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私心은 나라를 어떻게 망가뜨리나]
[산업화와 민주화 너머, 공화혁명으로]
私心은 나라를 어떻게 망가뜨리나
‘경영의 神’ 이나모리 가즈오, 공공의 善 앞세운 것이 비결
한국,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공적 가치 훼손 풍토 근절해야

<YONHAP PHOTO-2762> 김원웅 비리 의혹 수사 중인 검찰, 광복회 압수수색(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김원웅 전 광복회장의 횡령 혐의를 수사하는 서울서부지검이 광복회 사무실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 중인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광복회관 모습.
국가가 일어서고 쓰러지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본지에 연재 중인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에 지난주 소개된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 바이츠만의 건국 이야기를 읽다가 그 생각을 다시 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화약 연료로 쓸 아세톤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한 생화학자 바이츠만에게 영국 정부가 보답하려 했지만 유대인이었던 바이츠만은 사적 보상 대신 유대 국가 건설을 도와달라고 했다는 얘기다. 이스라엘 건국은 유대인 공동의 열망이 이룬 결실이다.
좋은 조직은 공동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발전시킨다. 지난여름 타계한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 교세라 명예회장의 전기 ‘마음에 사심은 없다’는 생전에 ‘경영의 신’으로 불린 그가 교세라를 세계 100대 기업으로 키운 비결을 다뤘다. 이나모리 경영철학의 핵심은 ‘인생·일의 성과=가치관X열의X능력’이라는 ‘인생 방정식’이다. 셋의 관계는 덧셈이 아니라 곱셈이어서 하나라도 마이너스(-)이면 전체가 마이너스가 된다. 이 셋 중에 가치관 항목을 가장 중시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책에 소개돼 있었다.
10여 년 전, 이나모리는 파산 직전의 일본항공(JAL) 회장으로 영입돼 1년 만에 흑자 회사로 돌려놓았다. 재임 중 그가 반복해 강조한 것이 임직원의 사심 없는 헌신이었다. 조직에 요구했을 뿐 아니라 자신도 실천했다. 그는 일등석을 마다하고 이코노미석에 앉는 최고경영자였다. 옆자리 승객이 짐을 선반에서 내릴 땐 승무원이 되어 팔을 걷었다. 승객들이 알아보고 “혹시 이나모리 회장 아니냐?”며 놀라워했다. 집에는 주말에만 갔다. 쌓인 빨랫감을 들고 퇴근했고 월요일 출근할 때 1주일 치 셔츠를 싸서 집을 나섰다. 회삿돈 10만원 아끼는 직원을 발견하면 남들 보는 앞에서 칭찬했다. 그런 행동에서 공공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의 실패 이유로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공적 가치의 훼손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로남불도 결국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적 가치에 눈감는 행태였다. 정유라씨 대입은 불법이라고 모질게 비판하더니 정작 자기 자식은 꼼수 써서 대학 보낸 이가 전 정권의 법무장관이었다. 항일 투사처럼 행동하던 전직 광복회장은 과대 포장된 모친의 전기를 만드는 데 공금을 썼다. 광복회장이란 공적 지위를 각종 이권 사업에 활용했고, 광복회 명의의 포상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집권당 연줄로 국정원 산하 기관에 취업한 인사는 사무실을 개인 공간으로 꾸미고 외부인을 불러들여 술 파티를 벌인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한 지방자치단체장은 수사 기밀을 받는 대가로 무고한 공무원을 좌천시킨 죄목으로 얼마 전 1심 유죄 판결을 받았다. 판결문에 ‘개인의 이익을 위해 범행에 가담했다’고 돼 있다. 전직 대통령 부인은 수많은 옷과 장신구 산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불분명하고 외유성 순방 논란에도 빠져 있다. 모두 우리 사회가 소중히 지켜야 할 공적 가치를 내팽개친 처사다. 이런 행위는 단지 돈 몇 푼 낭비로 그치지 않고 나라든 회사든 조직의 총체적 역량을 갉아먹는다.
민주주의 발상지인 고대 아테네 공직자들은 무보수로 봉직했다. 그런데도 시민들은 봐주는 게 없었다.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하지 않는 것은 기본 덕목이었고, 공직자가 공적 자원을 부적절한 사업에 투입해 국가에 손해를 끼쳐도 처벌했다. 시민이 참여하는 공화정은 그래야 유지된다고 여겼다. 대한민국 건국 후 70여 년간 몇 차례 도약이 있었다.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면 공공의 가치를 훼손하는 자들이 두 번 다시 타인을 위해 일하는 자리에 앉지 못하는 풍토를 정착시켜야 한다. 성장률 높이고 취업난 해결하는 것 못지않게 이 정부의 중요한 과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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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와 민주화 너머, 공화혁명으로
正義에 기초한 公共性이 공화혁명의 '영혼'…
군주 같은 청와대의 군림, 대통령에 대한 비판 봉쇄, 중앙·지방권력 獨食은 모두 공화정 위협
6·13 선거에서 보수정당들은 궤멸하였다. 하지만 이번 선거의 의미는 보수 참패·진보 약진 그 너머를 가리킨다. 보수·진보가 부침(浮沈)을 거듭하는 선거 결과의 표층(表層) 밑에 거대한 심층적 흐름이 약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암이 지각 판을 깨트리는 것처럼 새로운 시대정신이 낡은 잔재를 휩쓸어간다. 공룡으로 퇴화한 보수정당들은 소멸의 징후 앞에 넋이 나간 상태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수구를 심판한 선거 충격도 외면한 채 퇴행적 행보로 일관하고 있다.
