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참사 때 ‘퇴진이 추모다’ 구호도 北 지시였다니]
[국가 방첩기능 정상화, 어떻게 할 것인가]
[北이 화낼까 간첩 수사 막았다는 충격적 국정원 내부 증언들]
[민노총 내부에 북한 지하조직이 들어앉은 게 사실인가]
[전국에 뿌리내린 간첩단, 국정원 대공 수사권 복원해야 한다]
[정보기관 의 존재 이유]
[국정원 대공수사권]
[간첩 수사 역량 통째로 흔드는 與, 누가 좋아할까]
[중국의 모래알 스파이 전략]
[당한 나라만 바보 '루비콘']
[달빛에서도 '간첩' 떠올리는 중국]
핼러윈 참사 때 ‘퇴진이 추모다’ 구호도 北 지시였다니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지난 1~2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민노총 간부들의 사무실·자택·차량 등을 압수 수색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내려보낸 지령문을 대거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북한 지시문은 주요 계기 때마다 하달됐으며 주로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작년 핼러윈 참사 땐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윤석열 정권 퇴진과 탄핵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투쟁 노선뿐 아니라 ‘이게 나라냐’ ‘국민이 죽어간다’ ‘퇴진이 추모다’ 같은 구체적 투쟁 구호까지 하달했다고 한다. 실제 집회 현장에서 외치거나 이들이 내건 현수막에 그대로 쓰인 문구들이다. 참사 당시 민노총 등은 국민적 애도 분위기를 정치 투쟁의 동력으로 삼으려 했다. 이 ‘재난의 정치화’ 뒤에 북한도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민노총 경남본부가 지난달 23일 오전 민노총 건물 앞에서 국정원과 경찰의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북은 핼러윈 참사 말고도 주요 계기 때마다 지령문을 내려보냈다. 작년 화물연대 파업 당시 하달한 지령문은 ‘모든 통일·애국 세력이 연대해 대중적 분노를 유발시키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국정원과 경찰은 작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장기 파업도 북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간첩단 혐의를 받는 경남 창원의 ‘자주통일 민중전위’가 북의 지시를 받고 민노총 경남 지역 간부들을 포섭해 이 같은 일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 파업으로 회사와 지역 경제는 큰 피해를 입었다.
국정원과 경찰은 이번 압수 수색을 통해 민노총 간부들이 작성한 대북 충성 맹세문도 여럿 확보했다고 한다. ‘조국통일 위업의 실현을 위해 투쟁하겠다’ ‘김정은 원수님을 혁명의 수령으로 높이 받들겠다’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따르겠다’는 등의 내용으로 전해졌다. 김일성 생일, 김정일 생일, 노동당 창건일 등 북이 중시하는 기념일에 맞춰 작성됐다고 한다. 북한은 최악의 실패 집단으로 입증된 지 오래인데도 선진국 한국에 아직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민노총과 이른바 진보단체들은 국정원과 경찰의 수사를 ‘공안 탄압’이라면서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수사 당국이 확보한 북 지령문 중에는 ‘공안 탄압을 내세워 대중적 분노를 유발하라’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이번 수사가 공안 탄압인지, 북한과 민노총 관계의 진실을 적발한 것인지는 곧 가려질 것이다.
-조선일보(2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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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방첩기능 정상화, 어떻게 할 것인가
[朝鮮칼럼]
북 감시해야할 국정원이 협상창구까지 겸하니 방첩 임무 작동하기 어려워
미·영·이스라엘처럼 해외 정보와 국내 방첩 별도 기관으로 독립해야
스파이 활동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긴데, 그 절정기는 20세기 냉전시대였다. 1990년 독일 통일 후 서독 정부가 동독 정보기관 내부 자료를 통해 파악한 동독 고정간첩은 약 3만명이었는데, 서독 정보기관 수뇌부까지 침투해 있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은 남베트남에 침투한 공산 간첩이 3만~4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으나, 1975년 공산화 이후 드러난 간첩은 그보다 훨씬 많았다. 대통령의 최측근 특보와 지지율 2위의 야당 대통령 후보도 고정간첩으로 밝혀졌다. 황장엽씨 등 고위급 탈북 망명자들이 말하는 한국 내 북한 고정간첩 규모도 분단 시대의 독일, 베트남과 유사한 수만명 수준이다.

