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대통령 부부의 '심기 경호'를 할 땐가
공사 졸업식에서 파안대소하는 문 대통령 부부
어느 언론에 사진이 보도됐을 때 가짜 뉴스인가…
청와대가 "악질적" "아주
심각한 범죄" 같은 용어를 써가며 가짜 뉴스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대부분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관련된 것들이다.
온라인과 유튜브 방송으로 유포된 '문 대통령과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이 함께 찍은 사진' '중국 유학생에게 지급된 대통령 도시락' '왼손을 가슴에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 등은 조작된 것이다. 특정 언론사 로고를 달고 '속보'라며 퍼뜨린 가짜 뉴스도 있다. 이렇게 악의적으로 사실을 조작해 퍼뜨리는 것은 명백히 범죄행위다.
하지만 가짜 뉴스들이 모두 '불법 제조 공장'에서만
생산되는 상품은 아니다. 어떤 사안을 음모론적으로 보거나 왜곡된 추리를 해서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다. 김정숙 여사가 지난달 전통종합시장을 방문할 때 '일본산 마스크'를 썼다는 게 그런 경우다. 청와대가 지금 와서 '악질적 가짜 뉴스'라고 분개하지만,
그 마스크를 어디서 구매했는지 단순 사실만 밝혔으면 잠잠했을 사안이었다.
마스크 독점 공급권을 따낸 유통 업체 대표가 김정숙 여사와 동문(同門)이라는 가짜 뉴스가 퍼진 것도 그럴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 모두
힘든 상황에서 그 업체가 엄청난 독점 이익을 누리게 됐기 때문이다. 누군들 수상하게 보지 않겠나. 김 여사의 동문이라는 단편적 사실에서는 틀렸지만 그 업체의 전(前) 고문이 여당 비례 후보를 신청한 사실은 드러났다. 이럴 경우 더욱
납득할 만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을 때 가짜 뉴스는 진짜처럼 확산 증폭된다.
요즘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팽배할 수밖에 없다. 가짜
뉴스가 번식할 좋은 환경인 것이다.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왕조 시대 때 긴 가뭄이 들면 임금이 음식을 줄이며 백성 눈치를 봤듯이, 지금 권력자들도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고 가짜 뉴스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을까 살얼음판 걷듯이 해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 부부와 관련된 가짜 뉴스만 크게 보이고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 여당도 가세해 가짜 뉴스 280여건을 법적 대응했다고 발표했다. 눈앞의 총선에 악영향을 끼칠 바닥 여론을 아예 틀어막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물론
내세우는 명분은 그렇지 않다. "가짜 뉴스는 코로나 극복을 위해 애쓰는 의료인, 공무원 그리고 국민께 허탈감을 주는 행위…."
하지만 최근 가짜 뉴스의 순위를 매기면 아마 첫째는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등의 마스크 공급 발언 뉴스였을 것이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마스크에 관해서는 대통령 말을 믿었을 것이다.
우리 국민에게 이보다 더 혼란을 준 정부발 가짜 뉴스는 없었다.
허탈감을 주는 행위의 기준에서 봐도, 청와대가 분개하는
'가짜 뉴스'들에 의해 국민들은 그렇게 허탈감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 재난에 처했을 때 보여준 문 대통령의 태도에 더 허탈했을 것이다. 대통령 지지자들도 "중국인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 중국과 한국은 운명 공동체" 같은 발언에는 상처받았을 게
틀림없다.
감염병 사태에는 불가항력의 측면이 있다. 대통령도 상황을 오판할 수 있다. "방역 모범 사례" 같은 자화자찬이나, 청와대 바깥에 있는 국민은 잠시 잊고 '짜파구리 오찬장'에서 파안대소를 했다고 자격 미달은 아니다. 이런 실수가 국민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의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지 일깨워준다면 오히려 의미가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공사 졸업식에서 파안대소하는 문 대통령 부부의 사진이 또 어느 언론에 보도됐다. 가짜
뉴스인가 싶었다. 실제 상황이라면 '누가 감히 내 웃음에
시비 거느냐'는 느낌을 줬다. 그 시점에 국민은 가족의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약국을 돌아다니거나 긴 줄을 서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청와대 참모가 대통령 부부를 향한 충성심을 공개 표시하는 것도 국민을 더 허탈하게 만든다.
