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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減稅는 죄가 없다] [사상 최저 찍은 英 파운드] [수에즈 운하]

뚝섬 2022. 10. 8. 05:22

[減稅는 죄가 없다]

[사상 최저 찍은 英 파운드]

[수에즈 운하]

 

 

 

減稅는 죄가 없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리즈 트러스 신임 영국 총리는 ‘제2의 마거릿 대처’를 지향한다. 9월 말 트러스 행정부는 대담한 경제 회생 방안을 발표했다. 에너지 대란 수습을 위해 기업·가계에 막대한 보조금을 준다고 했고, 5년간 450억파운드(약 72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감세안도 내놓았다. 경기 부양 의지가 담겨 있다. 세금 부담이 줄어 원자재 공급을 늘리는 투자가 이뤄지면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봤다.

 

그러나 결과는 ‘자살골’이다. 영국 국채 투매가 벌어져 국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파운드화 가치는 역대 최저치로 추락했다. 줄어든 세수(稅收)를 벌충하려고 영국이 국채를 대량으로 찍으면 재정 파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공포가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열흘 만에 대규모 감세안을 철회했다. 때를 만났다는 듯 국내외 좌파 성향 언론은 감세안을 집중 타격했다. 부자와 기업에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이 경제를 망가뜨린다는 식의 맹폭이 가해졌다.

 

그러나 영국이 수렁에 빠진 건 감세 자체가 문제라서가 아니다. 빚에 허덕이는 나라 살림에 지나친 과부하를 줬다가 제 발등을 찍은 것이다. 영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채무는 2001년에는 33.9%였지만 2021년에는 102.8%로 급격히 늘었다. 정부가 20년 연속 적자를 봤다. 작년 한 해 재정 적자만 우리 돈으로 300조원에 달한다.

 

빚투성이 나라에서 재정 수입이 대거 줄어들 것이라는 예고가 나온 데다, 다른 분야에서 씀씀이를 줄이겠다는 대책도 내놓지 않아 전 세계 ‘큰손’들의 불신을 샀다. 게다가 달러 폭주 시대를 맞아 파운드화 체력이 바닥났다는 점을 간과했다가 역습을 당했다. 금리를 높이고 통화량을 줄이는 시기에 무모하게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엉뚱한 타이밍에 지나친 규모로 감세를 하겠다며 과잉 의욕을 보였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건강에 좋은 우유도 배 속이 더부룩한 날 많이 들이켜면 배탈이 나는 것과 비슷하다.

 

감세는 선진국에서 우파 정부가 약방의 감초처럼 내놓는 정책이다. 좌파 정부가 세율을 높이면 우파가 정권을 되찾아 다시 낮춰 놓는 시소 게임은 역사의 필연적인 흐름이다. 세계 각국이 기업 유치 경쟁을 벌이면서 2000년대 들어 선진국 법인세율은 추세적으로 낮아지고 있기도 하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 분석에 따르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 법인세율은 2006년 27.7%에서 2019년 23.2%로 하향 조정됐다.

 

영국의 헛발질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감세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평소 많은 나랏빚에 허덕이면 경제 위기가 다가올 때 꺼낼 수 있는 정책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파운드화 대란’에서 감세안은 영국 경제의 여러 고질병을 한꺼번에 노출시킨 방아쇠였을 뿐이다. 감세 자체가 죄악시되어서는 안 된다.

 

-손진석 기자, 조선일보(22-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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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저 찍은 英 파운드

 

영국 파운드화는 미국 달러,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유로, 일본 엔화에 이어 4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통화다. 그러나 영국은 경제력으로는 독일보다도 작아 유로존 전체에 큰 격차로 뒤떨어지고, 일본처럼 세계 최대 순채권국도 되지 못해 파운드화는 달러 가치 변동에 유로나 엔화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1파운드는 1940년만 해도 4.03달러에 고정돼 있었다. 1949년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30% 절하돼 2.8달러에 거래됐다. 1960년대 파운드화는 절하 압력을 받아 2.4달러까지 내려갔다. 가장 큰 위기는 1976년에 일어났다. 노동당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로 적자가 커졌다. 금융시장은 파운드화가 과대평가돼 있다고 봤다. 노동당 정부는 파운드화 가치의 자유 낙하를 허용하든가 아니면 긴축을 약속하고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고 결국 후자를 택했다.