진보의 미래를 장밋빛 꽃길로 보는 것도 큰 착각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 민주당은 이제야 역사의 시험대 앞에 섰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로 수구 세력이 퇴출됨과 동시에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정치적 기저 효과도 끝났다. 이제 모든 국정 책임은 오롯이 문재인 정부의 몫이다. 민생과 나라가 어려워질수록 화살은 문 정부로 쏟아질 수밖에 없다. 민생 경제가 나빠져 가는 상황에서 '진보집권 20년론'은 안일한 소망 사고에 불과하다.
작금의 보수 몰락·진보 득세는 심층적 구조 변화의 산물이다. 1960~80년대 한국 사회의 30년을 이끈 시대정신이 산업화라면, 1990~2010년대 30년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다. 물론 1960년대 이래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정신은 끊임없이 상호 경합해 왔다. 경제발전에 총력을 쏟을 때조차 민심은 민주주의를 중시했고 발전된 민주주의도 경제성장을 필수로 여겼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취는 참으로 경이로워서 한국적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한국적 산업혁명의 성과는 박정희 시대를 찬란한 신화로 기억하게 하였다. 한국적 민주혁명의 강력함은 박근혜의 퇴행을 심판한 2016~17년 촛불이 증명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현대사의 씨줄과 날줄로서 한국인의 삶을 교직(交織)한 시대정신이었다. 그러나 이젠 산업화와 민주화의 적대적 대립을 넘어 새로운 시대정신을 발굴해야 한다.
불세출의 보수 경세가였던 고(故) 박세일 교수의 선진화 담론은 선구적이었지만 정교하지는 않았다.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의 성과를 승화시킬 미래의 대안은 단연 공화혁명에 있다. 202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공화혁명의 시대정신이 압도할 것이다.
공화주의의 핵심은 공공성이다. 공화국(republic)이란 말 자체가 공적 가치(res publica)에서 나왔다. 자유시민의 나라인 공화정의 최고 덕목은 정의(正義)일 수밖에 없다. 정의에 기초한 공공성이야말로 공화 패러다임의 영혼에 해당한다. 정의와 국리민복을 배반한 보수정당들을 성난 민심이 초토화한 게 이번 선거 결과다. 이들이 공공을 위해 봉사하기는커녕 시대착오적인 천민자본주의와 냉전반공주의로 기득권을 지키는 데 바빴기 때문이다. 비민주적인 데다 반(反)공화적인 이들의 작태는 공동체를 위한 솔선수범이라는 보수의 양식(良識)과도 정면충돌했다.
법치주의는 공화혁명의 기둥이며 권력분립과 세력균형은 공화정의 시금석이다. '살아 있는 권력'이 법 위에 서는 현실은 공화정에 치명적이다. 이는 공화국을 '왕이 없는 나라'에 비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왕적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 '진보 대통령 문재인'의 청와대가 내각과 민주당 위에 군주처럼 군림하는 현실은 명백한 자기모순이다. 부분적 공론화를 거쳤다고는 해도 탈원전같이 논란 많은 국가 에너지 정책을 대통령 결단만으로 강행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과연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다. 문 대통령 개인에 대한 높은 지지도를 명분으로 대통령에 대한 비판 자체를 금기시하는 지지층의 행태는 일체의 정치적 성역(聖域)을 부인하는 공화정을 위협한다.
공화정은 다양한 세력들이 공공선을 두고 경쟁할 때 살아 움직인다. 정의와 공공성이 함께하는 공화의 삶이야말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선 제3의 지평을 지향한다. 한 세력이 민주주의의 논리로 권력을 독점하는 것은 나라의 장래에 해롭다. 문재인 정부가 중앙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독식한 현실은 우리 공화정에 좋은 소식이 못 된다.
중우정치로 폭주해 자멸해버린 고대 아테네 민주정의 증언처럼, 민주주의가 항상 정당한 건 결코 아니다. 민중의 독주를 견제할 공화정이 민주주의를 견인해야 마땅하다. 산업화와 민주화 너머, 백척간두 진일보해야 할 때다. 절박한 역사의 시간이다. 창대한 공화혁명의 시대가 대한민국을 기다리고 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조선일보(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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