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지 않고 그냥 배우기]
[‘민족’만 무성하고 ‘민주’는 없다]
[밖에선 “한국, 대단하다”는데]
[‘싸이월드’의 귀환]
따지지 않고 그냥 배우기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배우는 일과 생각하는 버릇. 이 둘을 일찍이 보완 관계로 설정한 말이 있다. 공자(孔子)의 ‘논어(論語)’에 나오는 “배우되 생각지 않으면 엉클어지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는 구절이다.
그저 따라 배우는 일과 이리저리 따지거나 헤아리는 작업의 병렬이다. 그래야 올바르게 학문을 이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다. 그러나 중국의 학문 전통은 이 같은 조화·균형의 흐름과는 사실 거리가 멀다.
공자의 ‘논어’ 첫 구절은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은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다. 유교의 으뜸 경전 첫머리를 장식했으니 매우 유명하다. 구절 풀이는 다소 엇갈릴 수 있지만 ‘배우고 익히다’라는 학습(學習)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은 뚜렷하다.
그 후 중국은 이 ‘학습’의 전통에 줄곧 골몰한 듯하다. 그러나 자유롭게 사색하며 분방하게 생각하는 전통은 키우지 못했다. 공자 스스로 ‘논어’에서 “종일 먹지 않고 뜬눈으로 생각했지만 결국 배움이 최고더라”라고 실토한 점도 그렇다.
중국 전통 학문은 따라서 내내 한쪽으로 기울었다. 자유로운 생각보다는 옛 성현의 말을 배워 익히거나, 그 자구(字句)를 풀어가는 주석(註釋)과 주해(註解)의 영역에 묶였다. 옛것의 고증에 매달리는 훈고(訓詁), 그를 본받는 의고(擬古)의 전통도 그렇다.
요즘 공산당은 그 전통을 더 강화하고 있다. ‘학습강국(學習强國)’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공산당의 이론이나 사상을 일방적으로 배우고 익히게끔 하는 방식이다. 공산당 이념이 유교의 가치를 대체했을 뿐 나머지는 ‘학습’의 전통 그대로다.
공산당의 통치 기반은 이로써 견고해지겠다. 그러나 배우고 익히는 데만 매달려 자유롭고 분방하게 생각을 펼치지 못하는 국민들의 수준 하락은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통제만을 더 강화하는 공산당의 집요함이 참 돋보인다.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조선일보(23-02-24)-
_______________
‘민족’만 무성하고 ‘민주’는 없다
[朝鮮칼럼 The Column]
중국은 국가를 넘어 하나의 문명으로서, 역사가 유구하다. 하지만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서구에 의해 깊은 좌절을 겪었다. 민족적 자부심도 큰 상처를 입었다. 지난 1일 시진핑 중국 주석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사에서, 아편전쟁 이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중국 인민의 가장 위대한 꿈이 됐지만, 이제 굴욕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과연 지난 40년간 중국의 대국 굴기는 무서웠다. 10년 안에 미국을 추월할 거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런 중국이 허울뿐이라는 중국인이 있다. 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이다. 중국 헌법 제정 100년,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이한 2008년 그는 벗들과 ’08헌장'을 발표했다. 여기서 1949년 세운 ‘신중국’은 이름만 인민공화국이고, 실질적으로는 ‘일당독재’라고 비판했다. 또한 “법률은 있지만 법치는 없고, 헌법은 있지만 헌정은 없는 게 중국 정치의 현주소”라고 개탄했다.
사실 시진핑의 기념사는 ‘민족’만 무성하고 ‘민주’가 없다. 아울러 그는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으며,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류샤오보는 자유와 평등,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며, 민주와 공화체제, 헌정이 현대 정치제도의 기본 구조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빠진 중국의 현대화는 “인권을 박탈하고 인간성을 말살하고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재앙의 과정일 뿐”이라고 규탄했다.