국가정보원이 2022년 12월 19일에 제주시 소재 진보당 간부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뉴시스
이 스파이들 중 가장 치명적인 건 권력 핵심부와 정보기관에 침투한 스파이다. 냉전 시대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스파이 사건이 두 건 있었다. 첫째 사건은 1970년대 동서독 교류의 문을 연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측근 비서관 귄터 기욤 사건이다. 그는 1956년 동독 첩보 기관 슈타지 요원으로 서독 정계에 잠입해 고정간첩으로 활동하다 1973년 브란트 총리의 비서관이 되었는데, 그가 18년 전 동독 정보국과 교신한 암호 통신 3건을 추적하던 서독 방첩기관에 1974년 체포되었고 그 여파로 브란트 총리가 사임했다.
둘째 사건은 영국 정보부의 ‘케임브리지 5인방’ 사건이다.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 영국 청년 5명이 1933년 그들의 이념적 조국이던 소련에 자발적 충성 서약을 하고 1951년과 1963년 발각될 때까지 소련 KGB를 위해 일한 사건이다. 귀족 사회 출신인 그들은 KGB 권유로 영국 해외정보국 MI6, 방첩 기관 MI5, 외교부 등에 취업해 방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중 대표 주자였던 킴 필비는 MI6의 소련‧동유럽 담당 총책임자로서 MI6 수장 후보에도 오른 인물이었는데, 하마터면 북한 간첩이 국정원장에 취임하는 것 같은 재앙이 일어날 뻔했다. 다행히 KGB의 영국 정보기관 내 침투 공작을 추적하던 미국 CIA에 포착돼 최악 상황은 면했지만, 이 사건으로 영국 정보기관의 신뢰도는 폭락했다.
이런 사례는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니며, 방첩기능이 정상 작동한다면 언젠가 한국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수만에 이른다는 이 땅의 북한 스파이들을 잊은 듯 장기간 침묵하던 국정원 대공 수사 라인이 연초부터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미 5년 전에 단서를 잡았다는 수사가 왜 이제야 이루어지는 건지, 왜 새 정부가 출범하고도 8개월이나 시간이 필요했는지 궁금하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지휘부가 남북 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구실로 추가 수사를 막았다는데, 그 역시 그간 다들 상상해 온 바와 다르지 않다.
그러한 국정원 방첩기능 약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며, 근본적 조치가 없는 한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다. 지난 20여 년간 국정원은 대북 감시‧견제라는 본연의 임무와 상충되는 대북 협상 창구 역할을 겸임해 왔다. 대북 방첩기관의 수장이 정권적 이해가 걸린 남북 회담 주선에 매달리고 북한 지도자 앞에 황망히 허리 굽혀 절하고 대북 특사단으로 나가 북한 수뇌부의 환심을 사야 하는 상황에서, 그의 휘하 방첩조직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북한의 환심을 사야 하는 임무와 북한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임무를 같은 조직에서 같은 수장이 통제하는 체제에선 두 임무 중 하나가 희생될 수밖에 없기에, 방첩임무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근본적 해결책은 둘 중 하나다. 첫째는 국정원이 대북 정보와 방첩에만 전념하고 모든 대북 교신과 협상에서 손을 떼는 방안이다. 둘째는 차제에 방첩 및 대간첩 수사 기능을 선진국들처럼 별도 기관으로 분리 독립시키는 방안이다. 긴 세월 정보 전쟁을 겪은 정보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해외 정보와 국내 방첩을 별개 정보기관에서 관할한다. 영국 MI6와 MI5, 미국 CIA와 FBI, 이스라엘 모사드와 신베트, 러시아 SVR과 FSB가 대표적이며, 독일, 프랑스, 호주도 마찬가지다. 그런 양두 체제로 전문성과 상호 보완성을 추구하면서 조직 내 스파이 침투에 대한 상호 감시도 구현하고 있다. 이참에 한국 내 여러 방첩조직을 총망라하는 강력한 독립 방첩기관을 창설한다면, 대공 수사권을 둘러싼 논란의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대사, 조선일보(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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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 화낼까 간첩 수사 막았다는 충격적 국정원 내부 증언들
문재인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민주노총 핵심 간부들의 북한 공작원 접촉 사실을 확인하고도 윗선의 반대로 5년간 수사를 하지 못했다는 내부 폭로가 나왔다. 간첩 수사에 북한이 반발해 남북 관계가 악화될까봐 국정원 수뇌부가 수사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간첩을 잡고 대북 정보를 수집해야 할 국정원이 오히려 간첩 수사를 방해하고 북한의 대남 공작을 도왔다는 얘기다.
