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非對委, '창조적 파괴 시대' 열어야 산다
통합당, 젊어지고 連帶하고 實用主義로 무장하라
물에 빠진 사람에게 수영법 강의 앞서 救命 밧줄 던지는 유연성을
미래통합당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방향을 잡았다. 당심(黨心)이 솔깃하기는 새 인물이 새 메시지를 갖고 등장하는 카드였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통합당의 인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김 위원장은 경제, 특히 재정(財政) 전문가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나 대통령 후보 재포장 사업과 정당 구조조정 전문가로 자리를 굳혔다. 박근혜 후보에게 '경제 민주화'란
날개를 달아 주고 선거 3연패(連敗)로 진흙 바닥에 뒹굴던 문재인 대표를 다시 일으켜 대통령으로 가는 꽃길을 깔아주었다. 그러고도 모두에게 팽(烹)당했으니
그것도 유별나다. 소신 또는 고집이 세다는 뜻이다.
특기(特技)는 우파 후보에겐 중도 또는
좌파 쪽으로, 좌파 정당엔 그 반대쪽으로 운동장을 확장해주는 것이다.
독일 생활에서 체득(體得)한 독일식 정치와 정당
제도, 독일식 경제정책과 사회보장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정치 재산이다.
통합당 재건 공사는 난(難)공사다. 통합당은 총선·대선·지방선거 패배에 이어 이번에 기록적 참패를 당했다. 이대로는 2022년 대선도 무망(無望)하다. 통합당은 반성하라고 하면 자기를 학대(虐待)하고, 조금 기운을 복돋워주면 당겼다 놓아버린 고무줄처럼 옛 체질로
돌아간다.
총선 통계는 통합당 참패의 성적표다. 그래도 '성적은
나쁘지만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하는 방법은 있다. 투표 후
조사에서 투표자의 73%가 '통합당에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통합당 득표율이
41.4% 나왔다. 민주당과 그 비례 정당, 통합당과
그 비례 정당 득표율을,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입(代入)하면 두 당 의석 숫자가 130석과
114석으로 나온다고 한다.
투표 직전 4월 13~14일 실시한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59%를 기록했다. 2018년 10월 이후 최고치였다. 2월
11~13일 실시한 조사에선 야당 심판론이 43%, 정부 심판론이 45%였다. 이후 코로나 확진자 숫자는 급속 증가하다 수그러들고 통합당의
막말 행진은 계속됐다. 투표는 통합당이 최저점(最低點), 민주당이 최고점(最高點)을
통과하던 시점에 실시됐다. 총선 통계를 이런 식으로 읽으면 마음은 편하지만 미래의 문이 닫힌다.
총선의 실제 모습은 어땠을까. 통합당은 영남 밖 서울·경기·인천·충청·강원 지역에서 모두
합해 28석을 얻었다. 호남·제주에선 1석도 건지지 못했다. 민주당은 호남 이외 지역에서 136석을 얻었다. 통합당은 지역당으로 뒷걸음쳤다.
총선 승패는 지역구 의석의 절반 가까운 121석이 걸린 수도권에서 결판난다. 지역 요인은 상쇄(相殺)되고
연령으로 나뉘는 세대 요인과 경제적 계층 의식이 더 크게 작용하는 용광로다. 통합당은 여기서 16석을 얻었다. 유권자들이 통합당을 '늙은 정당', 잘사는 사람을 대변하는 '잘난 정당'으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통합당은 젊어져야 한다. 민주당의 2년 후 대선
후보는 70세에 가까운 나이일 것이다. 도전자는 그보다 훨씬
젊어야 승산(勝算)이 선다.
본부석과 응원석을 비롯한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통합당 비대위의 제1 과제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수영법을 강의하는 것은 원칙주의가 아니다. 무신경(無神經)일 따름이다. 먼저
구명(救命) 밧줄을 던지고,
수영법은 건져낸 후 가르쳐도 늦지 않다. 경제 위축 시대를 사는 한국 중산층은 추락의
공포를 겪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통합당은 낙상(落傷) 예방법 대신 등산 기술을 가르쳤다.
대공황(大恐慌)을 이겨내고 소수 집단을 결합하는
대연합으로 민주당 장기 집권 시대를 연 루스벨트 후보는 통합당 기준으론 영락없는 포퓰리스트(대중 영합주의자)다. 당시 현직 공화당 대통령은 수영법을 강의했다. 나라를 살리려면 선거에서 이겨야 하고 선거에서 이기려면 외투는 유연성(柔軟性) 있게 품이 넉넉한 걸 걸치고, 그 안에 실용주의 저고리를 받쳐 입어야
한다.
