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솔 탈출극, 국정원은 어디에?]
[북한 임시정부]
['최고 존엄' 김정은 타도 외치는데... 北, 한달 넘도록 이례적 침묵]
[자유조선 "더 큰 일 있다" 추가 행동 예고]
김한솔 탈출극, 국정원은 어디에?
아프리카에서 근무하던 북한 외교관이 어느 날 평양 외무성 친구로부터 “손님이 간다”는 전화를 받았다. ‘너 잡으러 간다’는 암시였다. 그 길로 부근에 있던 서유럽국 대사관으로 달려가 망명 신청을 했다. 다양한 정보 요원들이 와서 나라별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설명해줬다고 한다. 그는 “여러 나라를 거쳐 탈출하려면 CIA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10여년 전 김정남이 사는 마카오의 한 아파트를 찾아간 적이 있다. 아들 김한솔이 다니던 국제 학교 부근이었다. 북한 요원들이 해코지하지 않을까 걱정했더니 안내해준 현지인이 “북한이 아니라 마카오 경찰한테 걸려 곤욕이나 치르지 마라”고 했다. 중국이 자기 영토인 마카오에서 김정남 가족이 다치는 걸 막으려고 오히려 북 접근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2월 김정남은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마카오로 가려다 암살당했다.
▶한국계 재미 작가가 그제 미 주간지에 쓴 김한솔 가족의 마카오 탈출기는 영화보다 극적이다. 김정남 살해 다음 날인 14일 김한솔은 자기 집을 지키던 마카오 경찰이 없어진 걸 보고 위험을 직감했다. 4년 전 파리에서 만난 반북(反北) 단체 리더인 에이드리언 홍 창에게 탈출을 도와달라고 급히 전화했다. 홍 창의 주선으로 15일 새벽 대만 타이베이 공항에서 한국계 미 해병대 출신과 김한솔 가족이 만났다. 몇 시간 뒤 어느 국가에서 홍 창에게 ‘김한솔 가족을 받아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날 밤 김한솔 가족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으로 가려 했지만 탑승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저지당했다. 이때 CIA 요원이라는 두 사람이 나타났다. 김한솔 가족은 출국할 수 있었다.
▶다음 날 비행기 탑승 직전 김한솔은 “홍 창과 네덜란드·중국·미국 정부 등에 감사하다”는 동영상을 찍었다. 암스테르담 공항에 내린 뒤 누군가에게 이끌려 공항 내 호텔로 이동했다. 홍 창은 호텔로 간 김한솔과 통화만 하고 만나지는 못했다. 이후 김한솔 가족은 종적을 감췄다. 네덜란드에 있는지, CIA와 미국으로 갔는지도 불분명하다. 분명한 건 아직 무사하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홍 창은 2004년 예일대에 진학하면서 북한 인권 운동에 눈을 떴다. 지하 조직 ‘자유조선’을 만들어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을 공격하기도 했다. 돈과 출세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과 싸우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 같은 김한솔 탈출기에 당사자인 한국의 국정원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무능해서일까, 신출귀몰해서일까. 후자이기를 바랄 뿐이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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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임시정부
이승만이 3·1운동 석 달 뒤인 1919년 6월 '대한민국 프레지던트(president)' 명의로 일왕에게 영문(英文) 편지를 냈다. '대통령'이 아니고, 한성 임시정부의 '집정관 총재'란 뜻이었다. 편지는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 외교관을 제외한 모든 일본인을 한국에서 철수시키라"고 요구했다. 일제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그해 상하이와 러시아령 임시정부도 성립됐지만 모두 무시했다. 그러나 뒤로는 임정을 거꾸러뜨리려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임정 인사의 동향을 파악하고, 회의 내용과 내부 알력까지 캐내려 했다.