▷파운드화는 1985년 1.03달러까지 떨어져 바닥을 쳤다가 보수당 마거릿 대처 총리의 통화주의 정책이 뒤늦게 효과를 보면서 1989년에 1.7달러까지 올랐다. 대처는 1990년 파운드화의 안정을 위해 유럽환율메커니즘(ERM)에 가입했다. 그것은 1파운드를 2.95마르크 주변에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영국 정부가 보유 외환을 풀어 인위적으로 환율을 유지하는 걸 눈치 챈 투기세력의 공세로 환율이 치솟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그것이 1992년 9월 16일 ‘검은 수요일’이다. 영국은 ERM에서 탈퇴했다.

 

파운드의 가치가 26일 1.03달러로 폭락했다. 역사상 최저치인 37년 전 1985년과 같은 기록이다. 연초만 해도 1.35달러였으나 연말쯤에는 가치가 더 떨어져 1파운드=1달러 시대가 오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파운드화 폭락은 보수당 리즈 트러스 정부의 대규모 감세안 때문이다. 경제성장을 위해 감세안을 내놓았지만 금융시장은 1970년대 노동당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정책과 마찬가지로 재정 악화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파운드화를 내다 팔았다.

영국이 다시 IMF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국채금리가 유로존의 병자(病者) 국가인 이탈리아나 그리스보다 높아졌다. 국가부도 위험이 그만큼 더 높아졌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 때의 늘어난 재정을 유지하고 거기에 더해 감세 정책까지 펴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무역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외인(外人)들이 원화를 팔아치우는 공세가 시작되면 그것이 퍼펙트 스톰이다. 한국 같은 나라가 대비하는 길은 국가부채를 평소 낮게 유지하고 외환보유액을 쌓을 수 있는 만큼 많이 쌓는 것밖에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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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운하

 

[차현진의 돈과 세상]

 

제1차 세계대전의 주된 싸움터는 유럽이었다. 그나마 스페인은 전쟁에 끼어들지 않았고, 그리스와 미국은 마지막에 아주 살짝 발을 담갔다. 그러니까 ‘세계대전’이라는 표현은 지나치다. 처음에는 그냥 ‘대전(Great War)’이라 부르다가 2 세계대전이 끝난 지금의 이름이 붙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별명은 “모든 전쟁을 끝낸 전쟁”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그 전쟁을 마무리하는 1919년 파리강화조약은 패전국 독일에서 극우파 나치가 부상하여 제2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게 했다. 오늘날 중동 문제도 그때 싹텄다. 돈이 궁했던 영국 정부가팔레스타인 지역의 유태계 독립국가 설립을 지지한다 밀서를 통해 유태계 자본가들을 유혹했다. 밸푸어 선언(1917년)이다. 그것은, 17세기 말 프랑스와 전쟁하려고 영국 정부가 상인들에게 돈을 빌리면서 그들이 세우는 영란은행에 발권 독점권을 준 것과 똑같은, 물밑 거래였다.

 

밸푸어 선언대로 1948 이스라엘이 건국하자 주변 아랍국들이 즉각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제1차 중동전쟁이다. 이스라엘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자 이집트 국민은 정부의 무능함에 분노했다. 현역 중령 나세르가 왕정을 무너뜨리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고 아랍 세계의 각성과 단결을 촉구했다. 

 

나세르가 주도하는 아랍 민족주의가 불안했던 이스라엘이 이번에는 이집트를 선제 공격했다.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이다. 나세르도 가만 있지 않았다. 이스라엘 편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수에즈 운하를 빼앗아 국유화했다. 그리고 미국과 소련에 “운하를 계속 이용하고 싶으면,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을 주저앉히라”고 요구했다. ·소의 중재로 전쟁은 멈추고, 영국과 프랑스는 운하만 잃었다.

 

1859년 9월 25일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었다. 1970년 오늘 그 운하를 국유화한 나세르가 사망했다. 그는 없지만, 중동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조선일보(2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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