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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통합당 앞 '좋은 정당'과 '나쁜 정당'의 길] [현 정권보다 지금의 통합당이 더 두렵다]

뚝섬 2020. 6. 6. 07:22

김종인 통합당 앞 '좋은 정당'과 '나쁜 정당'의 길

 

현금 뿌리는 '나쁜 정당'이 승리하는 총선 기억 뿌리칠 수 있을까

 

오른손잡이를 정상으로 보고 왼손잡이는 비정상이라며 구박하던 시절이 있었다. 구(舊)시대의 편견이다. 왼손 투수 류현진은 프로야구의 본바닥에서 당당하게 제 몫을 해낸다. 지난 35년 동안 미국 대통령 가운데 오른손잡이는 카터, 아들 부시, 트럼프 셋밖에 없다. 대통령에 대한 진정한 평가 기준은 나라가 당면한 현재의 과제를 해결하고 국민에게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품게 했느냐 여부다.

'좋은 정당'과 '나쁜 정당'에 대한 평가 기준도 다르지 않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이끄는 미래통합당의 변화는 어느 쪽으로 가는 출발일까. 빈 절간처럼 적막하고 패전(敗戰)투수처럼 풀죽었던 당내(黨內)에 사람 사는 기척이 들리기 시작한 건 분명한 변화다. '잊힌 정당'에서 '논란(論難)과 시비(是非)의 대상'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 파문 때문이다.

'과거의 가치관과 멀어지는 일이 있어도 너무 시비하지 말아 달라'던 예고(豫告) 방송이 빈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진보·보수·중도라는 말은 쓰지 말라' '배고픈 사람이 모락모락 김이 나는 빵을 보고도 사 먹을 수 없다면 자유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기본소득 도입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됐다'. 하나하나가 보수 유권자와 통합당의 본래 마당 사람들이 그냥 넘기기 힘든 발언이다. 당 안팎에서 '수상쩍다. 이러다간 2022년 또 하나의 더불어민주당이 탄생하는 거 아닌가' 하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김 위원장이 그렇게 허술한 사람은 아니다. 뜯어보면 문제의 발언마다 무슨 전제(前提) 조건이나 앞말과 다른 뒷말이 달려 있다. '국민은 불평등과 비(非)민주 문제를 해결하는 정당을 평가한다' '보수가 끝까지 사수(死守)해야 할 가치는 자유다' '박정희 정부가 국민건강보험, 노태우 정부가 국민연금, 박근혜 정부가 기초연금을 도입했듯이 복지국가의 틀은 보수 정당이 만들었다' '엄청난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은 불가능하다. 일하려는 인센티브를 없애고 기본소득에 적당히 얹혀살려는 풍조를 조성할 위험이 있다'…. 이런 뒷말과 앞말을 합치면 김 위원장의 속뜻이 아리송해진다. 여권 일부가 '2022년 대선의 중요 의제(議題)를 선점(先占)하려는 시도'라고 경계하는 것에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좋은 정당'과 '나쁜 정당'의 진짜 차이는 무엇일까. 좌파 정당의 대표 정치 상품은 '우리는 가난한 사람의 편'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약속대로 식량·전기·생필품을 무료로 공급한다. 가난을 벗어날 고기 잡는 그물은 주지 않는다. 이런 세월이 길어질수록 가난한 사람은 좌파 정당에 기대지 않고선 생존할 수 없고, 좌파 정당은 가난한 사람이 존재해야만 정권을 연장할 수 있는 공생(共生) 관계가 만들어진다.

'좋은 정당'은 가난한 사람이 자포자기하지 않고 살아갈 지원과 가난의 구덩이에서 벗어날 사다리를 함께 제공한다. '좋은 정당'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 못지않게 합리적 판단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내일에 대비하면 더 큰 이익이 돌아올 줄 알면서도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건 오늘이 너무 절박하기 때문이다. '좋은 정당'은 가난을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교육·환경이 얽힌 복합적 문제로 파악하고 가난한 사람을 옭아맨 족쇄를 끊어준다. '좋은 정당'은 가난을 떨치고 일어선 사람이 많아질수록 지지 기반이 넓어지고 튼튼해진다.

미래통합당이 '좋은 정당'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서 있는지 '나쁜 정당'으로 추락하는 낭떠러지로 향하는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걱정은 김 위원장이 지난 총선을 통해 공짜로 뿌리는 돈의 위력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나쁜 정당이 승리한다'는 유혹을 떨칠 수 있을까. 이 유혹에 무릎을 꿇었다면 2022년 대선은 '나쁜 정당' 간의 대결이다.

한국은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쏘라'며 장병의 선두에 서서 낙동강 교두보를 지켜낸 백선엽 장군이 국립묘지에 몸을 누일 자리가 없는 나라다. 여당은 뇌물을 받은 전직 국무총리에게 내린 대법원 확정판 결을 뒤집으려 하고, 김정은의 여동생 한마디에 청와대와 내각은 온몸이 얼어붙는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 앞에서 국민의 분노를 '야당다운 야당'이 받아주지 못하면 누가 받아주겠는가.

보수의 기본은 고장 난 부분을 고치면서도 겉멋 들어 고장 나지 않는 부분까지 손대지 않는 것이다. 김종인의 통합당이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좁은 문(門)을 통과할 수 있을까.

