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변해야 한국이 산다]
[中 “미국은 규칙 파괴자”… 그런 말할 자격이나 있나]
중국이 변해야 한국이 산다
[朝鮮칼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AP 연합뉴스
미국 정치학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1997년의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우크라이나를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세력 균형 축으로 정의하면서, 우크라이나 없는 러시아는 유라시아의 제국이 될 수 없고 미국이 러시아에 맞서려면 우크라이나를 필히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25년 후 푸틴 대통령은 구소련 영토 복원을 통한 ‘위대한 러시아 재건’을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의 기치를 올렸다. 필자가 친분 있는 러시아 교수에게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러시아 역사 교과서에 ‘위대한 러시아를 재건한 영웅’으로 기록되기 위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무너진 과거의 제국을 복원하려는 열기는 러시아 국경 너머 중국에서 더욱 뜨겁다. 중국 공산당은 아시아의 패권국이던 옛 중화 제국 부활을 꿈꾸면서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국가적 목표로 천명했다. 미국을 추월해 패권국이 되려는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고자, 중국은 일본 열도에서 대만, 필리핀을 거쳐 남중국해 전체를 에워싸는 전략적 경계선을 설정하고 2020년대 중반까지 미국 군사력을 그 선 밖으로 축출해 동아시아의 패권자로 등극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고 있다.
중국은 이 경계선을 ‘제1 도련선’이라 부르는데, 그 안쪽에 있는 한국, 대만, 남중국해는 중화 패권주의의 우선 공략 대상이다. 러시아가 제국 부활을 위한 첫 단계로 구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를 삼키려 하듯이, 중국이 미국을 제1 도련선 밖으로 축출하고 패권을 장악하려면 옛 중화 제국의 ‘속방’이던 한반도와 동남아 조공국들이 우선적 ‘수복’ 대상이다.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하면서 “한국은 과거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한 것은 그러한 중국의 속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중국의 고압적 사드 제재, 남중국해 불법 점유, 대만 침공 움직임도 그런 대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
2020년 이래 진행 중인 호주와 중국의 경제 제재 공방전은 중국이 호주를 장악하기 위해 정계, 재계, 언론계, 학계에서 벌인 은밀한 포섭과 매수 활동, 중국계 경제인과 유학생을 동원한 스파이 활동, 공자학원을 통한 공산 체제 선전 활동, 화웨이를 통한 통신 해킹 의혹 등이 원인이었다. 호주 정부가 척결에 나서자 중국은 강력한 무역 제재로 압박했고, 호주는 경제적 손실에도 주권 수호 차원에서 이에 정면 대응했다. 중국의 이런 불법 공작 활동은 미국, 영국, 일본, 대만, 필리핀 등에서도 확인되었다.
중국의 소리 없는 침공은 한국에서도 주권과 안보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 사드 제재, 방공식별구역 침입, 배타적경제수역 침범, 일방적 서해 작전경계선(동경 124도) 설정과 실사격 훈련 등을 통해 한국의 주권과 안보를 부단히 잠식하고 있다. 6·25전쟁에 135만 병력을 파병해 통일을 저지하는 등 북한의 대남 무력 도발과 핵무장을 일관되게 비호해 왔고, 밀무역을 통해 유엔 대북한 제재 조치 무력화에 가장 앞장서 온 것도 중국이다.
한국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와 각계의 친중 세력, 중국인 투표권자 10만명,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받는 공자학원 23곳 등을 매개로 하는 여론 조작과 국내 정치 개입도 심각한 경계 대상이다. 과거 힘없던 시절 국내 정치 불간섭 원칙에 집착하던 중국은 강대국이 되자 표변해 각국 국내 정치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다행히도 대다수 한국인의 의식은 그러한 위기 앞에 깨어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2022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대중국 비호감도는 80%로 세계 5위이고, 그중 54%가 ‘중국의 국내 정치 관여’를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이는 조사 대상 선진 19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우리가 중국의 최근 행태에 특별히 큰 경각심을 갖는 것은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 지향하는 반역사적, 반문명적 퇴행성 때문이다. 40년 개혁 개방에서 일탈해 제국주의적 팽창과 교조적 공산국가로 역주행하는 데 매진하는 중국을 곁에 두고 있는 한, 과거의 호혜적 한중 관계는 물론 평화도 비핵화도 통일도 기대할 수 없고, 주권 보전조차 위태로울 뿐이다. 국민은 이미 깨어 있으니, 이젠 정부와 정치권도 잠에서 깨어나 중국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국제사회에 힘을 보태야 할 때다. 중국이 변해야 한국이 산다. 경제적 손실을 핑계로 중국 눈치 보며 침묵해 온 모호성의 시대는 그만 접어야 한다.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대사, 조선일보(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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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미국은 규칙 파괴자”… 그런 말할 자격이나 있나
왕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 겸 외교부장은 12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화상회담에서 미국의 반도체·과학법, 인플레이션감축법과 관련해 “미국은 국제 규칙의 건설자가 아닌 파괴자임을 재차 입증했다”며 “그런 일방적 괴롭힘에 함께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자 외교회담에서 제3국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그 내용을 버젓이 발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중국이 한중 회담에서 우리 동맹인 미국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은 외교적으로 매우 무례한 행태다. 양자 회담에서 제3국을 겨냥한 논의가 오갈 수 있지만 적어도 대외 공개는 자제하거나 에둘러서 표현하는 것이 통례인데, 중국은 그런 외교적 상식조차 무시하고 있다. 더욱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같은 경제적 강압행위로 자유무역 질서를 교란시켜 온 중국이다. 그런 중국이 ‘규칙 파괴자’ 운운하며 남을 탓하는 것부터가 아이러니다.
왕 부장의 발언은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입법을 비난하고 한국에도 은근히 압력을 행사하면서 한국과 미국 사이를 갈라치기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은 모두 반도체나 전기차 산업의 미국 유치를 장려하면서 중국에의 투자나 중국산 원자재 사용을 규제하는 대중 견제용 입법이다. 한국 기업에도 피해가 적지 않아 한미 간 마찰 요인이 됐지만 중국으로선 매우 불만스럽고 그 여파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간 자신들이 저지른 횡포들에 비춰보면 중국은 누구를 향해 삿대질할 자격이 없다.
중국은 최근에도 한국 드라마 방영을 하나씩 허용하면서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 해제에 대한 기대감을 낳게 했다. 하지만 이런 생색내기로 한국을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나아가 중국은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도 방관하며 김정은 정권을 비호하고 있다. 이래선 우리 정부나 기업의 탈(脫)중국 흐름을 가속화할 뿐이다. 특히 기업들로선 보다 신뢰할 수 있고 더 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곳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 중국은 국내시장을 적극 열고 외국기업에 불공정 게임을 강요하는 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
-동아일보(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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