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시진핑·김정은과 어깨 맞댄 대한민국의 미래]
[자주파·동맹파는 없다]
푸틴·시진핑·김정은과 어깨 맞댄 대한민국의 미래
[강경희 칼럼]
한·중 수교 30년, 러시아 수교 32년
사회주의 경제 실패 딛고 호전적 존재감 과시하는 양국 지도자
이 엄중한 전환기에 대통령은 무엇이 중요한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노동개혁을 강조하면서 “독일에서 노동개혁 하다가 사민당이 정권을 17년 놓쳤지만 독일 경제와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개혁을 했다”고 언급했다. 노동개혁으로 독일 경제를 되살린 건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남다른 업적이다. 그런데 올해 78세의 슈뢰더는 20년 전 업적에 대한 긍정 평가는 거의 상실하고 노후 망신살을 사고 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과한 우정 때문이다. 푸틴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퇴임 후에도 이런저런 자리와 편의를 제공받고 그를 옹호했다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거센 비난을 샀다. 전직 총리에게 주어지던 각종 권리를 독일 의회에서 박탈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슈뢰더의 업적뿐 아니라 과오가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2000년대 초반 푸틴과 슈뢰더의 친분은 꽤 정의롭게 출발했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까지 가세해 독·불·러 정상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反戰) 연대로 활약했다. 1999년에 총리, 2000년에 대통령이 된 푸틴은 당시에는 정상 지도자의 면모를 보였다. 구소련 붕괴 후 파탄 났던 러시아 경제는 푸틴 집권기에 에너지 가격 상승에 힘입어 회복세를 보였다. 그 덕에 지지를 얻고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고는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의 지도자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2008년 대통령 연임을 마치고 권력 연장 꼼수를 썼다. 총리를 4년 하고 다시 대통령이 됐고 개헌을 통해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부정 선거 논란, 정적과 언론인 암살 의혹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러시아 역사를 후퇴시키며 24년째 집권 중이다. 이 독재자는 구소련의 영광을 외치며 이따금 ‘침략 이벤트’로 국민을 열광시키는 위험한 리더십으로 권력을 유지한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변한다. 권력자는 더더욱 쉽게 변한다. 국력과 지도자에 의해 국제 질서의 세력 균형도 유기체처럼 변한다. 변화를 직시하고 제때 대응하지 못하거나, 대응력 없는 나라는 국민의 운명이 비참해진다. 22년 전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될 때만 해도 이토록 장기 집권하면서 국제 질서를 뒤흔들 것으로 누구도 예상 못했다. 더 극적인 변화는 중국에서 일어났다.
지난 24일로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았다. 러시아와는 그보다 2년 앞서 수교가 이뤄졌다. 미·소 냉전이 종식되고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이 바뀌는 전환점을 놓치지 않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북방 외교를 개척했다. 그로부터 30년, 국제 질서는 다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세계 지도를 펴면 대한민국이 처한 지정학적 운명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1980년 중국의 1인당 GDP는 남미의 10분의 1 수준인 300달러였다. 영리한 실용주의 노선으로 빗장을 열고 세계 자유 무역 질서에 편승해 경제력을 키웠다. 2019년 중국의 1인당 GDP가 1만달러를 넘었고, 작년 GDP 규모는 미국의 77%에 도달했다. 2013년 집권한 시진핑 주석은 세계 2위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키우며 근육을 실룩거린다. 홍콩 민주화를 탄압하고 대만 통일을 공공연히 천명하면서 건국 100주년인 2049년의 중국몽으로 달려간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 중국도 국제 질서에 평화롭게 편입될 것이라는 가정이 헛된 기대라고 판단한 미국이 중국 제재에 나섰다. 중국과 한국 경제가 동반 성장하던 시절도 끝나간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역사를 되짚어보면 북·중·러 지도자의 호전성이 이처럼 동시에 높아진 때가 6·25 전쟁 이후 또 있었나 싶을 정도다. 6·25 전쟁은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 북한 김일성의 3인방 하에서 일어났다. 사회주의를 구현하고 독재 권력을 장기화하기 위해 집단 학살, 침략도 서슴지 않았던 호전적 지도자들이다. 공교롭게도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제2의 스탈린’ 푸틴, 마오쩌둥의 100년 중국몽을 외치는 시진핑, 3대 독재 세습의 북한 김정은·김여정 남매가 우리 머리 위에서 동시 다발로 으르렁댄다.