국가정보원은 2017년 민주노총 조직국장 등 간부들이 캄보디아와 베트남 등지에서 북 공작원 4명과 접촉하는 현장을 포착했다. 당시 영상과 사진 등 다수의 증거 자료를 확보했다고 한다. 북 공작원 중에는 대남 공작으로 ‘영웅 칭호’를 받은 국장급 인물도 있었다. 수사팀은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고 수차례 보고했지만 수뇌부는 “남북 관계를 지켜보고 하자” “증거를 더 모아야 하지 않느냐”며 결재를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국정원 수뇌부가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더 확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2017년에 물증을 확보하고도 정권이 바뀔 때까지 5년 동안 수사가 답보 상태였던 것은 사실이다.

국가정보원과 경찰 수사관 등이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려 하자 민노총 관계자들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2023.1.18
그 시기 문재인 정부는 남북, 미북 정상회담 등 대북 이벤트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북이 반발해 이벤트가 깨질까봐 명백한 간첩 혐의 수사를 막았을 가능성이 있다. 수사팀이 “압수수색을 해야 한다”고 보고서를 올리자 고위 간부는 휴가를 내고 수일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계속 결재를 안 하면 직무유기가 되고, 수사하지 말라고 지시하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아예 자리를 비웠다는 얘기다. 친문 판사가 문 정권에 불리한 재판을 안 하려고 휴가를 간 일을 떠올리게 한다.
국정원 수사가 중단된 사이 민노총 간부들은 3년간 북한 공작원과 수차례 접촉했다. 2019년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중국 다롄에서 만났다. 북으로부터 돈을 받은 정황도 나왔다. 이들은 민노총 내부에 세력을 넓혔고, 창원·진주·제주 등 전국에 지하조직이 만들어졌다. 국정원의 수사 중단으로 간첩 조직이 전국서 활개치게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을 간첩 수사나 대북 정보 수집 기관이 아닌 남북 대화 창구로 변질시켰다. 간첩 적발은 2011~2017년 26건에서 문 정부 때는 3건으로 급감했다. 민주당은 국정원 대공 수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도 강행 처리했다. 내년부터 국정원의 간첩 수사가 불가능해진다. 경찰에 수사권이 넘어갔지만 대공 수사를 할 안보 경찰 수는 5년 새 1000여 명이 줄었다. 심각한 상황이다.
세계에 간첩을 봐주고 내버려 두는 나라는 없다. 상대국과 어떤 대화를 해도 뒤에서 정보기관은 치열하게 활동한다. 그게 정상적인 나라다. 전 국정원 방첩국장은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문 정권이 정보 전쟁 전사들을 무장 해제시켰다”고 했다.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진상을 밝혀야 한다.
