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왕조’ 꿈꾼다는 金씨들]
[김정은 리스크]
‘영원한 왕조’ 꿈꾼다는 金씨들
2016년 10월 13일 태국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숨지자 북한은 김정은 명의의 조전(弔電)을 보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북은 덩샤오핑·카스트로 등 사회주의 지도자나 김대중·노무현·정몽헌 등 입맛에 맞는 한국 인사들의 부고에만 선택적으로 최고지도자 조전을 발송해 왔다. 태국은 북과 수교하긴 했지만 매년 미국과 연합훈련을 하는 미국의 우방이다. 미 국무장관을 지낸 올브라이트의 회고록에 이 의외의 조전에 대한 단서가 있다.

▶올브라이트는 2000년 10월 방북 당시 김정일과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했다. 올브라이트가 경제 개방 의사를 묻자 김정일은 “중국식 개방에는 관심이 없다”며 “왕권이 강력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경제도 발전시킨 태국 모델에 깊은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의 관심을 끈 게 태국의 경제인지 강력한 왕권인지 궁금하다고 썼다.
▶북한은 공화국을 표방하지만 세습 왕조 국가다. 김정일은 그래도 삼촌 김영주와 왕 자리를 놓고 경쟁했지만, 김정은은 김정일 와병 탓에 왕세자로 급조됐다. 동서고금 모든 왕조의 최대 관심사는 왕실의 영속이다. 가장 오래된 왕조는 일본 왕실이다. 기원전 711년 태어난 진무(神武)로부터 126대 현 나루히토 일왕까지 이어진다는 게 일본 주장이다. ‘만세일계’(萬世一系)라 한다. 2700년에 가깝다. 하지만 실권이 없는 일본 왕실은 김씨 왕조의 모델이 아닐 것이다.
▶푸미폰 국왕은 재위 기간이 70년 126일로 역대 3위다. 1위는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72년 110일), 2위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70년 214일)이다. 46년 집권한 김일성은 82세, 17년 집권한 김정일은 69세에 모두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다. 가족력이 이런데도 38세로 11년째 집권 중인 김정은은 고도비만에다 술·담배를 달고 산다. 북 만수무강연구소가 아무리 애를 써도 장수를 장담하기 어렵다.
▶총리 명의이긴 했지만 북은 2015년 3월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가 사망했을 때도 조전을 보냈다. 리콴유가 31년 통치한 뒤 ‘대타’ 고촉통을 거쳐 아들 리셴룽이 3대 총리를 맡고 있는 싱가포르 모델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2018년 미·북 정상회담 장소가 싱가포르로 정해진 데에도 이런 호감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그제 북한 노동신문은 올해를 결산하며 ‘노동당의 800년, 8000년 집권’을 언급했다. 김씨 왕조는 올해로 77년이다. 21세기에 국민을 굶겨 죽이는 왕조가 100년을 넘긴다면 세상에 정의가 없는 것이다.
-이용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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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 풍산개 파양 후 유기견 달력 판매. “중요한 것은 부끄러움에 꺾이지 않는 마음(중부꺾마).”
-팔면봉, 조선일보(2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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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리스크
1993년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났던 중국 외교관은 "당시 김일성이 '나는 핵 개발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과 핵무기로 경쟁할 생각이 없다'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나와 달리) '젊은이'는 핵 개발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젊은이는 아들 김정일이었다.
1994년 김일성 사망으로 등극한 김정일은 핵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遺訓)"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은 두 차례 핵실험(2006·2009년)을 했지만, 북한 체제 보장과 비핵화를 맞바꾸려는 협상 테이블에도 나왔다. 4자회담·6자회담 등이 '핵 개발을 위한 시간 벌기'라는 비판 속에서도 열렸다. 반면 김정은은 2011년 집권한 이후 자기 입으로 "비핵화"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핵 보유'를 헌법과 당 노선에 명시했고, 두 차례나 핵실험(2013·2016년)을 강행했다. 최근에는 '5차 핵실험'까지 지시했다. 핵 보유 의지에 관한 한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훌쩍 넘어섰다.
'공포정치' 방법도 김정은은 선대(先代)와 다르다. 김정일은 체제에 불만을 표시하는 일반 주민을 가혹하게 다뤘다. 그는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이라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을 때 '공개 총살'을 수시로 자행하며 민심을 통제했다. 대신 핵심 측근에게는 특권과 선물을 안겼다. 계급장을 뗐다 붙이기를 반복했지만, 함부로 측근을 죽이지는 않았다. 과거 동유럽의 독재자처럼 극단적 상황이 닥치면 측근을 중심으로 끝까지 버티겠다는 속셈이었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정반대다. 핵심 측근에겐 가혹하고, 일반 주민에겐 관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집권 5년 만에 벌써 측근 간부 130여 명을 숙청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측근이 뚜렷한 정치·정책적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개인감정과 변덕 때문에 왕조의 '유신(遺臣)'을 죽이고 있다. 대신 일반 주민을 위한다며 물놀이장과 스키장을 짓는 '애민(愛民) 쇼'를 펼치고 있다. 주민을 공개 총살했다는 소문도 과거보다 확실히 줄었다.
김정일이 좋아서 일반 주민을 공개 총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측근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주민에게 냉혹했고, 일부 측근만 중용한 것은 핵심 그룹의 응집력이 '김씨 왕조' 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요즘 북한에는 '칭병(稱病·병이 있다고 핑계)'하는 고위직이 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의 칼바람을 일단 피하고 보려는 모양새다. 일부 주민은 김정은의 '고위직 숙청'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에 위기가 닥쳤을 때 일반 주민이 김정은을 끝까지 지켜줄지는 미지수다.
김정은은 잇단 핵실험을 감행해 밖에서 닥치는 위기를 자초했다. 이런 와중에 측근들은 숙청 공포 때문에 몸을 숨긴다. 과거 몰락한 독재국가처럼 어느 순간 핵심 그룹도, 주민도 각자 살길 찾기에 바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 김정은의 손에 핵이 들려 있다. '김정은 리스크'가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안용현 정치부 차장, 조선일보(1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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