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반기문' 없는 한국 외교]
[단물 빨던 '친박'은 어디로 갔나?]
'제2의 반기문' 없는 한국 외교

미국 뉴욕 유엔본부 3층 기자실 복도에 걸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사진. /윤주헌 특파원
이달 24일부터 외교부 등의 공동 주최로 열리는 ‘제주 포럼’에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 5명이 참석한다. 유엔 수장을 노리는 5명이 나란히 제주도까지 날아가는 건 이유가 있다. 하나같이 환영사를 할 예정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면담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반 전 총장에 대해 국제사회가 가진 이미지는 한국과 다르다. 한국에서는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한 직업 외교관이라는 인식이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193개 회원국이 치열한 다자 외교를 벌이는 유엔에서 반 전 총장은 ‘살아 있는 유일한 전직 사무총장’이다. 사무총장 후보 입장에서는 전직 사무총장의 지지 선언을 끌어내고 싶은 욕심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원로 정치인들에게 우르르 몰려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후보 중 한 명인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반 전 총장을 만났다며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린 것은 발 빠른 행보다.
국제 무대에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글로벌 수퍼 파워가 존재하지만, 다자 외교에서는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화롭게 맞춰가는 종합 예술이 효과를 발휘한다. 유엔 정규 예산 분담금 규모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4위인 독일이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국 선거에서 포르투갈과 오스트리아에 밀려 탈락한 사례를 보면 외교가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직업 외교관의 네트워킹을 통한 인맥, 개인기는 한국과 같은 중견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안타깝지만 한국은 반 전 총장 때 맞았던 외교 도약기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듯하다. 예컨대 유엔에서는 반 전 총장 때 소위 고위직으로 불리는 사무차장보 이상이 2명 있었지만, 최근 10년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반 전 총장 때 심은 씨앗을 잘 가꿔 지금쯤 열매를 맺어야 하지만 현상 유지도 못 했다. 일본은 한국처럼 안보리 이사국도 아니지만 사무차장급에 2명이 포진해 있다. 국내에서는 고위급 외교관들이 정권에 따라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고, ‘자주파’나 ‘동맹파’ 같은 철 지난 이념에 밀려 ‘실력파’가 설 자리를 찾기 어렵다.
반 전 총장같이 국제 사회에 영향력을 가진 최고위급이 다시 나오기는 당분간 어렵다. 그럴수록 정치나 이념이 아닌 국익을 푯대로 삼아 현장을 누비는 외교 인력을 길러내고 전폭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어느 공무원 조직에나 정치 외풍이 분다는 인식은 ‘사자 우리’ 같은 국제 사회에 던져진 한국이 처한 현실을 볼 때 한가하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다자 외교에 기댈 수밖에 없는 한국은 실력 있는 외교 자원 양성을 통해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반기문 사무총장’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은 선택 사항이 될 수 없다.
-뉴욕=윤주헌 특파원, 조선일보(2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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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물 빨던 '친박'은 어디로 갔나?
배신의 지옥도, 끝판왕은 과연 누구일까?
노무현 정부 말년에 유행한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다"
지금은 "모든 게 최순실 때문"
최순실 팔아 살아보겠다는 배신의 끝판왕들이 나라를 더 수렁으로 밀어넣어
최순실 사건으로 대통령은 식물이 되어 가고 있다. 노무현 사람인 김병준을 총리로 그리고 김대중 사람인 한광옥을 비서실장으로 지명했지만, 여소야대 국회를 지배하는 야당이 반대해 국정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막상 야당이 요구한 거국 중립내각을 수용해서 총리가 장관을 추천하는 실권을 행사한다 해도 야당은 입장을 바꾸어 반대할 뿐이다.