▶지난 백수십 년 동안 세계에는 80개 넘는 망명정부 혹은 임시정부가 존재했다. 팔레비 왕실이나 중앙 티베트 행정부처럼 몇몇은 본토 밖에서 미미한 대로 망명정부 대접을 받곤 하지만, 대개는 짧은 기간 명맥을 유지하다 스러져갔다. 그러나 2차 대전이 끝난 뒤 본토에서 정통성을 잇는 정부로 거듭 태어난 경우도 있다. 우리 상하이 임시정부가 대표적이다. 2차 대전 중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당하자 드골이 런던에 세운 자유프랑스 망명정부도 그렇다. 해방 이후 드골이 프랑스를 이끌었다.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습격을 주도한 사람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전복하고 북한에 새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스스로 '임시정부'임을 선언했다. 그에 걸맞게 조직 이름도 '천리마민방위'에서 '자유조선'으로 바꿨다. 이들은 지난 3·1절을 맞아 "북한을 대표하는 단일하고 정당한 임시정부 건립"을 천명했다. 이들은 "우리는 행동으로 북한 내 혁명 동지들과 함께 김정은 정권을 뿌리째 흔들 것"이라고 했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이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한 뉴스도 못 들었을 것이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은 자유조선이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 집안에선 김한솔이 장손이다. 김한솔이 임시정부 수반으로 공식화되면 김정은 세력이 받는 위협은 작지 않을 것이다.
▶구약 욥기에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그랬다. 1919년에 세계의 누가 대한민국이 훗날 세계에서 일곱째로 인구 5000만, 소득 3만달러의 경제 대국이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자유조선이 그 길을 잇지 말하는 법은 어디에 있나. 지옥과 같은 북녘 땅에서 노예로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 이것 외에 어떤 희망이 있나. 저 용감한 이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답답할 따름이다.
-김태훈 논설위원·출판전문기자, 조선일보(1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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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조선이 '최고 존엄' 김정은 타도 외치는데… 北, 한달 넘도록 이례적 침묵
주민들에게 알려질까 곤혹, 김일성 맏손자 김한솔 연관 부담
북한은 지난달 22일(현지 시각) 일어난 스페인 대사관 침입 사건에 대해 한 달이 넘도록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공관(公館)이 테러당한 사안에 대해 항의나 규탄 성명도 내지 않는 건 이례적이다. 전문가들은 "대사관을 공격할 만큼 조직된 반북(反北) 단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민들이 알게 됐을 때의 충격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 입장에서 더 곤혹스러운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카로 김씨 일가의 적장자(嫡長子)인 김한솔이 이번 사건을 일으킨 '자유조선'과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정통성'을 중시하는 북한 정권은 김정은의 대안(代案)이 될 수 있는 김한솔의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이번 대사관 침입 사건은 탈북자 중심의 반북 단체 '자유조선'이 주도했다. 자유조선도 26일 이를 시인했다. 외국 소재 기관이 반북 단체에 공격받은 건 북한으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다. 특히 타국 정보기관도 아닌 민간 단체에 공관이 뚫린 데 대한 충격이 컸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국정원 1차장을 지낸 남주홍 교수는 "북한이 지금까지 침묵하는 건 그만큼 이번 일로 겪은 후유증이 심각하고 지금도 수습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라며 "기밀이 통째로 외부에 넘어간 것도 심각한 일이지만, 이번 사건의 범인인 '반북 단체'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일은 하노이 회담 결렬과 달리 은근슬쩍 공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며 "북한의 침묵이 무한정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2017년 김정남 암살 사건 때 '자유조선'이 구출한 것으로 알려진 김한솔의 존재도 북한으로선 부담이다. 이번 사건의 배후에 김일성의 맏손자인 김한솔이 있다는 게 북한 주민에게 알려지면 김정은의 정통성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군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정은은 적통 시비를 걱정해 이복형까지 죽였다"며 "'자유조선'엔 그 아들인 김한솔에다 자신의 이모인 고용숙까지 가담한 걸로 알려졌는데 이런 단체를 공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윤형준 기자, 조선일보(1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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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조선 "더 큰 일 있다" 추가 행동 예고
"김정은 정권 뿌리째 흔들 것" 성명
北공관 침입때 초소형 카메라 사용, 전문가들 "정보기관 훈련 받은 듯"
반북(反北)단체 '자유조선(옛 천리마 민방위)'은 28일 "우리는 행동으로 북한 내 혁명 동지들과 함께 김정은 정권을 뿌리째 흔들 것"이라면서 "더 큰 일들이 앞에 있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달 22일 주스페인 북 대사관에 침입해 기밀 정보를 빼냈고, 이달 10일 김정남 암살 사건 재판 날엔 주말레이시아 북 대사관 벽에 '김정은 타도'란 낙서 시위를 벌였다.
