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5년마다 왕을 뽑고 처형하는 나라] ... [“자기들은 절대善, 공무원은 목표 위한 수단이란 정권 ... ”] ....

뚝섬 2021. 1. 25. 06:17

 

[5년마다 왕을 뽑고 처형하는 나라]

[대통령에게도 겨울이 오고 있다]

[與 대선 주자들 ‘빚 내서 돈 풀기’ 막가는 경쟁]

[“자기들은 절대善, 공무원은 목표 위한 수단이란 정권에 화가 난다”]

 

 

5년마다 왕을 뽑고 처형하는 나라

 

왕은 위엄, 행정부는 효율 英, 신뢰 바탕 서로 견제
왕조 흔적 남은 韓대통령제 文의 축제도 끝나가는데...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어린 시절 헌법을 공부한다. 선생은 “왕은 위엄, 행정부는 효율”이라며 두 권력의 성격을 설명하면서, 둘 사이의 ‘신뢰(trust)’를 강조한다. 미래의 여왕에게 각인된 ‘신뢰’는 향후 처칠, 대처 등 쟁쟁한 총리들과의 관계에서 철칙이 된다. 건강 문제를 숨긴 노회한 처칠에게 젊은 여왕은 “총리는 신뢰를 훼손했다. 국가 안보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했다. 천하의 처칠은 52세나 어린 여왕에게 고개를 숙였고, 둘 사이의 ‘신뢰’는 평생을 간다. 권력은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입헌군주제’에서 왕과 총리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쪽의 독주를 막는다.

 

청와대 전경/장련성기자

 

현대화된 국가들에서 왕조는 근대화 과정에서 국민에 의해 축출됐다. 그것도 단두대와 총으로 상징되는 처참한 방법이 동원됐다. 이렇게 왕조를 몰아낸 국민은 왕조에 대한 기억은 있어도 미련이나 환상은 없다. 비극의 끝을 봤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 왕조는 국민이 아닌 일제(日帝)라는 외부 요인에 의해 어느 날 ‘증발’했다. 그래서 국민 마음속에 고종이나 명성황후에 대한 환상이 있다. 부패와 무능으로 국민과 나라를 통째로 버린 구체제 대신 비운의 드라마만 남았다.

 

이런 기억의 공백 속에 1948년 대통령제가 도입됐다. 한국 대통령은 왕의 ‘위엄’과 행정부 수반의 ‘효율’이 제도적·정서적으로 결합한 기묘한 산물이다. 5년마다 선거를 통해 선출하지만 우리 마음속의 대통령에겐 왕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얼마 전 정세균 총리가 백신 문제를 추궁하며 대통령을 비판한 야당 의원에게 “국가원수에 대한 예의를 지켜달라”고 말한 것도 이런 흔적이다. 정부의 ‘능력’을 물었더니 엉뚱하게 ‘위엄’으로 답변한다. 무슨 연례행사가 된 대통령 기자회견 때마다 “예의가 없다”는 논란이 재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회에서 얼굴을 맞대고 총리를 공격하는 영국 국회의원, 출퇴근길에 총리를 붙들고 사생활까지 물어보는 일본 기자들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한국 대통령에게 왕의 그림자가 있는 것은 국민 정서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처럼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나라가 없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7국 중 이원집정제가 아닌 대통령제를 택한 국가는 미국과 멕시코, 칠레, 한국 정도다. 미국 예를 들지만, 미국은 한국처럼 인사, 예산, 감사 뭐 하나 대통령 마음대로 못 한다. 미국 대통령 권한이 절대적으로 보이는 것은 대통령제라서가 아니라 미국 국력 때문이다. 미국 의회는 한국처럼 대통령의 거수기가 아니다. 한국 대통령은 왕에 버금가는 권력이다.

