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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어느 날 반지하 거주가 불법화된다면] [반지하의 추억] ....

뚝섬 2022. 8. 19. 10:35

[10년 뒤 어느 날 반지하 거주가 불법화된다면]

[반지하의 추억]

[반지하 집 소녀의 마지막 문자]

[‘BANJIHA’]

 

 

 

10년 뒤 어느 날 반지하 거주가 불법화된다면

 

“여기서 살면 안 되는 거 알죠? 전입신고 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이 가격인 거예요.” 2032년 8월 어느 날. 빌라 반지하의 ‘창고’를 임차하러 온 나에게 집주인은 이렇게 당부했다. 내가 이곳에서 먹고 자려고 하는 것은 나도 알고 그도 안다. 주인의 말이 무색하게 창고에는 싱크대와 화장실이 설치돼 있고, 전에 살던 세입자가 놓고 간 낡은 옷장은 여전히 쓸 만했다. 반지하 주거가 ‘불법’이라 가스가 연결되지 않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주인이 보증금을 500만 원이나 달라는 건 영 꺼림칙했다. 만에 하나 건물이 경매에라도 넘어간다면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나는 전 재산인 보증금을 건지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창문이 없고, 비좁은 고시원에서 나온 것이 어딘가. 어쨌든 이곳은 확실히 싸다. 반지하가 불법이 되니 요즘은 옥탑방 임차료도 올랐다.

 

공공임대주택도 알아봤지만 일터와 거리가 너무 멀었다. 직장과 가까운 곳은 보증금이 만만찮았다. 무엇보다 요즘 입주 대기자가 너무 많다. 거주가 불법화된 서울 반지하 가구의 이주 수요를 임대주택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탓이다. 세입자가 떠나고 빈 옆집 반지하에는 밤에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같다. 마약이라도 하는 건 아닌지 무섭다. 오늘은 비가 많이 온다. 설마 잠기는 것은 아니겠지….

이상은 지금부터 10년 뒤 반지하에 사는 것이 법으로 금지됐다고 가정하고, 서울의 한 반지하 세입자의 사연을 가상으로 적어 본 것이다. 최근 기록적 폭우로 반지하 주민 4명이 잇따라 아까운 목숨을 잃자 서울시가 대책을 내놨다. 정부와 협의해 지하·반지하는 주거용으로 신축을 불허하도록 건축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기존 지하·반지하 주택은 ‘유예기간’을 두고 비주거용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해 사실상 퇴출하겠다고 했다. 볕이 잘 들지 않아 습하고, 안전마저 위협당하는 반지하를 줄여나가면서 시민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퇴출’은 다른 문제다. 조금이라도 임차료가 싼 집을 찾는 수요는 언제나 있다. 모아 둔 목돈이 없는 흙수저 청년, 자녀가 있어 넓은 공간이 필요한 부모, 소득이 없거나 적은 노인 등이 거주비용 대비 입지가 좋거나 공간이 넓은 반지하를 찾는다. 반지하 거주를 불법화했다가는 거주자들이 오히려 법의 각종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주 대책도 정말 실현될지 모르겠다. 서울시는 공공임대주택 23만 채를 신규 공급해 20만 가구에 이르는 반지하 주민이 입주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서울 시내에 공급된 공공임대주택은 24만 채 수준이다. 이를 2배 가까이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20년 동안’이라는 토를 달았지만 만만한 목표가 아니다. 이미 서울주택도시공사(SH) 부채는 17조 원이 넘어 전국 도시개발공사 가운데 가장 많다. 게다가 반지하 외에도 주거취약계층이 많은데, 이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논란이 확산되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18일 “반지하 퇴출이 아니라 감축”이라고 물러섰다. 혹시 시장으로서 선명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욕만 앞섰던 것은 아닌지 지금이라도 돌아봤으면 한다.

-조종엽 사회부 차장, 동아일보(2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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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의 추억

 

대학을 졸업하고 극단에서 연극하던 시절, 나는 친구네 집에 얹혀살았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눈칫밥을 먹으며 생활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결혼을 하게 됐고, 나는 그 집에서 나와야 했다. 가진 돈은 없고 연극은 해야 하고, 결국 큰 가방에 이불이랑 옷가지를 챙겨 극단 연습실에서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선생님께 들키고 말았다.

