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식어가는 중국몽.. 독일 74%, 스웨덴 83% “중국이 싫다”]
[안하무인 중국의 호주 때리기]
[중국 먹잇감 된 균형 외교]
[동맹과 실리 사이… 유럽 가스파이프 공사 놓고 美·獨·러 갈등 點火]
유럽서 식어가는 중국몽… 독일 74%, 스웨덴 83% “중국이 싫다”
[유로 스코프]
여름 성수기로 들어선 파리 중심가의 백화점에는 중국어가 들리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 유럽의 명품가와 고급 식당들은 중국 관광객들로 넘쳐 났다. 사업가들은 앞다투어 중국어를 배웠고, 중국에 지사를 개설했다. 중국과 관계된 세미나에는 주제를 불문하고 청중이 몰렸다. 그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중국에 대한 열기는 유럽에서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다.
중국은 유럽에 있어 거대한 시장이자 투자 파트너이다. 유럽연합(EU)은 1975년 중국과 수교 이후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경제적 교류를 강화해 왔다. 특히 최대 교역국인 독일은 ‘무역을 통한 변화’라는 원칙하에 중국과 실용적인 관계 증진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일대일로 전략을 비롯한 중국의 정치, 경제적인 팽창은 유럽의 우려를 키우기 시작했다. 2019년 발표된 EU의 대(對)중국 전략 보고서는 중국을 유럽의 ‘체계적, 경제적 경쟁자’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도 중국은 ‘체계적 도전’으로 규정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의 전 세계적인 확산과 미·중 갈등 구도의 강화는 유럽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화시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중국 정상회담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의 대(對)중국 인식은 작년과 올해 두 개의 결정타를 맞았다. EU가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의 인권문제를 지적하며 유엔 차원의 인권 결의안을 채택하자 중국은 유럽의회 의원, EU이사회 정치안보위원회, 그리고 유럽 기업인들을 대대적으로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는 사상 초유의 외교적 강공을 펼쳤다. 홍콩 민주주의 문제와 맞물리며 중국과 유럽 사이에는 인권 문제에 있어서 깊은 단층대가 형성되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중국이 러시아의 입장을 옹호하기 시작하면서 유럽과 중국은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
지난 4월 1일 개최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시진핑 주석 간의 정상회의에서 유럽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홍콩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한 반면, 중국은 EU가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입장에서 중국과 협력하며 글로벌 성장에 기여하라는 추상적 메시지로 응수했다. 접점을 상실한 양측의 논쟁은 ‘농아들의 대화’가 되었다. 대만 문제 역시 중국과 EU를 갈라 놓았다. 중국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유럽 정·재계 인사들은 대만을 방문했고,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서도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공급망에 대한 유럽과 대만의 협력도 강조되어 왔다. 대만을 외교적으로 인정한 리투아니아에 대해 중국은 전면적인 제재와 관계 단절을 선언했지만, 오히려 유럽 내에서 그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중국과 유럽의 가치관 충돌은 양자관계 악화의 주원인이다. 다극적 세계질서 하에서 주도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중국은 인권, 민주주의 등 유럽이 강조하는 가치규범으로부터의 제약에 반발하며 애국주의에 기반한 공격적인 ‘전랑(戰狼) 외교’를 펼쳐 왔다. 이는 또한 오는 가을로 예정된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위해 대외적 압력에 대한 갈등을 증폭시키며 대내적 결속을 모색하려는 시도와도 연결된다. ‘제로 코로나’ 정책하에서 인적교류 중단과 투자 부진 역시 중국에 대한 유럽의 기대 수준을 더욱 낮추고 있다. 유럽의 대(對)중국 무역수지 적자 폭이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중국 주도로 중·동부 및 남부 유럽을 아우르는 경제협력기구인 ‘16+1′ 체제도 와해되고 있다. 유럽에서의 ‘중국몽(夢)’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중국을 둘러싼 유럽과 한국의 고민은 유사성이 있다. 중국은 양측에 미국과 변별력을 가지는 보다 독립적 입장에서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추진할 것을 공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유럽과 한국은 동맹국인 미국과의 협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동참하면서도, 시장으로서의 중국과 한반도 평화에 있어서의 중국의 필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선택의 상황은 끊임없는 딜레마를 던져주고, 양자 및 다자 차원에서의 해법을 위해 머리를 맞대게 한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매개로 유럽 및 아·태 4개국(한, 일, 호주, 뉴질랜드)과의 정치적, 경제적 공통분모도 커지고 있다.
