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양념’ 바이러스에 쩔쩔매는 여권]
[망각의 정치, 기억의 정치를 뒤엎다]
[‘양계장 대학’과 586 민주독재]
‘文 양념’ 바이러스에 쩔쩔매는 여권
文 보호 아래 ‘양념부대’ 與 압박… 멀쩡한 사람들도 강성파 변해
문 대통령 팬덤 최면에 빠지면 국정 멍들고 국민과도 멀어질 것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청와대 시절 말수가 적고 온화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내부에선 ‘착한 문재인’이라 불렸다. 노무현의 후계자가 된 데는 ‘가장 착해 보이는 친노(親盧)’라는 평가가 컸다. 인권 변호사 이력까지 더해 ‘정의로운 문재인’이란 이미지도 생겼다. 이는 폐족(廢族)의 수장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원동력이 됐다.
지지자들은 ‘착하고 정의로운 문재인’을 앞세워 맹종(盲從)에 가까운 충성심을 보였다. 이는 성역이자 신앙이 됐다. 팬들의 열광에 문 대통령도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게 된 듯하다. 문빠들은 문 대통령과 정책에 대한 비판을 ‘교주(敎主)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떼 지어 상대방을 공격했다. 여야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문자 폭탄과 이지메가 이어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를 “경쟁을 흥미롭게 하는 양념”으로 치부했다. 내가 정의로우니 문빠의 양념도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비쳤다.

인증샷 찰칵찰칵-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인 2017년 4월 18일 전북 전주의 전북대학교 앞 유세 현장에서 자신과 악수를 하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이후 여권에선 누구도 이들을 비판하거나 제어할 수 없게 됐다. 대통령의 보호 아래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된 10만~20만명의 양념 부대는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경선 등 당내 헤게모니도 장악했다. 여당 지도부와 각료들도 이들에 맞서 소신을 말하기 힘들어졌다.
‘양념 바이러스’는 조국·추미애 사태를 거치며 여권 전체로 번졌다. 멀쩡하고 합리적이던 사람들까지 ‘양념의 신도’로 돌변한 것이다. 작년 조국 수호의 총대를 멨던 김종민 의원은 그 몇 달 전만 해도 정부 정책에 비판적 소신을 밝혔던 사람이다. 언행이 신중했던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엔 “악마에 영혼을 판 파우스트”, 야당 의원엔 “지라시 만들 때 버릇”이라 비판하며 초강경파로 변했다. 우원식 의원은 월성 원전 자료를 삭제한 공무원이 구속되자 “인내의 한계를 느낀다”며 법원까지 공격했다.
당정(黨政) 수뇌부에도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친문과는 결이 달랐던 이낙연 대표는 “윤석열 총장은 거취를 정하라” “국정조사도 추진하겠다”며 추미애 장관의 손을 들어줬다. 공수처법 개정안과 경제 3법, 대북전단금지법 등도 밀어붙이겠다고 했다. 평소 합리적이란 평가를 받아온 정세균 총리는 원전 수사를 받는 산업부를 찾아가 직접 공무원들을 격려하는 이례적 행보를 했다.
8·15 집회 참가자들을 “살인자”라고 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법원행정처장에게 “살려주십시오 해보라”고 한 박범계 의원의 발언은 양념 맛에 취한 오만함의 발로다. 여당 의원들은 뒤에선 “추 장관이 잘못했다”면서,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않는다. 청와대와 문빠들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내년 서울·부산시장 선거와 당대표 선거, 대선 경선 판도를 좌우할 수 있다. 이낙연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정부 인사(人事)도 정책도 난맥인데, 청와대와 문빠들 때문에 소신대로 대처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여권 고위 인사는 “국정이 꼬이는데 말은 못하고 정말 고민이 많다”고 했다.