류샤오보는 2017년 6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젊은 시절 마오쩌둥의 열렬한 숭배자였다. 베이징 사범대에서 공부하고, 노르웨이와 미국에서 중국 철학과 문학을 강의했다. 사람으로서, 학자로서 열심히 살자는 게 그의 소박한 꿈이었다. 그러나 35세인 1989년 톈안먼 사건이 발생했다. 전도유망한 그는 귀국하여, 자유와 민주, 인권을 요구하는 선언서를 발표했다. 시위는 탱크에 의해 유혈 진압되고, 많은 동지들이 중국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조국에 남았다. 국가전복선동죄로서 8년의 투옥 생활 중 간암 진단을 받았다. 삶의 마지막 날들을 그는 아내 류샤의 간호를 받으며 지냈다. 오랜 감옥 생활에서 그는 아내를 애절하게 그리워했다. “사랑하는 당신 / 어둠을 사이에 두고 당신에게 말합니다 / 무덤으로 들어오기 전에 / 유골로 나에게 편지 쓰는 걸 잊지 마세요.”(’감당' 1996)
지난달 13일,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은 중국에 인권과 기본적 자유, 자치를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은 일관되게 전 세계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확산을 국가적 사명으로 천명해왔다. 이에 대한 시진핑의 답변은 “중국을 괴롭히는 세력은 강철 만리장성에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는 거친 경고이다.
조셉 나이 교수에 따르면, 진정한 강대국은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소프트파워를 갖춰야 한다. 그래서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때 공자를 등장시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를 외치게 했다. 세계 곳곳에는 공자 학원(Confucius Institute)을 세웠다. 문명 대국을 알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로서의 중국은 별 매력이 없다. 긴 중국 역사에서도 드문 일이다. 근대 이전의 중국은 유교, 도교, 불교 등 보편 이념을 공공재로 공급해 왔다.
중국에 더 심각한 문제는 국가 이념의 공백이다. 대부분의 중국 국민은 사회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믿지 않는다. 말만 사회주의이기 때문이다. 1인당 GDP가 1만달러를 넘었지만, 월 수입 1000위안(약 16만9000원) 이하인 사람이 6억명에 달한다. 중국 공산당은 사회주의 이념의 공백을 민족주의와 유가 사상으로 메꾸고 있다. 창당 100주년 연설이 온통 중화 민족주의로 채워진 것도 이해가 간다. 국가 이념은 이상한 혼합물이 되었다.
중국 공산당은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 봉건제를 깨고, 14억 인구의 의식주를 해결했다. 그러나 미완의 과업도 있다. 1919년 5⋅4운동이 제시한 근대 중국의 비전으로서, ‘과학’과 ‘민주’가 그것이다. 지난 100년간 중국은 그 절반만 성취한 셈이다. 홍콩과 대만은 목적지에 도달했다. 싱가포르는 연성 권위주의이다. 중국은 아직 그럴 의사가 없고, 민족주의와 유가 이념으로 일당독재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이 상황이 우려스러운 것은, 힘은 항우인데 정신은 아큐(阿Q)이기 때문이다. 에런 프리드버그 교수는 “아시아의 미래는 유럽의 과거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아시아도 유럽처럼 세계대전 같은 참상을 겪은 뒤에야 겨우 평화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지금 동북아는 민족주의 열기로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인류 보편의 가치로 열기를 식혀야 한다. 이웃 나라 중국의 정치를 걱정하는 이유이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 조선일보(21-07-06)-
_______________
밖에선 “한국, 대단하다”는데
[특파원 리포트]
이웃에 9월 프린스턴대 입학을 앞둔 한국계 고교 졸업생 J가 산다. 명문대에 대한 미국인들의 선망도 우리 못지않아서 “똑똑하고 반듯한 청년”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교포 3세인데 한국말을 똑 부러지게 한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한국어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엄청나게 노력했다”고 말했다.
뉴욕의 로펌 임원인 50대 한인 2세 변호사 C는 몇 년 전까지도 한국말을 거의 못했다고 한다. 그는 “위로 올라갈수록 내 뿌리를 당당히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면서 1년여간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한국어를 되살려내 밤낮으로 읽고 쓰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요즘 미국의 한국계 부모들은 자녀를 여름방학 동안 또는 주말에 한글 학교에 보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게 하는 게 최대 관심사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글 학교들도 1년 넘게 온라인 수업만 하다 보니 아이들이 한국어를 잊어버리는 것 같다”고 걱정할 정도다. 공공·민간에서 운영하는 한글 학교는 미 전역 1000여 곳으로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자녀 한국어 교육에 가장 열심인 이들은 역설적으로 본인이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이민 2세들이다. 1970~1980년대 미국에 온 1세대는 자녀들이 철저히 미국 주류 사회에 동화되기를 원해 영어 환경에만 풀어놓았다. ‘일본 식민지’ ‘한국전쟁’으로나 알려진 한국이란 나라는 지워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정작 2세들은 한국어를 못하고 한국의 정체성을 잊는 것이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했다. ‘내 자식은 나처럼 반쪽 미국인으로 살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런 한국계 미국인들의 자각에 불을 댕긴 건 바로 한국의 국력 성장이다. 경제부터 대중문화·예술, 스포츠, 과학 기술과 학술 등 전 분야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미국 각 분야에선 같은 수준의 인재라면 한국의 카운터파트와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컬럼비아 의대의 한 한국계 의사는 “한국 병원 관계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서툴게나마 한국어로 발표했더니 동료들이 날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했다. 한국어 구사 능력이 곧 기회와 영역의 확대가 된 것이다.