-조선일보(2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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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 내부에 북한 지하조직이 들어앉은 게 사실인가

경찰이 18일 오전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서울 중구 민주노총 서울 사무실 앞 통행을 통제하고 있다. /뉴스1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18일 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북한 지시에 따라 각종 반국가·이적 활동을 벌인 혐의로 서울의 민노총과 보건의료노조 사무실, 전남 담양의 자택, 세월호 제주 기억관 평화 쉼터 등 10여 곳을 압수 수색했다. 국정원은 민노총 핵심 간부가 2017년 동남아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뒤 보건의료노조 간부와 금속노조 간부 출신 2명 등과 함께 지하조직을 운영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창원과 제주 지하조직 적발 이후 증거인멸 정황이 포착돼 급히 강제수사로 전환했다고 한다. 법원은 혐의자 4명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을 모두 발부해 줬다. 혐의가 소명된다는 뜻이다. 민노총 핵심부에 북한 지하조직이 침투한 것이 추정을 넘어 사실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노조는 조합원의 권리 신장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민노총은 정치·반미 투쟁에 주력해 왔다. ‘주한미군 철수’ ‘사드 배치 철회’가 민노총 집회와 각종 성명·논평에 자주 등장한다. 작년 6월 집회는 이름도 ‘반미자주노동자대회’였다. 8·15 자주평화통일대회에선 “한미 동맹 끝장내자”며 북한 조선직업총동맹이 보내온 ‘련대사’를 낭독하고 전문을 웹사이트에 게시했다. 이처럼 노조와 무관한 정치투쟁은 우연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
민노총은 이날 압수 수색 수사관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정권의 폭거에 맞서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것”이란 성명을 냈다. 과거 간첩 사건 관련자들도 처음에는 ‘공안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국정원 정문으로 몰려가 시위를 한 적도 있다. 이번 압수 수색은 국정원과 경찰이 북한 공작원 해외 접선 등 수년간 축적한 물증을 바탕으로 진행된 것이다. 민노총 내부 북한 지하조직이 적발된 것인지, 공안 탄압인지는 수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조선일보(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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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대공 수사권, 내년부터 경찰로 넘어가. “1년만 버텨보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
-팔면봉, 조선일보(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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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뿌리내린 간첩단, 국정원 대공 수사권 복원해야 한다
창원·진주와 제주 등지에 지하조직을 건설해 간첩 활동을 벌인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진보 정당과 노동계 인사들이 모두 북한 공작원 한 명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당 문화교류국 소속의 김명성이란 공작원이 2016년 창원 총책을, 2017년엔 제주 총책을 각각 동남아로 불러들여 지하조직 건설을 지시했다. 그 뒤 ‘윤석열 규탄’ ‘민노총 침투·장악’ 같은 지침을 지속적으로 내려보냈다. 공안 당국은 김명성의 지시를 받은 지하조직이 남부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에 만들어진 정황도 포착했다고 한다.
김명성은 북한 문화교류국 동남아 거점장으로 알려졌다. 문화교류국도 북의 여러 대남 공작 기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총본산인 정찰총국, 국정원 격인 국가보위성과 인민군 보위국 등이 저마다 대남 공작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

국가정보원과 경찰 직원들이 작년 12월 19일 제주시 노형동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인사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뉴스1
이번 사건은 국정원 대공 수사권의 필요성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다. 국정원 요원들이 창원·제주 지하조직의 존재를 알아차린 건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증거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각 지역 총책들이 해외에서 북 공작원을 접촉한다는 단서를 잡았고, 접선 현장에서 사진과 녹음 파일 등 물증을 확보했다. 현실적으로 국정원의 대공 수사 시스템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간첩 사건은 특성상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2013년 적발된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은 내사만 3년 넘게 했다. 운동권 출신들이 북한 지령에 따라 간첩 활동을 한 ‘왕재산 사건’도 국정원 요원들이 중국 등을 오가며 장기간 추적한 결과였다. 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조직이 국정원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을 간첩 수사나 대북 정보 활동이 아닌 남북 대화 창구로 만들었다. 국정원의 간첩 수사를 방해했다는 증언이 많다. 창원·제주 사건도 문 정부 시절엔 속도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수사팀이 압수 수색이나 체포 필요성을 말해도 수뇌부가 결재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2011~2017년 26건이던 간첩 적발 건수가 문 정부 때 3건으로 급감했다. 간첩이 없는 게 아니라 잡을 생각이 없었다.
문 정부는 아예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폐지키로 하고 2020년 민주당 단독으로 국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 법에 따라 1년 뒤엔 경찰이 대공 수사권을 독점한다. 경찰엔 간첩 수사 경험도 해외 방첩망도 없다. 이런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정원엔 간첩 수사 노하우가 수십 년 쌓여 있다. 그래서 북한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국정원이다. 국정원이 간첩 수사를 못 하게 하면 누가 제일 좋아하겠나.