여권 전체가 양념 바이러스에 감염된 근본 원인은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내가 하는 일은 정의롭고 문제도 없다’는 확신에 차있는 듯하다. 불리한 현안마다 되풀이되는 대통령의 침묵은 ‘그래도 내가 옳다’는 고집으로 비친다. 양념 부대들을 향한 무언(無言)의 지침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무오류(無誤謬)의 함정, 팬덤의 최면에 빠지면 국정 실패를 바로잡을 수가 없다. 홍위병들은 대통령이 힘 있을 땐 위세를 떨치지만, 결국 권력을 병들게 하고 국민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문 대통령이 양념의 환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20년 집권' ’100년 정당'의 꿈은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배성규 정치부장, 조선일보(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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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정치, 기억의 정치를 뒤엎다
코로나 한숨 깊은데 ‘秋-尹 대립’ 심화
집권세력 꿈꾼 세상 과연 무엇이었나
정체성에 충실해야 잊혀지지 않을 것
추미애와 윤석열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쯤 되니 집권세력이 꿈꿔온 세상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적폐청산은 자신도 적폐로 흑화해야 가능한 것이었는지. 검찰개혁의 핵심인 정치적 독립은 자신의 치부에는 눈 감을 때만 적절한 것이었는지. 주택정책은 설득과 동의 없이 왜 항상 전격적이어야만 했는지.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소임을 한 자신이 권력이 되었을 때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판은 반동인지. 2020년의 민주주의가 1987년의 기억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선거에서 이기는 정치 기획 말고 미래를 도모할 비전과 계획은 있었는지. 기억회로를 열심히 굴려도 일관성을 찾기 쉽지 않다. 임시변통적인 말들의 성찬이었을 뿐이었나.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급격하게 빠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세월호 참사조차 그 책임을 해경과 종교집단에 돌리던 몰염치하고 무책임한 전(前) 정권과 대통령에 대한 분노의 기억 대신, 현(現) 정권과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를 차갑게 평가하고 그 결과를 기억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소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음침하고 비겁한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윤석열 총장과 검찰 조직이 저항해도 우리는 그전만큼 분노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에서 더 분노할 대상을 찾았기 때문이다.
정치는 기억을 자양분으로 자라고 다시 태어난다. 정치가 기억의 재구성과 확산 없이 지지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치는 정당한 기억에 대한 선점을 통해 대중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믿게 한다. 그래서 정치에 있어서 기억은 대중이 동정적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소구이며 유리하게 조작하고 선점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정치는 끊임없이 기억할 소재를 찾아 평가하고 반성하고 분노를 확산시킴으로써 그 과정의 주체가 된 자신의 정당성을 강화한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명분 싸움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려면 기억의 전투에서 승리해야 한다. 하지만 승리한 기억조차 항상 망각의 위협에 시달리는 운명에 있다. 정당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던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불안정해지고 사라진다.
정치는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노래를 틀고 역주행을 노려보지만 이미 세상은 변했고 새로운 소비층은 관심이 없다. 옛일을 추억하는 어제의 소비층이 가끔 호응하지만 그럴수록 노래하는 사람과 따라 부르는 사람 모두 대세의 기억에서 멀어진다. 기억의 전투에서 ‘뭣이 중헌지’ 전혀 감을 못 잡는 낡은 야당이 우려먹는 반공과 천민자본주의 사골국이 좋은 예다. 가만히 있는 전략으로 정당 지지도에서 최근 앞서기 시작했어도 국민의힘을 차기의 대안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여권 차기 후보들과 겨룰 후보군조차 만들지 못하고, 현 정부가 임명한 검찰총장에게 자리를 내준 정당이 무엇을 할 수 있나. 민주화 투쟁의 기억으로 권력까지 수중에 넣었으면서 아직도 약자인 척 검찰과 언론을 적폐로 모는 여당의 모습도 좋은 예다. 추미애 사단의 전횡을 비판하면 검찰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윤미향의 부적절한 처신을 지적하면 토착왜구로 몰린다. 행정부를 장악하고 180석을 가진 민주당이 집권 4년 차에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야당도 동참해야 한다며 책임 회피를 하는 모습에 실소가 터진다. 현재와 미래에 충실하지 않은 기억은 망각을 이기지 못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19가 코앞에 와 있음을 감각하고 마스크를 눈에 최대한 가깝게 올려 쓴다. 소상공인의 한숨은 깊어간다. 아이는 학교 대신 집에 부모와 함께 다시 갇혔다. 이 와중에 추미애와 윤석열만 들린다. 대통령이 검찰총장 징계의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고 국토교통부 장관을 교체하며 반전을 노리지만 사라지기 시작한 기억에 생명을 불어넣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렇다고 기억과 망각의 냉혹한 역사적 흐름에서 정당한 기억 편에 설 기회조차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 한때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고 주장했던 정체성에 충실하면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 망각한 자신의 모습부터 되살려야 한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치르게 된 선거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겠다 정한 당헌과 당규를 지키면 된다. 노동 존중의 사회를 만들겠다고 장담했으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과시키면 된다. 검찰개혁이 정말 하고 싶다면 공수처 출범에만 목맬 게 아니라 검찰을 통제하면서도 정치적 독립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내놓고 공론화하면 된다.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차별금지법을 원래 취지에 맞게 통과시키면 된다. 아파트를 통한 부의 대물림을 차단하고 싶다면 실책을 인정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더 듣고 더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면 된다. 무엇을 하고 있나.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동아일보(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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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장 대학’과 586 민주독재
‘5·18 처벌법’ 자유민주 가치 부정… ‘운동권 전체주의’ 갈수록 폭주
비판적 지성 산실 대학 잠잠… ‘논문생산성’에만 관심
교수는 ‘논문 양계장’ 닭 신세… 민주주의와 대학 복합위기
민주주의의 탈을 쓴 ‘운동권 전체주의’의 민낯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도 작금의 대학가는 놀라울 만큼 조용하고 잠잠하다. 대학이 민주주의의 파수꾼이자 민주화의 견인차였던 한국 현대사의 위대한 전통을 떠올리기조차 힘들 정도다. 시국선언이나 비상총회, 연대서명 등 1970~1980년대라면 봇물을 이루었을 교수들 집단 행동은 빛바랜 추억이 되어버렸다. 바깥세상이 아무리 소란해도 그 때문에 교수 사회 내부가 시끄러워지는 일은 거의 없다. 정치를 화제로 삼지 않는 게 일종의 예의처럼 됐다.
