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베이 밖 중국 감염자 첫 유입, 후베이만 차단해선 못 막는다]
["너무 겁먹을 것 없다… 마스크 쓰고 손 잘 씻으면 거의 100% 안전"]
[동양인 혐오증]
[전염병, 주역 그리고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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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베이 밖 중국 감염자 첫 유입, 후베이만 차단해선 못 막는다
중국의 후베이성 외 지역에서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 유입
사례가 처음 확인됐다. 작년 11월 중국 광둥성을 방문했다가
지난달 31일 귀국한 두 사람이 가족을 감염시켰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들어온 확진자 11명은 모두 우한 교민, 우한 근무자, 우한 일시 방문자였는데 이제 후베이성 밖에서도 감염자가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문제였다. 중국 내 확진자 중 후베이성 밖이 26%나
된다. 광둥성(1131명),
저장성(1075명), 허난성(1033명) 등은 1000명을
넘었다. 광둥성 확진자 수는 한국 전체의 40배가 넘는다. 광저우 같은 대도시엔 구석구석 확산돼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정부는 지난 4일부터 중국 후베이성에 국한해 입국을 금지해왔다. 그 조치도 국내 최초 확진자가 나온 지 15일이나 지나서 했고, 후베이 지역은 이미 중국 정부가 봉쇄해 실효도 없는 조치였다. 중국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한 것이다. 중국은 4억2000만명에 대해 이동 제한 조치를 내렸다. 감염 우려 주민의 아파트
문을 체인으로 잠그고 있다. 우리는 공항에서 체온을 잴 뿐 후베이 외 지역에서 들어오는 외국인을 제한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에서 공항·항만으로 들어오는 내·외국인은 아직도 하루 5000명을 넘고 있다.
우한에서 관광 온 한 명 때문에 하루 10만명이 드나드는 서울 복판 백화점이 문을 닫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질병을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려면 정부 대응이 더 신속하고 과감해야 한다.
-조선일보(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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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겁먹을 것 없다… 마스크 쓰고 손 잘 씻으면 거의 100% 안전"
[국내 최고의 전염병 관리 전문가… 이종구 前 질병관리본부장]
접촉 통제하면 감염 막을 수 있고 치료받으면 사망률 아주 낮아 우리 의료 수준에선 큰 위협 안돼
공포는 위험 실체보다 부풀려져… 언론과 정치권에서 자극하거나 선동적인 언사 안 썼으면…
이종구(64)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매스컴의 보도 경향과 다르게 말했다.
"지난 수요일을 정점으로 중국에서 신규 확진자가 줄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가 도시를
봉쇄하면서 사람 접촉을 막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 접촉을 통제하면 감염을 막을 수 있고, 감염돼도 집중 치료를 받으면 사망률이 아주 낮다. 너무 겁먹을 것
없다."
그는 국내 최고의 전염병 관리 전문가다. 2009년 신종 플루 사태 당시 방역 대책을 지휘했고, 2015년 메르스 발생 때는 WHO 조사단의 공동단장을 맡기도 했다.
―중국에서 감염자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3만7000명
이상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지 않나?
"매일 3000명을 넘어섰던
신규 확진 환자는 2000명대로 확 떨어졌다. 제동이 걸린
것이다. 신종 코로나는 접촉에 의해 코와 입으로 들어가 감염된다. 손
잘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위생 수칙만 지키면 막을 수 있다. 열나고 기침하면 스스로 외출을 자제하고
보건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공기 속 감염 가능성도 제기됐는데?
"에어로졸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주(主) 감염 경로는 아니다."
완벽한 공항 검역은 불가능
―우리는 초기 검역에 실패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 전염병이 생길 때마다 언론에서는 '검역 구멍 뚫렸다'는 식의 제목을 단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비판이다. 엄청난 인파가 왕래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완벽한 공항 검역과 추적 조사란 불가능하다."
―열(熱) 감지 카메라로 입국자들을 꼼꼼히
체크하면 사전 차단할 수 있지 않나?