창원·제주 간첩단이 드러난 뒤 “대공 수사권의 경찰 이관 문제를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도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국정원이 간첩 혐의를 조작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제 그런 일은 통할 수 없다. 아무리 국내에서 정쟁을 벌이더라도 누군가 나라는 지켜야 한다.
-조선일보(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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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김일성 단체’ 直系 자처한 중고생촛불연대 국보법 수사 의뢰. 펴낸 책이 80년대 주사파 교재 연상.
-팔면봉, 조선일보(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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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관의 존재 이유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전설적 스파이 엘리 코헨은 1960년대 시리아 군부에 침투해 국방차관까지 올랐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고급 정보가 실시간으로 이스라엘로 흘러들어갔다.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이 난공불락이었던 시리아 골란고원을 10시간 만에 함락시킨 것도 코헨의 정보 덕이었다. 목숨을 건 정보원 한 명이 몇 개 사단 이상의 역할을 했다.

▶900만 인구의 이스라엘은 주위를 둘러싼 몇 십 배 이슬람 인구와 사실상 상시 전쟁 상태에 있다.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집중한 것이 정보기관 강화다. 모사드의 정보 수집 능력과 암살·납치 공작은 미국 CIA, 영국 MI6 등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적성국, 우방국도 가리지 않는다. 모사드 비사(秘史)를 다룬 책 ‘기드온의 스파이’에 따르면 모사드는 클린턴 미 대통령과 여성 인턴의 적나라한 대화를 도청해 녹음했다. 여차하면 대미 협박 카드로 쓰려 했다는 것이다.
▶지난주 이란의 핵 과학자 파흐리자데가 테헤란 근처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이스라엘 총리가 파흐리자데 사진을 흔들며 ‘이 이름을 기억하라’고 경고한 지 30여 개월 만이다.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우겠다’는 이란이 핵 개발을 시작한 이후 모사드는 사력을 다해 저지에 나섰다. 이란 핵 기술자가 탄 비행기가 추락하고 차량이 폭발했다. 핵 시설에서는 핵심 시설·장비가 작동 불능 상태가 되는 일이 이어졌다. 재작년에는 모사드가 이란 테헤란 핵 자료실에서 500㎏에 달하는 극비 자료를 빼내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모사드는 암살·납치로 ‘살인 주식회사’ 꼬리표도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국익’만을 좇기 때문이다. 외교 무대의 미소와 악수 뒤에선 불법·합법 가리지 않는 총성 없는 정보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가 생존하고 이익을 지키기 위해선 선악을 따지기 이전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안 하면 착한 게 아니라 제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바보일 뿐이다.
▶강대국들과 북한 폭력 집단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은 이스라엘보다도 안보 환경이 열악한 나라다. 그런데 이런 나라의 정보기관이 남북 대화 기관이 됐다. 북핵 개발을 막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대북 송금 등 그것을 사실상 도왔을 가능성도 있다. 아웅산 테러,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적 동향을 알아낸 것도 없다. 그래도 건물은 이스라엘 모사드보다 훨씬 좋을 것이다. 국민 세금도 엄청나게 쓴다. 정권은 어제 국정원 간첩 수사 기능마저 없애는 법을 단독 처리했다. 지금 국정원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국정원 자신은 알까.
-임민혁 논설위원, 조선일보(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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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공수사권
미국이 9·11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라덴을 2011년 5월 사살할 수 있었던 것은 약 10년에 걸친 미 중앙정보국(CIA)의 끈질긴 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9·11 직후부터 중동에서 빈라덴을 추적한 CIA는 사살하기 9개월 전쯤 빈라덴의 파키스탄 은신처 주변에 안가를 얻어 작전을 준비했다. 한국 국가정보원이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받아낸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도 3년에 걸친 치밀한 내사의 산물이었다. 당시 국정원은 내부 조력자를 통해 비밀회합 녹취 파일을 확보해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노린 사건의 실체를 밝혀낼 수 있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고 직무 범위에서 ‘국내 정보 수집’을 삭제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24일 국회 정보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하고 전체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국정원에서 대공수사권과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을 없애면 해외 정보 수집에 집중하는 기관이 된다. 1961년 김종필 주도로 중앙정보부를 처음 설립할 때 대공수사권을 부여했던 것은 남북 대치 상황을 고려해 미 CIA와 연방수사국(FBI)의 기능을 합친 정보기관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국정원의 간첩 수사는 대공수사국이 맡아왔는데 내란, 외환죄, 반란죄 같은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범죄가 대상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사건은 다 경찰의 몫이 된다. 그런데 기능만 이관하고 국정원의 대공 수사 인력은 그대로 국정원에 남아 다른 부서로 재배치된다고 한다. 전문 인력이 경찰로 이동하지 않을 경우 수십 년간 국정원이 쌓아온 대공수사 노하우와 전문성이 사장(死藏)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야당은 국정원법 개정안에 신설된 경제 질서 교란에 대한 정보 수집 활동에 대공수사 잉여 인력이 배치돼 경제 사찰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산업스파이 수사는 종전대로 국정원이 계속 맡는다.
