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세력이 보여준 평화에 대한 無知
文정부 대북 정책 실패 이유, 비핵화·남북관계 우선순위 誤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지난 16일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해법을 찾으려면 그 원인부터 규명해야 한다.
대북 정책 실패의 근본 원인은 평화가 유지되는 원리에 대한 무지에 있다.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한다면 우리는 67년간 평화를 누려왔다. 그러나 전쟁이 안 일어난다고 다 같은 평화가 아니다. 평화의 품격은 평화의 조건과 평화 결정권을 행사하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핵무장한 북한과 평화란 북한의 핵 인질 상태에서 인질범인 북한이 자의적으로 조건을 결정하는 평화다. 인질범이 베푸는 선의와 자비에 운명을 맡긴 상태에서 인질이 누리는 굴욕적 평화, 노예적 평화다. 인질범이 변덕을 부리면 언제든 빼앗길 수 있는 일시적이고 위태로운 평화다. 인질범이 조건을 결정하는 평화는 인질범을 제압하기 위한 무력 사용보다 나을 것이 없다. 인질 상태에서 탈출할 방도를 찾기보다 인질이 인질범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경찰 대신 인질범의 편을 드는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한다. 미국이 우리를 인질 상태에서 구출하고 인질범인 북한을 제압하기 위한 훈련만 하려고 해도 안절부절못하는 문재인 정부의 심리 상태는 이와 다를까?
평화의 품질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기준은 지속 가능성이다. 오늘 평화롭게 살기 위해 내일의 평화를 더 위태롭게 하고, 오늘 1000명 인명을 지키기 위해 내일 만 명 인명을 희생해야 한다면 그건 내일의 재앙을 키우는 대가로 누리는 가불한 평화에 불과하다. 평화의 지속 가능성은 적의 의도에 바탕을 두느냐, 적의 능력에 바탕을 두느냐에 달려있다. 의도는 언제든 바뀔 수 있을 뿐 아니라 정확히 알 수 없고 얼마든 위장이 가능하다. 능력은 숨기기 어렵고 지속성이 있다. 능력이 있으면 의도에 따라 언제든 평화를 깰 수 있지만 능력이 없으면 의도가 있어도 평화를 깰 수 없다. 김정은이 가혹한 제재를 견디며 평화 파괴 능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누리는 평화는 온전한 평화라 할 수 없다.
판문점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는 평화의 환상만 조장했을 뿐 실제로는 평화 유지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판문점 선언 2조 1항이 적대행위 중단을 규정하고 있으나 적대행위의 개념을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까지 확대함으로써 북한에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요구할 근거를 제공하고 대북 억지력을 약화했다. 군사합의서 1조 3항에 따른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북한의 기습 준비 동향을 탐지하고 합의 이행을 검증할 공중 감시 정찰을 제약함으로써 북한의 평화 파괴를 더욱 용이하게 만들어주었다. 검증이 불가능하고 군사활동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군비통제합의는 평화의 환상만 조장하고 평화를 더 위태롭게 한다.
노예적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좋다는 평화지상주의는 패배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명예로운 평화, 지속 가능한 평화는 북한의 평화 파괴 행위를 거부하고 평화를 강제할 능력과 의지가 있을 때 온전히 누릴 수 있다. 평화 결정권을 북한에 맡겨두고 평화 타령만 한다고 평화가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니다.
대북 정책이 실패한 또 하나의 이유는 비핵화보다 남북 관계를 우선시한 데 있다. '평화 경제'라는 미명하에 제재 완화와 대북 경협에 매달린 나머지 남북 관계와 비핵화를 모두 놓치는 우를 범했다. 비핵화 목표를 제재만으로 달성할 수는 없지만 제재 없이는 불가능하다. 북한이 핵과 경제 발전 가운데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어야 사라져가는 비핵화의 마지막 희망을 살릴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 경협과 제재 해제에 대한 집착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어 핵을 내려놓을 인센티브를 빼앗는다는 점에서 비핵화에 방해가 될 뿐이다. 비핵화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북한을 도와주려고 발버둥쳐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북한을 희망 고문할 뿐이다.
끝으로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움직일 레버리지를 상실한 것이 북한의 능멸과 조롱을 자초한 원인이다. 레버리지란 북한의 생존과 운명을 결정할 힘과 의지에 비례한다. 미국이 이런 레버리지의 대부분을 갖고 있으므로 우리의 레버리지는 미국을 움직일 능력에서 나온다. 한·미 간 소통과 공조가 원활할수록 북한이 실존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리 정부에 신세 질 일이 많아지고 우리의 레버리지는 강화된다.
이러한 단순한 이치를 인지할 정부 능력에 고장을 일으키는 주범은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와 확증편향, 그리고 집단적 사고(group thinking)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조선일보(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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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주장하며 평화 막는 북핵엔 한마디 안 하는 정권
문재인 대통령이 6·25 70주년 기념사에서 "우리 힘으로 반드시 평화를 지킬 것"이라며 "체제 경쟁은 오래전에 끝났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평화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북한과도 "통일을 말하기 전에 사이좋은 이웃이 되길 바란다"며 "평화가 이어진 후에야 통일의 문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문 대통령뿐 아니라 한반도 구성원 전체가 모두 평화를 원한다. 그런데 그 평화를 방해하는 문제의 근원이 북핵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한 한반도는 전쟁의 먹구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거짓이거나 환상이다. 북핵을 없애지 않으면 진짜 평화는 올 수 없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 6·25 기념사는 '북핵'과 '비핵화'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그랬다. 평화를 말하면서 평화를 막고 있는 북핵은 말하지 않는 모순이다.
최근 북이 남북 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군사 도발을 위협하는 근본 원인도 북핵에 있다. 핵은 포기할 수 없으니 문 정부가 앞장서서 대북 제재를 해제하라는 것이다. 미국이 이를 들어줄 리가 없다. 이렇게 가면 결국 또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 순간에도 증강되고 있는 북핵은 우리 생존이 걸린 최대 안보 현안이다. 이에 정면으로 대처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며 회피한다고 평화로 가는 길이 열릴 수 없다.
그러나 청와대는 물론 정부·여당에선 아무도 '비핵화'를 말하지 않는다. 북이 "비핵화는 개소리"라고 했는데도 비판 한마디 없다. 오히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하자" "남북 철도·도로 연결하자"며 평화적 비핵화를 위한 유일한 수단인 대북 제재를 흔들려는 행태를 보였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여당 의원은 "유엔 제재 위원들을 만나서 제재 일부 완화에 대해 강력히 요청할 생각"이라고도 했다. 이대로 가면 '북핵 있는 평화'라는 북한이 가장 원하는 주장까지 나올 지경이다. '핵 보유 + 제재 해제'라는 김정은 목표가 이뤄지면 한국민은 핵 인질이 된다.
북한 내각이 27일 핵심 지지층인 평양 시민의 물과 채소 공급을 위한 '중대 결정'을 채택했다고 한다. 북 경제가 나쁘다는 의미일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국경 봉쇄가 겹쳐 올해 북한 성장률이 -5% 이하로 떨어질 것이란 전문가 분석도 있다. 이런 제재 효과가 본격화할수록 김정은은 핵이냐, 경제냐를 선택하도록 내몰리게 된다. 제재만 지키면 군사 조치 없이 북핵을 없앨 수 있다. 이 제재를 흔드는 것만은 용납될 수 없다.
-조선일보(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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