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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의 고통지수] [24평 아파트와 자가용 한 대] ....

뚝섬 2022. 11. 15. 09:12

[‘요즘 애들’의 고통지수] 

[24평 아파트와 자가용 한 대]

[“더이상 지지할수 없는 이유” 민주당에 등돌린 2030]

 

 

 

‘요즘 애들’의 고통지수

 

0원으로 일주일 살기, 냉파(냉장고 파먹기) 요리법, 무지출 데이트…. 요즘 인터넷상에는 ‘무지출 챌린지’ 성공기와 실패기가 넘쳐난다. 치솟는 물가에 생활비를 줄이려고 아예 지갑을 닫아버린 청년 자린고비들이다. 웬만하면 걸어 다니고 식사는 회사에서 해결한다. 보고 싶은 친구는 온라인으로 만난다. 회사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 치맥(치킨과 맥주)을 시키려다가도 “내 마음만 상하고 내 돈만 쓰는 일”이라며 꾹 참고 화를 다스리는 영상도 있다.

▷유독 궁상맞아서가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올해 상반기(1∼6월) 세대별 체감경제고통지수를 산출했더니, 20대가 25.1로 모든 연령대 가운데서 가장 높았다. 체감실업률과 체감물가상승률을 합산한 체감경제고통지수는 그 숫자가 커질수록 경제적으로 궁핍하다는 뜻이다. 주된 원인은 인플레이션이다. 20대 체감물가상승률은 5.2%였는데 유일하게 5.0%를 넘긴 연령대였다. 청년들의 지출 비중이 높은 음식·숙박, 교통, 식료품의 물가가 평균보다 많이 올랐다.

▷경제위기에선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체감경제고통지수는 60대(16.1)가 20대 다음으로 높았고, 모든 연령대에서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경제적인 고통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똑같이 자장면 한 그릇을 먹어도 소득이 적을수록 부담이 된다. 취업 준비 중이거나 이제 막 취업해 소득이 적은 청년들은 생활비 상승이 더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세계적으로 청년 세대에 인플레이션 고통이 집중된다는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20대가 겪는 경제난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 문제다. 20대 체감실업률은 19.9%에 달한다. 고학력자는 늘었는데 그에 맞는 일자리는 줄어들어 일자리 미스매치가 심각해서다. 노동개혁 같은 구조적인 해법이 있어야 이 문제가 해소될 것이다. 20대의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29.2%로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다. 주로 전세나 월세 보증금인데 고금리의 직격탄을 맞게 생겼다.

▷‘인턴 신분의 황은채와 나는 백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매일 아홉 시 반부터 이르면 저녁 여덟 시, 늦으면 열한 시 정도까지 일했다. … 점심과 저녁 식대가 따로 나오지 않아 식비나 출퇴근 교통비를 제외하면 남는 돈이 없었지만, 괜찮았다.’ 박상영의 소설 ‘요즘 애들’은 사회초년생인 20대에게 매몰찬 노동시장의 실상을 그렸다. 주인공은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 20대가 겪는 경제적인 고통은 결국 일자리 문제에서 비롯된다. 노동시장의 진입 장벽을 높이고 올라서는 사다리를 차버리면서 ‘요즘 애들’ 탓만 해선 안 될 일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동아일보(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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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평 아파트와 자가용 한 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뉴시스

 

남북전쟁이 막바지로 향하던 1865년 1월, 연방군의 윌리엄 T 셔먼 소장은 휘하에 해방 노예로 이루어진 부대를 통솔하고 있었다. 그는 특별 야전명령 15호를 발령했다. 해방 노예에게 1인당 40에이커의 땅을 준다는 것이었다. 노새는 공식 명령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당연하다는 듯 포상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미국은 약속을 어겼다. 셔먼이 나누어준 40에이커뿐 아니라, 전쟁 과정에서 압류된 땅 모두가 백인 농장주에게 되돌아갔다. 남부에 살던 흑인들은 ‘해방’된 신분으로 소작농이 되어 노예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의롭지 못한 역사는 다시 한번 반복됐다. 1930년대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된 연방주택국(FHA)은 집값의 10%만 있으면 나머지 90%를 빌려주는 정책을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장기주택담보대출이었다. 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을 지원하는 제대군인지원법(GI Bill)과 맞물려 미국은 순식간에 중산층의 나라로 탈바꿈했다. 단, 흑인들만 빼고. 연방주택국은 흑인들이 사는 구역을 빨간색으로 칠하고 융자를 막았다. 일명 ‘레드라이닝’이라는 농간이었다. 좋은 교외 주택가에 집을 사려고 해도 흑인이면 주택담보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100만여 흑인 참전 군인은 계층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타지도 못했다.

 

그 여파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백인 가구의 자산 중위값은 흑인 가구에 비해 9~12배 크다. 소득이 동일할 때에도 백인 가구의 자산이 흑인에 비해 두 배가량 많다.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가 본인의 영화 제작사에 ’40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땅의 역사는 어땠을까. 갑오개혁으로 노비라는 신분이 폐지됐지만 차별은 엄존했다. 가진 게 없으니 처지가 달라질 수 없었다. 근본적인 변화는 해방과 함께 찾아왔다. 이승만 정권의 토지 개혁으로 인해 소작농이 자영농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다.