▷경찰은 경찰청 보안국을 가칭 ‘안보수사본부’로 확대 개편해 일반 수사를 총괄할 국가수사본부와 양립시킨다는 계획이다. 경찰은 의욕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다지만 사람과 노하우는 넘어오지 않아 자칫 조직과 권한만 비대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전공자가 잘하는 일을 비전공자에게 맡기는 것은 비정상이다. 국정원은 CIA 등 해외 정보기관과의 네트워크가 잘 구축돼 있고, 휴민트라 불리는 해외 인적 정보망도 풍부하다. 세계 각국은 지금 앞다퉈 정보 예산을 늘리며 정보전을 강화하고 있다. 대공수사권 폐지라는 큰 변화를 추진하려면 그 과정에서 빚어질 빈틈과 부작용을 보완할 치밀한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그저 개혁이란 미명 아래 없애는 데만 급급한 게 아닌가 걱정된다.
-이태훈 논설위원, 동아일보(2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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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수사 역량 통째로 흔드는 與, 누가 좋아할까

박지원 국정원장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이덕훈 기자
민주당이 24일 국회 정보위 소위에서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을 통째로 다른 기관으로 넘기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3년 유예가 지나면 국정원은 간첩 수사에서 손을 떼야 한다. 그런데 수사권을 받을 경찰청은 간첩 수사를 전담해온 보안 경찰 1600여 명을 일반 수사 경찰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정원은 간첩 수사를 포기하고 경찰은 전문 수사관을 없애면 간첩은 누가 잡나.
해킹만으로 주요 정보를 빼 가는 시대지만 인적 정보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첩보 루트다. 북한 역시 간첩을 계속 침투시키고 있다. 작년에도 북 정찰총국이 직파한 간첩이 국내에서 검거됐다. 탈북민 위장 간첩 등 잠입 경로도 다양해졌다. 간첩 수사 전문성에서 국정원과 보안 경찰만 한 조직은 어디에도 없다. 특히 대공 수사는 장기간 은밀하게 이뤄지는 특성이 있다. 실제 2013년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은 3년가량 내사를 진행한 끝에 적발됐다. 운동권 출신들이 북 대남 공작 부서의 지령을 받고 간첩 활동을 한 ‘왕재산 사건’도 국정원 요원들이 중국 등을 오가며 오랫동안 추적한 결과였다. 역공작을 하느라 10년씩 수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쌓인 수사 노하우는 이관될 성질도 아니다.
과거 간첩 수사가 잘못되거나 조작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진짜 간첩을 잡고 막은 사례가 더 많다. 정상적 국가라면 어느 쪽을 중시해야 하나. 잘못은 고치면 되는데 통째로 없애려 한다. 북한이란 세계 최악 폭력 집단과 대치 중인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대공 수사 역량을 무너뜨리고 있다. 누가 제일 좋아하겠나.
-조선일보(2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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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모래알 스파이 전략
매력적인 여성을 이용해 남성을 꾀는 계략(stratagem enticing men with attractive women)을 미인계라고 한다. 영어로는 '꿀'과 '함정'이라는 두 단어를 합쳐 'honey trap'으로 표현한다.