 

-강천석 논설고문, 조선일보(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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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보다 지금의 통합당이 더 두렵다

 

"보수나 자유 우파라는 말을 싫어한다"는 80세 노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여당이 압승한 뒤였다. 한 대학교수가 신문에 써오던 칼럼을 중단했다. 정권 홍위병들에게 표적이 될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생기더라고 했다. 선거에서 절대적 지지를 얻어 이제 더 날뛸 텐데 무슨 일을 못 벌이겠느냐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심정이다. 다만 현 정권보다 통합당이 더 두렵다. 현 정권이 어떻게 나올지는 예측되기에 마음의 준비라도 한다. 진짜 두려움은 예측되지 않는 두려움이다. 지금 통합당을 보면 예측이 안 된다. 어떤 가치와 노선을 지키려는지 과연 그런 게 있는지 모호하다. "보수나 자유 우파라는 말을 싫어한다"는 80세 노인 김종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편안함을 느끼는 모습이 더 두렵다.

통합당 의원들은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지역구 출신이 거의 전부다. 당내 권력의 눈치를 보는 데 익숙해서일까. "다소 불만이 있고 과거 가치와 동떨어진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너무 시비를 걸지 말아 달라"고 했을 때 다들 찍힐까 입을 다물었다. 어떤 이들이 김종인의 지도 방침에 동의했을 수는 있다.

한 노인이 자신의 생각에 맞춰 정당을 개조하려는데도, 보수 정당의 전통과 정체성에 관계된 중대사인데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잊어버린 것 같다. 공개적으로 그에게 맞선 이는 장제원 의원 한 명뿐이다. 통합당이 아무리 쭈그러들었다 해도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것에 대한 동의 여부는 저마다 밝혀야 한다. 이는 보수 정당 후보를 찍어준 유권자들에 대한 예의다.

김종인은 '자유 우파'라는 게 보잘것없다는 취지로 "배고픈 사람이 빵집을 지나다 김이 나는 빵을 먹고 싶은데 돈 없어 먹을 수 없다면 그 사람에게 무슨 자유가 있겠나"라고 했다. 빵 사 먹을 돈이 있어야 자유가 있나. 이런 언급은 너무 수준 이하다. 그는 사회 취약 계층에 대한 복지 지원을 말한 것 같은데, 서울시 복지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하면 금방 들을 수 있다. '김은 안 나지만' 빵 문제 같은 기본 생계는 이미 해결돼있다. 단지 비싼 소고기를 못 사 먹을 뿐이다.

그는 '약자와의 동행'이라며 기본소득도 언급하고 있다. 말은 아름답다. 하지만 기본소득 개념조차 모르는 소리다. 약자와 동행하는 것과 전 국민에게 일률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연결되지 않는다. 통합당 구성원들이 그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어떻게 하면 여당보다 더 많이 돈을 퍼부을 수 있는지를 공부하고 있다고 들었다.

 

공돈을 주면 싫어할 사람은 없다. 현 정부의 재정 부실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규모다. 코로나 사태가 있기 전부터 역대 최고였다. 그렇다고 재난 지원에 큰돈 쓰는 것을 아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재난지원금이 평소에도 먹기 어려운 소고기를 사 먹는 용도로 쓰인 것이다. 정상적인 보수 정당은 이런 식의 무차별 돈 살포를 비판해야 한다. 그 돈으로 직접 피해를 본 일용직·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에 집중 지원하는 게 옳았다.

지금까지 보수 세력은 국가 장래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정권 임기 중에 온갖 인심을 쓰는 돈 잔치를 벌이고 나랏빚을 떠넘기는 짓은 안 하려고 했다. 어떤 용도의 선별 복지를 하고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지를 따졌다. 자신의 허리띠를 졸라매도 자식 세대에게는 막대한 악성 부채를 안 물려주려는 게 보수의 정신이었다.

실제 통합당이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돈 살포를 백날 얘기해본들, 그런 경쟁에서 결코 현 정권을 이길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재난지원금으로 모처럼 소고기를 샀다는 보도에 뭉클했다"고 했는데, 김종인은 고작 '김 나는 빵' 수준에 머물고 있다. 빚을 내 돈 퍼붓는 일은 여당 혼자서도 넘쳐나도록 해왔다. 굳이 여당 아류(亞流)나 2중대까지 필요하지 않다.

이 80세 노인은 통합당 재생 카드로 광주 군 공항 이전과 호남 의대 신설도 내놓았다. 이걸로 호남의 관심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통합당이 이런 천진한 발상을 홍보할 때,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의원들을 향해 "잘못된 현대사에서 왜곡된 것을 하나씩 하나씩 바로잡아 가는 막중한 책무가 여러분에게 있다"고 말했다.

현 정권은 KAL 858기 폭파 사건, 제주 4·3 사건 여순 반란 사건 등을 재조사하겠다고 했다.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을 친일파로 공격하고, 국립묘역에서 '친일파 묘'를 파내야 한다고 했다. 해방 이후 현대사를 모두 좌파 시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여당은 광주 5·18에 관해 학문적 이견도 용납하지 않는 처벌법까지 내놓았다.

지금 통합당 구성원은 두 부류다. 심정적으로 여기에 동조하거나, 현대사가 어떻게 수정되든 관심이 없는 쪽이다. 이승만·박정희를 분단과 친일 세력의 원흉이라며 대신 사죄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통합당이 더 두려운 것이다. 보수의 바로 뒤에는 천 길 낭떠러지가 있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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