문제는 '물타기' 혹은 '코스프레' 인사라는 정치적 반대의 벽에 튕겨나가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 낼 인물이 과연 있는가 하는 점이다. 김병준·한광옥 두 사람은 이미 노무현과 김대중으로부터 보따리 싼 사람들이라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총리 지명자의 "대통령도 검찰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발언에서부터 "국정교과서 반대" 혹은 "사드 배치 반대"가 소신인 사실까지도 보따리에 없다가 이번에 새로 들어간 항목인가? 이래도 저래도 국정은 표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군말 없이 야당이 합의해 줄 인물이라면 아마도 사사건건 대통령에 반대하며 막말을 쏟아낸 정청래 전 의원 정도겠다. 그래서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도 취소하고, 통진당 해산도 무효로 만들고, 개성공단도 재가동하고, 전교조의 법외 노조 지위도 다시 원상 복귀시키자고? 핵무기가 노리는 나라를 그렇게 망가뜨리자고? 나라가 더 이상 망가지는 걸 원치 않는다면 여소야대 국회의 다수당인 두 야당도 이제는 이성적 판단으로 돌아와야 한다.
대통령으로선 이제 더 이상 내려놓을 보따리가 없다. 헌정 중단이라는 비극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을 만들어 지원하려 했던 '문화 융성'은 물론이고, 두 재단에 돈을 댄 재계가 관심을 기울이던 '창조경제'도 물 건너갔다. 여대야소에서도 못했던 노동개혁을 여소야대 국회를 상대로 이룰 수는 더욱 없다. 야당은 물론 여당의 다수가 원하던 개헌마저도 지금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렸다. 어제는 스스로 검찰은 물론 특검 조사도 받겠다며 다시 한 번 국민 앞에 머리 숙였다.
썰물처럼 대통령 주변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대통령은 국정의 주도권은커녕 배신의 스펙트럼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박근혜 대통령 팔아 국회의원, 장관, 수석 등 한 자리씩 꿰차고 단물 빨던 인물들의 배신이 비록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순실 사건 터지고 나서의 배신은 더욱 꼴불견이다. 당선인 대변인 그리고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화려한 경력을 밟은 조윤선 문화부 장관이 국회에서 "정무수석 하는 11개월 동안 대통령 독대를 한 번도 못했다"는 발언을 이 시점에서 꼭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친박'의 대명사인 서청원 의원 그리고 대통령을 누님이라 부르던 윤상현 의원은 왜 이 시점에서 존재감이 전혀 없는가? 이명박 정부 때부터 박근혜 지분으로 장관도 하고 지난 4월 선거까지만 해도 '친박' 공천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최경환 의원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대구·경북에서 박근혜 대통령 팔아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하나같이 사드 배치에 반대할 때부터 국민은 이미 쪽박이 새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새누리당이 '친박' 대 '비박'으로 반 토막 나는 일이 '친박' 입장에선 감지덕지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이 탈당하는 순간 '친박'은 물안개 사라지듯 없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시체를 보고 달려드는 하이에나 떼처럼 식물이 된 대통령을 향해 너도나도 물고 뜯고 할퀼 것이 분명하다. 이정현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며 경쟁적으로 당직을 내려놓은 얄팍한 모습에서 이미 새누리당 운명이 다했음을 직감한다.
노무현 정부 말년에 '친노'가 폐족(廢族)이 된 시절이 있었다. "이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다"는 말이 유행했다. 나라가 엉망진창이 된 까닭은 물론이고, 학생이 성적을 잘못 받아도, 총각이 장가를 못 가도, 투자한 주식이 폭락해도 무엇이든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란 냉소적 유머가 판을 쳤다. 지금 꼭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모든 게 최순실 때문이라고." 아마도 '친박'의 폐족은 지금까지 철석같이 믿어온 반기문의 역할로 정점을 맞이할 공산이 크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와 폐족이 된 '친박'의 구세주가 된다고? 꿈도 야무지다. 우선 '친박'이 그때까지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반 총장이 그리 간다는 보장도 없다. 반 총장 또한 "대통령 지시 따라 모금했다"는 안종범 수석의 뒤를 따라가지 않으리란 보장은 더더욱 없다. 배신의 지옥도, 끝판왕은 과연 누구일까? 최순실 팔아 살아보겠다는 비겁한 인간들이 나라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다.
-류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 조선일보(1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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