외국에서 느끼는 한국의 위상은 한류 드라마 보기와 BTS 듣기, 김치 먹기 수준 정도가 아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한국 기업 대표들을 일으켜 세워 “생큐, 생큐”를 연발하기까지 그간 한국 인재들의 기술력과 창조성, 진취성이 얼마나 깊이 각인됐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선 철만 되면 자랑스러운 역사를 두고 ‘깨끗했냐, 정당했냐’를 따지며 진흙탕 싸움이 벌어진다. 밖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조선일보(21-07-06)-
______________
‘싸이월드’의 귀환

2000년대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싸이월드’가 과거 이용자들이 올린 사진 180억장과 동영상 1억5000만개를 복구해 5일 서비스를 재개하려다 8월로 잠정 연기했다. 싸이월드는 한때 이용자가 3200만명에 육박했고 ‘싸이질’ ‘싸이폐인’ ‘싸이중독’이라는 유행어까지 낳았던 한국형 SNS다. 페이스북보다도 앞선 1세대 토종 SNS였지만 페이스북 등에 밀려 쪼그라들다 급기야 서비스까지 중단됐었다. 서비스 재개 소식에 10~20대 시절 싸이월드에 사진이며 동영상을 업로드해놓은 30~40대들이 반색하고 있다.
▶1999년 카이스트 대학원생들이 만든 싸이월드는 ‘미니홈피’ 서비스로 주목받았다. 이용자들이 가상 화폐였던 도토리로 자신만의 가상 공간을 꾸미고, 가까운 친구와 ‘일촌’ 맺기를 하며, 일촌의 일촌과 파도타기를 하면서 다른 미니홈피도 방문하는 인맥 기반 서비스였다. 하지만 운영난에 시달리다 창업자들이 버티지 못하고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 매각했다. 한때 하루 도토리 매출이 1억5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유료화에도 성공했지만 세계 시장 개척에는 실패했다.
▶싸이월드는 모바일로 바뀐 시대 변화에 굼뜨게 대응하면서 인기를 잃어갔고 적자가 누적됐다. 2016년 프리챌 창업자가 인수해 부활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경영난으로 직원들에게 월급도 못 주고 세금도 밀리자 급기야 지난해 국세청에서 싸이월드를 폐업 처리했다. 싸이월드가 페이스북에 초기 투자한 피터 틸처럼 안목있는 벤처투자가를 일찌감치 만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 전 세계인이 페이스북 대신 싸이월드를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05년경 백인 모델이 사과를 와작 베어 문 ‘사과 씹어 먹기' 광고가 뉴욕 등지에 등장했다. 애플에 맞짱 뜨겠다는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의 해외 광고였다. 삼성반도체 임원 출신의 양덕준씨가 1999년 창업한 아이리버는 창업 5년 만에 국내 MP3 플레이어 시장의 79%, 해외 시장의 25%를 석권할 만큼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글로벌 음반사들을 규합해 아이튠스라는 네트워크를 만들며 거대한 음원(音源) 생태계를 구축한 애플의 큰 전략에 밀려 결국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신세가 됐다. 한국 IT 산업사의 아쉬운 실패 사례다.
▶싸이월드와 아이리버처럼 세계 시장에서 앞서가던 디지털 기업들이 우리에게 있었다. 이들의 성공에 자극받아 많은 젊은이가 IT 분야에 뛰어들었다. 돌아온 싸이월드가 재기에 성공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과거의 뼈아픈 실패도 한국 디지털 산업의 성장에 큰 자양분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1-07-06)-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時事-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어준표 조사’만 믿는 野黨] [민주당 말살(抹殺)?] .... (0) | 2023.02.25 |
|---|---|
| [대통령에게 당정 분리는 가능한가] [조바심이 뺄셈정치를.. ] (2) | 2023.02.25 |
| [한국의 핵무장론을 두고 벌어지는 혼돈과 불신] .... (2) | 2023.02.24 |
| [‘완벽한 부모 신드롬’]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저출산국 된 한국.. ] (0) | 2023.02.24 |
| [文 정권의 라임 펀드 사기 수사 방해 규명해야 한다] .... (2) | 2023.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