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개혁 각오’는 여의도 담장 넘을 수 있을까]
[격랑 속 반도체 산업, 활로 찾아야]
[정치 싸움에 빈껍데기 되어 가는 기업 투자 활성 법안]
‘대통령 개혁 각오’는 여의도 담장 넘을 수 있을까
[강천석 칼럼]
앞선 나라 ‘발견’하면서 祖國을 ‘재발견’하는 게 先進化
한 세기 걸려 興하고 亡하던 세계 시계 10년 單位로 바뀌어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영국밖에 모르는 사람은 사실 영국도 잘 알지 못한다’고 한다. 이 말은 세상 모든 나라에 적용해도 들어맞는다. 미국밖에 모르는 사람, 중국밖에 모르는 사람, 일본밖에 모르는 사람, 독일밖에 모르는 사람, 프랑스밖에 모르는 사람은 실제 자기 모국(母國)도 잘 알지 못한다. 물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물 밖에 나가봐야 우물 안이 좁은지를 안다.
‘조국’을 발견하려면 ‘조국’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봐야 한다. 방 안에 틀어박혀 선각자(先覺者)가 된 사람은 없다. 이승만(1875~1965)과 안창호(1878~1938)는 나라 잃은 백성으로 미국과 유럽을 떠돌며 나라를 빼앗긴 이유를 깨달았다. 바로 그 위 세대 선배가 유길준(1856~1914)이다. 조선 정부가 일본에 파견한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의 일원으로 바다를 건넜던 스물네 살 청년은 일본 개화 선각자 후쿠자와(福沢諭吉)가 세운 학교에서 1년 6개월을 배웠다. 일본을 배운 게 아니라 일본에 들어와 있던 서양 문명을 배웠다. 스물여덟에 대미(對美) 사절단에 합류했던 그는 다시 1년 6개월 미국을 공부했다. 그는 두 번의 외국 체험을 담아 1899년 ‘서유견문(西遊見聞)’을 펴냈다. 그러나 이미 글러버린 조선은 이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든 나라는 앞선 나라를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나라를 ‘재발견’한다. 약점은 보강(補强)하고 장점은 보전(保全)하며 세계 선두를 지향(志向)한다. 유길준이 ‘서유견문’을 펴내며 많이 참고했던 ‘서양 사정’의 저자 후쿠자와는 젊어서 네덜란드어를 공부하다 네덜란드 위에 영국과 미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영어로 방향을 틀었다.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두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두지 않았다’는 말로 시작하는 ‘학문의 권유’를 비롯한 ‘서양 사정’ ‘문명론의 개략(槪略)’은 근대를 향한 세 디딤돌이었다. 일본은 후쿠자와의 이야기에 귀를 열었다.
1831년 스물다섯 살 프랑스 젊은이가 왕당파(王黨派)와 공화파(共和派)가 피범벅이 돼 싸우는 조국을 등지고 미국을 10여 개월 둘러보고 쓴 책이 고전(古典)이 된 ‘미국의 민주주의’다. 글은 미국을 다루고 있으되 글 아래 어른거리는 것은 조국의 현실이다. 그로부터 40년 후 프랑스는 황제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는 굴욕을 겪는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자 한 영국 정치가는 피로써 피를 갚는 혁명의 앞날을 내다보고 의회민주주의와 점진적 개혁이라는 영국 가치의 보전을 역설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이라는 책에서 그가 예측한 대로 프랑스 혁명은 왕을 단두대에 올려 처형하고 1년 반 후 왕을 처형한 인물을 다시 처형하는 유혈(流血) 행진을 계속했다. 당시 영국은 그의 말을 경청(傾聽)했다. 그의 책은 1만7000권이 팔렸다. 요즘으로 치면 몇 백만 권이 팔린 셈이다.