대(對)유럽 외교의 강화는 한국이 중국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더욱 중요해졌다.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지지뿐만 아니라, 중국 관련 의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EU 및 유럽 주요국들과 정치, 경제적인 보조를 맞추며 불가피한 선택에 따른 비용을 낮춰야 한다. EU 특사단 방문 및 대통령의 NATO 정상회의 참석은 대(對)유럽 외교에 있어 전례 없이 유용한 기회가 되었지만, 그 모멘텀을 살리기 위해서는 보다 긴밀한 후속 조치들을 필요로 한다. 한국 외교의 가치, 원칙 및 동맹구조에 대한 재정비는 유럽과의 공조에서 참조할 여지가 많다. 특히 유럽의 외교적 어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유럽은 국제규범, 법치, 인권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명확한 원칙을 견지하지만, 인도·태평양 전략을 비롯한 주요 지정학적 의제에 있어 중국을 명확히 지칭하지 않으면서 개입과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는 외교적 수사를 사용해 왔다. 오랜 역사적 균형감과 신중함은 여전히 유럽 외교의 덕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대(對)중국 외교는 새로운 형질 변경을 시작했다. 중국몽은 새로운 현실을 맞고 있다. 국제정치 주체들 간의 협력과 견제의 중심추가 이동하기 시작했고, 보이는 외교와 보이지 않는 외교를 병행해야 하는 난도는 더욱 높아졌다. 국제 질서의 큰 해류가 변하는 격랑의 시점에는 고민과 가치를 함께 하는 보다 견고한 선단에 속해 있는 것이 유리하다. 한국에 있어서 유럽을 포함한 범(凡)동맹외교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대학 장 모네 석좌교수, 조선일보(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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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무인 중국의 호주 때리기
중국 경제 의존도 높은 호주, ‘코로나 조사’ 언급했다가 보복
호주도 지지 않고 맞대응…한국도 본보기 삼을 만
전체 국가 교역의 4분의 1을 중국과 한다. 중국 수출입 의존도가 일본·미국을 합친 것보다 많고, 작년 중국인 관광객 130만명이 와서 15조원 정도를 쓰고 갔다. 전체 유학생의 30% 가까운 17만 중국 청년이 대학 재정을 굳건히 떠받친다. 한국인가 싶지만 섬나라 호주의 실정이다. 이런 호주와 중국의 관계가 요즘 1972년 수교 이래 최악이다.
중국 정부는 5월부터 호주산 쇠고기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중국산 맥주 원료로 많이 쓰이는 호주산 보리에도 최대 80.5% 관세를 부과했다가, 최근엔 아예 수입을 금지해 버렸다. 호주산 와인에 대해선 반(反)덤핑 조사에 착수했다. 중국 관영 언론의 편집인은 호주가 신발에 붙은 껌 같은 귀찮은 존재라서 가끔 돌에 문질러줘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비하했다. 자국민에게는 호주 여행을 자제하라는 권고령을 내렸다. 모두 호주 총리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원을 밝히는 국제 조사가 중요하다고 말한 이후 생긴 일들이다.
중국의 진의가 무엇인지, 중국이 어느 선까지 호주를 밀어붙일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말 호주 기자들이 호주산 와규 구이와 호주 보리가 들어간 샐러드, 호주 와인으로 구성된 메뉴를 중국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차려 놓고 왕시닝 주호주 부(副)대사를 초청한 이유다. 명색이 외교관이면 에둘러 말할 법도 한데, 왕시닝은 연단에서 호주의 ‘죄상’을 질타했다. 그는 “호주 정부가 코로나 기원 조사를 국제사회에 제안하기 전에 우선 중국 정부에 문의했어야 했다.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고 했다. 그는 호주에 대한 중국의 감정을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로 표현했다. 중국을 카이사르에, 호주를 카이사르 암살에 앞장섰다고 하는 아들뻘 브루투스에 비유한 것이다. 여지없는 조공국 취급이다.