“서울에 지낼 곳이 없어서 고향에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연극을 포기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 카드를 주시면서 “은행에 가서 200만 원만 찾아와” 했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은행에서 돈을 찾아왔다. “그 돈으로 있을 곳 구해 봐.” 선생님은 내 앞에 두 뭉치의 현금을 건네주셨다.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하지만 돈을 다 받기 죄송스러워서 절반은 돌려드리고, 100만 원으로 지낼 곳을 구해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다음 날부터 생활정보지를 뒤지고 다녔고 결국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0만 원”짜리 반지하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지방 출신이라 그때까지 반지하가 뭔지 몰랐다.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 연립주택의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자 반지하가 눈에 들어왔다. 정사각형 모양의 방에 쇠창살처럼 생긴 창문이 도로와 맞닿아 있었고 들어서는 순간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좋았다. 서울 하늘 아래 오로지 내 책을 쌓아두고 내 이불을 덮고, 나 혼자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내가 집을 구했다고 하자 극단 선배들이 냄비도 사주고, 참치캔도 사주고, 쓰레기통도 사주고, 집에 안 쓰는 텔레비전이 있다며 그냥 준 선배도 있었다.

 

그렇게 “내 집이 생겼다”는 환상에 취해 일주일 정도 지냈는데 어느 날 밤,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왠지 방 안에 누군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내 주변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움직임. 나는 벌떡 일어나 방에 불을 켰다.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는 잠자리에 눕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잠시 기다렸다가 불을 켰는데 세상에나, 방 안에 바퀴벌레들이 기어 다니다가 재빨리 책이나 장판 사이로 숨는 게 보였다. 맨정신에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강소주를 마시고 잠들었다.

또 하루는 극단에서 MT를 간 날, 오랜만에 삼겹살을 먹는다는 기쁨에 들떠 있는데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학생 빨리 와봐야겠어. 지하에 도둑이 들었어!” 아!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아직 삼겹살 한 점도 못 먹었는데. “저 도둑 들어도 가져갈 게 없어요. 지금 양평에 와 있는데 내일 갈게요.” “안 돼요. 경찰까지 와 있어서 빨리 와보는 게 좋겠어요.”

어쩔 수 없이 나의 반지하로 달려갔다. 그런데 역시나 없어진 게 하나도 없었다. 도둑이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훔쳐갈 걸 하나도 못 찾았는지 방만 어질러 놓고 그대로 도망을 친 것 같았다. 초라한 내 재산 때문에 내 청춘이 더 초라해 보였고, 그날 밤에도 나는 강소주를 마시며 잠이 들었다. 그렇게 반지하 생활 2년 만에 나는 옥탑방으로 이사를 했고, 눅눅했던 시절과도 작별을 했다. 가끔씩 반지하 시절이 생각나긴 하지만 그립지는 않다. 생존하려고 거기서 버텼던 거니까.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동아일보(2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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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집 소녀의 마지막 문자 

 

소설가 하성란의 단편 ‘카레 온 더 보더’는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다. ‘방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중략) 지하방은 지상에서 고작 열 계단 아래였다. 그런데도 그녀가 상상할 수 없는 어둠이 펼쳐졌다.’ 2020년 기준 전국 32만 가구가 지하나 반지하에 산다. 90%가 수도권에 몰려 있고, 서울 가구 중엔 백에 여섯이 반지하다. 그곳에 깃든 어둠을 볕 좋은 집에 사는 이들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소설은 쓴다. 소설 주인공은 집안 가득한 곰팡내를 지우기 위해 카레를 끓인다. 누가 냄새 없애려 카레를 끓인다고 상상하겠나.

 

▶반지하·옥탑방·고시원을 합해 ‘지옥고’라 한다. 한국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상징하는 어휘다. 그중에도 반지하는 최악으로 꼽힌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기택네 반지하의 벽지는 곰팡이와 물때로 얼룩져 있다.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고 도로의 매연과 소음, 노상 방뇨 악취가 들어오기 때문에 창문은 닫아 둔다. 습하고 환기가 안 되니 벌레도 꼬인다. 요즘은 반지하라도 깨끗한 집이 많다. 하지만 본질적인 열악함은 피하기 어렵다.

