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健康-疾患]

[우리는 한 달에 신용카드 넉장 분량 플라스틱을 먹는다]

뚝섬 2021. 5. 7. 06:40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갑각류·천일염 등 통해 사람 몸속으로 들어와
배 속에 플라스틱 가득 차 죽은 새, 먼 세상 일 아냐
재활용 가능한 배달용 표준 용기 도입 고려할 만
‘한 번 쓰고 버린다’는 개념 버려야 살 수 있다
 

 

2008년 픽사는 ‘월-E’라는 SF 애니메이션 영화를 개봉했다. 이 영화는 인류가 쓰고 버린 쓰레기가 넘쳐나 살 수 없는 환경이 된 지구를 떠났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당시 영화를 보며 아무리 쓰레기가 많아도 지구 전체를 덮거나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난지도’의 경험 때문이다. 서울시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에는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었지만 자연은 그 위에 숲을 조성할 정도로 회복력이 강했고, 서울 전체 면적에 비해 난지도의 면적은 작았다. 우리가 아무리 쓰레기를 만들어도 지구의 아주 작은 부분만 덮을 뿐이고, 그나마도 자연이 회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쓰레기 종량제와 각종 재활용도 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전에 본 ‘플라스틱 바다’와 ‘씨스피라시’라는 다큐멘터리 두 편은 그런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꿨다.

 

/일러스트=이철원

 

바다거북 코에 박힌 플라스틱 빨대

 

해양 다큐를 찍던 ‘크레이그 리슨’은 촬영 중 플라스틱 백을 먹고 죽는 고래의 모습을 보게 되고 진짜 문제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후 8년간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다큐를 촬영했다. 나는 뉴스에서 남한 면적 15배 크기의 플라스틱 섬이 태평양에 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와 상관없는 먼 곳의 문제라 여겼기 때문이다. 거북이 코에 박힌 플라스틱 빨대 영상을 보았을 때는 종이 빨대를 사용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다큐는 모든 플라스틱은 작은 미세한 플라스틱으로 분해되어 플라스틱과 먹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해양 생명체들이 먹게 된다는 문제를 보여준다. 손톱보다 작은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한 새들이 플라스틱을 먹고 배 속에 플라스틱이 가득 찬 상태로 죽은 모습은 충격 그 자체다. 더 작게 쪼개진 미세 플라스틱은 해양 플랑크톤이 먹고 이는 먹이사슬을 거쳐 모든 해양 생태계를 오염하고 있다. 이때 플라스틱은 유해 환경 물질을 흡착한 상태고, 이를 먹은 해양 생물은 모두 오염된다고 연구 결과는 보여준다. 일회용 페트병, 갑각류, 천일염 등으로 우리는 현재 일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 정도의 플라스틱을 먹고 있다. 한 달이면 신용카드 4장을 먹는 셈이다.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새는 가까운 미래의 우리 모습이다. 대량으로 포획해서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기업형 수산업도 심각한 문제다. 그들은 어망 등으로 바다에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버릴 뿐 아니라, 그물로 포획하는 과정에서 돌고래와 상어가 죽는다. 고래의 배설물은 플랑크톤의 먹이가 된다. 고래가 죽으면 플랑크톤이 사라지고 바다는 죽는다.

 

플라스틱이 만드는 죽음의 먹이사슬

 

플라스틱이 가장 많이 소비되는 장소는 도시다. 2000년도 이전에 생산된 플라스틱의 총량보다 2000년 이후에 생산된 플라스틱의 총량이 더 많다. 특히 코로나로 배달 음식 소비가 증가했고 이 과정에서 일회용 용기 사용이 급증했다. 지금까지 ‘환경 문제=탄소 배출’로만 생각해왔다. 전기차를 사용하고 석탄 발전소를 없애면 환경은 회복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쓰레기 문제는 전혀 다른 종류의 환경문제다. 그중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을 통한 생태계 파괴는 심각한 상태다. 유한한 공간에 쓰레기를 버리면 언젠가는 돌고 돌아 내 몸으로 들어온다. 탄소 배출이 나와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가 내가 들이마시는 공기 속 미세 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면서 그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플라스틱으로 오염된 생선을 먹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그 문제가 내 몸 안으로 들어왔음을 느낀다.

 

볼리비아 서부 오루로 인근에 있는 우루우루 호수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자원봉사자 등이 호수를 가득 메운 플라스틱 등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우루우루 호수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낚시를 즐기던 관광지였지만, 페트병 등 생활 쓰레기로 뒤덮여 '플라스틱 바다'로 변해버렸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렇다면 플라스틱 소비, 그중에서도 심각한 배달 음식의 플라스틱 용기는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런치 박스’라는 인도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독특한 인도의 생활 풍속을 보여준다. 인도에서는 남편이 출근하면 부인이 오전에 점심을 요리하고 도시락 통에 담아놓으면 배달부가 픽업해서 남편의 일터로 보내주고 남편은 식사를 마치고 퇴근하면서 빈 도시락 통을 가지고 집으로 온다. 도시락 통은 계속 사용되어서 쓰레기는 생산되지 않는다. 비슷한 방식을 우리의 배달 문화에 접목해보자.

 

지구는 우주 속의 섬이다

 

어느 식당에서든 사용 가능한 배달용 표준 용기를 만들자. A식당에 1200원을 더 주고 표준 용기에 음식을 담아달라고 주문한다. 음식을 먹고 표준 용기를 문 밖에 두면, 며칠 후 B식당에 음식을 주문할 때 배달부는 B식당의 음식을 배달하면서 A식당이 사용한 표준 용기를 픽업하고 소비자에게 1000원을 돌려준다. 배달부는 나중에 C식당의 음식을 픽업하면서 A식당의 표준 용기를 주고 1200원을 받는다. 모든 거래는 스마트폰 앱으로 가능하다. 이런 소비 형태가 자리 잡으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국가 차원에서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의무화했던 경험이 있다. 배달 음식 표준 용기는 처음에는 불편하겠지만 반드시 실행해야 할 일이다.

 

다큐 말미에 쓰레기가 넘쳐서 살 수 없는 섬의 모습이 나온다. 지구는 우주 속의 섬이다. 인간은 여기서만 살 수 있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렇다. 크레이그 리슨 감독은 인터뷰에서 “모든 ‘일회용’을 없애라”고 말한다. 한 번만 쓰고 버린다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야 우리가 살 수 있다.

 

-유현준 교수·건축가, 조선일보(2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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