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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라는 사고실험] .... [한국의 586, 소설 속 '디스토피아'를.. ] ....

뚝섬 2022. 9. 21. 06:05

[SF라는 사고실험]

[이제 공무원이 '워라밸' 하니 국민은 '닥치세' 하라]

[한국의 586, 소설 속 '디스토피아'를 현실에 옮겨놓다]

[라라랜드]

 

 

 

SF라는 사고실험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과학에서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은 실제 실험 대신에 상상 속에서 수행하는 가상 실험을 의미한다. 사고실험은 과학의 모델이 작동하는 방식과 새로운 과학적 이해가 얻어지는 과정을 교육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도 사고실험이 가능하다. 해수면이 상승해도 우리는 지금처럼 살 수 있을 것인가? 의학이 계속 발달해서 사람의 수명이 연장된다면 노인들은 더 행복할 것인가? 지능을 가진 기계와 인간은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사고실험에 대해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해답은 미래 예측서가 아니라과학 소설’(science fiction, SF)에서 찾아진다.

 

첫 번째 SF로 꼽히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이 만든 괴물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그를 버려둔 채로 도망갔다. 소설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했기에, 출간된 지 200년도 더 지난 이 책은 지금도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를 고민해 보게 하는 데 유용하다.

 

기발한 상상으로 가득 찬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넉나그에 사는 죽지 않는 사람들 얘기가 등장한다. 처음에 걸리버는 이들을 부러워했지만, 자세히 관찰해본 결과 이들은 죽지만 않을 뿐, 몸과 마음이 모두 하염없이 늙어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2045년에 특이점이 도래해서 인간이 불멸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하는 지금, 넉나그인들에 대한 스위프트의 묘사는 ‘불멸이 축복인가’라는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하게 해 준다.

 

SF 마니아들 사이에서 큰 인기몰이를 한 영화 ‘매트릭스’를 놓고도 다양한 사고실험이 가능하다. 영화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잡아 사육하면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며, 주인공 네오가 이런 기계에 저항한다. 관객은 기계가 인간을 사육하는 장면을 보면서 치를 떨지만, 영화의 설정과 지금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동물을 좁은 공간에 넣어 사육하면서 결국에는 잡아먹는 것과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21세기 문해력의 핵심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만남이 만드는 위험과 가능성을 읽어내는 있다. 이것이 미래 인류와 미래 세상에 대한 흥미로운 사고실험으로 가득한 SF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조선일보(2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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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공무원이 '워라밸' 하니 국민은 '닥치세' 하라

 

부패 공무원에 눈감더니 이제 '공무원도 국민 위해 자기 희생 말라'고 한다
뼈 빠지게 일해 세금 내서 공무원 월급 주는 국민에겐 고맙다는 한마디도 없다

 

작은 기업을 힘들게 운영하다가 최근 사업을 접은 한 분은 기업 경영을 고문(拷問)이라고 했다. "사람을 고문하고 싶으면 때리고 찌르고 할 필요가 없다. 그 사람에게 작은 기업 하나 맡기면 매달 직원 월급날 즈음해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고통을 반복적으로 당하게 된다." 월급날이 내일모레인데 돈이 없으면 우선 잠이 전혀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며칠 가면 '도망가고 싶다' '다 끝내고 싶다'는 심리적 유혹이 점점 커진다.

다른 기업인은 그 유혹에 져서 차를 몰고 어떤 저수지로 갔다고 한다.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으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 가속기를 밟고 차가 도로를 가로질러 저수지로 향하는 순간 맞은편에서 대형 트럭이 돌진해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핸들을 돌려 트럭을 피했다. 그러고선 '죽을 각오로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생각을 바꿨다. 이런 얘기엔 아무런 과장이 없다. 그들 표정을 보면 이 나라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분 모두에게 훈장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 대기업 임원은 "과거엔 신기술로 제품화에 성공하면 최소한 2~3년은 먹고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6개월도 못 간다. 정말 힘들다"고 했다. '피를 말리고' '졸면 죽는' 게 글로벌 기업 경쟁의 세계다. 한국에서 기업 경영에 드는 엄청난 노력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는 개인적 이익 추구 차원을 넘어서 있다.

