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기사 돈키호테] [ .. 미국판 '검란'] [추미애 다음 스텝은... 왈츠, 태권도 3단 옆차기, 아니면 헛발질?] [秋는 상명하복을 거부하라.. ]

뚝섬 2020. 2. 20. 07:05

기사 돈키호테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극작가는 셰익스피어다. 둘째로 유명한 극작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은 '돈키호테'. 역시 둘째로 유명한 소설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1605년 세르반테스에 의해 탄생한 돈키호테. 괴물이나 기사, 왕국과 같은 은유에 독창적 발상이 더해진 이 모험담은 엉뚱함과 아이러니, 과장과 유머의 상징으로 수백년간 전해져 왔다. 회화·뮤지컬·영화로도 계속 만들어지고,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로도 작곡되었으며, 밍쿠스의 발레 작품으로도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다. 방대한 분량 때문에 사실 완독한 독자는 많지 않지만 어린이용 문고판만으로도 줄거리와 풍차 에피소드는 기억되고 있다. 덕분에 스페인 라만차 지역 콘 수에그라(Con Suegra) 마을의 언덕에 있는 풍차〈사진〉는 명소가 되었다. 방문객들은 풍차를 가까이서 보고, 괴물을 향해 돌진하던 돈키호테를 상상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돈키호테는 우리에게 정의·사랑·품위, 그리고 이상과 비전을 말해 준다. 하지만 이 소설을 사람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돈키호테와 같은 캐릭터가 우리 주변에 꼭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버지나 삼촌, 아니면 남편 등 아주 가까운 관계다. 환영에 잡힌 채 꾸준히 사고를 치면서도 "정의는 내가 지킨다"고 한다. 우리 인생에 존재하는 인물이 너무나 실감 나도록 소설에 잘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미워할 수 없는 이 슬픈 기사는 다른 문학과 드라마를 통해서도 수없이 재탄생되었다. 심지어는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작품들에도 이런 로맨틱한 캐릭터는 꼭 포함된다. "돈키호테 이후 소설은 이 소설을 다시 쓰거나 그 일부를 쓴 것"이라든가 "미래의 작가들이 쓰고 싶은 내용을 수백년 전에 다 써 놓았다"는 표현들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금도 예일대학을 비롯한 전 세계 명문대학의 세계문학사에서 돈키호테는 강의되고 토론된다. 그것은 나와 가까운 누구의 이야기고 현실의 이야기고 인생의 이야기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0-02-20)-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남 일 같지 않은 미국판 '검란' 


미국 법무장관은 연방검찰총장을 겸하는 자리다. 정부를 대표해 각종 소송 등을 담당하는 '미합중국의 변호인'이자, 연방 검사와 FBI(연방수사국), DEA(마약수사국) 같은 수사기관을 지휘한다. 검사와 견해가 다를 때 결정권을 행사하고 대통령에게 판사 추천도 한다.

 

▶그래선지 미 대통령들은 법무장관에 측근을 앉히곤 했다. 최악 사례가 닉슨 측근 존 미첼이다. 닉슨 비리를 은폐하고 '워터게이트 도청'에 가담했다가 감옥에 갔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에게 "(보도하면) 사주의 젖가슴을 건조기에 넣고 짜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하지만 이를 바로잡은 것도 닉슨의 법무부 관료들이었다. 특검 해임 요구에 양심과 법을 걸고 맞서 결국 닉슨을 쫓아냈다. 절친인 카터 대통령의 요구를 뿌리치며 "대통령 아닌 국민의 장관이 되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킨 벨 장관 등 '수사 독립'을 지켜낸 장관·검사가 적지 않다. 미국 사회 법치 전통과 대통령의 수사 불간섭 관행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엊그제 미국에서 전직 검사·법무 관료 1100여명이 윌리엄 바 법무장관 사퇴 촉구 성명을 냈다. "법을 이용해 정적을 벌주고 내 편을 감싸는 정부는 입헌공화국이 아니라 독재국가"라는 요지다. 트럼프 핵심 측근에 대한 구형(求刑) 깎기, 기소 재검토 지시 등 법치 훼손과 트럼프 충견 노릇을 그만두라는 것이다. 현직 검사 수십 명까지 들고 일어났다. 워터게이트 이후 반세기 만에 보는 미국판 '검란(檢亂)'이다. 형식은 장관 사퇴 요구지만 실질은 법을 무시하고 법 위에 서려고 하는 트럼프에 대한 경고.

 

▶그런데 이게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한국에선 지금 문재인 정권이 최악의 법치 파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희대의 파렴치 범죄 혐의자를 다른 자리도 아닌 법무장관에 임명하더니 그 후임 장관은 정권 비리를 덮으려고 청와대 하수인 역할을 자임한다. 청와대 선거 공작 수사 검사들을 인사 학살하고 대통령 개입 의혹이 담긴 공소장은 꼭꼭 숨겼다. 이걸로도 안 되자 '수사·기소 분리'를 논의하자며 검사장 회의까지 소집했다. 정권 비리 기소를 막아보려는 꼼수다.