또는 'badger game'이라고도 하는데, 오소리를 통에 가두고 개가 덤벼들게 하는 장난에서 유래했다(be derived from badger baiting). 남성을 속여 남부끄러운 상황에 몰아넣고(trick him into a compromising position) 협박에 취약한 상태로 만드는 갈취 책략(extortion scheme)이다. 남성을 꾀어 한 방에 들어가게 한 뒤 공범이 난입해(burst into the room) 남편·아버지·오빠라며 난리를 피워(raise hell) 뭔가를 우려내는 음모 장치(plot device)를 말한다.

중국의 스파이 행위가 이런 고전적 수법(the oldest trick in the book)에 그치지 않고 갈수록 과감해지고 있다. 이제는 군사기밀뿐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을 노리는 산업 스파이 활동에도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어(devote enormous resources to industrial espionage) 진공청소기처럼 정보를 빨아들이고 있다(suck up information like a vacuum cleaner).
지적 재산 탈취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in a bid to facilitate the theft of intellectual property) 외교관과 정보기관 요원들을 배치하는(deploy its diplomats and intelligence agents) 것은 물론, 해외 화교 사회에 잠입해 현지 간첩·정보원을 양성하고 있다. 전통적 형태의 스파이들이 전문화된 훈련에 의존했다면(rely on specialized training) 근래 들어서는 세계 각지의 중국계 혈통(Chinese descent)을 이용한 '모래알' 전략(grains of sand strategy)을 구사하고 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 6000만여 명에겐 '조상의 모국(ancestral motherland)'을 내세워 애국심을 주입하고 있다(instill patriotism). 다른 한편으로는 본토 공산당 신임을 얻은 인물들을 전폭 지원해 아예 현지 중국인 사회 전체를 장악하게(take them over) 한다. 이 과정에서 '당근과 채찍(carrots and sticks)'을 동원하기도 한다. 당근으로는 귀국할 경우 높은 지위와 좋은 집을 약속하고, 채찍으로는 비자 발급 거부와 가족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라고 위협을 가한다(threaten to harm families).
세계 각국에 거주하는 전문직, 사업가는 물론 관광객들조차 대사관이나 영사관 주재 정보기관 요원에게 정보 보고를 하게 하고 있다. 유학 중인 학생들도 '모래알' 역할을 한다. 특히 대학원생들은 '잠복 중인 정보요원(sleeper agent)'인 경우가 많다. 재학 중에는 은신하고 있다가 과학·기술·군사적 가치가 있는 정보들을 다루는 직장에 들어간 뒤 활동을 시작한다.
"해변 모래가 첩보 대상이라고 가정해보자. 미국은 위성을 띄워 모래를 분석해 정보를 얻고, 러시아는 야밤에 잠수함을 보내(send in a submarine) 모래를 퍼오게 한다면, 중국은 수많은 인원이 현장 여기저기서 묻혀온 모래를 탈탈 털어 모은다."(미 연방수사국 전직 중국 분석관 폴 무어)
-윤희영 편집국 에디터, 조선일보(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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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나라만 바보 '루비콘'
2017년 미 백악관과 국토안보부가 동시에 나서 러시아 백신회사인 카스퍼스키랩 퇴출을 지시했다. 전 세계 4억명이 사용하는 이 회사 소프트웨어를 모든 연방정부 네트워크에서 삭제하라는 것이다. 국토안보부는 "카스퍼스키랩은 러시아 정보·정부 기관과 연계돼 있다"고 했다. '백도어'(해킹 프로그램)로 미 정부·기업 정보를 빼내 러시아 당국에 넘겨주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 창립자가 냉전 시절 KGB에서 전자신호 정보 부문 훈련을 받았다는 얘기도 정부에서 흘러나왔다.
▶지난달 트럼프 미 대통령은 존슨 영국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분노를 쏟아냈다. 영국이 5G 사업에 중국 화웨이를 배제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트럼프의 기절할 듯 화난 어조에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미국은 카스퍼스키랩과 같은 이유로 '화웨이 보이콧'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화웨이를 사실상 '중국 정부 기업'으로 규정한다. 미 법무장관은 엊그제 중국군 소속 해커들을 기소하면서 "중국은 수년 동안 미국의 민감한 자료에 게걸스러운 탐욕을 보여왔다"고 했다.

