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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조털불래유 vs 한강새똥돼주길] [ … 가짜 진보의 황혼]

뚝섬 2026. 6. 12. 06:42

[문조털불래유 vs 한강새똥돼주길]

[우상만 따르고, 떼지어 약자를 괴롭힌다… 가짜 진보의 황혼]

 

 

 

문조털불래유 vs 한강새똥돼주길

 

민주당은 2003년 집권 후 극심한 내분에 시달렸다. 친노 중심 신주류는 신당 창당을 주장했고, 호남 구주류는 당 사수를 외쳤다. 2003년 9월 4일, 민주당 당무위에선 구주류 여성이 신주류 여성 머리채를 잡아당겼고, 이때 러닝셔츠 차림의 한 남성 당원이 회의장을 활보했다. 이날 이후 양측은 완전히 결별했고 2003년 11월 친노 열린우리당이 창당됐다.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했지만, 또 자기들끼리 싸웠다. 강경파들은 온건파를 향해 “난닝구는 민주당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난닝구’는 러닝셔츠 차림 남성을 빗댄 것인데 호남 구주류를 비하하는 말로 사용됐다. 온건파들도 “우리가 난닝구면 너희는 빽바지”라고 맞섰다. 유시민씨가 국회 첫 등원 때 정장 대신 흰바지를 입고 온 것을 빗댄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2007년 분당 때까지 ‘난닝구 대 빽바지’ 싸움으로 날을 샜다.

 

▶‘난닝구 빽바지’ 이전에도 정당에는 계파 갈등이 늘 있었다. 그래도 신파, 구파, 신주류, 구주류, 동교동, 상도동 이렇게 점잖게 불렀다. 사람 이름을 쓴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도 등장했다. 보수 정당도 계파 갈등이 심했지만 이름 짓는 네이밍 기술은 민주당에 상대도 안 됐다. 친이, 친박, 친윤, 비윤 이런 정도다.

 

하지만 운동권들은 학생 때부터 줄임말로 노선 투쟁을 했다. 전대협, 전노협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80년대 사구체(사회구성체) 논쟁 때 NL(민족해방)은 식민지반봉건사회론(식반론)을 PD(민중해방)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신식국독자론)을 주장했다. 이 논쟁의 대가가 조희연 전 서울교육감이다. 이런 사람이 서울 학생 교육을 책임졌다.

 

운동권이 민주당을 장악한 이후 사람과 사건에 이름 붙여 공격하는 기술은 더 늘었다. 그 기술이 계파간 상호 공격에 그대로 쓰이고 있다. 겉과 속이 다르다고 ‘수박’, 개혁의 딸이라고 ‘개딸’, 머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고 ‘대깨문’이다. 지방선거 이후 정청래 대표 측과 친명계의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양측 지지자들은 친청계를 ‘문조털불래유’로, 친명계를 ‘한강새똥돼주길’로 부르며 공격한다. 문재인, 조국, 김어준(털), 매불쇼, 정청래, 유시민이 ‘문조털불래유’이고 한준호, 강득구, 김민석, 이동형(친명 유튜버), 김용민(나꼼수), 이언주, 송영길이 ‘한강새똥돼주길’이라고 한다. 이 중 ‘새똥돼’는 김민석, 이동형, 김용민의 멸칭이다. 20년 전 ‘난닝구 빽바지’는 낭만 시대였던 것 같다.

 

-정우상 논설위원, 조선일보(2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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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만 따르고, 떼지어 약자를 괴롭힌다… 가짜 진보의 황혼

 

1989년 6월 30일 전대협 주체로 한양대에서 열린 ‘모의평양축전’ 행사장에서 참가한 학생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진압경찰에 맞서고 있다. /조선일보 DB

 

공산 체코의 청과물 가게 관리인은 양파와 당근을 진열해 놓고, 창문에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슬로건을 걸어놓았다. 그는 세계 혁명에 그토록 열정적이었는가? 사실 그 포스터는 양파, 당근과 함께 중앙사업부에서 배달되었고, 남들처럼 그것을 게시했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나는 여기 살고 있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기대하는 바를 하고 있고, 그러므로 내게는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는 일종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1978년 체코의 극작가 하벨(Vaclav Havel)의 ‘힘없는 자들의 힘’(The Power of the Powerless)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공산주의는 한때 인간 해방의 복음이었다. 하지만 하벨이 목격한 공산주의는 진실을 은폐하고 인간의 굴종을 요구하는 체제 이데올로기였을 따름이다. 청과물 가게 관리인은 해방은커녕 일상화된 감시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처럼 고결한 이상이 어떻게 가장 조악한 거짓말, 사나운 폭력으로 전락했을까지금 한국 진보의 모습에도 똑같은 의문이 생긴다.