우리에게 낯선 장면이 아니다. 중국은 2016년 7월 사드 한국 배치 확정 이후 사드 운영 주체인 미국이 아닌 한국만 두들겨 팼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는 중국 현지에서 공사 중단과 영업 중지 식으로 집중포화를 맞았고, 중국 단체 관광객이 끊겨 명동 거리가 텅 비는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후버연구소는 소국인 한국이 대국인 중국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한족(漢族) 우월주의’가 사드 보복에 반영됐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은 군사 주권을 내주는 ‘3불(不) 합의’로 부랴부랴 중국과 타협했다. 이 합의로 한국은 낡은 사드 부품을 바꿀 때마다 중국에 사전 양해를 구해야 한다.
호주의 대응 방식은 한국과 다르다. 스콧 모리슨 총리는 계속되는 중국의 압박에 “우리 가치관을 강제로 팔아버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호주는 스파이 활동 혐의로 중국인 학자들 비자를 취소했고, 호주에 있는 중국 매체 기자들의 숙소를 비슷한 혐의로 수색했다. 중국 기업의 호주 회사 인수 계획을 국익에 반한다며 막아 세웠다. 중국 정부가 호주 주(州)정부와 단독 계약하는 것을 막는 법안을 만들어 중국 영향력이 더 스며드는 것을 틀어막기로 했다.
사드 사태 이후 4년 동안 우리 정부는 배운 게 없는 것 같다. 안보는 미국과 동맹에 기대고, 경제는 중국에 기댈 수 있다는 시각이 횡행한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의 무역 전쟁, 화웨이를 둘러싼 갈등, 중국을 배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상에 정치와 경제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이런 시기에 정경 분리는 전략이 될 수 없다. 평화 시에나 간신히 통할까 말까 한 한국의 허망한 바람일 뿐이다. 게다가 중국은 주변국에 대해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살필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다. 호주는 정치와 경제가 한 몸이란 것을 알고 중국에 대응하고 있다. 호주를 유심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김정훈 국제부 차장, 조선일보(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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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먹잇감 된 균형 외교
美中 경제·군사충돌 격화 ‘냉전 2.0’시대 돌입
균형외교·중견국 외교 주장 사실상 중국 손 들어주는 것
미 對中 디커플링 조치는 국내 산업엔 새로운 기회될 것
2020년은 ‘냉전 2.0’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원년으로 기억될 것이다.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중흥을 꿈꾸는 대국굴기를 노골화한다.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매킨더의 이론과 해양을 지배한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마한의 이론을 동시에 차용한 ‘일대일로 전략’으로 패권 도전장을 냈다. 중국은 경제·기술·군사·외교 모든 면에서 공세적이다. 중국의 아시아 지배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미국은 강력히 대응하기 시작했다. 무역 보복 차원을 넘어 중국의 번영을 가져왔던 글로벌 경제 사슬에서 중국을 ‘디커플링(배제)’하려 한다. 특히 반도체 공급 차단에서 보듯 중국 경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품 공급을 차단해 기술 도전을 싹부터 자르려 한다. 군사적 압박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이 영해로 주장하는 남중국해에서 미 해군함들은 자유항행 작전을 강화하고 군사기지화하고 있는 산호초들에 접근한다. 대만 근처에서 중국이 대대적인 해군 훈련을 감행하자, 미국의 이지스함은 대만해협을 거침없이 통과한다.
중국은 대함 탄도미사일 발사로 응수한다. 일촉즉발의 우발적 군사 충돌이 우려된다. 만일 군사충돌이 일어난다면 한반도는 러일전쟁, 한국전쟁에 이어 대륙과 해양 세력 사이의 격전장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미·중 냉전은 우리에게 한국전쟁 이래 가장 큰 시련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정부는 강 건너 불 보듯 북한에만 올인한다. 정부와 자주파 인사들의 생각을 정리해보면, 한미 동맹은 냉전 동맹이며 이를 해소하여 남북 평화 체제를 이루고 다자안보로 지역의 안전과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다자안보이지 결국 동맹 대신 중국 주도 질서를 수용하자는 것이다.