1964년 12월 10일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루르 탄광지대를 찾았다.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문하기 위해서였다. 광부는 막장에서 일하며 한 달에 600마르크(당시 환율로 160달러)를, 간호사들은 알코올 묻힌 솜으로 사망한 사람 몸을 닦으며 번 돈 440마르크(110달러)를 모국에 보냈다. 이들의 송금액은 연 5000만 달러로 GDP의 2%에 해당했다. 대통령은 터져 나온 눈물로 말을 이어가지 못했고, 광부와 간호사의 흐느낌은 곧 통곡으로 변했다. 그곳에서 박 대통령은 세계 제2 경제 대국 서독을 ‘발견’하면서 가난한 조국을 ‘재발견’했을 것이다.
지금은 속도의 시대다. 한 세기에 걸쳐서 나라가 흥(興)하고, 망(亡)하던 시대가 아니다. 길어야 20년, 짧으면 10년 주기로 성쇠(盛衰)가 바뀐다. ‘이제라도 독일(경제)을 구출할 수 있을까’가 2003년 독일에서 출판됐는데, 2020년 ‘왜 독일은 (영국보다) 잘하는가’라는 책이 영국 베스트셀러가 됐다. 반대로 ‘왜 일본은 성공하였는가’라는 책이 1982년에 여러 나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을 읽고 일본 전공을 하게 된 오스트레일리아 학자가 항의하자 저자는 그 답변으로 1999년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라는 책을 또 써야 했다. 세계 시계는 훨씬 더 빨라졌다.
대통령은 ‘인기 없는 일이어도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을 이뤄내겠다’고 했다. 여의도는 앞서 가는 나라를 ‘발견’하지도 못하고 한국을 ‘재발견’하지도 못한 야당이 장악하고 있다. 대통령은 이 담장을 넘을 수 있을까. ‘대통령의 정당’도 ‘우물 밖’을 알고 있기나 한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려는 나라’는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순간을 맞는다. 국민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강천석 고문, 조선일보(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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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 속 반도체 산업, 활로 찾아야
[오늘과 내일]
산업구조 급변하는 시기
정부-기업 협업해 생존 모색해야
대만에서 반도체 산업은 ‘실리콘 실드’라고 불린다. 경제를 책임지는 것뿐 아니라 국가의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은 “만약 (양안)전쟁이 발생한다면 TSMC의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라고 했다. 대만을 공격한다면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무너지는 대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의미다.
그런 TSMC가 대만 안에서만 고집했던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미국에서 시작하는 것은 산업구조의 큰 변화를 상징한다. TSMC는 3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와 4nm 최첨단 공정 반도체 생산을 미국에서 하기 위해 6일(현지 시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장비 반입식 행사를 열었다.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물론 애플 팀 쿡, 엔비디아 젠슨 황, AMD 리사 쑤 등 미국 테크기업 CEO들이 총출동해 축제 분위기를 냈다. 하지만 모리스 창은 이날 “이제 세계화 시대는 거의 끝났다. 다시 돌아오지도 않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산업이 깊은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반도체 산업 부침은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 사건이다. 일본 사례에서 보듯 해당 국가 제조업 전반 부침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만 사례처럼 국가 안보와도 무관치 않다.