 

보수가 산업화를 성취했다면, 진보는 민주화를 이끌었다. 두 날개를 가지고, 대한민국은 지난 70년간 기적의 역사를 써왔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믿어왔다. 하지만 그들의 민주주의가 갑자기 낯설어졌다. 문재인 정부 이래 헌법과 법치주의, 삼권분립, 언론의 자유 등이 너덜너덜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좀 심한 일탈로 생각했다. 그러나 윤석열 사태에서 ‘민주적 통제’란 명분하에 ‘민주적 절차’를 사정없이 유린하는 것을 보고 근본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정당성만 있으면 절차는 아무래도 괜찮은가. 레닌도 그렇게 생각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 직후 볼셰비키가 소수로 떨어지자 제헌의회를 해산했다.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도 제거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라는 신념에 의해 정당화했다. 그리하여 솔제니친이 ‘수용수군도’로 부른 적색 전체주의가 탄생했다.

 

알고 보면, 586 운동권 세력은 태생이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그들은 레닌주의, 김일성주의에 푹 젖어 젊은 시절을 보냈다. 1980년대부터 마르크스주의가 학생운동을 장악했다. 이른바 PD계다1986년부터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NL계가 운동권을 석권했다정의당은 PD계, 더불어민주당에는 NL계 출신이 많다. 젊을 때 그들은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주아민주주의로 경멸했다. 껍데기, 즉 ‘절차’만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나마 PD는 지적으로 치열했고 논쟁적이었다. NL은 처음부터 김정일의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바이블처럼 외웠고, 북한 해주에서 발신되는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의 지시에 따랐다. 이견은 불경이었으며 수령님과 의장님에 대한 절대 복종을 강조했다. 상명하복은 군대보다 엄격했다. 전체주의이자 일종의 사이비 종교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깊숙이 경험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잘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안다. 조국 사태가 결정적이었다. 그의 진정한 위업은 가짜 진보의 신화를 깨고 진실을 알렸다는 것이다윤미향·박원순·남인순·김상조 등의 행태가 드러나면서, 그들의 속살이 드러났다아름다운 외피의 한 꺼풀 밑에는 탐욕의 거미줄이 무성했고, 위선의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영화 ‘태백산맥’에서 “당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던 골수 공산주의자 염상진은 고뇌에 차 이렇게 독백했다. 1945년에 이미 칼 포퍼는 공산주의를 ‘열린 사회의 적’으로 비판했다. 그 유령이 1980년대 한국 운동권을 장악했다. 세계사의 흐름에서 한 세대는 뒤졌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공산주의는 인류의 참극임이 명백해졌다. 일부는 회개했고 전향했다. 하지만 1990년대 한국 대학가는 반미 자주를 외치며 10만명이 모여 축제를 벌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성찰할 귀중한 기회가 지나갔다. 다른 대한민국에서는 서울올림픽이 열리고, 서태지의 ‘난 알아요’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난 뒤, NL계 운동권이 대거 제도권에 진입했다. 과거는 민주화운동으로 포장되었다. 그렇게 20년 더 생존했다.

 

1980년대 학생운동과 지금의 가짜 진보, 그리고 팬덤 현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생각하지 않음’(thoughtlessness)이다. 해나 아렌트는 그것을 20세기 전체주의의 기원이라고 보았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자유에서의 도피’(escape from freedom)이기도 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대신 우상을 따르고, 떼 지어 약자를 괴롭힌다. 그걸 고상하게 민주적 통제라고 한다. 한국의 진보는 지금 황혼이다40년 가짜 진보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조선일보(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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