"열 감지 카메라는 전염병 진단이 아닌 체열을 체크하는 것이다. 2009년 한
달간 인천공항 입국자 중에서 체열 높은 사람들을 전수 조사해보니 인플루엔자(독감) 무증상 환자가 엄청났다. 하지만 공항에서 실제 어떤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 이들은 알아서 해열제나 감기약을 먹을 것이다. WHO로부터
특정 전염병의 발생 통보를 받을 때만 추가 검역 조치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종구 박사는 “행정력으로 막는 데 한계 있고 개인위생 수칙을 지키는 게 방역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발생 초기에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WHO는 아직 여행과 교역 중단은 불필요하다고 했다. 각 나라는
WHO와 공조하는 것이 원칙이다. 설령 중국인 입국자를 막아도 우회적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일본과 태국, 싱가포르에서 귀국한 확진자도 나오지 않았나."
―예상 못 한 확진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음식점·백화점 등을 다녔다. 불특정 다중(多衆)과 이미 접촉한 셈인데.
"접촉했다고 다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항에서 검역했느냐 못 했느냐를 따지고 접촉자들을 추적하는 것이 의미 없어질 시점이 조만간 올 것 같다."
―이제 지역 사회에 전파가 됐다고 보나?
"환자 발생 추이를 며칠 더 지켜보면 확산될지 시들어들지 알 수 있지만, 지금부터는
공항 검역보다 지역 전파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행정력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각자 개인위생 수칙을 지키는 게 방역의 핵심이다. 동네 병원에서도
진단 시약을 갖추고, 중증 치료를 위한 음압병실 확보 등이 더 중요하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의 사망률은 약 2%로 보고됐다. 누적 사망자 수가 9일 현재
811명을 기록했는데?
"신종 코로나의 사망률은 중국 우한시에서 4.6%로 가장 높았다. 중증 환자들이 갑자기 몰려드는데 의료진과 관리 병상이 적어 사망자가 많이 생긴 것이다. 우한시를 포함하는 후베이(湖北)성
전체에서는 약 3%였고, 이를 벗어난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0.1~0.2%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같은 의료 수준에서는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 국내 환자의 경우 폐렴을 동반하지만 심하지 않고 감기가 주 증상이다."
―전파 속도는 굉장히 빠른 편인데?
"환자가 죽으면 바이러스도 죽는다. 환자가 살아나면 바이러스도 공생해 또 전파가
된다. 전파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에게 적응해간다는 뜻이다.
사람 입장에서 보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능력이 갖춰지는 게 된다. 인구 집단의 면역력이
올라가면 해당 바이러스의 유행은 종식된다."
―이는 바이러스가 생물체를 벗어나면 살 수 없다는 뜻인가?
"생물체 바깥에서는 일정 시간 존재하고 분해된다."
―그렇다면 확진자가 다녀갔던 호텔이나 음식점, 영화관 등을 굳이 폐쇄해야 할 이유가
있나?
"침 알갱이에 있는 바이러스가 떨어져 오염시키지만 그 생존 시간이 길지 않다. 소독하면
오염 양도 줄일 수 있다."
전체주의 국가의 민낯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는 중국의 열등한 공중 방역 수준을 보여줬는데?
"중국의 방역 인프라가 형편없는 것은 아니다. 200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우리나라에서
먼저 환자가 발생했다. 그 접촉자 중 한 명이 홍콩행 비행기를 타 중국에서 환자가 생겼다. 당시 중국이 우리보다 먼저 그 환자의 '메르스' 감염 사실을 학계에 보고했다."
―이번에는 왜 이런 난리를 겪고 있나?
"중국 우한시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날은 작년 12월 8일이었다. 그 뒤로 순식간에 비슷한 증세의 환자가 늘어났다. 우한시는 매일 '환자 몇 명 생겼다'는 식의 보도 자료만 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중앙 정부가 전체 상황을
파악해 환자의 추적과 격리, 봉쇄 조치를 취하는 데 늦었다. 중국
질병관리센터에 보고된 것은 12월 31일로 알려져 있다."
―그 시점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으로 판명됐나?
"중국 질병통제센터가 '새로운 전염병'이라고
공식 발표한 날은 1월 8일이었다. 확진하는 데는 시일이 필요했을 거다. 사실 신종 바이러스의 존재
확인은 태평양 한가운데서 바늘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닷새 뒤 태국에서 환자가 나왔다. 이미 나라 밖으로 퍼진 것이다. 다시 사흘 뒤 중국의 다른 성(省)에서도 발견됐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바깥세상에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새로운 전염병은 국가 간에 실시간 정보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
―중국의 정보 통제로 이번 사태가 악화됐다. 전체주의 국가의 민낯을 보여준 것이다. 과거 사스 사태 때도 중국은 지금처럼 내부 통제를 했다. 당시 환자를
진료한 현지 의사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려 바깥세계에 알렸지만.
