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는 놔두고 아래만 바꾸는 대통령실 쇄신]
[탕평책]
위는 놔두고 아래만 바꾸는 대통령실 쇄신

[서울=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실이 비서관과 행정관급에 대한 대규모 문책·개편 인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체 420명 중 20%에 해당하는 80여 명이 교체 검토 대상이라고 한다. 29일 하루에만 비서관 4명과 행정관 10여 명이 면직 또는 권고사직을 했다. 업무 능력에 문제가 있거나 비위 의혹이 제기된 인물을 교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인사를 통해 대통령실을 쇄신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대통령실 개편이 비서관급 이하 실무진에게만 집중돼 있다. 비서실장을 포함한 수석급은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대통령실 쇄신이 필요하다면 먼저 위부터 책임을 물어 교체하는 게 옳다. 그런데 정무수석실의 경우 비서관 3명 중 2명이 옷을 벗었고, 행정관 3명도 줄줄이 물러났는데 정작 지휘 책임을 진 정무수석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민사회수석실도 비서관 2명이 사표를 내고 1명이 공석이지만 수석은 그대로다. 그러니 조직 쇄신이 되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이달 초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지고 내부 위기감이 커졌을 때 여권에선 ‘당·정·대 전면 쇄신’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정책기획수석을 신설하고 홍보수석을 교체하는 선에서 그쳤다. 열흘 여 만에 시작된 추가 개편에선 아예 수석급이 빠졌다. 내부에선 “실장·수석들이 실무진을 제물로 삼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고 한다.
취임한 지 석 달여 만에 광우병 사태로 위기에 빠졌던 이명박 정부는 비서실장과 7수석을 모두 교체했다. 당시 비서관·행정관에게 먼저 책임을 묻는 일은 없었다. 역대 모든 인적 쇄신과 조직 개편도 윗선을 먼저 바꾼 뒤 실무진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실무진만 바꿔선 조직의 변화나 반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번 인사는 정치권에서 들어온 이른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나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라인에 집중되고 있다. 반면 잇단 인사 실패와 사적 채용 논란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사·총무·법무 라인은 제외돼 있다. 이들 상당수는 윤 대통령과 인연이 오랜 검찰 출신들이다. 대통령실에 대한 대대적인 공직 감찰도 검찰 출신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기왕 하는 쇄신이면 내부에 새바람이 불고 국민이 이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조선일보(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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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책
[차현진의 돈과 세상]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 불우했다고 하지만, 사실 인복은 많았다. 그는 커피를 끓이기 전에 매번 커피 알 60개를 셀 정도로 편집증이 심하고 알코올중독기까지 있었다. 굶어 죽기 십상이었던 그가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괴팍한 성격을 잘 참아준 후원가들 덕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수원은 인복이 없었지만, 청력을 잃고 주변의 도움을 받은 것까지는 베토벤과 비슷했다. 24세에 과거시험에 급제할 만큼 명석했으나 역적 집안 출신인 데다가 소론(少論)에 속해서 지방을 떠돌았다. 풍토병에 걸려 청력까지 잃었다. 스스로 농객(聾客) 즉, 귀머거리라 부르며 좌절했다.
유수원이 처량하고 답답한 심정으로 쓴 우서(迂書)는 “세상 물정에 어두워 실용적이지 못한 글”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에 감탄한 독자들이 “그가 헛되이 나이를 먹는 것이 아깝다”며 왕에게 그를 천거했다. 탕평책을 추구하던 영조는 유수원을 불러 필담을 나누면서 그 총명함을 확인했다.
유수원은 시대를 앞섰다. 화폐 공급과 물가는 비례한다면서 재정 고갈을 이유로 돈을 더 찍는 것을 만류했다. 공공재인 화폐는 잘 순환하는 것이 생명인데, 그것의 부족을 느끼는 근본 원인은 부의 편중에 있다고 진단했다. 후대의 정약용보다 생각하는 수준이 훨씬 높았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경제학자 케인스의 ‘화폐개혁론’과도 일맥상통했다. 그러나 모함 앞에 무너졌다. 역모죄 누명을 쓰고 고문받은 뒤 능지처참당하고, 자식들은 교수형 당했다. 유능한 사람이 그 유능함을 두려워하고 시기하는 다수의 횡포에 희생된 것이다. 그가 만일 다수파 노론(老論)한테 음해받지 않았다면, 세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1737년 이 무렵 영조가 우서를 읽고 단양군수 유수원을 면접했다. 그러고 사헌부로 불렀다. 오늘날에도 대통령이나 기관장들이 글을 통해 인재를 발탁한다. 측근의 근거 없는 모함을 잘 걸러내야 그 탕평책이 성공한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조선일보(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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