▶중·러의 정보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이 수십 년간 동맹·적국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정보를 빼냈다는 폭로가 미 언론을 통해 나왔다. CIA가 1970~2018년 유명 암호장비 회사를 몰래 소유하고, 이 회사 장비를 쓰는 한국 등 120개 '고객 국가'의 기밀 통신을 들여다봤다는 것이다. '루비콘'이라는 이름의 이 작전은 미 CIA사(史)에 '세기의 정보 쿠데타'로 묘사될 만큼 기간·대상·규모가 방대하다. 1978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 협상 때 이집트 대통령의 본국 통신 내용도 '루비콘'을 통해 모두 파악했다고 한다.
▶세계 주요국들이 사활을 건 첩보전을 벌인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사이버 세상은 땅·바다·하늘·우주에 이어 다섯째 전쟁터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매일 아침 미 대통령 책상에 올라가는 정보 리포트 내용 중 80%는 사이버해킹으로 취득한 것이다. 2010년에는 미 NSA가 우방인 독일 총리를 포함해 35개국 지도자를 수십년 동안 도청 및 해킹해 왔다는 사실이 위키리크스 폭로로 알려졌다.
▶'루비콘'에 대해 미 정보국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정책 결정의 값진 정보 원천이기 때문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고 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루비콘'이 2018년 중단된 것은 더 발전된 해킹 프로그램으로 대체됐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첩보 세계에 '친구'는 없다. 당하는 나라만 바보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바보인가, 아닌가.
-임민혁 논설위원, 조선일보(2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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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에서도 '간첩' 떠올리는 중국
문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달빛이 있다면 먼저 시정(詩情)이라도 품을 만하다. 그러나 갈라진 틈에 싸움 또는 전쟁을 잇는 사고(思考)가 일찍이 중국에서 나왔다. 한자 간(間)을 두고서다. 이 글자는 본래 한(閒)으로 적었다. 문(門)에 달빛을 가리키는 월(月)이 붙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달빛이다. 나중에 달빛을 햇빛[日]으로 대체한 글자가 간(間)이다. 모두 문의 '틈', '사이'에 주목한다. 중국의 사유 체계는 이를 상대의 빈틈으로 파고드는 간첩(間諜)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간첩'이라는 조어는 '육도(六韜)'라는 병법서에 일찌감치 등장한다. 이를 본격적으로 개념화해 사용한 사람은 병법의 대가 손자(孫子)다. 그는 간첩의 효용성을 강조하며 다섯 종류의 스파이를 거론했다. 상대 국가의 일반인을 쓰는 인간(因間), 정부에 진입한 사람을 포섭하는 내간(內間), 타국 스파이를 거꾸로 활용하는 반간(反間), 붙잡혀 처형당할 수 있는 혼란 전파자 사간(死間), 정보를 수집해 살아 돌아오는 생간(生間) 등 '오간(五間)'이다.
싸움의 사고, 즉 모략(謀略)의 전통에서 일찍 뿜어져 나왔던 스파이의 개념들이다. 명칭도 다양하다. 세작(細作)은 정규전 외에 별도의 정교한 공작을 벌인다는 뜻이다. 나쁘게 부르면 간세(奸細)다. 특별 임무 수행자는 특무(特務) 특공(特工), 남의 침상 밑에 숨은 사람은 와저(臥底), 비밀스레 염탐한다고 밀탐(密探)이다. 1800년 전 이미 간첩 업무를 전담하는 교사(校事)라는 기관도 등장했다.
중국은 비정규전의 싸움 방식을 중시한다. 정규전을 지칭하는 정(正)과 비정규전의 방식인 기(奇)를 동렬에 놓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던 손자가 대표적이다. '간첩'의 맥락이 그런 비정규전의 큰 축이다. 요즘 중국의 통신장비 대표 기업 화웨이(華爲)를 비롯해 유학생, 학자 등이 서방의 집중 감시를 받고 있다. 모두 간첩의 혐의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보이지 않는 싸움에 능한 중국의 모략적 속성이 서구의 경계감에 크게 부딪히는 형국이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조선일보(1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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