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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사과’ 日 고노 전 장관 별세] .... [“아베 日총리가 저지른.. ”]

뚝섬 2026. 6. 12. 06:41

[‘위안부 사과’ 日 고노 전 장관 별세] 

[어항 속 日 총리 관저 vs 구중심처 청와대] 

[“아베 日총리가 저지른 통탄할 실수”]

 

 

 

‘위안부 사과’ 日 고노 전 장관 별세

 

8일 세상을 떠난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하원) 의장은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와 함께 ‘일본의 양심’으로 불렸던 정치인이다. 그는 일본에 가장 중요한 나라로 한국과 중국을 꼽으면서 “과거사를 정확히 알고 반성해야 이웃과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가 관방장관이던 1993년 발표한 ‘고노 담화’는 그런 신념의 산물이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피해 증언으로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 현안이 된 후에도 일본 정부는 한동안 “민간업자가 한 일”이라며 책임을 부인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그는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와 상의해 국내외 자료를 취합했고, 위안부 피해자 16명의 증언을 들었다. 생생하고 참혹한 피해 진술을 확인한 그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군의 관여를 처음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하고 고개 숙여 사죄했다.

고노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1995년), 김대중-오부치 선언(1998년)으로 이어지며 한일 간 화해와 협력의 흐름을 궤도에 올렸다. 하지만 우익 세력은 이 담화가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며 끊임없이 공격했다. 우익단체 회원이 흉기를 소지한 채 그의 집 앞에서 자해 소동을 벌인 적도 있었다. “정부 입장을 대표로 발표했을 뿐”이라며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고노 전 의장은 그렇게 하는 대신 기회가 날 때마다 언론에 나와 담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정계 은퇴 후에도 자민당의 온건파 원로로서 야스쿠니신사 참배, 평화헌법 개정 같은 우경화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자민당 중진 의원의 망언이 나왔을 때는 “정치가로서 실격이다. 공부 좀 하라”며 직접 나서 꾸짖었다. 고노 담화를 눈엣가시로 여겼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14년 “담화 작성 경위를 검증하겠다”고 나섰을 때도 “위안부 동원에는 분명히 강제성이 있었다”고 맞섰다. 결국 아베 정부는 고노 담화를 폐기하지 못했고,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이 담화를 계승하고 있다.

▷그는 한국 정계 거물들과도 가까웠는데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였다. 퇴임을 앞둔 김 전 대통령을 위로하기 위해 수술 직후 의사 몰래 병원을 빠져나가 서울행 비행기를 탔을 정도였다. 김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존경하는 선배이자 친구를 잃었다”며 애통해했다.

▷그의 이름 ‘요헤이(洋平)’는 ‘평화로운 태평양’을 기원하면서 부친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고노 전 의장은 그 이름대로 일본이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주변국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찾으려 했다. ‘강한 일본’을 내세우는 다카이치 내각이 방위비 증액과 개헌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그의 별세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장원재 논설위원, 동아일보(2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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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 속 日 총리 관저 vs 구중심처 청와대

 

日, 파벌 밀약으로 총리 선출…官邸 운영은 투명하고 개방적
총리는 국회 올해 160시간 출석… 文, 靑의 폐쇄적 안락함에 빠졌나

 

“막(幕)이 오르자 연극이 끝나버렸다.” 아베 총리의 사임 발표 직후 스가 관방장관이 후임으로 사실상 결정된 데 대한 일본 언론의 평가다. 자민당을 지배하는 호소다파 등 5 파벌의 영수들은 밀실 회합에서 일찌감치 스가를 차기 총리로 결정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평처럼 전광석화 같았다.

 

지난 10일간 나가타초(永田町·일본 정치 중심지)에서 벌어진 일은 이곳의 정치가 자민당이 출범하던 1955년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줬다. 파벌주의, 밀실 정치는 여전했다. 차기 총리 결정 과정에서 국민 여론과 민주주의는 중요하지 않았다. 14일 자민당 총재 선거, 16일 국회의 총리 선출은 요식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석에서 만나는 일본의 지식인 상당수는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 정치에서 배울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베의 ‘수출 규제’ 만행(蠻行)과는 별도로 이번 기회에 청와대 역할을 하는 총리 관저(官邸)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 정치의 핵(核)인 관저는 청와대와는 달리 기자들이 총리를 근접 관찰하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 총리와 기자들은 미 백악관처럼 같은 건물을 사용하나 더 개방적이다. 총리는 5층에서, 기자들은 1층에서 일한다. 각 언론사 기자들은 3층 로비에 자유롭게 올라가 갈 수 있다. 이곳에서 밖을 오가는 총리에게 질문하고 방문객을 주시한다. 일본 신문이 매일 누가 총리를 만나는지 파악해 보도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베의 사임 원인이 된 건강 이상을 가장 먼저 눈치 챈 이들은 그를 매일 지켜보는 ‘부라사가리(매달리기라는 뜻의 일본어)’ 기자들이었다. 한 방송사는 로비에서 아베의 걸음이 4월 평균 18.24초에서 8월 20.83초로 2초 이상 느려졌다고 보도했다. 다른 언론사는 그가 엘리베이터에 타기 위해 방향을 틀 때 벽에 왼손을 기대는 것이 건강 이상 징조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감시’받던 아베는 결국 궤양성 대장염 재발을 밝히고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스템은 우리도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부터 가능할 뻔했다. 문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파기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도쿄에 근무했던 전직 외교관의 양국 비교는 정곡을 찌른다. “일본 관저 출입기자는 매일 총리를 못 보면 땡땡이쳤거나 총리가 외유 중이다. 한국 청와대 출입기자는 특별한 일 없으면 대통령 볼 일이 없다.”

