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세운 대통령, 쪼갠 대통령
국민통합 아닌 분열 목표로 온갖 수단 동원하는 정권
72년 전 이승만은 나라 세우고 지금 문재인은 나라 쪼개고
이승만 정권 나라 세우기 프로젝트의 핵심은 농지개혁이었다. 1949년 농지개혁은 국민 절반을 넘던 소작농을 새로운 땅 주인으로 만들었다. 번지르르한 선전에 그친 북쪽의 농지개혁과 달리 지주들을 다독여 농민에게 실제로 땅을 나눠준 ‘유상몰수·유상분배’는 신생국 국민 통합에서 신의 한 수였다. 남쪽 농민들은 비로소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1956년 박헌영을 숙청한 김일성은 “6·25 때 남반부 인민들이 조금만 봉기했어도 부산을 해방하고 미국놈들 상륙을 막았을 것”이라 했다. 농민의 아들들이 봉기는커녕 내 땅,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총을 들었기에 대한민국이 살아남았다. 국민이 소속감을 가질 때 국가는 존재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생각과 이해가 다른 사람들을 국민이란 이름으로 모을 수 있느냐를 통치자는 고민한다. 통치의 목적은 통합이고, 통합은 통치자의 첫째 책무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도 늘 그 고민을 했다.
3년 5개월 전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첫 문장 주제어도 국민 통합이었다. 문 대통령은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약속하며 취임사를 읽어 내려갔다. 이런 얘기를 하면 ‘못 믿겠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지금 현실은 정반대다. 이 정권은 국민 통합이 아니라 분열을 목표로 움직이는 것 같다. 한 번도 경험 못 한 사태다. 추석연휴에 만난 70대 퇴직 공무원은 “평생 한 국가·국민을 위해 봉직했다 생각했는데 요즘 문재인·조국·추미애의 국민과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대치한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저들에게 세금을 뜯겨가며 삿대질당한다는 생각에 잠도 안 온다”고 했다. 이렇게 느끼는 국민이 이 퇴직 공무원 한 명뿐이겠나.
분열의 정치는 1980년대 운동권 주축인 정권의 타고난 속성이다. 나만 정의고 바리케이드 건너편은 타도해야 할 적으로 여기는 게 당시 운동이었다. 집권하자마자 적폐 청산을 내걸고 유혈 숙청극을 벌였다. 내 편이 아니면 가차 없이 잘라내고 자기편을 앉혔다. 편 가르기는 자신들 치부를 가리는 유용한 도구이기도 했다. 대통령 친구를 당선시킨 선거 공작이 들통나자 지지층을 향해 ‘검찰 개혁’ 주문을 외며 수사팀을 해체시켰다. 조국씨 위선과 파렴치가 드러났지만 지지 세력은 ‘조국 수호’ 주문을 외며 서초동으로 모여들었다. 요즘 추미애 장관도 그걸 따라 한다. 거짓말에 억지 궤변을 뻔뻔하게 늘어놓아도 지지층이 지켜주리라 믿는 것이다.
시장님 성폭행 의혹도 우리 편이면 덮어야 하고 공무원이 수천만원을 먹어도 우리 편은 봐줘야 한다. 우리 편이면 TV 토론에 나와 거짓말하는 일도 애교다. 편싸움이 났는데 도덕과 정의를 따질 계제인가. 야당을 찍어눌러 선거법을 일방 개정하고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72년이 만든 여러 원칙과 상식들은 이미 쓰레기통에 갔다.
편 가르기에 재미 붙인 정권은 없던 갈등까지 만들어내 싸움 붙인다. 보수 세력을 코로나 확산 주범으로 몰았다. 연관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재인장성’을 쌓아 입을 틀어막았다. 국민을 쪼개고 갈라도 얼마든지 재집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도리어 분열을 재집권의 유용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 같다. 우리 편만 투표장으로 확실히 불러내면 승리한다는 가설은 지난 총선에서 증명됐다. 민주당의 총선 득표율은 49%였다. 투표율(66%)을 감안하면 전체 국민 중 32% 지지만으로도 180석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공식대로라면 구심점 없는 야당을 상대로 다음 대선 승리도 어렵지 않다. 지지층을 다독이고 부추겨 대오만 유지하면 된다. 72년 전 이승만과 나라 세우기가 있었고, 지금 문재인과 나라 쪼개기가 있다.
-이동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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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태어난 정권, 광장이 두려운가
-파리의 혁명재판소와 전국의 4만 내지 5만 개의 혁명위원회, 자유와 생명의 안전은 뒷전으로 한 채 선하고 무고한 이를 악하고 죄 많은 자에게 넘길 수 있는 용의자법(반혁명 분자로 의심되는 자의 체포가 가능한 법),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지만 재판받을 기회도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찬 감옥, 이러한 것들이 새로운 질서와 관례가 되었다.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중에서

지난 10월 3일, 광화문 일대의 차량 진입을 통제하기 위해 서울 곳곳에 검문소가 90곳 설치됐다. 경찰 버스 300대가 차벽을 쌓고 180중대, 1만 병력이 시민들의 광장 집결을 막았다. 지하철은 광화문 주변 역을 무정차 통과했고 노선 버스들도 우회해서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핑계 댔지만 반정부 시위 원천 봉쇄가 목적이었을 것이다. 집회 강행 시 체포하거나 운전면허를 취소할 것이며 관용은 일절 없다고 미리 겁박한 정부였다. 프랑스혁명을 상징하는 단두대와 효수까지 재현한 촛불 집회로 잡은 권력이니 광장이 무서운 건 당연하다. “하야 집회가 열리면 광장에 나가 끝장 토론을 해서라도 설득하겠다”던 약속이 새빨간 거짓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군중의 광기가 폭발한 프랑스혁명의 결과는 끔찍했다. 풍요와 평화를 기대한 시민들이 맞이한 건 더 지독한 굶주림과 혼란, 새로운 위정자들이 벌이는 피비린내 나는 공포정치였다. ‘크리스마스 캐럴’로 친근한 작가 찰스 디킨스는 1859년에 발표한 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서 프랑스혁명이 인간 정신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었는가, 어떻게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사유재산을 약탈했는가, 혁명이란 결국 불필요하고 무가치한 역사의 퇴보가 아니었는가, 독자에게 묻고 있다.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광장에서 태어난 정권이 광장의 자유를 허락할 리 없다. 참고 견디는 한, 국민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는 악법들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질서와 관례가 될 것이다. 독재란 언제나 대중의 환호를 받은 권력에 의해 합법의 탈을 쓰고 시작되어 법치란 이름으로 완성된다.
-김규나 소설가, 조선일보(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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