이들의 피와 땀은 결국 세금으로 바뀐다. 작년에 기업이 낸 법인세는 80조원에 육박한다.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OECD 2위다. 삼성전자의 법인세율은 라이벌 인텔의 2.4배에 달한다. 기업의 피와 땀을 짜서 나라에 세금으로 바치고 있다. 기업만이 아니다. 최근 10년간 근로자들이 낸 근로소득세는 무려 3배가 됐다고 한다. 10년간 월급은 3배가 되지 않았다. 근로자들도 피와 땀을 짜서 세금을 내고 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공무원들이 월급을 받는다. 방역, 소방, 경찰, 군인, 민원 등 현장에서 진짜 고생하는 공무원이 많이 있다. 이들을 위한 세금은 아깝지 않다. 그러나 개인이든 기업이든 직접 만들고 팔아서 돈을 벌어 먹고사는 사람들의 고난과 스트레스는 무조건 월급이 나오는 공무원들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그런 국민들에게 세금을 받아 생활하는 공무원들에게는 좀 더 특별한 모럴(도덕)이 요구된다.

국민이 공무원에게 요구하는 모럴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제 '멸사봉공'하는 시대도 아니다. 공무원들이 부정부패하지 말고 나태하지 않았으면 하는 정도일 것이다. 공무원의 대표인 대통령은 고용주인 국민 앞에서 이 두 가지는 항상 약속해야 한다. 부패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맹세다.

부패한 공무원인 유재수를 구해주는 데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들이 총동원됐다. 문 대통령은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유재수 부패를 눈감더니 이제는 공무원들도 일 좀 살살 하고 인생의 여유를 누리자고 한다.

문 대통령은 그제 20~30대 신임 공무원 11명과 점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자신을 다 버리거나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최대한 열심히 일하되'라는 전제가 있었지만 강조점은 '희생하지 말고'와 '충분한 휴식' '자유 시간'에 있었다. 공표됐으면 하는 메시지도 바로 그거였다. 요즘 공무원에게 일방적으로 희생하라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월급 주는 고용주(국민)가 뻔히 보는 앞에서 근로자 대표가 새로 들어온 근로자들에게 헌신하지 말고 휴식하고 자유를 가지라는 것은 도리에 맞는 말인가. 국민은 공무원에게 월급 주기 위해 잠도 못 자고 고문과 같은 고통을 당하며 녹초가 돼 있는데 그 앞에서 할 말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공무원들은 자신부터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대통령 당부가 아니라도 이미 그렇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심지어 100대1에 이르는 것이 무얼 의미하나. 자영업이 붕괴하고 40대 가장들이 일자리를 잃고 늘어나는 것은 60대 알바뿐인 현실에서, 안정되고 월급도 결코 적지 않은 공무원은 이미 행복하다. 문 대통령은 공시 열풍에 대해서도 뭐 어떠냐고 하더니 "공직 선택도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 인식 속에 공무원은 있는데 뼈 빠지게 세금 내서 공무원 월급 주는 국민은 없다. 문 대통령은 세금 내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심을 표한 적이 없다. 그냥 '닥치세(닥치고 세금)'다. 세금으로 돈 받는 사람들을 향한 인기 발언만 한다.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은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럴 처지가 아니다. 쓰는 것보다 버는데 더 치중해야 한다. 사회 풍조가 '워라밸'로 가더라도 누군가는 '일하자'고 해야 한다. 10%가 주 52시간을 누리는 대가로 90%는 더 열악해질 수 있다고 경종을 울려야 한다. 대통령은 어느 쪽에 서야 하는 사람인가. 그런데 대통령이 오히려 공무원에게도 '워라밸' 하자고 한다. 그렇게 얻은 표가 쌓이는 그 높이만큼 우리 사회의 미래는 작아질 것이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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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586, 소설 속 '디스토피아'를 현실에 옮겨놓다