삼성전자도 격랑 위에 올라탄 형국이다. 반도체 사업 전반에서 여전히 중국 비중이 높아 전략적 선택에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TSMC를 따라잡기 위해 내놓은 3나노 반도체 파운드리 첫 고객사도 중국 코인 채굴 반도체 기업에 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찾아 미국산 장비로 채워진 최첨단 라인을 방문했을 때 한 전문가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바이든과 동등한 대접을 요구하며 같은 장소를 방문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과 중국 대립이 만들어낸 탈세계화가 결국 우리에겐 경쟁자인 두 나라 반도체 기업에 성장 기회를 주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SK하이닉스의 고민도 깊다. 과거 사례를 보면 침체와 호황을 거듭하는 메모리반도체 사이클 속에서 선제적인 투자를 하지 못한 여러 기업들이 무대 아래로 퇴장해 왔다. 호황기 시장 확대 기회를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진 탓에 결정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미증유 경제위기 속에 정부와 기업이 ‘원팀’이 돼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현장 모습은 구호와 다르다. 반도체 투자에 세금 부담을 덜어주자는 법안은 국회 문턱에 걸렸고, 반도체 공장에 물을 공급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대만 정부와 ‘원팀’을 이룬 TSMC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삼성은 TSMC와 싸우는 게 아니라 ‘대만 전체’와 싸우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00년대 중반, 중소기업 중심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던 대만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현지 기업인들로부터 “삼성, LG 같은 대기업을 가진 한국이 부럽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이후 10여 년 동안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대기업을 견제하는 사이 반도체와 정보기술(IT) 분야 대기업을 키워낸 대만은 올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한국 추월을 앞두고 있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10년 뒤에는 또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 상상하면 답답해진다.
-김용석 산업1부장, 동아일보(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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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싸움에 빈껍데기 되어 가는 기업 투자 활성 법안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첫 방문지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을 정도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경쟁국들은 이런 흐름에 올라타려 앞다퉈 반도체 지원법을 만들고 있는데, 한국에선 야당이 '재벌 특혜' 프레임을 걸어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있다. /뉴시스
내년 예산안을 볼모로 잡은 민주당의 반대로 법인세 인하, 반도체특별법 등 정부의 주요 정책들이 누더기가 될 상황이 됐다. 법인세법은 국회 통과가 불발되거나 통과되더라도 1%포인트 내외의 형식적 인하에 그칠 가능성이 커졌고, 반도체법에선 수도권 대학 반도체 학과 증원 등의 핵심 조항이 빠진 채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기업 활력을 높여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전략에는 크게 미흡하다.
전 정권이 떠넘긴 국가 부채 1000조원의 부담, 미국발 금리 인상 때문에 지금 정부가 돈을 풀거나 금융을 완화하는 재정·통화 정책을 쓸 수가 없다. 유일하게 가능한 카드는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도록 하는 것인데, 정부는 법인세를 낮춰 투자를 촉진하고 고용을 늘리는 정책을 채택했다. 정부안대로 법인세 최고 세율을 3%포인트 내리면 경제 성장을 3.4%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고 KDI는 분석했다. OECD 평균보다 높은 법인세율의 족쇄를 풀어줘야 우리 기업들이 외국 기업들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재벌 특혜’ ‘초부자 감세’라면서 법인세 인하를 거부해왔다. 민주당의 반대가 계속되자 국회의장은 최고세율 인하 폭을 정부안의 3%포인트에서 1%포인트로 낮춘 중재안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중재안을 받겠다고 했지만 국민의힘은 중재안 수용을 보류한 상황이다. 법인세 인하 1%포인트 인하 정도로는 기업 투자를 확대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반도체특별법도 국회 심의 과정에서 핵심 내용은 빠진 채 여야가 타협하는 어정쩡한 모양이 돼버렸다. 반도체 산업단지 지정 인허가 요건 완화만 합의됐을 뿐 반도체 업계가 강하게 원했던 수도권 대학 반도체 학과의 정원 확대 조항은 삭제된 채 상임위를 통과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역 균형 발전에 반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반도체 세제 관련 법안의 핵심 사항인 ‘투자액 20% 세액공제’(대기업 기준)도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은 세액 공제를 10% 이상은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예산안 통과를 위해 이 정도 선에서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경쟁국 대만은 반도체 투자의 세액공제 비율을 25%로 높였는데, 한국 야당은 10% 이상은 못 해준다며 발목을 잡고 있다.
민주당은 “재벌 특혜”라고 주장하나 틀린 말이다. 반도체 지원 관련법은 특혜를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행정·세제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경쟁국 수준으로 맞춰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다. 경제 위기 돌파에 꼭 필요한 정책을 정치적 흥정물로 삼아 좌초시켜선 안 된다.
-조선일보(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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