한국 선거에서 '홀로' 이길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 '함께' 연합하지 않으면 어떤 선거도 이길 수 없다. 세대를 묶고, 계층을 묶고, 이념을
묶고, 지역을 묶어야 이긴다. 누구와 어떻게 연대(連帶)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통합당 비대위의 제3 과제다.
통합당은 '창조적 파괴' 과정을 통과해야 산다. 문제는 '파괴'가
먼저 오고 '창조'가 뒤에 온다는 것이다. 이 받아들이기 불편한 시차(時差)를
당원과 국민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비대위원장의 책무(責務)다.
-강천석 논설고문, 조선일보(2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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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입맛 못 맞추는 보수 메뉴판, 국민경선으로 바꿔라
진보는 당선 가능성 따지는데 보수는 '우리 편' 사람만
고집
정치소비자 시장 변화 외면, 지지층 결집만 노리다가 참패
대선후보, 대표 얼굴이 경쟁력… 당원이 국민에 결정권 넘겨라
김대중 정권 마지막 해인 2002년 3월 9일, 집권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제주에서 시작될 때만 해도
여당 후보는 이인제로 거의 굳어져 있었다. 민주당 주류인 동교동계를 비롯해 당내 의원 절대다수가 지지했다. 그 판도는 일주일도 안 돼 3월
15일 광주 경선에서 뒤집어졌다. 일반 유권자 개개인도 지지 정치인을 쉽게 바꾸지 않는
법인데, 유력 정당의 당원, 대의원 표심이 순식간에 이동한
것이다.
원인은 한 가지였다. 그 일주일 사이에 나온 한 여론조사에서 '여당 대선 후보로 노무현이 나서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을 깰 수 있다'는 가상 대결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민주당 당심을 결정하는 호남
여론이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밀자"는
쪽으로 움직였고 그것이 결국 그해 말 대선 승자까지 바꿔 놓았다.
마음이 가는 후보는 따로 있지만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대신 지지하는 것을 '전략적
선택'이라고 부른다. 민주당 지지층은 이런 전략적
선택이 몸에 배어 있다. 유권자가 고향 출신에 애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미국에서도 고향 출신 정치인을 '총애하는 아들(favorite son)'이라고 부른다. 그런데도 민주당 텃밭인 호남
유권자들은 노무현, 문재인 같은 부산 출신들을 후보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호남 인구가 적은 만큼 보수 정당의 영남 표밭을 갈라칠 수 있는 후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반면 미래통합당 계열인 보수 정당들은 당심(黨心)에
맞는 '우리 사람'을 후보로 정한 뒤 "무조건 고"를 외치는 쪽이다. 그러다 보니 당 지지와 국민 지지가 엇갈리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민 여론조사는 크게 앞섰지만 당원, 대의원 투표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밀리면서 1.5%p 차로 신승했다. 한나라당
핵심 지지층의 '박근혜 사랑'은 본선 경쟁력으로 저울질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이었다.
작년 2월 한국당 전당대회 때도 국민 여론조사에선 오세훈 후보가 50%로 1위였지만 당원 투표에서 압승한 황교안 후보가 당 대표가
됐다. 황 대표의 '탄핵 총리' 전력이 일반 국민 눈에는 결점이었지만 당원들에겐 오히려 '우리 편'이라는 득표 요인이었다. 오 후보는 전당대회 연설에서 "박근혜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가 당 핵심 지지층으로부터
야유와 비난을 받았다. 당시 오 후보가 "과거에
발목 잡히면 국민은 다시 우리 당에 회초리를 들 것"이라고 했던 예언은 이번 총선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통합당의 지역 기반인 영남은 인구 비중이 25%다. 민주당의
호남 비중 10%의 두 배 반이나 된다. 그 덕분에 수도권에서 4대6으로 밀리는 싸움을 해도 전국적인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북한의 안보 위협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보수 정체성도 당에 보탬이 됐다. 이같이
풍요로운 텃밭이 "지지층만 결집시켜도 선거에서 이긴다"는
안일과 나태를 불렀다.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서 석유나 광물이 풍부한 나라일수록 경제 발전이
둔화한다는 '자원의 저주'를 떠올렸다.
