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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屍身 수습 요원’.. ] .. [69년 만에 새겨진 이름들]

뚝섬 2022. 8. 30. 08:22

[한국전쟁 ‘屍身 수습 요원’ 英 참전 용사]

[워싱턴에 영원히 남을 한미 젊은이들의 숭고한 희생]

[69년 만에 새겨진 이름들]

 

 

 

한국전쟁 ‘屍身 수습 요원’ 英 참전 용사 

 

한국전쟁 참전 용사(Korean War veteran) 한 분이 또 타계했다(depart this life). 1951년 3월 19세 나이로 왔다가 1953년 6월 21세가 돼 돌아갔던 영국군 제임스 그룬디(91)씨가 오랜 암 투병 끝에(after a long battle with cancer) 지난 10일 급성 폐렴으로 유명을 달리했다(join the majority). 참전 기간 ‘특수 임무’를 맡았던 그룬디씨의 유해는 본인의 유언에 따라(according to his will) 다음 달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될(be laid to rest) 예정이다.

 

그의 ‘특수 임무’는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하는(recover the bodies of fallen soldiers) 일이었다. 5명으로 구성된 ‘시신 수습 팀(Recovery Team)’에 자원한 그는 영국군 병사가 전사했다는(be killed in action) 연락을 받으면 한반도 어느 전쟁터든 급파됐다(be dispatched to all the battlefields). 십자가 위에 철모를 올려놓거나 푯말을 꽂아 놓은 지점을 찾아 흙을 파내고 시신을 꺼내 관에 담았다(lay them in a coffin).

 

그렇게 그가 직접 최전선(front line)에서 부산으로 옮겨 묻어준 주검만 90여 구였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현재 안장된(be currently interred) 영국군 전사자 884명의 약 10%에 달한다. 그는 시신을 묻을 때마다 “나는 당신을 잊지 않겠다. 내가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고(make a promise) 한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in order to keep his word) 1988년 보훈처 초청으로 방한한 이후 지난 30여 년간 매년 자비를 들여(at his own expense) 유엔기념공원을 찾아왔다. 결혼을 못 한 채 참전해 배우자는 없는 데다, 부모도 이미 세상을 떠나(pass away) 아무도 찾는 이 없게 된 묘지를 일일이 보살펴준 것이다.

 

최근 2년간 코로나 19로 방한하지 못했던 그는 암 투병으로 갈수록 쇠약해져(waste away) 마지막이 될 것 같다며 지난 5월 힘겹게 부산을 다녀갔었다. 그리고 불과 4개월 만에 70년 전 자신이 묻어줬던 전우들 곁에서 함께 영면하기 위해(in a bid to go to his final rest)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는 2010년 4월 7일 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하루도 끔찍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온전한 시신이 드물었습니다. 한국군이나 민간인 시신은 근처 시·군청에 옮겨줬습니다. 굶어 죽은(starve to death) 사람이나 어린아이들 시신에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tear me apart). 그 끔찍했던 장면들이 수시로 떠올라 저는 지금도 악몽을 꿉니다(have a nightmare). 제 아내는 200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7명의 형제자매(siblings)도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가족이라곤 손녀 둘이 전부입니다. 그래도 부산에 수백명의 전우 가족이 있어 마냥 외로운 건 아닙니다.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제가 묻어준 전사한 전우(fallen comrade)들이 바로 영웅입니다.”

 

그룬디씨는 2019년 유엔기념공원이 위치한 부산시 남구의 명예구민으로 선정됐고, 오는 10월 5일 부산 시민의 날에 초청돼 명예시민증을 받을(be presented an honorary citizenship) 예정이었다.

 

[영문 참고자료 사이트]

☞ https://edition.cnn.com/travel/article/un-cemetery-busan-korea-war-intl-hnk/index.html

☞ https://unmck.or.kr/eng/05_board/?mcode=0505020000&mode=2&no=322&page=1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07/2010040700011.html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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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 영원히 남을 한미 젊은이들의 숭고한 희생 

 

6.25 전쟁 영웅 고 윌리엄 웨버 대령의 부인 애널리 여사가 지난 22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DC 내셔널 몰 내에 조성된 '추모의 벽'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애널리 여사는 '죽기 전에 추모의 벽 준공이 마무리 된 것을 보고 싶다'는 웨버 대령의 유언에 따라 그의 안장식에 앞서 이 곳을 찾았다. /이민석 특파원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 기념 공원에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3만6634명, 카투사 7174명 등 4만3808명의 이름을 새긴 ‘미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이 만들어졌다. 공원 내 ‘기억의 못’ 둘레에 높이 1m, 길이 130m 화강암 벽을 두르고 여기에 군별, 계급, 알파벳 순으로 전사자 이름을 새겼다. 카투사는 미군에 배속돼 싸운 한국군이다. 이들이 추모의 벽에 포함된 것은 미국 내 참전 기념물 중 미국 국적이 아닌 전사자 이름이 새겨지는 첫 사례라고 한다. 그동안 이 공원에는 참전 용사 모습을 형상화한 ‘19인 용사상’이 있었을 뿐 전사자 이름은 기록돼 있지 않았다.