 

586 특권층, 사법부·공직사회·국회·대기업·노조·시민단체 장악
그들끼리 기득권 누리고 대물림… 한국형 위계 구조의 부조리극
'가짜 평등' 속에 경제 악화·불평등 심화… 그 불행한 미래 눈앞에

 

요즘 영어권 문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를 꼽으라면 캐나다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를 선뜻 떠올리게 된다. 그녀는 지난해 소설 '증언들'로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맨부커 문학상을 받았다. 백인 남성 우월주의자들이 미국에서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뒤 가부장제를 표방한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고, 여성을 노예처럼 차별한다는 가상 소설이다. 이 소설은 페미니즘을 바탕으로 서양 문명의 몰락을 경고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 한다. 성차별과 인종차별, 빈부 격차가 심해지는 서구의 현실이 점차 자유민주주의 위기를 거쳐 전체주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스탈린 독재를 염두에 두고 미래의 전체주의를 가상한 것과 같은 충격 효과를 준다는 평가도 받는다. 애트우드는 '증언들' 출간 직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체주의를 이렇게 정의했다. "전체주의 국가에선 당신이 의지할 곳이 없다. 만약 사법부와 행정부가 일체화된다면, 당신에겐 항소할 법원이 없다"라고 했다.

정치권력이 사법부까지 독점하는 디스토피아를 우려한 작가의 상상력이 먼 나라의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문재인 정권이 법무부를 내세워 검찰 장악에 몰입하고, 사법부까지 충복(忠僕)들로 채우려고 한다. 이미 정권에 기여한 일부 정치 판사는 4월 총선에 나온다고 한다. 우리 현실이 디스토피아 소설을 뺨친다. 이런 정권의 핵심엔 이른바 586세대 특권층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디스토피아는 민주화를 외친 586세대가 장기 집권해 뒷세대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아이러니를 보여줄지도 모른다. 세대론을 떠올리다 보니 소설가 김영하가 지난 2007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 '퀴즈쇼'가 생각났다. 1980년에 태어난 청년 백수의 삶을 그린 소설이었다. 소설 주인공은 자기 세대를 이렇게 묘사했다. '역사상 그 어느 세대보다 다양한 교육을 받았고, 세련된 코스모폴리탄으로 자랐다.(중략) 우리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개발도상국 젊은이로 자랐고 선진국에서 대학을 나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겐 직업이 없다. 이게 말이 돼?'


김영하 소설의 주인공은 이른바 '포스트 586세대'에 속한다. 그는 586세대가 운영하는 편의점 알바로 일하다가 편의점 주인과 다툰 뒤 그만둔다. 대학 때 화염병을 들었다며 운동 경력을 자랑하는 주인이 청년 세대를 향해선 폭군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그 일화는 작은 부분이지만, 586세대를 향한 뒷세대의 불만을 반영했다. 소설에 상징적으로 내장된 세대 갈등은 지난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사태로 인해 현실적으로 크게 불거졌다. 청년 세대는 586세대를 대표한 지식인의 위선에 분노했다.

그때 묘하게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586세대를 비판한 연구서 '불평등의 세대'를 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학술서치고는 보기 드물게 출간 4개월 만에 2만부 넘게 찍었을 정도로 요즘 꽤 읽히고 있다. 이 책은 "산업화 세대가 첫 삽을 뜨고 586세대가 완성한 위계 구조의 희생자는 바로 청년 세대"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586세대 중 특정 집단이 공직 사회와 국회, 대기업뿐 아니라 노조와 시민 단체까지 장악해 그들끼리의 네트워크를 통해 기득권을 누리면서 청년 세대의 진입을 막아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귀족 노조'가 고용 세습과 정년 연장을 요구한 것에 대해선 "자본과 586세대 상층 정규직 노조가 함께 구축한 한국형 위계 구조의 부조리극이 아닐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철승 교수는 "한 세대의 장기 집권의 폐해는 조용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내부자들은 제 몫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의 책은 조국 사태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그 사태를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했다.

