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선수들 땀으로 실속 챙기는 횡포, 배드민턴협회뿐이겠나]
[K스포츠의 검은 그림자, 폭력]
젊은 선수들 땀으로 실속 챙기는 횡포, 배드민턴협회뿐이겠나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안세영이 지난달 7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뉴스1
문화체육관광부의 배드민턴협회에 대한 조사에서 회장의 ‘배임·횡령’ 의혹 등 각종 불공정한 협회 운영이 드러났다. 후원사 용품 사용을 강제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등 선수들을 옭아맨 정황도 밝혀졌다. 지난 파리 올림픽 여자 배드민턴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가 협회 운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자 문체부가 조사단을 구성해 협회를 점검한 결과다.
협회 회장 등은 지난해와 올해 후원사로부터 셔틀콕 등 물품을 구입하면서 협회 직원들 몰래 후원사에 구매 금액의 30%에 해당하는 물품을 추가 후원받기로 하고 약 3억원 상당 물품을 지급받아 임의로 배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문체부는 “횡령과 배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임원은 보수를 받을 수 없는데도 일부 임원은 후원사 유치 기여 명목으로 유치금의 10%를 인센티브로 챙기기도 했다. 세계적인 선수가 속한 협회가 구멍가게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선수들을 옭아맨 규정도 적지 않았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라켓과 신발 등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용품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사용하길 희망하지만 협회는 후원사 용품을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있었다. 미국·일본·프랑스는 용품 사용을 강제하지 않는다. 배드민턴협회는 전체 후원금의 일정 비율을 국가대표 선수단에게 배분하도록 명시한 규정도 선수들도 모르게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대표 선수의 복종을 규정한 조항도 여전히 갖고 있었다. 문체부는 국가대표 선수 선발 방식의 공정성 문제, 비국가대표 선수의 국제 대회 출전 제한 문제, 실업연맹 신인 선수 연봉 상한과 지나치게 긴 계약 기간 등도 문제로 지적했다. 시대에 맞지 않는 비합리적 규정은 없어져야 한다.
땀을 흘리는 선수들이 따로 있고 이를 이용해 실속을 챙기는 어른들이 따로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문제들이 배드민턴협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국민의힘 진종오 의원은 배드민턴과 태권도·사격 등 종목에서 협회 비리와 뇌물 수수, 성폭력, 승부 조작 등 70여 건의 체육계 비리 제보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다른 협회에도 이런 문제들이 만연하고 있다면 관리 감독 역할을 해야 할 대한체육회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선일보(24-09-11)-
______________
K스포츠의 검은 그림자, 폭력
2002 월드컵에서 활약한 이영표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진출해서 힘겨웠던 고비를 이겨낸 비결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고비 때마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시궁창에서 짓밟혀보기도 했는데 이까짓 거야 양반이지' 하면서 이겨냈다"고 했다. 그 시절 대표팀에는 어린 시절부터 안 맞아본 선수가 한 명도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강압적인 훈련과 체벌을 견뎌낸 선수들이 한국 스포츠를 이끌었다. 프로야구의 신바람 응원, 세계 정상급 실력을 갖춘 여자골프 등 한국 스포츠의 외양은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쪽 발은 시궁창에 빠져있다.
▶한국 영화 '4등'은 체벌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한국 스포츠의 심리를 묘사한다. 번번이 4등에 그치는 초등학생 수영 선수에게 코치가 가차 없이 매를 든다. 아들의 멍 자국에 화가 난 아버지가 '선수를 코치가 때리느냐'고 화를 낸다. 오히려 아들이 "제가 잘 못해서 맞은 것"이라고 한다. 코치도 '다 너를 위해서 때리는 것'이라고 한다. '맞아야 메달 딴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곳에서 폭력이 일상화된다.
▶2년 전 일본 체조계도 선수 폭행 사건으로 발칵 뒤집어진 일이 있다. 열다섯 국가대표 미야카와 사에를 폭행하는 동영상이 공개된 코치 하야미 유토는 "나도 어린 시절에 맞으며 운동했기 때문에 선수를 때려서라도 잘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변했다. 맞고 자란 선수가 코치가 돼 선수를 때리는 폭력의 대물림은 한국 스포츠에 만연해 있다. 쇼트트랙 심석희를 폭행해 실형을 받은 조재범 코치가 대표적이다.
▶폭행과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세상을 떠난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최숙현 기사에 "살아서 복수를 하지 그랬느냐"는 안타까운 댓글이 쏟아진다. 선수들은 학교 진학과 취업에 결정권을 지닌 지도자 밑에서 '절대적인 갑을 관계'로 살아간다. 평생 찍힐 위험을 무릅쓰고 대한체육회와 해당 협회에 호소해도 소용이 없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지인들은 오열했다. 이들에게 스포츠계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곳이다.
▶의사도 아니고 자격증도 없는 인사가 '팀닥터'라고 불리며 전지훈련에 동행해 선수들 체벌까지 했다. 대한스포츠의학회는 "비자격자를 팀닥터로 불러 과도한 권위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성명까지 냈다. 스포츠 인권을 담당하는 주무 부서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관계자들은 1년이 머다하고 바뀐다. 전문성이 없는 곳에서 '폭력'의 독버섯이 자란다.
-민학수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 조선일보(20-07-04)-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國內-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탈북 청소년 학교가 '환영' 아닌 '기피' 대상이라니] .... (1) | 2024.09.24 |
---|---|
[무너지는 사계절, 기후위기 대응계획 수립을] [추석(秋夕) 아니라.. ] (0) | 2024.09.19 |
[용서의 힘] [화가 나면 무조건 걸어야 하는 이유] (0) | 2024.09.10 |
[0.005초의 차이, 결정적 순간을 판정하는 사진] (1) | 2024.09.09 |
[편식을 허하라… 고기파 남편과 채식주의자 아내가 같이 먹는 법] (1) | 2024.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