 

추모의 벽 건립은 19인 용사상 모델 중 한 명인 윌리엄 웨버 미 예비역 육군 대령이 주도했다. 6·25전쟁 때 오른팔과 다리를 잃은 그는 “미국 사회에 6·25를 알려야 한다”며 이 일에 전념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건립 부지가 워싱턴 내셔널몰 국립공원 한복판이어서 미 국립공원관리청이 신규 시설물 설치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의회를 끈질기게 설득해 2016년 10월 미 상원에서 ‘추모의 벽 건립법’을 통과시켰다. 벽에 새길 카투사 전사자 명단을 확보해 달라고 한국 정부를 다그친 사람도 웨버 대령이었다. 이후 예산 확보가 문제였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보훈처가 50억원을 내기로 했지만 문재인 정부로 바뀌자 위기가 찾아왔다. 문 정부가 ‘적폐’로 꼽은 전 보훈처장이 추진했다는 이유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사업 취소를 주장했고 보훈처는 사업에 대한 자체 감사까지 벌였다.

 

이런 정치 공세로 한미 동맹이 흔들려서야 되겠느냐는 비판이 커지자 2019년에 워싱턴 추모의 벽 건립 재추진이 결정됐다. 사업비 270억원은 보훈처 예산 외에도 한국전참전용사추모재단, 재향군인회, 풍산그룹 등 민간 단체와 기업이 성금을 보태 마련했다. 작년 5월 착공했고, 1년 2개월 만인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일이자 우리 정부에서 제정한 ‘유엔군 참전의 날’에 맞춰 준공식을 갖게 됐다.

 

추모의 벽은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여기 이름이 새겨진 미군 전사자 중 절반 이상이 이등병과 일등병이다. 미국 젊은이들이 낯선 나라에 와서 피를 뿌리고 목숨을 바쳐 오늘날 위대한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았다. 그들과 같이 싸운 한국 젊은이는 미국 수도 한복판에 이름을 남겼다. 그 숭고한 젊음들 덕분에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계 최빈국은 이제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 군사 강국으로 성장했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나라가 아닌 서로 돕는 관계가 됐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를 기억하지 않는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 정권에 따라 동맹과 호국 영령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일도 다시는 없어야 한다.

 

-조선일보(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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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 만에 새겨진 이름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윌리엄 웨버는 육군 187 공수낙하산 부대 작전장교(대위)로 참전했다. 이듬해 원주 전투에서 병력이 4배나 많은 중공군을 상대로 12시간 동안 격전을 치렀다. 결국 웨버는 오른쪽 팔을 잃고, 오른쪽 다리마저 잃었다. 그가 각종 행사에서 왼손으로 경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1980년 대령으로 예편했지만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한국전쟁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민간운동을 주도했다. 1995년 한국전쟁 참전비 19인 용사상 건립에 이어 전사자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을 세우자고 했다.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에 세워진 추모의 벽 제막식이 7·27 정전 기념일인 오늘 열린다.

▷그러나 건립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장 287억 원에 달하는 건립 비용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문제였다. 미 의회는 추모의 벽 건립을 위한 법안은 통과시켰지만 연방정부 예산은 쓰지 못하게 했다. 어쩔 수 없이 취지에 공감한 한미 양국의 민간단체가 모금에 나섰다. 그러나 민간 차원의 모금은 4년 넘도록 지지부진했다. 뒤늦게 한국 정부가 건립 비용의 거의 대부분을 지원하면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참전비엔 전사자 명단이 새겨져 있지만 한국전쟁 기념비에는 없었다. 그래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중심으로 전사자 이름도 새겨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높이 1m, 둘레 50m의 화강암 판에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3만6634명, 한국군 카투사 7174명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졌다. 누구보다 제막식을 보고 싶어 했을 웨버 대령은 올 4월에 세상을 떠났다.

 

▷고 웨버 대령은 평소 한국전쟁을 ‘다섯 문단 전쟁’이라고 불렀다. 미 고교 교과서에 한국전쟁을 다룬 대목이 고작 다섯 문단에 불과해서다. 그만큼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 취급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과 달리 한국전쟁에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해 빨리 잊고 싶어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참전은 1952년 대선에서 집권 민주당이 공화당에 패배하는 한 원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참전용사들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엄청난 경제성장을 누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승리를 증명한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참전용사들은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되살리기 위한 운동에 나서고 있다. 참전한 전우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도 추모의 벽에 한 줄 이름만 남기고 떠난 수많은 청춘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정전 69년 만에 새겨진 이름들이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정연욱 논설위원, 동아일보(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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