"코로나19로 졸업식에 참석 못 하는 부모를 대신해 참석한 대통령 내외의 마음을, 행사장에서 크게 웃는 사진 하나를 골라내 선택하고, 그 장면으로
국민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는 대통령으로 폄훼했다. 내가 누군가의 진심을 모를 수 있지만 내가 모른다
하여 그것이 누군가의 가식은 아니다."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그와는 달리, 대부분 국민은 무엇이 대통령의 진심인지를 모른다. 대신 대통령의 쇼는 너무 많이 봐왔고, 그의 말과 행위는 너무 일관성이
없었다. 신뢰를 허물어온 쪽에서 자초한 것이지, 대통령의
진심을 몰라준다고 분개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 상황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 부부에 대한 폄훼 문제를 놓고 펄쩍 뛸 시점인가. 지금이
대통령 부부의 '심기 경호'나 할 상황인가. 국민이 겪고 있는 고통보다 대통령 부부의 가짜 뉴스를 훨씬 더 아프게 느끼는가. 청와대는 그렇게 할 일이 없는가. 정말 지금이 그럴 때인가.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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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비가 온다"고 하면, 창밖을 내다보라
권력은 때로 놀랄 만큼 과학 무시하고 주술에 기울어
그들의 말은 무시하지 말되 믿지도 말 일이다
지구를 덮은 폐렴 바이러스는 사람의 허파를 습격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인간의 '솔리다리테'를 갉아먹는다. 인류가 '자유'와 '박애'라는 벽돌로 '연대(連帶)의 성(城)'을 쌓는 데 수백 년이 걸렸다면, '혐오'라는 무형 바이러스는 단숨에 그 탑을 흔들어버릴 수 있다. 무증상 감염 탓에 내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모르는 상황으로 내몰리면서 분노만 풍선처럼 부풀어오른다.
더 무서운 것은 사르트르 말처럼 "타인이 지옥이다(L'enfer, c'est les autres)"라고 여기는 인간성 파국이다. '봉쇄' '격리' '결핍'이라는 폭력적 조건이 오랫동안 우리를 옥죄면 너는 나한테, 나는 너한테
지옥이 된다. 이것이 "타인이 우리를 판단하는 잣대로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는 원래 뜻으로 심화되면 '타인
혐오'보다 무서운 '자기 모멸'에 빠질 수도 있다. 물질도 생명체도 아닌 바이러스는 여기까지 인류를
물고 늘어질 것이다.
바이러스에겐 사람 몸이 숙주(宿主)다. 완전 사멸시키려 들진 않을 것이다. 대신 숙주의 개체 수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들의 변형된 공격 방식을 테스트하면서 혼쭐내려 할 것이다. 나라는 나라를, 도시는 도시를, 개인은 개인을 적대(敵對)하는 독 씨앗을 심어놓을 것이다.
인간 능력의 임계점을 벗어나는 재앙이 닥치면 과학과 종교는 느닷없이 서로를 발견한 듯 놀라는 척하고,
권력은 갈팡질팡 손을 놓는다. 한국처럼 선거를 코앞에 둔 정치는 무기력하다. 과학은 표(票)가
안 되고, 종교는 조심스럽다. 권력은 특정 종파의
이단 여부에 개입할 엄두를 못 내다가 종교 집회 금지라는 포괄적인 행정강제를 시도한다. 그도 안 되면
교주 및 지도부의 과거 불법을 따지려 드는데 나중에는 구상권 카드를 꺼낼 것이다.
과학과 종교와 정치를 하나로 꿸 수 있는 것은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상식(常識)'이다. 커먼
센스는 인류 최고의 무형 자산이다. 철학적으로 역사 깊은 개념이지만,
다 떠나서 "모든 사람이 나눠 가질 수 있는 생각"이 상식이다. 기도로써 폐렴 치유를 간구하는 믿음이 신앙이라면, '세상 끝'이 가까이 올수록, 처처에
환난의 소식이 들릴수록 "더욱 함께 모이라"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게 교리라면, 비말 감염이 극성을 부릴 때 일요 집회를 자제하는 것은 '자발적 상식'이다. 서로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 손을 씻고 입·코를 가리는 것, 이게
상식이다. 바이러스는 연대와 상식이라는 인류의 공동 유산을 공격한다.
때로 권력은 놀랄 만큼 과학에 무관심하다. 대신 주술 쪽으로 기운다. 국민은 사태가 악화될수록 건강한 상식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는데 외려 주술적 정치가 긴장을 허문다. 권력은 지금 사태가 총알과 폭탄이 오가는 실제 전쟁이라면 큰일 날 망언을 한다. 최전선이 뚫리고 있는데도 "머지않아 승리로 종식될 것"이라고 선전(宣傳)했다면
그것은 대역죄에 해당한다.
대통령이 "한국은 방역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하면 그대로 믿지 말고 일단 기다려 보라. 영국의
역사소설가 켄 폴릿이 쓴 '영원의 끝'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만일 대통령이 여러분께
비가 온다고 말하는데 정말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면, 어쨌거나 창밖을 내다보세요. 그저 확인을 해보시란 겁니다."(2권 718쪽)
대통령이 "비가 온다"고 하면, 우리는 창밖을 내다봐야 한다. 비는커녕 해가 쨍쨍했던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정권의 말은 무시하지도 말되 믿지도 말 일이다. 선거가
임박하면 정권은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재난 기본소득 100만원' 같은
주술적 오색 방울을 유권자 눈앞에 흔들 것이다. 총선용 포퓰리즘 주술은 이제 막 시작됐다.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일보(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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