물론 동맹파도 있다. 국민들 다수는 남북 관계 맥락에서 한미 동맹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중 대결에 있어서 순수 동맹파는 소수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어느 정도 미·중 사이의 균형 외교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다수다. 과거 보수 정권도 일정 부분 미·중 사이 균형을 취하고자 했다. 어느 편도 아닌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자는 중견국 외교를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고 미·중 사이에서 사안별로 우리 국익을 반영하여 입장을 정하자는 생각이 솔로몬 지혜인 것처럼 제기된다.
균형 외교나 중견국 외교가 가능할까? 우리가 위협에 처했을 때 연대한 중견국들은 우리를 도와줄까? 미·중 사이에서 우리와 연대할 중견국이 있기는 할까? 당장 중국의 강력하고 거센 패권 도전에 직면하여 우리보다 훨씬 국력이 강한 일본이나 인도도 균형 외교를 표방하지 않고 미국과 전략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미소 냉전 경험을 본다면, 사안별로 우리 입장을 정하는 방법도 쉽지 않다. 균형 외교를 보면서, 중국은 이미 한국을 미국의 대중 포위망을 깨는 가장 약한 고리로 생각하고 공략 중이다.
중국이 아시아를 지배하면 우리에게 좋을까? 우리 역사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최악의 지정학적 환경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해준다. 중국, 일본, 러시아는 공히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고 침략하고 복속하고 지배했다. 20세기 중 러시아의 야심으로 러일전쟁과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주변 강대국이 지역 패권을 추구할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지난 70년 가까이 우리는 역사상 처음 중·일·러를 잊고 살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단군 이래 최고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바로 한미 동맹과 미국 주도 국제 질서가 가져온 지역의 안정적 균형 덕분이다. 대한민국 국익은 지역의 안정적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미국의 국익도 전통적으로 아시아에서 지역 패권을 막는 것이다. 일본, 러시아를 막았고 이제 중국을 막고자 한다.
일본, 인도, 호주 등 지역 주요국 대부분 대중 경제 의존이 매우 높지만 중국의 아시아 지배를 좌시하지 않고 미국과 전략적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결국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지역 패권 등장을 막는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우리 사활적 이익이 된다.
미·중 냉전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전략적 입지는 상승할 수 있다. 주력 산업에서 중국에게 추월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대중 디커플링 조치로 중국 제품에 대한 국제적 기피상황이 초래되면서 LG화학이 중국을 제치고 자동차 배터리 분야 세계 1위로 부상했고 삼성전자는 어렵던 스마트폰 1위를 지켰고, 화웨이에게 밀리던 5G 분야에서 대규모 수주를 이어가고 있다. 미래 세계경제를 좌우할 디지털플랫폼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한국은 얻었다. 이 기회를 살린다면, 대통령이 두 번 다시 중국에서 혼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조선일보(2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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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과 실리 사이… 유럽 가스파이프 공사 놓고 美·獨·러 갈등 點火
북유럽 발트해의 차가운 해저에 놓인 가스 파이프라인이 뜨거운 갈등을 만들고 있다. 러시아와 독일을 연계하는 ‘노드 스트림(Nord Stream)’ 파이프라인의 첫 번째 노선은 2011년 완공되어 매년 550억㎥ 가스를 공급하고 있고, 이를 두 배로 증대시키는 ‘노드 스트림 2’ 프로젝트는 총구간 1225㎞ 중 불과 160㎞를 남겨놓고 있다. 이 해저 파이프라인이 연결되면 독일은 유럽 가스 공급의 새로운 허브로 등장하게 된다. 950억유로(약 13조원)의 공사 자금은 러시아 가스프롬과 유럽계 회사들이 절반씩 부담하고 있다.

