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라는 기적
일상은 차라리 기적이다. 지구를 사과에 비유한다면 사과 껍질보다 얇은 대기층에 77억명이 바글거리며 산다. 기적 같은 일이다. 내 몸을 이루는 세포 30조개 중 어느 하나도 아직 제멋대로 분화해
암세포로 돌변하지 않은 것 또한 기적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나 맛있는 식사를 하고 제가끔 주어진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일상이 다름 아닌 기적이다.
일본의 국민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10만분의 1의
우연'이라는 소설이 있다. 10만분의 1이라는 확률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으로 붙인 제목이다. 우리나라
최대 생활권인 서울·인천·경기 지역에는 2600만명이 살고 있는데 지금까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은 그저 500명 남짓이다. 그러니 수도권에서 일상생활을 하며 감염자를 만날 확률은 0.002%, 즉 5만분의 1이다. 불가능한
우연의 겨우 두 배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이 아직 100명
미만이니 인구 5180만에 비하면 0.0002%도 되지 않는다. 50만분의 1은 쌍둥이를 연달아 세 번 낳을 확률이다. 2019년 교통사고 사망자는 모두 3349명이었다. 보행 중에 1302명, 그리고
자동차를 타고 가다 1150명이 사망했다. 이쯤 되면 운전도
포기하고 아예 길바닥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
어서 빨리 이 괜한 불안과 혐오의 간격을 걷어내지 않으면 저소득층과 소상공인은 조만간 바이러스가 아니라 가난으로 죽는다.
자연에서
완벽한 박멸이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잘 다스리며 공존해야 한다. 최근
다시 미세 먼지 사정이 나빠지고 있다. 후베이성을 제외하곤 중국이 일상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증거다. 세계 경제의 엔진이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이제 우리도 우리 방역
시스템을 믿고 조심스레 이 기적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자. 죽음을 지켜보지 말고 삶의 길로 나아가자. 조심스레.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조선일보(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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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식 코로나 대처법
2차 대전 때 영국은 독일의 공습으로 4만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런던 시민은 여덟 달 동안 밤마다 폭탄
세례가 쏟아지는데도 어떻게든 일상을 꾸려 갔다. 용케 폭탄이 빗나가는 세인트 폴 대성당을 보며 '신의 가호'를 느꼈고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 폭격기 조종사들이 우뚝 솟은 대성당을 육안 식별하는 좌표로 삼았기에 일부러 건드리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유럽 철학사에서 대륙은 합리주의, 영국은 경험주의로 나눈다. 경험주의는 현실 인식을 중시한다. 이런 전통이 영국인의 생사관과
행복관에 녹아 있다. 셰익스피어는 "겁쟁이는
죽음에 앞서 여러 번 죽지만, 용감한 사람은 한 번밖에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고 했다. 존 로크는
"인간의 행복은 환경이 아니라 본인의 마음에 달렸다"고 했고, 경험주의를 이어받아 공리(功利)주의로
꽃피운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강조했다.
▶코로나 사태를 견디는 영국식 대응법이 화제가 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선 학교 문을 닫고, 군중이 모이는 스포츠와 공연을 금지하는 등 난리인데, 영국 정부는 2차 대전 때 내걸었던 구호처럼 '침착하게 하던 일을 계속하자(Keep calm and carry on)'는 입장이라고 한다. 국가
의료보험 기관은 "증상이 나타나도 집에서 일주일쯤 지켜보라"고
안내한다. 총리실 의학 담당관은 "보균자 중 10%만 발병하고 1%만 사망한다"면서 '별것 아니다'라는 식의 설명을 내놓는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너무 일찍 강력한 통제를 하면 너무 많은 사람의 삶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라고 했다.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결정을 하겠다"고 한다. 문제 많은 영국 의료 체계로는 코로나 대응을 전면적으로 하기 어렵다고 한다.
지금까진 존슨 총리의 '솔직 화법'이 통했다. 지지율도 올랐다. 시민들은 거의 마스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코로나를 '감기' 정도로
생각하고 불가피한 피해는 감수하자는 '영국식 공감대'가 생겼다는
인상도 줬다.
▶그러나 확진자가 1300명을 넘자 초조와 불안이 조금씩 터져 나오는 분위기다. 코로나는 이미 영국 병원의 수용 한계를 넘어섰다. 정부가 말은 안
해도 영국이 '집단 면역' 전략을 선택한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국민 60~70%가 감염되면 저절로 면역력이 생긴다는 이론이다. 아무리 영국인이라도 지난 주말부터 생필품 사재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호들갑
떨지 말고 견디자'는 영국식 해법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궁금하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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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현장의 '왕서방'
의사인 내 친구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검사 현장에서 자원봉사한 후기의 일부이다.