이른바 ‘진보 장기 집권 플랜’의 칼끝이 다름 아닌 자신들의 목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데도 그렇다.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5·18 역사왜곡 처벌법’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쓴 대학교수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했다. 권력이 과학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왜곡하는 사례도 문재인 정부 국정에서는 예사롭게 벌어진다. 이처럼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 지식인의 존재 이유 자체를 무력화하고 있는데도 정작 당사자들은 크게 심각하지 않은 분위기다.
물론 지식인 사회 전체가 일제히 입을 닫고 있는 건 아니다. 지식인 사회의 운동장이 크게 한쪽으로 기운 상황에서도 대학의 현실과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는 우파 성향 학자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들 생각이 조직화나 행동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는 데는 우리나라 대학 사회의 구조적 측면이 있다. 오늘날 대학가를 외견상 정치적 무표정과 무관심이 지배하는 까닭은 언제부턴가 지식 생태계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념의 차이를 불문하고 학문의 자유나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 자체가 약화됐다. 지식인의 전형이 비판적 공공 지식인으로부터 사적(私的) 지식업자로 바뀐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의 파도 속에 단행된 이른바 5·31 교육개혁은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개입을 법적으로 제도화·정교화시켰고, 이는 학문 세계를 경쟁 체제 속에서 계량화·정형화하는 시대의 문을 열었다. 말하자면 ‘논문 생산자’가 지식인의 일차적인 존재 방식이 된 것이다. 보수·우파 정부가 씨를 뿌린 국가 주도 지식생산·학술연구 프레임은 특히 문재인 진보·좌파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제철을 만났다. 시장과 사회 위에 군림하는 막강한 국가주의 덕분이다. ‘전지전능한 국가’가 되기 위해 정부는 지식의 생산 및 유통 시장을 대폭 키웠고, 교수들에게 이는 논문 생산자로서의 역량을 보이고 입지를 다지는 절호의 기회로 작용했다.
그 결과, 대학은 ‘논문 공장’으로, 그리고 교수는 ‘논문 기계’로 급속히 변해갔다. 어쩌면 ‘양계장 대학’이라는 표현이 보다 정확할 수도 있다. 지식의 생산과 유통 및 소비 과정이 ‘공장형 축산’과 닮았다는 의미에서다. 야성을 잃은 우리 속 닭들은 혼자 날지도 않고 날 줄도 모르는 존재가 되어, 모이가 뿌려지는 곳을 쫓아 이리 모이고 저리 흩어질 뿐이다. 그곳의 닭들은 원하는 계란을 때맞춰 산란하는 게 임무다. 양계장 대학에서는 논문이 곧 계란이다. 양계장 닭들은 밤에도 환한 조명 아래 쉴 새 없이 먹으며 살을 찌우고 알을 낳는다. 요즘 대학교수들도 대개 이런 식으로 바쁘다.
우리나라가 국가 전체 예산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간 20조원대 정부 R&D(연구 개발) 투자를 자랑하면서도 그 효과가 저조한 이유 또한 이런 식의 지식생태계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정부 R&D에는 돈을 흔들며 지식인을 줄 세우고 길들이는 경향과 관행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나라 R&D에는 ‘연구 조작’(Research and Deception)’이 유난히 많다. 권력의 풍향에 따라 ‘제안하고 사라지는’(Recommend and Disappear)’ ‘먹튀’ R&D도 부지기수다.
대학이 도덕적이고 열정적인 학문 공동체이던 시절은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어간다. 비판적 지성이나 자유로운 영혼은 대학 박물관에나 있다. 대학이 논문 공장이나 양계장으로, 교수가 논문 기계나 양계로 전락하는 과정은 오늘날 지식인 사회가 ’586 민주 독재'에 알게 모르게 적응하고 동화되는 모습과 별건(別件)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폭력적으로 찾아오는 군부 독재는 인지하기도 쉽고 저항하기도 쉽다. 하지만 논문 생산이 유일한 밥줄이 되어버린 요즘 교수들에는 독재를 판단할 겨를도 없고 이에 저항할 여유는 더욱더 없다. 그럼에도 공은 다시 지식인 사회로 넘어와 있다. 지금은 민주주의와 대학의 복합 위기이기 때문이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조선일보(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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