 

▶검사들 사이에서 검사장 회의 내용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장관이 검찰 의견을 왜곡하는 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퇴 요구만 안 했을 뿐이지 장관에 대한 불신임 선언이자 대통령에 대한 항의다. 트럼프에게 배울 만한 경제 정책은 본체만체하더니 왜 못된 것만 따라가나.


-이명진 논설위원, 조선일보(20-02-19)-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추미애 다음 스텝은… 왈츠, 태권도 3단 옆차기, 아니면 헛발질?

 

잇사 '개구리야 그런 목소리를…'

 

문재인 정권이 검찰을 초토화해서 조국과 청와대를 보호할 특공대(?)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뽑았더니 추미애는 즉시 청와대 앞에 붙은 불 위에 몸을 굴려서 진화하며 불길이 문 정부 요인들에게 닿지 않게 하려고 사투하고 있다. 자기가 보호하는 대상이 섬길 가치가 있는지, 그들을 결사 옹호하는 말과 행위가 자신의 인격이나 명예 또는 정치적 생명에 끼칠 영향이 무엇일지 전혀 가늠 못 하는 사춘기 여학생 같아서 딱하다. 남자 같았으면, 개인적 손익 계산을 재빨리 해서 지탄받는 일은 가급적 시늉으로 때우려 했을 것 같은데.

검사의 수사권과 공소권을 분리하다니, 수사한 검사는 심문 기술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공소를 결정하는 검사는 피의자와 접촉 없이 수사 기록만 보고 글에는 드러나기 어려운 사람에 대한 '()'이나 심증을 포착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있다 해도 왜 그런 인력 낭비를 하는가? 또 그 경우 수사 검사와 공소 결정 검사 사이의 서열은 어찌 되는가?

추미애는 일본에서는 그렇게 한다고 주장했는데, 일본 검찰 제도는 동일한 것이 아니거니와 일본 제도라면 이점이 없어도 본받아야 하는가? 또 추미애는 검사들에게 검사 동일체라는 것이 이제 무너졌으니 검찰총장의 명령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한다. 검사 동일체는 법무장관이 무너졌다고 선언하면 무너지는 것인가? 나아가 상명하복 문화도 깨야 하니 검찰총장은 건너뛰어도 좋다고 했다니, 그는 법무부 차관보나 차관이 자기를 건너뛰어 대통령과 직거래하면 개혁 마인드를 갖춘 훌륭한 공무원이라고 칭찬할 텐가?

검찰의 공소장은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국민의 알 권리는 나중에 충족하면 된다고 한다니, 국민의 알 권리가 유보되어도 괜찮은 기간은 얼마인가? 추미애는 애당초 정계에 진출할 때 정치 도의로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을까, 없었을까? '누구든 덤벼만 봐라' 하는 듯한 그의 자살 특공대 같은 표정을 보니 그의 초심이 무엇이었을까 매우 궁금해진다. 그는 문 정권 측에서 그 살신적(殺身的) 봉사 대가로 어떤 보답을 약속받았는지 모르겠는데, 이 거짓말 잘하는 정부가 그 약속을 지킬까? 아줌마가 너무 사나워서 표 떨어졌다고 오히려 볼멘소리나 들으며 팽당하지 않을까?

18~19
세기 일본 하이쿠의 대가 잇사(一茶)는 읊었다. '개구리야, 그런 목소리를 가졌다면 춤추는 것도 배울 만하겠구나.' 추미애는 이제 어떤 무도를 보여주려나? 왈츠의 낭만적 스텝은 아닐 것 같고 영춘권 보법? 태권도의 3단 옆차기? 아니면 헛발질?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조선일보(20-02-18)-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秋는 상명하복을 거부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秋의 그 말은?


법무부장관과 거짓말쟁이 역설



일러스트=김영석

 

윗사람이 아랫사람더러 '상명하복하지 말라'고 한다. 어떤 가상 사례가 아니다. 지난 3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한 말이다. 그는 검찰이 상명하복 문화에 푹 젖어 있다고 지적하며, 신임 검사들을 향해 "그것을 박차고 나가서 정의감과 사명감으로 충만한 보석 같은 존재가 돼 달라"고 말했다.

얼핏 보면 흔한 덕담 같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생각해보자. 추미애는 법무부 장관이고, 법무부 장관은 검사의 '윗사람'이다. 추미애가 하지 말라는 '상명하복'에서 ''에 해당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신임 검사들은 추미애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 따르지 말아야 하는가
?

신임 검사들이 '상명하복하지 말라'는 추미애의 말을 따른다면 그들은 결국 상명하복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모순이다. 그렇다고 상명하복을 하지 않으면 '상명하복하지 말라'는 명령을 이행하는 꼴이다. 또 역설에 빠지고 만다. 이렇듯 한 명제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기에 참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게 되는 것을 '거짓말쟁이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는 '추미애의 역설'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일곱 현인 중 하나로 꼽혔던 에피메니데스가 남긴 시에 등장한다. 그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입을 빌려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만 한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저 말은 참인가, 거짓인가
?

