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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전직' 대통령은 서로가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 [듣지 않는 리더, 말하지 않는 참모]

뚝섬 2021. 1. 16. 06:03

 

‘현직’·'전직' 대통령은 서로가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

 

오늘 발자국이 뒷날 里程標 되리라’는 대통령 집무실 곁 白凡 글씨
대통령 자리에 앉는 순간 뒤 鐵門 닫히는 한국형 대통령제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에 정식 집무실을 두고서도 일상적 업무는 비서들이 근무하는 건물 내 사무실에서 처리한다. 권위주의 대통령 시대의 흔적을 지우는 의미라고 한다. 그 사무실 이름이 아픔은 ‘국민보다 먼저’, 기쁨은 ‘국민과 더불어’라는 뜻의 여민관(與民館)이다. 여민관 복도에는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김구 선생의 사진과 글씨 액자가 걸려 있다. 임란(壬亂) 시절의 고승(高僧) 서산대사 문장이라는 이 한문의 한글 풀이는 이렇다. ‘눈 내리는 벌판 가운데를 걷더라도/어지럽게 걷지 말라/오늘 걸어간 이 발자국이/뒤에 오는 이들의 이정표(里程標)가 되리니.’ 뜻이 좋아 대통령이 직접 골라 걸었다고 한다.

 

청와대 여민관 복도에 새로 걸린 백범 김구 선생 초상과 김구 선생이 직접 쓴 글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친필은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눈 내리는 벌판 한 가운데를 걸을 때라도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걸어간 이 발자국들이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리니)로 이 글은 유가족이 기증했다./연합뉴스

 

대통령은 11일 신년사에서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이어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다양한 주택 공급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겠다”고 했다. 현 정권은 들어서고 한 달 가량 지난 2017년 6월 19일 첫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그 후 23번의 대책을 추가로 내놓았다. 어지러운 발자국 사이에 대통령 발언이 찍혀 있다. “더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주머니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2017년 8월 17일),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2019년 11월 19일), ‘송구한 마음’으로 “빠르고 신속하게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신년사가 나오기까지 3년 7개월이 걸렸다.

 

환자는 가슴 통증(痛症)을 호소하는데 실제 원인은 등 쪽에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래도 좋은 의사는 참을성 있게 경청(傾聽)한다. 그런 의사를 만나면 마음이 열리고 믿음이 자란다. 나쁜 의사는 어디가 아픈지 묻지도 않고 처방전을 끊는다. ’내 집을 갖고 싶다'는데 ‘임대주택이 더 좋은 집’이라고 우기고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나기 시작했다’는 뜬금없는 말로 속을 뒤집는다. 나쁜 의사의 대표 증상이다.

 

위정자(爲政者)는 국민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현 정권은 ‘소득 주도 성장’을 비롯한 갖가지 정책 실험을 실시했다. 그 실험은 국민의 고통으로 돌아왔다. 그걸 보고 이웃 나라들은 그런 정책은 도입해선 안 되겠다는 교훈을 공짜로 얻었을 것이다. 코로나 백신 늦장 확보 이유를 ‘백신의 심각한 부작용을 걱정해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해 비 오는 날 자영업자들의 우산을 빼앗기도 했다.

 

사법(司法)의 정치화’는 정치 권력이 인사권을 통해 법원과 검찰을 수족(手足)으로 만들고 ‘정치의 사법화(司法化)’는 정치권·정부·국회가 내부에서 풀어야 할 문제 해결을 법원·검찰에 떠넘기는 걸 말한다. 둘 모두 권력 분립의 원칙을 허물어 민주주의를 유명무실하게 만든다. 이런 시대 역행(逆行)이 동시에 진행됐다.

 

권력자가 아무 때나 솥뚜껑을 열면 국민에게 선밥을 먹인다. 북한 문제만 나오면 분별(分別)을 잃고, 김정은의 여동생 호령에 꼼짝 못 하는 국가라는 오명(汚名)을 얻어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 때로는 대국(大國)의 횡포에 힘과 기백으로 맞서고, 때로는 그들과 더불어 지낼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지 않으면 험한 세계를 건널 수 없다. 그 구분을 못해 한국은 동북아에서 북한 다음으로 고단(孤單)한 나라가 돼버렸다.