 

▶반지하살이 최악의 고역은 침수 피해다. 계단을 타고 내려와 집안을 물바다로 만든다. 화장실에선 오수가 역류한다. ‘기생충’의 기택네 식구들은 소독차가 동네에 나타나면 창문을 닫지 않고 활짝 연다. 해충에 시달리느니 잠시 소독 가스 참기를 택한 것이다. 그렇게 버텼지만 홍수로 물이 목까지 들어차자 세간도 건지지 못하고 탈출한다. 외신은 이번 물난리를 보도하며 ‘banjiha’(반지하)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naeronambul(내로남불)에 이어 씁쓸한 한국 단어가 하나가 더해졌다.

 

▶8일 밤 집중호우가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덮쳐 40대 엄마와 초등학교 6학년 딸, 장애를 앓던 엄마의 언니가 목숨을 잃었다. 사고 4시간여 전,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에게 보낸 아이의 문자가 알려지며 많은 이가 눈물을 쏟았다. ‘할미 병원에서 산책이라두 하시면서 밥도 드시고 건강 챙기시구요. 기도도 많이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계셔요.’

 

▶기도한다는 건, 꿈이 있다는 뜻이다. 아이는 모아 쥔 두 손으로 할머니의 건강한 귀가를 기도했다. 장차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는 미래도 꿈꿨을 것이다. 엄마도 한 달 전 언니 침대와 아이 책상을 새로 장만했다. 가족의 행복한 앞날을 소망했다는 뜻이다. 그날 불행을 당한 이들이 있던 자리가 내 자리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꿈을 피우지 못하고 시든 이 가족의 비극이 더 반복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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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JIHA’

 

지난 밤 집중호우로 서울 관악구 반지하 주택이 폭우로 침수되면서 일가족 3명이 갇혀있다는 신고가 접수 됐지만 결국 일가족 전원이 사망했다. 9일 사고가 발생한 주택 주변에 가재도구가 어지럽게 널려있다. 홍진환 기자

 

수도권과 중부 지방을 강타한 기록적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참변을 당했다. 물이 급격히 들어차는 반지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40대 자매와 13세 소녀가 목숨을 잃었다. 자매 중 1명은 발달장애인이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또 다른 반지하 주택에서도 50대 여성 1명이 사망했다.

반지하에 거주하던 수해 희생자들은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을 것이다. 밀려드는 공포와 절망 속에서 몸부림쳤을 것이다. 신림동의 이웃 주민들이 방범창을 뜯어내려 팔을 걷어붙였지만 끝내 이들을 구하지 못했다. 수압 때문에 현관문조차 열리지 않는 반지하에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다 숨진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주거용 반지하는 일부 불법 개조 건축물 외에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열악한 생활공간이다. 햇볕이 부족하고 환기도 잘 안되는 눅눅한 환경에서 거주자들은 습기와 퀴퀴한 냄새, 곰팡이, 벌레와 싸워야 한다. 외부 보안이 취약하고 폭우 시 물에 잠길 위험도 크다. 외신들은 ‘banjiha’를 고유명사처럼 쓰면서 한국의 폭우 피해를 전하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이번 참사에 대해 “영화 ‘기생충’ 속 폭우 장면을 연상시키지만 결말은 더 최악”이라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반지하에 사는 가구 수는 32만7320가구(2020년 기준)에 이른다. 이 가운데 60% 이상이 집값이 비싼 서울에, 서울 내에서도 침수 피해가 잦은 관악구와 동작구 등지에 몰려 있다. 수백만 원의 보증금조차 버거운 사람들이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호화 아파트와 마천루가 들어선 세계적 도시 서울의 어두운 그늘이다.

최소한의 안전조차 담보할 수 없는 반지하의 열악한 상황을 이대로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의 피해는 앞으로 더 커지고 잦아질 것이다. 신림동 일가족이 당한 참변이 되풀이되지 말란 법이 없다.

서울시는 어제 주거 목적의 반지하 사용을 전면 불허하고 기존 반지하는 순차적으로 없애거나 창고, 주차장으로 전환토록 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개선책 마련을 약속했다. 이번에는 말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속도감 있는 이행과 함께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확보 등 주거 대안도 함께 제시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의 국민이 반지하 주택에 갇힌 채 목숨을 잃는 비극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동아일보(2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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