"이번에도 중국 의료진은 신종 바이러스 유전자 서열, 잠복기
5.2일, 두 배로 확산되는 속도 7.4일, 한 사람의 감염자가 몇 명에게 전파시킬 수 있는 감염 재생산 지수 2.2명
등의 기초 데이터를 파악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통보해주지 않았다. 의료 전문가들이 보는 웹사이트에만 이런 내용이 올라와 있었다."
―우리 보건 당국도 이 연구보고서를 봤다면 신종 코로나의 확산 가능성을 사전에 알았을 것 아닌가?
"우리 질병관리본부가 이런 전문 의학 논문을 봤는지 알 수 없다."
―그런 자리에 있으면 당연히 봤어야 하지 않나?
"사실 이게 핵심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뒤 징계받은 의사 출신 과장급이나
연구관들이 모두 떠나갔다. 그 뒤 전문성과 무관한 행정직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 때문에 과학적인 위기 대처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중국 의료진의 연구보고서를 입수했으면 조치가 어떤 점에서 달라질 수 있었나?
"진단 시약을 어떻게 얼마나 확보할 것인지, 무엇보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이런 증세를 보이면 어디로 신고해야 한다'는 등의 사전 교육과 홍보를
보다 정확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장 재임 시절 신종 플루 사태가 터졌는데?
"2009년 4월 멕시코에서 여행자가 무증상으로 입국했다. 그 뒤 감기 증세로 찾아간 동네병원에서 신고해줘 확인됐다. 하지만
접촉 연결고리에서 빠진 환자가 나타났다. 두 달에 걸쳐 접촉자들을 찾았으나 실패했다. 그해 7월 검역 중단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검역을 포기해도 되는가?
"이미 지역사회에 전파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환자 치료와 사망자를 줄이는 쪽으로 갔다. 1000만명분의
타미플루 치료제를 비축하고, 2500만명분의 백신을 개발했다."
―당시 280명 사망자를 냈는데, 선방했다고
볼 수 있나?
"전체 확진자 중 사망률이 0.04%였다. 이는
계절 인플루엔자에 걸려 사망하는 숫자보다 적었다. 백신 때문에 많이 살려냈다."
―신종 코로나는 현재 백신이 없고 치료제가 없으니 사람들이 더 공포심을 갖는 것 같다.
"자기 면역으로 버텨낼 수도 있고, 중증환자에게는 항(抗)바이러스제를 투여하는 걸로 안다.
신종 코로나의 성질을 아직 정확하게 모르지만, 생각보다 위험한 질환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생존 위협하는 마지막 敵
―바이러스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마지막 적(敵)이
될 것이라는 말도 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
플루, 2015년 메르스, 올해 신종 코로나 등 최근 5~6년 간격으로 발생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이런 재난을 겪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있다. WHO는 세계적으로 문제가 될 전염병 후보군 7개를 올려놓았다. 선진국에서는 이에 대해 백신 개발 등에 집중 투자를
해왔다. 하지만 사스·메르스처럼 전혀 예상 못 한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했다."
―전쟁은 한정된 지역에서 싸워야 할 상대가 특정되지만, 지금은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안 보이는 불특정 상대와의 대결이다. 상대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훨씬 더 불안스럽다. 공포는 직면한 위험의 실체보다 늘 부풀려진다. 이 때문에 경제 활동과
일상적 삶이 마비된다.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들은 이런 바이러스 감염보다 생계 문제로 더 고통을 받고
있다.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공포심을 자극하거나 선동적 언사를 안 썼으면 좋겠다. 신종
코로나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일상에서 손 잘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면 거의 100% 문제가 없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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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 혐오증
우한 코로나 사태 이후 주변에서 중국 여행을 계획했던 사람들이 모두 취소했고, 일본과 동남아 여행을 취소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젠 미국이나 유럽 여행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감염 위험보다 '해코지 위험'을 염려한다. 최근 주독일 한국대사관은 "동양인에 대한 경계와 혐오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며 교민들에게 신변 안전에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공포 내지 혐오는 4~5세기 훈족이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13세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제국을 건설했던 몽골 제국도 지금껏 서양인들 머릿속에 공포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19세기 말 황화론(黃禍論)을 제기했다. 동양인들이 서양을 정복할 수도 있다는 주장으로, 일본을 견제하고 중국을 침략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그는 1900년 중국 베이징을 침공하면서 "650년 전 몽골인들에게 당한 치욕을 갚아주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은 서양 세계가 동양인의 위협을 실감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일본이 진주만 폭격에 성공했을 때 동양에 대한 서양의 혐오와 공포는 극대화됐다. 영화 '혹성탈출'의 원작 소설을 쓴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은 2차 대전 당시 인도차이나에서 일본군에 억류된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원숭이가 지배하는 지구를 상상해 냈다고 한다.