홍콩 민주화 투쟁, 코로나 팬데믹과 중국 공급망 붕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만해협 위기 등 일련의 국제 정세를 겪으며 각국이 미몽에서 깨어나듯 현실 정치로 복귀하고 있다. 부국강병이라는 고전적 과제, 그리고 국민이 자유롭고 공정한 나라에서 보호받는다는 국가 정체성과 심리적 국력 지수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법치와 공정이 흔들리고, ‘우리는 작은 나라’라고 머리 조아리고, ‘삶은 소대가리’ 욕을 먹어도 짝사랑을 멈추지 않던 정권을 유권자 절반이 멈춰 세운 건 이 엄중한 시대를 반듯하고 믿음직한 리더십으로 헤쳐 나가달라는 기대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소소한 인연에 집착하고 사소한 실수를 거듭하며 집권 초반기 아까운 시간을 넉달이나 흘려보냈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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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파·동맹파는 없다
외교부에 지난 22일 원포인트 인사가 있었다. 1급 다자외교조정관에 박용민(56) 전 일본 센다이총영사가 임명됐다. 박 조정관은 노무현 정부 때 이른바 ‘자주파·동맹파’ 논란에 얽힌 외교관 중 하나다. 2004년 북미3과 차석이었던 그는 과장 등과 술자리에서 당시 청와대 386인사들의 대미(對美)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동맹파’ 꼬리표가 붙었다. 누군가 이 사석 대화 내용을 청와대에 투서해 ‘자주파’의 타깃이 됐다.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외교부 전경./이명원 기자
십 수 년 전 일이지만 꼬리표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그는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센다이총영사로 발령이 났다. 중요하지 않은 공관은 없다. 그러나 이미 다른 나라 대사와 본부 국장직을 마친 그의 센다이행 발령에 “어째서?”라는 반응이 나왔다. 특히 당시 댓글 조작범인 ‘드루킹’이 공범자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제안에 ‘그런 데는 못 간다’며 거부한 자리가 센다이총영사였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였다. 많은 외교관이 안타까워했다. 그랬던 박 조정관이 지난해 귀국해서도 마땅한 보직을 받지 못하다 이번에 북미·북핵·유엔·중동 아프리카 근무 경력을 인정받아 다자외교조정관이 된 것이다. 같은 꼬리표를 달았던 2004년 당시 조현동 북미3과장은 돌고 돌아 올 5월 외교부 1차관이 됐다.
한 원로 외교관은 “더는 자주파, 동맹파 논란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둘로 쪼개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했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짜인 21세기 외교 현실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단순하게 편을 갈라버리면 억울한 피해자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MZ세대 한 외교관에게도 물어보니 “외교 정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과 의견이 있고, 상황에 따라 기존 입장이 조정될 수도 있는데, 너는 무슨 파라고 낙인찍으면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어려워져 조직이 활력을 잃고 병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 외교관은 “아무리 공무원이라고 사석에서 한 말까지 문제 삼고 응징하는 것은 과한 것 같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워싱턴 외교가에서 “너무 성급해 미국과 엇박자가 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올인’하다시피 추진한 게 대북 정책이다. 이때 실무를 맡은 외교부 북핵 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올 3월 대선 결과가 나왔을 때 이들 중 몇몇은 “이제 귀양살이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자신들이 대폭 물갈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거의 대부분은 현재 용산 대통령실과 외교부 본부에서 여전히 북핵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업무의 연속성과 개인 능력을 평가해 낸 인사였다고 한다. 무슨 색깔이나 누구 사람 꼬리표를 붙이지 않은 것이다. 이제 우리 외교에서 자주파, 동맹파 같은 말은 사라졌으면 한다. 굳이 있다면 ‘국익파’ ‘상식파’가 있으면 되지 않을까?
-노석조 기자, 조선일보(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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