 

아베는 올 들어 퇴임 발표를 포함, 총 13회의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약 20일에 한 번 꼴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이후 한 차례도 회견을 갖지 않았다. 8일 야당 원내 대표의 “전임 대통령을 불통(不通)으로 몰아붙이더니 지금까지 기자회견 몇 번이나 하셨느냐”는 질타는 문 대통령이 자초(自招)한 것이었다.

 

아베가 올 초부터 지난 5월까지 정기국회에 출석해 답변한 시간도 160시간에 이른다. 스가 ‘차기 총리’가 “일본 총리가 국회에 나가는 시간이 전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많다”고 불평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정기 국회가 열릴 때는 아베가 야당 의원과 1대1 토론하는 모습이 지겨울 정도로 TV에 나왔다. 야당 의원이 그에게 “도미는 머리부터 썩는다”며 모욕을 주는 장면도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박근혜를 비롯한 한국 대통령들의 비극(悲劇)은 모두 청와대의 폐쇄성과 불투명성에서 비롯됐다. ‘촛불 대통령’은 다를 것이라고 장담했으나 비공개, 소통 단절, 비밀주의 검은 장막은 오히려 더 두꺼워졌다. 청와대 운영에서 온 국민이 싫어하는 아베보다도 못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문 대통령도 전임자처럼 외부와 완벽 차단된 청와대의 안락함에 빠져버린 것이 아닌가. 임기 말로 가면서 ‘남자 박근혜’로 불리는 그가 전임자의 말로(末路)를 따라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하원 도쿄 특파원, 조선일보(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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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日총리가 저지른 통탄할 실수”

 

“아베가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를 망쳐버렸다.” 미국 외교전문지 ‘Foreign Policy’가 “퇴임하는 일본 총리의 극단적 국수주의(outgoing prime minister’s ultranationalism)가 한일 관계를 끊어버렸다”며 지적한 표현이다. 다음은 간추린 내용.

 

"아베에 대한 전반적 평가(overall assessment)는 ‘실용적 현실주의자(pragmatic realist)’다. 그러나 이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간과한(miss one critical point) 것이다. 아베는 한국과 관계를 현실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은 이유로 시궁창에 빠트려버렸다(drive it into a ditch for reasons neither realistic nor pragmatic).

 

한일 관계는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성노예(sex slave), 이른바 위안부를 인정·사죄하면서(recognize and apologize to the so-called comfort women) 대중문화 개방 단계까지 이어졌다. 2010년엔 간 나오토 총리가 한국 병합 100주년(centennial of the annexation) 담화를 통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런데 아베는 그 정반대로 했다(do the opposite). 그는 식민지 유산에 수정주의적 견해(revisionist views on colonial legacy)를 갖고 있는 우익 국수주의자(right-wing nationalist)다. 그가 가장 존경한다는 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후 A급 전범 혐의로 수감됐던(be imprisoned on the charges of being a Class A war criminal) 인물이다.

 

아베는 서양 열강에서 아시아를 해방시킨 일본은 칭송받아(be lauded for it) 마땅하다며, 전범재판소(war crimes tribunal)는 불법이고, ‘난징의 강간’은 과장 또는 조작됐다고(be exaggerated or fabricated) 주장한다.

 

그는 2007년 1차 총리 취임 후 고노 담화를 공개 부인하고 나섰고, 2012년엔 재취임과 동시에(upon taking office again) 간 나오토 담화를 무효화한 뒤 보란듯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는 비공개 추가 협약을 통해(in an undisclosed side deal) ‘성노예’ 표현 사용 금지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을 강요하기도 했다. “돈 줄 테니 입 다물라”는 식이었다.

 

무역 관계를 무기화하기도 했다(weaponize the trade relationship). 반도체 소재 3개 핵심 품목 수출 규제로 목을 죄며 사실상 무역 전쟁을 선포했다(declare a trade war). 정치와 경제 협력 사이 방화벽마저 무너뜨리며 벼랑 끝으로 몰아가(drive it to the brink of the cliff) 현재 양국 관계는 1965년 외교 정상화 이래 최악 상태에 처해있다(be at a nadir).

 

결국 아베는 수치스러운 역사를 눈가림하려는(whitewash the shameful history) 옹졸한 이유 때문에(for the petty reason) 한국과의 관계를 망가뜨리고 말았다. 이는 중국의 패권주의가 더 노골화할수록, 한일 양국 사이에 무의미한 불화의 씨를 뿌린(sow pointless dissension) 통탄할 실수로 기억될(be remembered as a grievous mistake) 것이다."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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