자유조선은 이날 인터넷 홈페이지에 '우리 조직의 현재 입장'이라는 성명을 올리고 "우리는 자유조선의 도움으로 북한을 탈출하여 세계 각국에 있는 동포와 결집한 탈북민의 조직"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북한 정권을 겨냥하는 여러 작업을 준비 중이었지만 언론의 온갖 추측성 기사들의 공격으로 행동소조들의 활동은 일시 중단 상태"라면서 "우리는 엄격한 보안상 한국 거주 중인 그 어떤 탈북민과도 연계를 맺거나 심지어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김씨 일가 세습을 끊어버릴 신념으로 결집된 국내외 조직"이라고 했다. 전날 한 탈북자가 자유조선 한 소속원이 자신에게 불시에 전화를 걸어왔다고 일부 매체를 통해 주장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유조선이 기존 탈북 단체와는 차원이 다른 단체로, 구성원 가운데 군·정보 기관의 훈련을 받은 대원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스페인 수사 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북한 대사관 침입 당시 자유조선 대원들은 몸에 초소형 카메라를 장착해 북 대사관 내부와 함께 자신들의 작전 상황 모습도 빠짐없이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국가 정보기관 요원들이 중요한 작전을 수행할 때 초소형 카메라를 몸에 달고 투입된다"면서 "이들은 이 카메라로 작전 공간의 영상 정보를 촬영해 이를 실시간으로 본부에 보내고 이에 따른 지시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는 "이번 대사관 사건에 가담한 청년들은 자유조선의 리더 격인 에이드리언 홍 창(Adrian hong chang)이 미국 내에서 모집한 한국인들"이라면서 "사전에 군사훈련을 받고 왔을 것"이라고 했다. 스페인 수사팀 일부 관계자들은 "이들이 대사관에서 북핵이나 군비 확충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 가져갔을 수도 있다"고 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자유조선의 주요 인물인 에이드리언 홍 창은 현재 만 35세로 본명은 '홍으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 예일대 역사학과에 재학 중이던 2004년 한 북한 인권 세미나에 갔다가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큰 충격을 받은 홍씨는 이후 북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북한 민주화 단체 '북한 해방(Liberty in North Korea·LiNK)'을 설립했다. LiNK는 설립 8개월여 만에 서울·파리 등 세계 80여 개 도시에 지부를 세울 정도로 폭발적으로 커졌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미 중앙정보부(CIA)와 협력 관계를 맺었을 수 있다.
한 탈북자는 "홍으뜸은 오롯이 북한 인권과 민주화에 대한 열정으로만 가득한 청년이었다"면서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유엔 총회의 첫 북한 인권 결의안 표결에서 기권 결정을 했을 때 분노해 한국까지 와서 항의 시위를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에이드리언 홍 창은 현재 미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 당국은 에이드리언 홍 창 등 북 대사관 침입 용의자들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하고 미국 측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할 방침이다. 하지만 미 연방수사국(FBI)을 지휘하는 미 법무부는 스페인 측의 범죄인 인도 요청과 관련해 "노 코멘트(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노석조 기자, 조선일보(1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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