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健康-疾患]

[규제만으론 위기 못 넘는다]

뚝섬 2021. 5. 19. 06:23

지난 5월 13일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포드 접종센터에서 13살 소년 찰즈 무로가 백신접종을 한뒤 주먹을 쥐어 올리며 축하하고있다. 미국은 12세에서 15세 사이 어린이도 화이-바이오엔테크 백신접종을 받을 수 있다./AFP 연합뉴스

 

지난 11일 서울 요양원에 계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요양원을 봉쇄한 코로나 방역 때문에 1년 넘게 자식들을 만나지 못했고,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96세인 할머니가 화창한 5월에 큰 고통 없이 숨을 거두셨기 때문에 주위에선 호상(好喪)이라고 했다. 그러나 뉴욕에서 온라인으로 지켜본 장례식에서 자손들은 “너무 오래 찾아뵙지 못한 불효를 용서하시라”며 서럽게 울었다.

 

이런 일은 지난 1년여간 전 세계에서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코로나 시대에 ‘호상’이란 표현은 가당치 않다. 그러나 그 출구는 나라별로 천양지차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어머니날(9일)을 앞둔 지난 7일 미 전역의 노인 요양원에 사진기자들을 보내 극적인 가족 상봉을 담은 사진 수십 컷을 3개 면에 걸쳐 실었다. 요양원 거주 노인을 포함해 미 고령층의 70%는 코로나 백신 접종을 마쳤고, 자식 세대를 포함한 미 성인의 58%가 백신을 1회 이상 접종했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이었다.

 

코로나 전쟁에서 누가 이겼고 누가 패배했는지 지금 당장 재단하기는 이르다. 코로나로 60만명이 사망한 미국과 1900명이 사망한 한국을 비교할 수는 없다. 한국은 초기 방역에 꽤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백신 확보를 위해 기울이는 외교적 노력도 잘 알고 있다. 우리도 언젠가 모든 아픔을 딛고 정상화되리라 희망한다.

 

그러나 위기에 대처하는 한국 특유의 토양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K방역’은 강력한 공무원 조직 중심의 행정 관료주의, 그리고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정부에 협조적이고 개인 위생에 철저한 국민이 합작해 만들어낸 초기 성과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코로나 같은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팬데믹에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이었다.

 

미국은 방역의 기초인 마스크 착용 문제부터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자가 격리를 감시할 행정 시스템은 아예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반년도 안 돼 백신이라는 게임 체인저를 찾아냈다. 민간 기업과 과학기술 전문가들의 강력한 자율과 창의성, 속도를 믿고 전폭 지원한 결과다. 코로나에 강타당해 ‘이게 선진국이냐’는 말을 들었던 미국·영국 같은 자유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들이 가장 먼저 백신을 개발하고 가장 먼저 마스크를 벗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 이후에도 대형 팬데믹은 또 올 수 있다.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천재지변, 북핵 등 안보 위기, 대형 금융 위기, 기술 격차에 따른 산업 위기 같은 국가 재난이 언제 어떤 식으로 우리를 덮칠지 모른다. 그때마다 K방역 같은 국지적이고 단기적인 규제와 국민들의 자발적 희생에만 매달려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뉴욕=정시행 특파원, 조선일보(2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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