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국무위원의 자격은 전문성, 책임감 아닌 코드·보은 충성 등 '정무 감각'
이처럼 노골적인 '청와대 정부'는 처음
이름값커녕 밥값이나 하겠나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를 덮친 지 거의 두 달째다. 평범한 일상을 하루아침에 헝클어버린
이 악몽이 언제 끝날지 아직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당장 사람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마스크 전쟁'이다.
마스크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 일차 저지선이자 사회적 거리 두기의 대표적 물증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임시 국무회의까지 열어가며 마스크 해결책에 부심한 것은 이런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국무회의 결정치고는 개운찮은 대목이 한두 개가 아니다. 우선 특정 소비재의 판매나 공급 방식이
일국의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다소 의외다. 이 정도라면 해당 부처나 담당 부서
소관 업무로 충분한 게 정상적인 국정 아닐까. 물론 국무회의까지 나설 정도로 사정이 다급하고 절박했다. 그렇다면 국무회의 격(格)에
맞게 발표 내용은 훨씬 더 정교하고 치밀해야만 했다. 하지만 '마스크 5부제'는 시행 당일부터 땜질을 시작했고, 지금도 국민 대다수는 '1인·1주·1개'조차 버겁다.
'공적 마스크'라는 작명(作名)도 불편하다. 마스크의 비(非)시장 공적 공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한다는 의미라지만, 정부발(發) 콩글리시로는 '공공
가면'(public mask)이라는 뜻이 되기 쉽다. 자칫하면
마스크 하나를 개인이 아닌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도 없지 않다. 외신에서는 마스크 '배급제'(rationing system)로 번역하고 있는데, 사회주의 냄새에 지레 놀라 차마 그 표현은 피한 건지 모르겠다.
마스크 정책에서 드러난 수준 이하 국무회의는 새삼스러운 것도, 놀랄 일도 아니다. 단체 사진 찍듯 민방위복으로 말쑥이 갈아입은 채, 대통령은 A4 용지에 적힌 '모범 답안'을
열심히 읽고 이를 장관들이 부지런히 받아쓰는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국무회의 풍경이다. 이게
질문이나 직언, 토론을 멀리하는 헌법상 정부 최고 '정책심의기관'의 실상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만 그런 게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노골적인 '청와대 정부'는 처음이다. 국무위원의 자격은 전문성이나 책임감이 아니라 코드 공조나
스펙 관리, 보은 충성과 같은 '정무 감각'임이 분명해졌다. 상당수 장관(급)이 국회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비적격자'라, 더욱더 청와대와 일심동체가 될 수밖에 없다.
입법부 수장 출신 국무총리가 나온 것도 헌정사에서 이 정부가 최초다. 하지만
그런 경력이 업무 수행 능력에 반드시 보탬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일의 경중·완급·선후를 가리는 데 특별히
노련하거나 원숙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에 의하면 코로나19 사태의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고, 의료진의 마스크 부족 또한
'병원 측의 재고 욕심' 탓이다. 세계 전역에서
한국 사람이 '불가촉 국민'이 되어가는데도 외교부 장관은
'방역 능력 없는 국가들의 투박한 조치'를 비난할 따름이다. 신천지 '압수 수색'을
지시한 법무부 장관은 '행정조사'가 더 효과적이라고 권고한
검찰보다 법률 지식이 얕다. 코로나 관련 추경(追更) 증액에 소극적이었던 기재부 장관 역시 결국 재정 건전성 대신 자리보전을 택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청와대는 연일 '지구 최고의 방역'이라는
자화자찬을 주고받는다. 솔직히 이런 자랑은 대만의 몫이다. 대만은
첫 확진자가 발생하자 곧 마스크 수출 통제에 들어갔고 연이어 중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첫 사망자가
발생한 날, 위생복지부 장관은 국민 앞에 눈물로 사과했다. 오늘까지
대만은 확진자 50명, 사망자 1명이다. 일부 국제기구나 해외 언론이 한국의 코로나 대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방역 전체가 아니라 진단 역량이며, 이 또한 현 정부의 공로라기보다 세계
최첨단 민간 의료 시스템의 평소 실력 덕분이다.
한때 대한민국 국무회의에는 '행정의 달인'과 '정책의 고수'가 수두룩했다. 각
부처는 한눈팔지 않는 엘리트 관료들로 활기찼다. 왕조 시대에는 목숨으로 암군(暗君)을 제압하던 충신도 있었다. 이에
비해 요새 장관들은 '이름값'은커녕 '밥값'도 제대로 못 한다. 정호승의
시 '밥값'은 밥값을 하기 위해 매일 지옥이라도 다녀와야
하는 보통 사람의 인간적 도리에 관한 것이다. 하물며 국록(國祿)을 받는다면 지옥 너머라도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 국민에게 밥값
못 하는 장관들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이 아니라 짐이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조선일보(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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