조국 사태로 인해 586세대 중 특권층이 형성되어 있고, 그들끼리 편법을 통해 '학력 자본'까지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게 드러났다. 586 특권층 상당수가 4월 총선에 여당 후보로 나와 의회를 장악하려고 할 것이다. 그 세대가 지휘하는 검찰과 경찰도 정권의 하수인이 될 날이 멀지 않았고, 자칭 어용 지식인들이 '민주적 통제 사회'를 미화할지도 모른다. 김영하 소설 '퀴즈쇼'가 발표된 이후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586세대 특권층의 동맹이 우리 사회를 서서히 잠식한 결과다. 이대로 가다간 586 디스토피아에 떨어질 수도 있다. '가짜 평등'을 내세워 유권자를 속인 특권층이 승자 독식의 향연을 누리는 가운데 경제가 악화하고 불평등이 심화하는 세상이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까.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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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평양에서 월드컵 예선을 치른 뒤 "부상 없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했다. 경기 중 폭행당한 우리 선수도 있었다. 달나라에 가도 영상 통화가 되는 시대에 평양 경기 소식은 봉화 올리듯 서울에 도착했다. 호텔에선 감금 상태였다. 축구 한 경기도 치를 자격이 없는 북한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그 황당한 경기 직후 주한 외교단에 "2032년 올림픽 서울·평양 공동 개최를 지지해 달라"고 했다. 그제 국무회의가 올림픽 공동 개최안을 의결하자 국제 인권단체 간부는 "문 대통령이 '라라랜드'에 살고 있다"고 했다. 영화 '라라랜드'처럼 꿈속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미국 방송에서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로 '뻥'치고 있다"고 했다. 과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더니 요즘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보증 서고 있다. 김정은은 핵·탄도미사일 증강을 멈춘 적이 없다. 문 대통령의 대북 태도를 보면 현실과 꿈이 구분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작년 8월 문 대통령은 "남북 경협 하면 단숨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했다. 인터넷에선 '전교 10등이 전교 꼴찌와 합쳐서 전교 3등 이길 수 있느냐'는 말이 나왔다.

 

▶그러던 문 대통령이 그제 "수출이 증가로 전환됐다"고 했다. 그 다음 날 이달 20일간 누적 수출이 ―0.2%라고 발표됐다. 대통령의 '라라랜드'는 24시간도 못 간 셈이다. 주로 최하위 빈곤층의 '세금 소득'이 올랐을 뿐인데도 대통령은 "소득 주도 성장의 정책 효과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제조업이 회복되고 있으니)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최저임금 인상은 90%가 긍정적" "청년 실업률이 아주 낮아졌다" "OECD 국가 중 한국은 상당한 고성장 국가"라고도 했다. 온통 '라라랜드' 대사다.

 

▶지난해 청와대 경제수석이 "경기 반등, 고용·분배 개선"을 브리핑하자 기획재정부 2년 후배인 야당 의원이 "달나라 인식"이라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비판했다. 달나라에 살던 그 경제수석은 시중 은행장으로 낙하산을 탔다. 반면 "북이 핵 포기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말한 통일부 장관은 해임됐다. 달나라나 라라랜드에 살면 떡을 주고, 현실을 말하면 끝난다.

 

▶'라라랜드'에서 여주인공이 "우리 지금 어디쯤 있는 거지"라고 물으면 남자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라고 답한다. 영화는 주인공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해피엔딩이 될 수 있다. 현실에선 그렇지 못할 것이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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