독일은 냉전 시기부터 러시아와 가스 교역과 파이프라인 건설에 참여하며 에너지 및 장비 산업 기반을 축적해 왔다. 또한, 탈(脫)석탄과 탈(脫)원전을 동시에 진행하며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가스 공급의 확대는 재생에너지 증대와 더불어 핵심적인 필요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진행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폴란드와 발트해 연안국, 그리고 통과료 수입의 감소가 예상되는 기존 동유럽 파이프라인 경유국들은 반대 입장을 취했다. 미국은 적대국 제재법(CAATSA)을 통해 압박을 가해 왔다. 2019년 미국은 국방수권법의 하나로 유럽 에너지 안보 보호법을 신설하면서 기존의 제재 예외 방침을 취소하고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천명했다. 이에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알시스(Allseas)사는 마지막 구간의 사업을 포기했다. 러시아 가스프롬이 독자적으로 잔여 구간 공사를 시작했으나, 제재 대상을 확대시키는 법안이 지난 7월 미국 상·하원에서 통과되면서 다시 발이 묶였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공사가 진행 중인 덴마크와, 주요 파트너인 오스트리아를 잇달아 방문하며 미국 입장을 피력했다. 독일은 법 규정의 번복과 내정 간섭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노드 스트림 파이프라인은 미국과 유럽 간 대서양 동맹 내부의 불협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외형적으로는 유럽의 대러 에너지 종속을 방지하고,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 영향력 증대를 우려하고 있으나, 동시에 자국산 LNG의 유럽 시장 진출 확대를 모색한다. NATO 회원국들 간 방위비 분담 분쟁도 얽혀 있다. 독일은 2019년 기준 GDP 대비 1.38%의 방위비를 집행했고 2031년까지 목표치인 2% 선까지 올릴 계획이나, 미국은 유럽 측의 미온적인 태도에 비판적이다. 한편 미국은 현재 주요 거점인 3만6000명 규모 독일 주둔 미군을 1만2000명가량 감축하여 6400명을 미국에 복귀시키고 5600명을 유럽에 재배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푸틴 대통령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독극물 테러 사건은 독일 내부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여론을 강하게 부각시켰고, 노드스트림 2 사업을 중단하라는 의견이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수조원이 투입된 프로젝트를 불발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미국의 압력과 동유럽 국가들 반발, 그리고 국내 정치적 여론 속에 메르켈 총리의 딜레마는 커지고 있다. 안보와 경제, 외교가 뒤엉킨 고차방정식이 된 노드 스트림 프로젝트의 해법은 미국 대선 이후로 미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독일이 가진 자본력과 기술력은 대러 관계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가장 강력한 견제력이자 유인책이 된다. 현재 유럽에서 미국과 러시아에 대한 레버리지를 동시에 보유한 나라는 독일이 거의 유일하다. 외교에 있어 독일의 입장은 신중하다. 요란한 정치적 구호를 외치기보다, 외교적 명분과 EU의 대표성, 그리고 자국의 경제적 실리를 잃지 않는 행보를 보여 왔다.
미국과 유럽은 종종 갈등을 겪어 왔고, 이라크전이나 이란 핵협정 등과 관련한 이견이 노정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유럽 간의 대서양 동맹은 여전히 미국 동맹 구조의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래된 동맹은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갈 시기를 항상 모색해 왔다. 동맹 내부에서의 전략적 자율성은 신뢰와 구심력, 그리고 핵심 역량을 전제로 한다. 정보력과 역량이 갖춰진 상황에서 복원력이 작동하는 범위 내에서 독자적인 행보가 가능하다.
한국의 대유럽 전략은 종종 미국과 유럽이 보이는 간극을 파고들며, 유럽을 미국을 우회하는 대북 정책의 기제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종종 착시를 낳게 됐고, 자칫 동맹국 간의 신뢰도를 저하시킬 수 있다. 유럽은 대화 기조와 교류 협력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만, 핵 비확산과 인권 등 핵심 의제에 있어서는 미국의 굳건한 동맹국으로서의 입장을 고수해 왔다. 전략적 자율성을 논의할 대유럽 외교는 신중한 어법과 형식의 선택이 중요하다.
가진 것보다 말이 앞서 나가면 외교적인 치부가 된다. 동맹 외교라는 큰 틀에서 전향적인 글로벌 의제에의 참여를 전제로 접근이 이루어져야 유럽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미국의 약한 고리를 활용한다는 접근은 실리와 동맹을 모두 놓치게 할 수 있다. 유럽은 한미 동맹에서 느슨해진 한국을 결코 반기지 않는다. 신뢰에 기반한 구심력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향후 막대한 재원이 수반되는 여러 경협 사업이 한순간에 물에 잠길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발트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스 파이프라인의 지정학은 명분과 실리, 그리고 안보와 경제 간의 치열한 동맹 외교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재승 고려대 장 모네 석좌교수, 조선일보(2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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