 

왕은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신(神)에 의해 권위가 부여되고 계승된다. 그러나 한국은 5년마다 대통령이라 불리는 왕을 뽑고 축제를 즐기다 처형한다. 수십 년째 “누굴 찍은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고 한다. 그러고도 아직 손가락이 남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쳤다. 문재인 대통령도 축제가 끝나가고 있다. 내년, 아니 당장 올해 4월부터 선거라는 이름의 내전(內戰)과 왕위 쟁탈전이 기다린다. 지면 처형되고 이기면 축제가 이어지니 어찌 목숨을 걸지 않겠나.

 

한국의 대통령제는 벼랑 끝에 섰다. 협치라도 해야 하는데 매번 실패다. 권력분산형 개헌을 해야 하는데, 대선 주자나 국민은 다음 대선만 생각한다. 밤새 내린 눈으로 빙판길이 됐는데 눈 치우겠다는 사람은 없고 차들만 전속력으로 내달린다.

 

-정우상 정치부장, 조선일보(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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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게도 겨울이 오고 있다

 

윤석열·최재형에 정권 차원 압박 뒤, “文정부 검찰총장” “정치 감사 아냐”
‘퇴임 후 안전’ 고려했단 분석도.. 단임 대통령에 ‘계산서’ 날아올 시간
불행한 역사, 반복 않도록 自重을…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입양아 바꾸기’ 발언이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대통령이 뭐 이렇다 할 악의가 있거나 비정해서 한 말이라고 보지 않는다. 정치인으로서, 특히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이 입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냥 진솔하게 사과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청와대 대변인을 내세워 어설픈 변명으로 주워 담으려 하고, 그것도 모자라 바로 다음 날 보건복지부까지 나서 ‘사전 위탁제 도입’ 운운하니까 많은 국민의 분노지수를 치솟게 한 것이다. 정부 부처가 대통령의 실언(失言)을 치다꺼리하는 곳인가.

하지만 정작 내가 놀란 발언은 따로 있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저의 평가를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그냥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한 것. 바로 이 대목에서 2019년 8월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장장 1년 4개월간 문 정권이 펼친 ‘윤석열 찍어내기 대하드라마’를 생생하게 시청한 국민들은 뜨악해질 수밖에 없다. ‘집 지키라고 했더니 감히 살아 있는 권력을 문 검찰견’에 대한 이 정권의 찍어내기 드라마는 법원이 정직 2개월 징계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고서야 비로소 종영했다. 그 난장(亂場)을 벌인 정권의 최고책임자가 ‘그냥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란다.

 

당장 윤석열 찍어내기 선봉에 섰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여당 의원들, 홍위병 같은 공격을 자행했던 ‘문파’들부터 그 말에 동의할까. 더구나 지난해 연초부터 추 장관 임명을 강행해 윤석열을 식물총장으로 만든 뒤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면서도 절차적 정당성이라고는 없는 징계안을 즉각 재가해 사실상 찍어내기를 배후 연출한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누구보다 강력한 제왕적 권력을 휘두른 문 대통령이 애초부터 ‘노(NO)’ 했다면 윤석열 축출 기도(企圖) 자체가 불가능했을 터. 그런 국가적 소모전을 조장해 놓고 이제 와서 “민주주의의 일반적인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러니 임기 종료를 1년 3개월여 앞둔 대통령이 ‘퇴임 후 안전’을 고려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즉, 법이 정한 검찰총장 임기제를 부정한 윤석열 퇴진 압박은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기록’을 남겨 훗날 직권남용 등 법적 논란 소지에 대비하려 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감사원의 탈원전 정책 수립과정 추가 감사를 “정치적 목적의 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 데 대해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온다. 이 정권 사람들이 최재형 감사원장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감사에 대해 전방위 압박을 가한 건 주지의 사실. 그것도 ‘다 밑에서 한 일’이라는 취지일 것이다.