두 세기가 지난 후 밀레토스의 철학자 에우불리데스도 비슷한 화두를 던졌다. '누군가 지금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참말을 하는 것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논리적으로 빈틈이 있는 에피메니데스의 시와 달리 에우불리데스는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명확하게 구현해냈다. 하지만 에우불리데스가 에피메니데스의 시를 읽고 저 질문을 떠올렸다고 볼 근거는 없다. 애초에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발생하는 이유가 언어와 논리의 한계 때문이니, 우연히 같은 문제에 부딪힌 결과라고 보는 편이 옳겠다
.

이제 독자 여러분도 추미애, 아니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잘 이해하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처음에 깨닫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파악하고 나면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하다. '이 문장은 거짓이다' 같은 문장은 어떤가? 물론 역설이다. '이 명령을 따르지 말 것' 같은 명령도 마찬가지다
.

심지어 둘로 나눌 수도 있다. 거짓말쟁이와 정직한 사람 사이에 중간이 없다고 한 후, 문재인은 '김정은은 정직한 사람이다'라고 말했고, 김정은은 '문재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문재인의 말이 참이라면 김정은의 말 때문에 문재인의 말이 거짓이 된다. 문재인의 말이 거짓이라면 김정은의 말이 거짓말이므로 문재인의 말은 참이 된다. 어떻게 해도 두 사람 모두가 역설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

거짓말쟁이의 역설 그 자체는 앞서 말했듯 기원전 6세기에 발견되어 4세기 무렵 논리적으로 완전한 형태를 갖췄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일 수 있는지 인류가 깨닫게 된 것은 20세기 초에 들어서였다. 수학자이며 철학자이고 평화 운동가로서 활동한 실천적 지식인 버트런드 러셀 덕분이다
.

그의 청년 시절, 유클리드 기하학을 비롯해 수천 년간 당연히 옳다고 여겨진 수학과 논리학의 체계가 도전받기 시작했다. 거목이 넘어지면서 햇살이 비쳤고 새로운 수학적 사고가 우후죽순처럼 자라났다. 독일의 논리학자 고틀로프 프레게는 수학에 논리적으로 확실한 바탕을 제공하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러셀도 그 목표에 공감했다
.

하지만 러셀은 논리학의 밑바닥에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구멍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집합론에 적용한 결과, 그 유명한 '러셀의 역설'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

러셀은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 모든 집합'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러고는 그 집합에 스스로가 원소로 포함되느냐 아니냐를 물었다. 결과는 거짓말쟁이의 역설과 같다. 역설에 봉착하고 만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과학으로, 과학을 수학으로,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하려던 거대한 꿈은 이렇게 역설 하나에 풀썩 허물어지고 말았다
.

러셀의 역설, 혹은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발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집합에 속하는 원소가 마치 자신은 그 집합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어떤 명제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쟁이라는 집합에 속하는 이, 혹은 크레타섬 사람인 누군가가 마치 거짓말쟁이나 크레타섬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말할 때 역설이 발생한다. 추미애의 역설이 등장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검사들의 인사권을 휘두르는 권력자가 마치 '윗사람'이 아닌 양 상명하복을 거부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

여기서 우리는 논리와 윤리가 절묘하게 교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논리가 윤리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논리도 없는 자들이 윤리적일 수는 없다. 러셀과 동시대의 위대한 천재들이 완전무결한 논리적 바탕 위에 인류의 모든 지식을 세우려 했던 것은 결국 완전무결한 윤리를 추구한 것과도 같았다. 추미애가 택한 길은 그와 정반대다. 그는 아주 기본적인 논리까지 무시해가며 윤석열 검찰총장과 검사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

세상이 완벽할 수만은 없다. 모든 것에는 한계와 모순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부조리를 만들어내는 정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추미애의 역설'은 더 큰 무언가를 가리기 위한 것 아닐까? 울산시장 선거에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 신라젠 주가 조작과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라임 사건과 사모펀드 대출 의혹 등, 검찰이 인지하고 수사에 나선 정권 관련 비리 사건이 줄줄이 폭발하기 직전인 상황이니 말이다
.

'
추미애의 역설'을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다. 추미애가 법무부 장관이 아니면 된다. 청와대 공소장 비공개라는 전례 없는 행위를 한 이유가 정권 차원의 비리 수사를 덮기 위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사임하지 않는다면 탄핵감이다. 이것은 좌우와 보혁을 넘어 논리와 비논리, 참과 거짓, 도덕과 부패의 싸움이다
.

현 정권은 크레타섬인가? 참말을 하고 있는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어설픈 역설을 뿌리며 도망가도 소용없다. 결국 심판받을 것이다. 어둠은 빛을,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노정태 철학 에세이스트, 조선일보(20-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