 

자칭 ‘진보’ 세력 중 일부는 한국전쟁을 북한 지배층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조국 해방 전쟁’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민중의 시각에서 보자면 한국전쟁은 ‘노예 해방 전쟁’에 더욱 가깝다. 남북전쟁의 흑인들과 달리 대한민국의 소작농들은 토지 개혁으로 땅을 받았다. 그들이 목숨 걸고 싸워 나라를 지켜냈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가난에서 벗어난 풍요로운 미래를 제시했다. 남북전쟁 당시의 구호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24평 아파트와 자가용 한 대'를 약속한 것이다. 물론 모든 이가 경제 개발의 과실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 시대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그 약속은 성공적으로 지켜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탄탄한 중산층을 형성한 국가가 되었다. 중산층의 성장과 민주주의의 정착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렇게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기적을 이루어냈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이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심지어 4·7 재보궐선거가 여당의 압도적인 패배로 끝났음에도 그들은 요지부동이다. 선거 다음 날인 8일 청와대 대변인은 “부동산 부패 청산 등 국민의 절실한 요구를 실현하는 데 매진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전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8일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부동산정책의 큰 틀은 흔들림 없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정책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신념, 차라리 집념이라고 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노예제는 폐지했지만 너희가 감히 좋은 집을 사면 안 된다. 자산을 가진 중산층이 아닌 우리가 시혜적으로 내려다보며 동정할 수 있는 빈곤층이 되어라. 이런 차별과 멸시의 시선을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혈기 넘치는 20대 남성들이 분노의 투표를 한 것은 그런 면에서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노예 해방 전쟁으로 세워진 자유민들의 나라다. ’24평 아파트와 자가용 한 대'의 약속을 믿고 달려온 국민들이 기적과도 같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이 빛나는 성취를 빼앗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청년에게 내 집 마련을 허하라. 삐뚤어진 차별적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면, 내년에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조선일보(2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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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지지할수 없는 이유” 민주당에 등돌린 2030

 

# 지난해 여름 ‘영끌’로 서울 강서구에 18평짜리 구축 아파트를 구매한 K(30)는 지난해 총선 때와 달리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뽑지 않았다. 소위 ‘벼락거지’ 신세도 면했건만 무엇이 그를 돌아서게 했을까. “작년에 집 살 때 대출이 다 막혀서 자금 마련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투기 방지책이라는 여당 말을 믿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선거에서 불리해지니 부랴부랴 대출 규제를 완화한다는 원칙 없는 구태 정치에 실망했다.”

# 스스로 ‘공부는 잘해서 다행히 대기업에 입사한 흙수저’라고 소개한 L(38·여)은 “차라리 착한 척은 안 하는 국민의힘이 낫다”고 했다. ‘조국 사태’ 때도 “아무리 그래도 민주당이 낫겠지”라며 지지했지만 총선 직후로도 윤미향 추미애부터 노영민 김조원 김상조 변창흠 박주민까지 1년 내내 여권발(發) 위선이 줄을 이었다. 그럴 때마다 민주당은 사과는커녕 오히려 진영 논리를 내세웠다. L은 “‘우리 편이 아니면 적폐’라고 주장하며 진보를 참칭하는 좌파들에게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다.

# “민주당이 여당이 되자마자 태세 전환하는 모습에 오만정이 떨어졌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대학생이었던 P(29·여)는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서슬 퍼런 집권여당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치를 배웠다. 그런데 민주당은 자신들이 비판하던 보수당보다 오히려 더 퇴보했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이 청년, 여성, 이주민,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방식은 보수당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며 “권력을 잡자마자 오만하게 군림하긴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1년 전 총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다는 20, 30대 유권자들이 “이번 4·7 재·보궐선거에서는 더 이상 민주당을 차마 뽑을 수 없었다”고 말한 이유다. 민주당엔 충격의 참패로 기록될 4·7 재·보궐선거 결과는 10년 전 치러진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10년 전 주요 언론들은 당시 여당(한나라당)의 패배 이유로 일제히 20∼40대 유권자의 성난 민심을 꼽았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20∼40대의 실망과 분노가 ‘표심의 반란’으로 분출됐다”(동아일보 2011년 10월 27일자) “4년 전 ‘경제’ 지지한 젊은 층…‘그들만의 경제’에 분노, 反한나라로”(조선일보 2011년 10월 27일자)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선거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 벽이 민심 속에 자리 잡은 ‘불통’ 국정을 향한 심판론이었다”(경향신문 2011년 10월 27일자) “MB 찍었는데 좋아진 게 없었다, 여당에 배신감”(한겨레 2011년 10월 28일자) 등 당시 기사 속엔 야당에 몰표를 보냈던 유권자들의 분노와 불안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0년 전 유권자들이 경제 양극화와 주거 불안, 그리고 그를 외면했던 한나라당의 기득권적 사고에 등 돌렸듯 이번에도 민주당의 불공정과 내로남불, 그리고 그를 도리어 정당화하려 드는 도덕적 우월감에 대한 심판이 이뤄진 것이다. 유권자들은 과거를 잊은 정치에 결코 미래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겨우 4연패의 늪에서 빠져나온 국민의힘도 잊지 말아야 할 점이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 동아일보(2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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