 

아직 봄꿈에서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계단 앞에 떨어진 오동잎이 벌써 가을의 소리를 낸다고 했다. 레임덕은 없을 것 같았던 문 대통령의 권력도 이제 손안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이 오고 있다. 여권 대선주자들이 국가 재정을 쌈짓돈인 양 돈 풀기 경쟁을 벌이고, 그렇게 말 잘 듣던 홍남기 경제부총리마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고 들이받으며 자신의 ‘레코드’를 남기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도 당분간은 거대 여당의 친문 의원들이 ‘대통령 옹위’에 적극 나설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여권의 미래권력이 구체화하기 전까지다. 그때가 되면 한번 권력의 맛을 본 ‘문재인 키즈’들마저 줄 대기에 나서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금배지의 속성상 자신의 연임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다. ‘평생 친구’ 노무현이 간파한 대로 문재인은 정치에 잘 맞는 사람은 아니다. 기자회견 기피와 입양아 실언에서도 드러나듯, 말의 경중(輕重)을 따져 구사를 잘하는 편도 아니고 공감능력도 떨어진다고 본다.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이나 남 얘기를 듣기는 하되 입력은 잘 안 되는 스타일도 공감능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불통(不通)과 자기편에 갇힌 ‘팬덤 통치’가 이 나라를 한 번도 경험 못 한 여기까지 끌고 온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단임 대통령에게 숙명적인 계산서가 날아올 시간이다. 그런데도 실정(失政)의 대못을 박기 위해 무리수를 두거나, 자칫 차기 대권 구도 개입의 욕심에 흔들린다면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문 대통령에게도 겨울이 오고 있다.

-박제균 논설주간, 동아일보(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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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대선 주자들 ‘빚 내서 돈 풀기’ 막가는 경쟁

 

이낙연 대표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코로나 피해 대책 등을 말하고 있다/뉴시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정세균 총리의 자영업자 손실 보상 법제화 구상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일괄 재난 지원금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이 대표는 그제 방송에서 정 총리가 자영업자 보상안에 난색을 표한 기획재정부를 “개혁 저항 세력”이라고 몰아 세운 데 대해 “기획재정부 곳간지기를 구박한다고 무엇이 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독하게 얘기해야만 선명한 것인가” “당정 간에 얘기하면 될 일이지 언론 앞에서 비판하고 다니는 것이 온당한가”라고도 했다. 정 총리의 언행이 코로나 피해 대책보다는 사실상 개인의 정치적 이득을 겨냥한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돈 뿌리자는 당을 총리와 경제 부총리가 함께 재정 걱정을 하며 막아서야 하는데, 반대로 당 대표가 부총리를 두둔하며 총리를 견제하는 모양새다. 이 대표는 도민 모두에게 10만원씩 주겠다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도 “(경기도만 먼저 할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여당 대표가 나라 걱정을 하며 점잖게 정 총리와 이 지사를 타이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대표도 사실 이런 말 할 처지가 못 된다. 이 대표는 이 대표대로 좋은 실적을 낸 기업들이 이익 일부를 자영업자 등 코로나 피해자들에게 나눠주는 이익공유제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은 이익공유제의 일환으로 은행들이 자영업자의 이자를 감면하거나 아예 받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특별법까지 검토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발적’이라고 하더니 점점 팔 비틀기로 바뀌고 있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민간 기업과 금융회사들에서 별도 기부금을 받아 수조원대 기금을 만들어 소상공인 등에게 나눠주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정 총리, 이 대표, 이 지사는 2022년 대선을 노리는 집권당의 차기 주자들이다. 세 사람이 각자 포퓰리즘 상품을 내걸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 총리와 이 지사가 나라 재정을 자기 주머니 돈인 양 퍼주자는 쪽이라면, 이 대표는 돈 많이 버는 기업을 털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로빈 후드 흉내까지 내고 있다는 점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상호 비방전도 달아오르고 있다. 얼마 전에는 독자적으로 재난기본소득 지급안을 발표한 이 지사를 향해 정 총리가 “단세포적 발상에서 벗어나라”, 이 대표는 “지금 거리 두기 중인데 소비하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왼쪽 깜빡이 켜고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그러자 이 지사는 “국민 의식 수준을 무시하는 것”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반박했다.