 

공무원 조직은 국가 자산이다. 그 공무원들이 원전 폐쇄 경제성 평가조작, 문서를 위조한 불법 출국 금지 사건 등에서 범죄의 하수인(下手人)으로 대거 등장했다. 가장 많은 공무원들을 범죄자로 만든 정권일 것이다. 정권과 색깔을 맞추라고 공무원 조직에 너무 자주 손찌검을 해온 탓이다. 이 상처는 쉬 아물지 않는다.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5년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실시하면 후보자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 96조를 만들었다. 민주당이 그 당헌을 바꿔 서울·부산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낸다는데 대통령은 한마디 말이 없다. 이 침묵은 동조(同調)한다는 뜻이다.

 

14일 박근혜전대통령의 대법원 선고 뉴스를 시민들이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은 기세등등하게 출발해 허둥지둥하며 끝나는 5년 궤도를 돈다. 한국형 대통령제는 자리에 앉는 순간 뒤 철문(鐵門)이 내려와 닫히는 쥐덫 구조다. 임기가 끝나갈 무렵에야 이 사실을 깨닫는다. 현재 대통령과 전임(前任) 대통령들은 그런 뜻에서 서로가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다. ‘오늘 걸어간 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액자 속 백범(白凡) 글씨가 그래서 더 아프다.

 

-강천석 논설고문, 조선일보(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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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지 않는 리더, 말하지 않는 참모

 

대통령은 남의 말 안 듣고 靑 참모들은 直言하지 않아
尹 징계 무산 사과까지 한 건 귀와 입 닫은 대통령·참모 탓

 

 

“대통령이 속은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신임대사 신임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법무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가 법원에서 뒤집히자 여권 인사 몇몇이 사석에서 한 말이다. 윤 총장이 이른바 ‘판사 사찰 문건’ 작성을 지시하는 등 감옥에 가야 할 중죄(重罪)를 저질렀다고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과장 보고했고, 대통령이 이를 믿었다가 낭패를 본 것 같다는 얘기였다. 이런 말을 하는 여권 인사들도 윤 총장 징계를 문재인 대통령이 재가했을 때는, 대통령만 보고받는 ‘고급 정보’가 있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사이 문 대통령을 향한 외부의 무수한 경고 신호가 있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속았다니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궁금증을 풀 실마리는 여권 원로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연말에 만난 한 원로는 “대통령이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듣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을 따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청와대에서 부르질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할 때 이런저런 쓴소리를 한 게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다른 원로는 2년 반 전쯤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시장(市場)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부동산은 끝났다”며 집값 때려잡기에 기세를 올릴 때였다. 그런데 얼마 후 청와대 정책실장이 라디오에 나와 “시장이 국가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이 원로는 “당신 얘기는 더 듣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통보를 전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대통령이 청와대 담장 밖 이야기 듣기를 꺼리면 참모들이라도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해야 한다. 새 대통령 비서실장은 취임 일성으로 “바깥 이야기를 부지런히 대통령께 전하겠다”고 했다. 청와대 참모들이 그동안 대통령에게 세상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실제로 대통령의 참모를 해본 사람들은 “직언(直言)하는 참모가 드물다”고 말한다. 대통령이 듣기 싫어하는 경우가 많고, 괜히 쓴소리를 했다가 손해 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현 정부의 한 대통령 참모는 도덕성 논란에 휘말린 어느 고위 공직 후보자를 대통령 허락 없이 만나 자진 사퇴를 요청했다가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대통령에게 강한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문제의 후보자는 결국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랬다 해도 이런 일을 겪은 참모는 이후 대통령에게 직언하기보다 침묵하는 쪽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 일을 경험해본 드문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핵심 참모단이 대통령의 경솔한 의사 결정을 말리고자 대통령 집무실에 가장 자주 파견한 이가 ‘민정수석 문재인’이었다고 한다. 일종의 청와대 내 ‘지정 반론자’였던 셈이다. 그런 경험을 거쳐 대통령 자리에 오른 문 대통령이 연말 윤 총장 징계 무산 사태에 사과한 데 이어 신년 들어선 부동산 문제에 대해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또 사과했다. 열성 지지자들이 ‘문아일체’(文我一體)를 합창하며 대통령의 무오류를 외쳤지만 대통령의 권위 추락을 막지는 못했다. 듣지 않는 대통령과 할 말을 하지 않은 참모가 만나 합작한 결과물인 셈이다.

 

이러는 중에도 여전히 대통령 주변에서 “비판에 물러서면 안 된다”고 속삭이며 반대자를 적(敵)으로 돌리는 참모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해 들어 진보 진영 원로들이 대통령의 불통(不通)을 거듭 경고하고 있다. 어느 쪽 의견에 귀 기울일지는 대통령 몫이다. 선택의 결과를 두고 누구에게 속았다고 해선 안 된다. 대통령이 사과할 때, 속은 쪽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최경운 기자, 조선일보(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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