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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지식재산권] [아스트라 ‘노쇼’] [싱가포르 방역 실패 탈출기]

뚝섬 2021. 4. 30. 06:26

[백신 지식재산권]

[아스트라 ‘노쇼’]

[싱가포르 방역 실패 탈출기]

 

 

 

백신 지식재산권

 

에이즈(AIDS) 치료제는 1990년대부터 있었지만 정작 상황이 심각했던 아프리카 국가에선 이용하기 어려웠다. 환자 1명당 연 1만 달러가 넘는 약값은 빈국 주민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비쌌다. 특허권 때문에 사람이 죽어간다는 비난이 커지자 세계무역기구(WTO)는 2001년 보건 비상상황에서 예외적으로 특허권을 일시 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의 도하선언을 채택했다. 이 합의 이후 치료제 생산이 크게 늘면서 약값이 뚝 떨어졌다. 20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 백신을 놓고 비슷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면제를 검토 중이라고 27일 밝혔다. 지난해 10월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WTO에 이를 제안했지만 그동안 선진국들이 찬성하지 않아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또 미국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000만 회분을 인도에 공급하고, 캐나다 멕시코에 총 400만 회분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방물자생산법까지 발동해 백신의 해외 유출을 막던 미 정부가 태도를 바꾼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 러시아의 파상적인 백신 외교가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약 90개국에 자국산 백신을 수출하거나 지원했고 국경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인도에도 백신 지원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도 약 70개국에 러시아산 백신을 공급했다. “중국 러시아와의 백신 외교 전쟁에서 서방국들이 졌다”(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체면을 구기게 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8일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위한 백신의 무기고가 되겠다”며 전의(戰意)를 다졌다. 미국으로선 백신 외교의 실패가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 악재가 될 수 있어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16%를 차지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공급받은 백신은 전 세계 생산량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반면 전 세계 인구의 16%인 부국들은 백신의 53%를 가져갔다. 이런 상황인데도 미국이 계속 백신을 움켜쥐고 있다가는 비난의 화살을 집중적으로 맞게 될 공산이 크다.

 

▷선진국들의 백신 자국 우선주의에 대해 많은 지적이 있었지만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자국민을 먼저 챙기는 것을 비판할 수만은 없다. 국민을 보호하는 것보다 중요한 정부의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더라도 언제든 다른 팬데믹이 닥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외교적 해법, 지재권 면제 등에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건, 안보 등 국가·국민의 존망과 직결되는 분야일수록 자강(自强)의 토대 위에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동아일보(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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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라 ‘노쇼’

 

경찰·소방 공무원 등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된 26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 내과에서 의료진이 사회 필수 인력에게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사진=동작구 제공) /뉴시스

 

29일 오후 서울 J병원 접종센터에 전화해 보니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지금 와도) 예방접종 받을 수 없습니다”고 했다. 담당자는 “제가 오늘 이런 전화만 100통 넘게 받았다. 다른 업무를 할 수 없을 지경”이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방역 당국이 전날 “접종을 예약했다가 무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백신 폐기량을 줄이기 위해 현장에서 즉석 등록해 접종받도록 하고 있다”고 밝힌 이후 벌어지는 일이다.

 

▶방역 당국은 28일 브리핑에서 “다른 백신들의 (하반기) 공급이 꽤 늘어날 것이어서 현재 접종하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올까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백신이 턱없이 부족한데 그나마 대부분이 AZ다. 하지만 혈전증 부작용 우려가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기피 현상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AZ 접종 예약을 취소하거나 예약 후 오지 않는 ‘노쇼(no-show)’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반기에 화이자·모더나 등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덜한 백신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AZ 백신 기피를 부추기고 있다.