 

세 사람은 서로 치고받으며 ‘마이웨이’를 주장하지만 국민 눈에는 똑같이 ‘무차별 돈 뿌리기’일 뿐이다. ‘정세균 표(標)’ ‘이낙연 표’ ‘이재명 표’로 맞바꾸려는 포퓰리즘 상품은 전부 국민이 갚아야 할 나랏빚이고 민간기업들에게서 갈취하는 준조세다.

 

-조선일보(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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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은 절대善, 공무원은 목표 위한 수단이란 정권에 화가 난다”

 

[김신영이 만난 사람]


2년 전 ‘적자국채 폭로’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
“기재부의 나라냐고요? 그럼, 청와대의 나라입니까”

 

2년 전 적자 국채 발행의 부당함을 폭로했던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내 폭로 이후에) 바뀐 게 없는데 내가 왜 그런 난리를 쳤나' 하는 회의가 든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창업에도 도전 중이다.

 

생각보다 몸집이 작았다. 목소리도 가늘었다. 2년 전 행정부처에 대한 청와대 외압을 격한 목소리로 폭로했던 신재민(35)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을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그는 “그땐 큰 사고 쳤지 싶다”라며 웃었다. 그는 폭로 당시 스트레스로 평소보다 15㎏이 찐 상태였다. 기재부는 그를 고발했고 그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지난해 초 책을 낸 후엔 정치나 정부에 대해 말을 아껴온 신씨는 “그렇게 일을 벌였는데 잘 살진 못해도 남들 못지않게 산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고려대 대학원(행정학 전공)에 입학했다. 창업에도 도전 중이다. 예비 창업자에게 1억원을 지원해주는 정부 프로그램엔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내년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라며 깔깔 웃는 ‘가장 유명한 사무관 신재민’은 유쾌한 청년이었지만 2년 전 폭로 사건을 이야기하자 좀 어두워졌다. “제가 사회에 끼친 득보다는 폐가 많다고 생각해요. 바뀐 게 없으니까요.”

 

◇“그 난리를 쳤지만 바뀐 게 없다”

 

후회한다는 건가요.

 

“사회에 기여를 못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았으니까요. 문제 제기를 좀 더 효율적으로 했으면 좋았겠다 싶죠. 그 정도로 난리를 쳤으면 뭔가는 나아졌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제 목소리는 그저 하나의 분쟁거리로 끝나버렸어요. 안타깝죠.”

 

왜 나아지지가 않았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 한 공무원 형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날마다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라고. 청와대에서 정한 ‘목표’를 뒷받침할 무리한 수치를 만들어내라는 지시가 시도때도없이 내려온다는 거예요. 그런 요청이 장관·국장·과장을 지나 그 누구에게도 저지당하지 않고 사무관인 본인한테까지 내려온다고 너무 괴롭다고 해요. 저는 (폭로 당시) 적자 국채 발행이 타당한지도 논하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이런 시스템, 즉 정권이 자신의 목표를 세워놓고 공무원에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만들어내라고 시키는 부당한 관행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국채 발행 관련 시시비비 가리기가 시작되고 정쟁 싸움만 커졌어요. 그때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현명하게 전달했다면 뭐라도 좋아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답답하죠.”

 

공무원에게 어떤 ‘거짓말’을 만들라고 한다는 건가요.

 

“그 형이 피해를 당할까 봐 부처를 밝히긴 조심스럽지만, 이미 공개돼 뉴스에 나오는 사례만 봐도 너무 많아요. 월성 원자력발전소 건이 대표적이죠. 정권이 ‘원전 폐쇄’라는 목표를 대놓고 정해놓았잖아요. 그러고는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에겐 이를 합리화할 수단을 내놓으라고 무리수를 두었고요. 결국 공무원이 구속까지 됐죠. 또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라고 정해버린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은 검찰이 절차를 무시하면서 출국금지를 시켰죠.(문 대통령은 김학의 건에 대해 “검경의 명운을 걸고 책임지라”고 지시했었다.) 지난해 총선 전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어떤가요? 그거 어차피 다 주겠다고, 정권은 결정해놓고 기재부를 동원한 거잖아요.”

