도 모르는 무지하고 시대착오적 망발이다. 아직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처럼 북한에 뭐든 퍼줄 수 있는 줄 아는가. 이런 태도로 국제사회와 담을 쌓고 북한 편에 서는 것은 국가적 자살에 이르는 길이다.
-신원식 前 합참 작전본부장·예비역 육군 중장, 조선일보(2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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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외무상 리선권
북 외무성 김계관 고문이 대미(對美) 핵 협상에
대표로 등장한 건 1993년이다. 30년 가까이 '북핵 대표'만 했다. 한·미
대표를 만나면 10~20년 전(前) 대표 안부와 함께 "핵 공부는 좀 했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핵 과학자 수준의 지식을 늘어놓는다. 전직 외교관은 "북 외무성에는 핵·미국·중국 등 한
분야만 20~30년씩 파고든 베테랑이 수두룩하다. 거기에
더해 협상에 실패하면 죽는다는 절박함이 북 외교의 최대 강점"이라고 했다.
▶1990년만 해도 북 외교는 중·소, 동유럽
중심이었다. 그런데 김정일 최측근의 아들인 리용호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군축과에서 일하면서 미국의
핵·군축 프로그램에 참가하겠다고 나섰다. 북핵 위기가 본격화하기 전이었다. 6개월간 미국 연구소를 돌며 관련 책만 한 배낭 짊어지고 귀국했다고 한다. 1차
북핵 위기 때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 '벼랑 끝
전술'로 북을 유리한 협상 고지로 이끈 건 리용호의 아이디어였다.
▶김정은 외교를 이끌던 리용호 외무상이 작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주석단(지도부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회의 종료 직후 찍은 단체사진엔 리용호가 빠졌다. 전례를 찾기 어렵다. 회의 도중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제 북 외무상이 리용호에서 군 출신인 리선권으로 교체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리 대기업 총수를 향해 '냉면 목구멍' 발언을
했던 그 사람이다. 군사 회담 북측 대표로 나와 판을 뒤엎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탈북 외교관은 "외교 경험이 전무한 외무상은 리선권이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과거 허담 외무상이나 김용순 국제 비서처럼
외교관을 하다가 대남 비서를 맡은 적은 있어도 '대남 일꾼'이
바로 외무상에 발탁된 사례는 없다는 것이다. 당 서열에서도 리선권은 후보위원으로 제1부상인 최선희(중앙위원)보다
낮다. 최근 김정은은 외무성 차관급을 부총리급인 당 외교 부위원장으로 올렸고, 별 두 개 공병 출신을 갑자기 별 네 개로 만들어 인민무력상(국방장관)에 앉혔다. 김일성·김정일도 맘대로 인사를 했지만 외교·안보만큼은
전문가를 고르고 골랐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김정은이 이런 인사를 계속하면 강점이던 북 외교가 약점으로 변할 수 있다. 북한만이
아니라 한국도 외교력이 나라 운명을 좌우하는 나라다. 그런데 한국 외교 수장은 '인형' 소리를 듣고 북한엔 '문외한
막말꾼'이 기용됐다. 무언가 조짐이 좋지 않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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