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대비 훈련 5년 만에 나온 각 부처 실무자들 우왕좌왕]
[終戰 선언?]
전시 대비 훈련 5년 만에 나온 각 부처 실무자들 우왕좌왕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 2부가 시작된 29일 경기 파주의 한 훈련장에서 자주포 부대가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주요 훈련 때마다 꾸려야 하는 범정부 차원의 전시 지휘소가 문재인 정부 4년간 가동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상·하반기 주요 훈련 때마다 서울 남태령 수도방위사령부 지하 벙커(B-1 벙커)에 군 관계자뿐 아니라 각 부처 소속 공무원들을 파견해 전시 지휘소를 구성하고 연락반을 가동해야 한다. 모의 전시 내각을 꾸리는 것이다. 이를 반복 숙달해야 유사시 국가 비상사태에 대처할 수 있다. 우리처럼 북한뿐 아니라 주변 강대국의 위협을 상시적으로 받고 있는 입장에서 이는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하지만 2018년부터 비군사 분야 공무원들은 전시 지휘소 연습에 참가하지 않았다. 대신 군인과 군무원 등 80명 안팎으로 구성된 소규모 대응반만 차려졌다. 과거 약 300명이던 전시 지휘소 인원이 3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문 정권이 범정부 지휘소를 꾸리지 않고 훈련 시늉만 했다는 사실은 지난주 4년여 만에 정상화한 한미 연합훈련을 통해 드러났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지난 22일 시작된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 기간 B-1 벙커에 파견된 각 부처 실무자들이 4년의 훈련 공백 탓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놀라 벙커에 나흘간 상주하며 각급 회의를 주재했다고 한다.
앞서 2018년 6월 김정은·트럼프의 ‘비핵화 쇼’ 이후 한미 연합훈련은 ‘컴퓨터 키보드 게임’으로 전락했다. 지난 4년간 한미는 연대급 이상에서 실탄 한 발 같이 쏴 본 적이 없다. 임기 말까지 ‘남북 이벤트’에 미련이 컸던 문 정부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허위로 판명 난 뒤에도 갖은 이유로 훈련 정상화를 막았다. 이제 보니 연합훈련뿐 아니라 한국 정부의 단독 훈련도 엉터리로 했다. 만에 하나 북의 공격과 같은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으면 대한민국 전체가 우왕좌왕하며 무너지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훈련 자체가 북의 도발을 막는 억지 역할을 한다. 한미 연합훈련이 없어지고 한국 정부마저 전시 대비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김정은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
-조선일보(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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終戰 선언?
북핵 폐기 前 종전 선언
말로만 하는 선언은 의미 없고 효력 부여하면 북핵 원칙 흔들려
이미 盧 정부 때, 외교장관이 "종이에 꽃 그려놓고 봄 왔다"고
국민에게 '평화 환상'만 줄 수도
정부가 '종전(終戰)선언'을 추진한다는데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말로만 보면 '한반도에서 전쟁 상황이 끝났다는 공식 발표'라고 들리는데, 또 "그런 건 아니고 정치적 선언"이라고 말한다. 실제 국제법상 전쟁은 말이 아니라 거의 전부 평화협정(또는 조약)으로 끝낸다. 그냥 끝낼 수 있다는 전문가도 있지만 이 역시 의회 동의나 국제사회 보증 등 법적 추가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평화협정이다.
그래서 말로만 하는 종전 선언은 전례도 없다고 한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도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과 똑같은 '종전 선언'을 똑같은 방식으로 추진했다. 당시 외교부가 전 세계를 열심히 찾아봤지만 "전례가 없다"고 했다. 통상 종전 선언은 평화협정의 한 부분으로 들어간다. 비교적 최근인 1995년 보스니아 내전 끝에 맺어진 데이턴 평화협정도 맨 앞에 "비극적 갈등을 종식하고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며… 서로 주권을 존중하고 영토와 정치적 독립에 대한 위협이나 무력 사용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 뒤로 본문 11조, 구체적 행동 내용 등을 담은 부속 합의서 12건이 따라붙는다. 그런 구체적 합의 없이 말로 하는 선언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협정과 선언은 동시에 이뤄진다.
"그러면 선언만 분리해서 법적·정치적 약속으로서 의미를 어느 정도 부여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렇게 되면 선언이 아니고 일종의 협정이나 조약이 된다. 북한은 "앞으로 핵을 폐기하겠다"고만 했을 뿐인데, 한·미와 국제사회는 '종전과 평화 체제'를 약속해주는 결과다. 북핵 문제의 중대한 원칙을 깨는 것이다.
한·미는 지금까지 '북이 핵을 폐기하고 대남 적화 전략을 포기해야 미·북 수교도 하고 평화협정을 맺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핵·생화학무기 등을 가진 상태에서 평화 체제로 간다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정부도 "법적 효력을 갖는 선언을 하자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걸 거다. '정치적으로 선언만 하고 북이 안 지키면 우리도 깨면 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다시 '개전(開戰) 선언'을 하나.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그런 선언은 또 뭣 하러 하나.
종전 선언의 이런 논리적·국제법적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10·4 남북 정상회담 때도 이미 제기됐다. 남북 합의문에 '3자 또는 4자 정상의 종전 선언을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간다'고 들어갔다. 그러자 당장 송민순 당시 외교부 장관이 "종전을 선언하려면 여러 조치와 정치·군사·법적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며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당시 미국 부시 행정부는 "북핵이 폐기된다면 평화협정 체결, 종전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종전이 가능하다'는 말만 부각했다. 지금도 미국정부 등이 '종전 선언은 좋은 일'이라고 하는 건 북한 비핵화를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건이 안 된 상태에서 종전 선언을 하면 당장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부터 생길 수 있다. 남북 교전 상황을 전제로 존재하는 게 유엔사령부이고, NLL은 유엔사가 정한 선(線)이다. 북은 "종전했는데 왜 있느냐. 그 사령부가 그은 NLL도 무효"라고 할 거다. 미군의 북한군 감시와 전시 대비 훈련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주한 미군 철수 요구도 따라붙을 거다. 국제사회가 종전 선언, 즉 평화 선언을 했으니 대북 제재 명분도 약해진다. 북핵 폐기가 끝난 뒤 줄 당근을 입구(入口)에서 주는 셈이다. 실제 평화는 오지 않았는데 국민에게 평화가 왔다는 환상도 줄 수 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는 벌써 '종전 선언 하면 군대 안 가도 되느냐' '북핵 걱정 안 해도 되느냐'는 말이 넘쳐난다. 송 전 장관은 "밖은 겨울인데 종이에 꽃과 나비 그려놓고 봄이 왔다고 선언하는 모양"이라며 "그런 점 때문에 미국과 중국도 종전 선언부터 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고 했다.
현 정부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추진하려는 걸 보면 다른 고려가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있다면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국민이 지지해야 힘도 실린다. 그게 아니라 '평화 체제로 가기 위한 협상 개시 선언' 정도의 뜻이라면 '종전 협상 개시 선언'이라고 해야지 종전 선언이라고 하면 안 된다. 이런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일수록 정명(正名)이 기본이다.
-권대열 논설위원, 조선일보(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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