 

재난지원금은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반대 목소리를 냈다가 결국 물러섰죠. 그 탓에 ‘홍두사미’란 별명도 얻었고요.

 

“그나마 기재부쯤 되니깐 (부정적) 의견을 냈겠죠. 기재부에서 일할 때 보면 정말 훌륭한 선배들이 많았고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도 대단했어요. 또 예전 선배들은 정치권이 밀어붙이는 얼토당토않은 일을 막았단 얘기를 무용담처럼 많이 했어요. 그런 자부심이 아직 약간은 남아있는 곳이 기재부라고 생각해요.”

 

문재인 대통령은 폭로 사건 직후 그에게 “젊은 공무원의 소신과 자부심은 필요하다”면서도 “신 전 사무관은 본인이 경험한 좁은 세계 속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정책은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고 했다. 신씨는 “대통령이 보기엔 ‘좁은 세계’일지언정, 공무원은 담당하는 그 업무에서만큼은 전문가다. 그 좁은 세계까지 자신들의 ‘목적’에 동원하는 정권은 정당할까”라고 했다. “연말에 만난 한 친구는 술 마시고 이런 말을 하더군요. ‘공무원은 정치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한 조직이 되어버렸어’라고요.”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김지호 기자

 

그는 서울대 게시판에 한 공무원이 최근 올린 글이 공무원 사이에서 많이 공유되고 있다며 보여주었다. ‘죽고 싶습니다’란 제목의 글엔 이렇게 써 있었다. ‘구조가 잘못됐습니다. 시민단체의 사적인 요구가 상부(청와대)를 통해 행정부에 지시로 내려옵니다. 국가를 위해서 일할 줄 알았는데, 시민단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소모되는 저 자신이 싫습니다.’

 

청와대가 공무원을 압박하는 것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 않습니까.

 

“예전에 그랬다 치더라도 문재인 대통령만큼은 그러면 안 되죠. 직전 정권이 부당하게 공무원을 동원해 외압을 행사했던 일을 문제 삼아서, 자기들은 그렇게는 안 하겠다고 약속하고 선출됐으니까요. 지금 정권 잡은 분들은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내걸지 않았었나요. 왜 본인들에겐 그 말을 적용하지 않죠?”

 

◇“기재부의 나라? 그럼 여긴 청와대 나라입니까”

 

떠나온 기재부를 요즘 보면 어떤가요?(그는 인터뷰하며 기재부를 언급할 때면 ‘우리 부’라고 했다.)

 

“정권이 밀어붙이는 일에 대해서 그나마 ‘안 되는데…’ 정도라도 목소리 낸 부처는 기재부, 그리고 감사원 정도밖에 없지 않았나요? 할 일을 하는 건데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의견을 내면 바로 화부터 내더라고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홍남기 부총리가 재정 문제를 언급하자 ‘무소불위 기재부의 나라냐’라고 버럭 했죠.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반대 의견을 낸 감사원장도 마찬가지에요. 감사원이 감사를 한다는 건데, 민주당은 ‘정치 감사’라고 몰아세우고요.”

 

그는 “‘우리는 선출된 절대선(善)’이라 여기는 정권에 화가 난다”고 했다.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는 견제와 균형이라고 배웠습니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그분들이 내세우는 목적이 절대적 지고지순함을 부여받고 공무원은 무조건 그 목적을 이루는 데 동원되어야 합니까. 권력을 위임받았다 해서 그 권력을 무한대로 사용하면 독재와 무엇이 다른가요.”

 

신씨와 인터뷰한 다음날 자영업자의 손실 보전을 법제화하는 문제가 정세균 총리를 통해 공론화됐다. 김용범 기재부 차관은 “해외 사례를 찾기 어렵다”라고 반대 의견을 냈다가 총리에게 “이게 기재부의 나라냐”, “개혁 저항 세력”이라는 질책을 당했다. 의견을 들으려 24일 신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기재부의 나라냐'라는 말, 갑자기 유행어처럼 쓰이네요.