▶중국인에 대한 혐오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번졌다. 대공황 당시 미국 노동자들은 중국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며 '황화론'에 크게 공감했다. 이런 반감엔 1900년대 초 샌프란시스코에서 번진 전염병이 차이나타운의 불결한 환경에서 비롯됐다는 믿음도 크게 작용했다. 지금 트럼프 인기가 식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중국 때리기'라는 분석도 있다.
▶원래 서양인은 동양인에 대해 우월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하층민들이 아니면 그런 우월의식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우한 폐렴이 세계로 번지면서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에 대해 마구잡이로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다. 거리와 식당, 상점에서 전에 없던 일을 당하고 택시 승차가 거부되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동양인들이 옮기는 병'으로 잘못 아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질병이 편견을 낳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중국 당국이 이 사태에 큰 책임을 져야 하지만 중국인들은 피해자들일 뿐이다. 지금 말로 못 할 고통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철저한 방역대책을 세워야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중국인 혐오'엔 빠지지 않아야 한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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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주역 그리고 감옥
중국 우한에서 넘쳐나는 환자를 수용하기 위한 응급병원 2개를 지었는데 그 작명을 주역의 괘(卦)에서 따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화신산(火神山) 병원과 뇌신산(雷神山) 병원이라는 두 개의 이름이 그것이다. 화와 뇌는 주역의 21번째 괘인 화뢰서합(火雷噬嗑) 괘에
나오는 내용이다. 서(噬)는
깨문다는 뜻이고, 합(嗑)은
합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화(火)는 번개이고 뇌(雷)는
우레다. 괘의 전체 뜻을 풀어보면 번개와 우레가 전염병을 씹어서 깨물어 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공산주의 유물론적 세계관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관점이다. 그런데 주역은 반대다.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주술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상부구조에 해당한다. 괘에는 하늘의 뜻이 나타난다고 본다. 기독교의 '주기도문'에도 보면 '하늘에서
이루어진 일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라'는 내용이 나온다. 하늘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졌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나? 주역은 64괘가
각각 그 하늘의 뜻을 반영한다고 보는 세계관이 깔려 있다. 주역은 동양의 5천년 역사를 지닌 신탁서(神託書)인 셈이다. 따라서 어떤 괘를 먼저 뽑으면 그 괘에 함축된 하늘의
메시지가 다음에 일어날 현실 세계 사건의 양태를 미리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공산주의는 원리적인
측면에서 주역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주역의 괘 이름을 따서 병원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다급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다급해지면 미신이고 주술이고 간에 의지하고
보는 것이 인간 심리인가 보다.
현재의 상황은 그동안 수직상승을 하던 중국의 운세가 한풀 꺾이는 시점으로 보인다. 그만큼
중국의 명운이 걸린 상황인 것이다. 이 아슬아슬한 변곡점에서 21번째
화뢰서합 괘를 선택했다는 것은 정치적이다. 중국 시진핑 정권이 총력투쟁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괘의 점사(占辭)에는 '이용옥(利用獄)'이라는
뜻이 들어가 있다. '감옥을 쓰는 것이 이롭다'라는 말이다. 공산당에서 이 괘를 지정한 이유는 바로 감옥에 있다. 시진핑에게
대항하는 반대파는 모두 감옥에 집어넣을 각오를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드러낸 것이다. 내가 이 상황에서
괘를 뽑는다면 28번째 '택풍대과(澤風大過)' 괘를 뽑겠다. 독립불구(獨立不懼·홀로 있어도 두렵지 않고), 둔세무민(遯世無悶·세상과 고립되어도 걱정하지 않는다)이 그 점사이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선일보(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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