폭망한 통합당 내부에서 80년대에 태어난 30대
연령, 2000년대 학번 정치인들을 전면에 내세우자는 '830 기수론'이 나오고 있다. 통합당 분홍 점퍼를 입고 전남 순천 지역구에 출마했던 34세 대구 청년 천하람은 "70, 80년대에 갇혀 있는
당의 메뉴판을 바꿔 놓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맞는
진단이다. 문제는 지금 통합당 체제로는 일반 국민, 특히
선거 판도를 좌우할 30, 40대 중도층 입맛에 맞는 메뉴를 내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대선 후보, 대표 같은 당의 간판을 결정하는 당내 경선에는 당원 투표가 50% 이상 반영된다. 사실상 당원이 통합당 메뉴판을 결정한다고
봐야 한다. 박정희 시대부터 당을 지켜온 이들은 한국 보수의 소중한 기반이다. 그러나 이들의 시대 인식이 2020년을 사는 평균적인 대한민국 정치
소비자들과 동떨어져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음식 만드는 사람 입맛과 손님 입맛이 다르면 어찌해야
하나. 나라 번영을 소중히 여기는 유권자에게 선택지는 보수 정당 하나 밖에 없는데, 그 당은 시대에 안 맞는 당심의 포로가 돼 있는 구조를 깨지 않으면 보수 패배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통합당 의사 결정 시스템을 일반 국민 경선으로 전면 대체하는 것밖에 답이 보이지
않는다. 통합당 당원들이 정말 보수를 사랑하고, 보수가
선거에 이겨 다시 역사의 주인이 되기를 바란다면 국민에게 선택권을 넘겨주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김창균 논설주간, 조선일보(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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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식 '멜팅 폿'
프랑스의 가브리엘 아탈 교육·청소년 담당 국무장관은 만 31세다. 현재의 헌법이 시행된 1958년 이후 최연소 장관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16년 중도 우파를 지향하는 신생 정당 '앙마르슈'를 창당할 때 사회당 당원이던 아탈을 끌어당겼다. 2017년 아탈이 하원 의원에 당선되자, 마크롱은 그에게 앙마르슈
대변인을 맡긴 데 이어 장관으로 발탁했다. '청년 좌파'였던
아탈은 우파 정치인으로서 경력을 쌓고 있다.
앙마르슈라는 실험적인 정당이 성공한 원동력은 신선함이다. 마크롱은 나이, 성별, 이념을 따지지 않고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인재를 불러 모았다. 특히 개혁 의지가 있는 중도 좌파 출신 젊은이들을 주변에 뒀다. 한국계인
세드리크 오(38) 디지털부 장관이 대표 사례다. 지난해
세드리크를 만났을 때 그가 "마크롱식 실용주의를 추구하지만 원래 뿌리였던 좌파의 온정주의를
잃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앙마르슈가 2017년 총선에서 새바람을 일으키며 대승하고 보니 당선자 평균 나이가 45세였다. 우파이면서도 젊은 원내
1당이 탄생한 것이다. 마크롱이 좌파와 젊은 피만 수혈한 건 아니다. 우파 성향이 강한 공화당 출신이자 일곱 살 연상인 에두아르 필리프를 총리로 발탁했다. 백전노장들도 끌어당겼다. 장이브 르드리앙 외무장관은 73세로 마크롱보다 서른 살 연상이다. 여성인 니콜 벨루베 법무장관은 65세다. 원래 어떤 편이었는지에 대해 마크롱은 까다롭지 않았다. 중도 우파 개혁 노선을 지향하되 성별, 연령을 망라해 쏠림 없는
연합군을 만들었다.
한국의 총선 역사상 기록적인 패배를 겪은 보수 야당은 친분 없던 이들까지 껴안은 마크롱식 포용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 지켜보면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로또'는 이번 총선에서 효력이 사멸된 게 아니다. 필리프 총리는 올해 프랑스
경제성장률이 -8%가 될 것이라고 했다. 봉쇄령으로 손발이
묶인 유럽에서는 거의 모든 나라가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후(戰後) 최악의 성적표가 불가피하다.
반면 한국은 탄탄한 의료 체계, 의료진 헌신, 전
국민 마스크 착용 덕분에 전면적인 봉쇄는 없었다. IMF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2%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게 전망한 사실을 야당은 직시해야
한다. 국내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문재인 정부가 '선진국
대비 상대적인 우위'라는 방패를 꺼내 들면 공격이 먹혀들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대외 상황을 고려하면 보수 야당에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늘 그랬던 식으로 정권의 실점만 기대하다가는 여권과 격차를 좁히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야당 스스로 점수를 얻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 득점을
위해서는 마크롱이 앙마르슈를 만들 때처럼 과감하게 경계를 허물고 테두리를 넓혀야 할 필요가 있다.
-손진석 파리특파원, 조선일보(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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