'생각보다 견디기 힘든 N95 마스크와 고글은 두 시간을 넘기면 엄청난 강도의 콧잔등 압통을 시작으로 두통과 구토감 등 흡사 고산병과 같은 증상을 가져왔으나 조금이라도 밀착이 덜 되면 김 서림으로 시야 확보가 어려우므로 느슨하게 풀 수도 풀 방법도 없으니 그저 고스란히 참아내야 했다. 보호 장비가 넉넉지 못해서 잠깐 쉬고 온다는 말도 차마 할 수 없었다. 세 시간에 한 번은 교대해야 한다는 음압 병동 규칙을 수긍할 수 있었다. 그 힘든 보호구를 입은 행정 요원들은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컸을 텐데도 묵묵히 자기 자리서 자기 일을 감당해 주었다.
깊게 밀착된 마스크로 안면 근육이 마비된다는 느낌이 들 때쯤 일과가 끝났다. 폐기물 정리까지 완벽하게 마친 베테랑 요원들과 어둠이 깔린 운동장을 걸어 나올 때 며칠이나 버틸까 걱정이 되었다. 그동안 다녔던 해외 의료 봉사나 참혹한 난민촌 진료 시에도 없었던 체력 저하였다.
검사 가능 조건에 대한 지침이 오늘은 조금 엄격해져서 그냥 돌려보낸 분들이 꽤 있었지만 마구 해달라고 우기거나 항의하는 분이 아무도 안 계셨다. 근심하는 얼굴로 아쉬운 듯 창문을 닫고 가는 분들께 의사로서 이 재난이 내 탓인 양 미안하고 죄송했다. 그런데, 검사 못 하고 가면서도 수고하시라고 감사하다고 인사하시는 분들이 거의 다였다.'
우리 의료진은 숨 막히는 방호복과 허술한 도시락, 장시간 중노동에 더해 보호 장비 부족에 시달려야 한다. 어느 때보다 청결 무구한 방호 장비를 착용해야 할 의료진의 방호복도 달리고, 마스크는 거듭 재사용하기도 한다니 그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진의 보호 장구가 부족한 것이 아니고 '그분들이 재고를 쌓아두고 싶어 하는 심정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토요일자 조선일보에는 마스크를 사용 횟수가 표시된 못에 걸어두며 여섯 번까지 쓰고, 의료용 덧신 대신 비닐봉지와 헤어캡을 씌운 의사의 발 사진이 실렸다. 그런데도 박능후 장관 말대로 '우리나라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이) 모범 사례이자 세계적 표준'이 된다면 정부가 그 공을 독점하려 하겠지?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러스킨은 말했다. 우리가 군인과 의사를 존경하는 것은 군인의 과업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나라를 지키다가 죽는 것이고 의사는 전염병이 창궐할 때 사지에 남아서 환자들을 돌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위정자들은 우리에게 존경받을 사유가 하나라도 있는가?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조선일보(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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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대홍수를 겪은 노아의 후손들이 하늘까지 닿도록 높은 탑을 쌓으려 했던 '바벨탑'의 전설이 나온다. 인간의 오만함에 분노한 신께서 언어를 갈라놓고 나니,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된 이들이 건축을 마치지 못하고, 마침내 온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피터르 브뤼헐, 바벨탑, 1563년경, 나무판에 유채, 114㎝×155㎝,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고고학자들은 바벨탑의 기원이 고대 수메르인들의 신전이라고 한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화가 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the Elder·약
1525~1569)은 그가 이 그림을 그리기 10년 전 로마를 방문했을 때 직접 봤던
고대의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을 바탕으로 상상의 바벨탑을 그려냈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던 화가
브뤼헐의 눈에 비친 콜로세움은 위대한 건물이기는 하되 당시에는 이미 반쯤 허물어진 상태였다. 로마 제국이
남긴 거대한 폐허는 이교도들의 헛된 욕망과 자부심이 결국은 파탄을 낳는다는 '바벨탑'의 전설에 들어맞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브뤼헐은 16세기 전반에 종교개혁을 거치며 독일어로 번역된 성경이 퍼져 나가 라틴어를 모르는 평신도들도 신의 말씀을 직접
이해하게 된 당시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들만의 고탑(高塔)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언어를 갖고 흩어진 이들이 지금의 세상을 만든 게 아닌가.
화가는 실제로는 3층인 콜로세움을 나선형 비탈을 따라 하늘을 향해 까마득히 치솟은 고층
건물로 변형했지만 아치가 반복되는 외벽과 군데군데 무너져 내부가 드러난 모습은 콜로세움을 그대로 닮았다. 위태롭게
기울어진 채 올라가는 탑은 인간들이 맞이하게 될 재앙과 기회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 같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조선일보(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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