 

“제가 되묻고 싶네요. 이 나라는 그럼 누구의 나라일까요. 청와대의 나라입니까?”

 

◇“잘 사는 내부고발자 모습 보여주고 싶다”

 

기재부는 당시 신씨를 ‘공무상 비밀 누설’ 및 ‘공공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기재부에서 청사 신축 업무를 담당하기도 해 구치소 시설에 대해 잘 알았던 신씨는 “이왕이면 새로 지은 동부구치소에 가야 하는데”라는 생각마저 들더라고 했다. 스트레스가 커져 극단적 시도까지 했고 이후 두 달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지난해엔 책 ‘왜 정권이 바뀌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가’를 냈다. 애초 “10개를 올리겠다”라고 예고했던 폭로 영상은 2개만 올린 상태다.

 

유튜브 영상은 왜 올리다 말았나요.

 

“아, 그게… 제가 극단적 생각을 했을 때 휴대폰 번호를 없애버리고 전화기는 버렸어요. 그 후 치료를 받고 돌아와 계정에 접속하려고 하니 휴대폰으로 이중인증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번호가 사라져 로그인을 못하게 되어버렸어요. 예전에 쓰던 번호로 최근 전화를 걸어서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어린이가 받아서는 끊어버리더라고요.”

 

2년 전 폭로 당시 -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2019년 1월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오종찬 기자

 

당장 생계는 어떻게 하게요.

 

“일단 대학원은 장학금을 받고 있어요. 그리고 한편으로 창업을 준비 중이고요. 전자책에 비디오를 결합한 이른바 ‘비디오북’ 플랫폼을 만들려고 해요. 책 쓰면서 그와 관련한 영상도 쉽게 접목할 수 있는 ‘판’을 깔고 싶어요. 일단 제가 먼저 해보려고 공무원 시험 준비 관련 콘텐츠를 올리고 동영상 강의도 하고 있어요. 월 9만9000원씩 받는 유료 서비스인데 한 달만에 매출을 500만원 가까이 올렸고 비용 빼니 300만원 정도 남았어요. ‘되는구나’ 싶어서 기뻤어요. 정부에 예비창업자 지원 신청도 했고요.”

 

담당 공무원이 ‘신재민’ 이름 보면 놀라지 않겠어요?

 

“예비 창업자에게 1억원씩 주는 프로그램인데요, 일단 지난해엔 떨어졌어요. 아는 친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 제정신이냐. 정권 바뀌기 전엔 나랏돈 타 먹을 꿈도 꾸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전 그래도 우리 공무원들이 그 정도는 아니리라고 믿고 싶어요. 게다가 심사하시는 분들은 외부 전문가들이고요. 이번엔 제가 500만원 매출을 올렸다는 점을 부각해서 재도전하려고요.”

 

정부 돈 타내려는 입장이 되니 어떻던가요.

 

“공무원 식으로 말하면 ‘현장의 고충을 이해하겠다’랄까요. 이렇게 나가는 돈 하나하나마다 선발된 사람이 얼마나 적합한지, 그리고 꼭 필요한 곳으로 돈이 흘러들어서 ‘창업’이라는 목표까지 얼마나 잘 이어지는지 평가하려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돈을 노리는 ‘지원금 헌터(사냥꾼)’까지 있다고 하더라고요. 일할 때는 전혀 몰랐는데 현장에 오니 보이네요.”

 

공무원과 창업, 극과 극을 오가는군요.

 

“일종의 내부 고발자로서 제가 잘사는 모습을 많은 분께 보여 드리고 싶어요. 많은 내부 고발자들이 그 일에만 함몰되어서 분을 못 삭이고 어렵게 지내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살도 다시 뺐는데, 또 너무 과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요즘은 다시 좀 찌웠어요. 한 친구는 ‘너 다이어트 책 쓰면 훨씬 잘 팔릴 거다'라고 하더라고요. 앞으로도 ‘보기 좋은 모습'으로 살려 합니다.”

 

-김신영 기자, 조선일보(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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