 

▶방역 당국은 연일 당근을 제시하며 접종을 유도하고 있다. 예방접종을 마친 사람은 다음 달 5일부터 해외에서 귀국하거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을 했더라도 검사 결과 음성이고 증상이 없으면 자가 격리를 면제받는다. 2주 자가 격리를 하지 않으니 해외여행도 생각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또 예방접종을 마친 경우 요양병원이나 시설에서 가족을 면회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여기에다 노쇼 등으로 남는 백신은 현장에서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접종할 수 있게 했다. AZ 백신은 1병을 개봉하면 10~12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데 개봉하면 6시간 이내에 사용해야 한다. 현재 백신을 접종하는 위탁의료기관이 2000여개인데 5월 말까지 1만4000여개로 늘릴 예정이다. 각 의료기관에서 1~2명의 예약자만 ‘노쇼’하더라도 산술적으로 1만명 이상에게 맞힐 백신을 폐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걸 현장에 있는 30세 이상 누구나에게나 접종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쪽에서는 백신을 기피하는 현상이, 다른 한쪽에서는 “순서가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백신 맞으러 가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언제 어떤 백신을 맞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65세 미만에게는 솔깃한 얘기일 수 있다. 일부 병원이나 보건소는 아직 이런 방침을 정확히 몰라 허둥대고 있다. 백신 부족으로 곳곳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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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방역 실패 탈출기

 

오는 8월 싱가포르에서 세계경제포럼(WEF·World Economic Forum)이 열린다. 매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려 ‘다보스 포럼’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 회의가 이번엔 장소를 옮겨 싱가포르에서 개최되는 것이다. WEF 측은 지난해 12월 “코로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싱가포르가 회의 개최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6월엔 작년 취소됐던 ‘샹그릴라 대화’도 열릴 전망이다. 미국과 한국·중국·일본 등 아·태 지역 주요국 안보 수장들이 모여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싱가포르의 잇단 국제회의 개최는 이곳이 세계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한 결과”라고 전했다.

 

싱가포르는 초기 코로나 팬데믹 시점에선 대표적인 ‘방역 실패국’ 중 하나였다. 인구는 580만명으로 우리나라의 10분의 1 정도인데, 신규 확진자가 하루 1000명 넘게 쏟아졌다. 그러던 나라가 작년 여름을 거치면서 신규 확진자가 거의 ‘0(제로)’ 수준으로 줄었다. 요즘에도 10~2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비결은 ‘속도’와 ‘결단력’이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4월 초 미얀마·방글라데시 외국인 노동자 숙소에서 집단감염이 시작되자 바로 국경을 통제하고 전 국민의 이동을 제한했다. 일주일 뒤엔 공공장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6월 말부턴 ‘전 국민 코로나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작년 12월이 되자 인구의 90%에 해당하는 523만명이 코로나 검사를 마쳤다. 이때쯤 아시아 최초로 코로나 백신을 들여왔다. 현재 백신 접종률 23.3%로 아시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싱가포르 사례는 ‘방역 모범국’의 전범(典範)을 보여준다. 핵심은 ‘위기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느냐’, 이른바 ‘회복탄력성(resilience·역경을 빠르게 헤쳐나오는 능력)’이다. 대표적인 방역 선진국 대만과 뉴질랜드는 초기부터 탁월한 관리 능력을 보이며 ‘청정 국가’의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초기에 수많은 확진자가 쏟아진 이후 그 경험을 바탕으로 빠른 시간 안에 세계 최고 수준의 방역 능력을 보여줬다.

 

우리도 작년 봄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이후 확진자 수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적어지자 방역 모범국 운운하며 미리 샴페인을 터뜨렸다. 신규 확진자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 작년 여름, 정부는 거리 두기를 완화하고 숙박·여행·외식 할인권까지 지급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에는 하루 확진자가 1000명대로 치솟았다. 이 상태에서도 정부의 유일한 카드는 ‘거리 두기 연장’뿐이었다. 올해 2월 말에야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세계에서 105번째였다. 현재 백신 접종률은 5%대, 일일 확진자 수는 여전히 700명대에 이른다. 위기에서 배우는 학습 능력이 부족하면 ‘만년 열등생'을 면할 수 없다.

 

-안영 기자, 조선일보(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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