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살아야 지역도 산다]
[대학 학과 신설·통폐합 자율화… ‘졸속과 쏠림’은 경계해야]
[하버드대 첫 흑인 총장]
지방대 살아야 지역도 산다

12월 12일 대전시 한 대학교에서 대전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2023학년도 정시 대전·충청지역 대학입학정보박람회가 참가자가 저조해 썰렁한 모습이다./뉴스1
“실험 기자재 살 예산이 어디에 있어요. 비 올 때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강의실 천장도 고칠 돈이 없어 허덕이는데….” 충청권 국립대 시설관리과장 A씨가 하소연했다. 갑자기 여러 건물에서 고장 민원이 들어오는 날이면, 시설관리과 직원들은 각각 흩어져 ‘견적’을 뽑아 모은다. 그런 뒤 급한 순서를 매긴다. 전부 고칠 예산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심각성이 떨어지는 고장은 예산이 더 들어올 때까지 미뤄두는 것이다. 대학에 작동을 멈춘 냉난방기와 승강기가 점점 늘어나는 이유다.
‘벚꽂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속설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다. 대학이 망하는 데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돈 문제다. 지방대의 극심한 재정난은 노후 시설과 교육·연구 투자 감소로 직결된다. 이는 부메랑이 돼 학생 기피와 등록금 수입 감소로 돌아오고, 이 때문에 교육 환경은 더 열악해진다. 신입생 수와 연구 성과는 대학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니 교육부의 지원금도 줄어든다. 이 구조가 고착된 지방대가 외부 지원 없이 악순환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A씨는 이를 두고 신라 시대의 골품제(骨品制)에 빗대며 “계급 최하위에 있는 ‘평민 대학(지방대)’들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굶어 죽게 되는 구조”라고 표현했다. 대학 골품제의 최상단에 있는 ‘성골 대학’은 과학기술원(한국과학기술원·대구경북과학기술원·광주과학기술원·울산과학기술원)이다. ‘진골 대학(서울대와 서울 주요 사립대)’과 ‘6두품 대학(수도권 대학)’이 뒤를 잇는다. 과기부 특별법으로 전액 정부 지원으로 운영하는 과학기술원은 작년 한 해 동안 학생 1인당 교육비를 평균 8400만원 투자했다. 지방 대학 중에서도 그나마 처지가 나은 경북대·전남대·충남대 등 ‘지방 거점 국립대’의 4배 수준이다.
재정 위기가 불러온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건실한 지방대 지원을 늘려야 한다. 초·중등 교육에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중 교육세 3조원을 떼어 대학에 지원하는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를 신설하겠다는 교육부의 발표가 반가운 이유다. 3조원으로 대학의 재정 위기가 시원하게 해소되진 않겠지만 가뭄에 단비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은 있다. 이를 통해 고등교육 추가 지원 논의가 시작되는 것부터가 ‘평민 대학’ 처지에선 한 줄기 빛이다.
일각에선 ‘경제 논리에 따라 살아남는 대학들만 남게 내버려 두자’는 의견도 나온다. 진짜 부실한 대학은 정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대의 몰락은 곧 지역 위기를 초래한다. 나아가 국가 경쟁력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지방대가 인재를 배출해야 지역이 살고, 지역이 살아야 나라의 균형 발전과 국가 경쟁력이 따라올 수 있다.
-김태주 기자, 조선일보(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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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학과 신설·통폐합 자율화… ‘졸속과 쏠림’은 경계해야
교육부가 어제 2024년부터 전체 입학정원 내에서 대학이 자유롭게 학과를 신설·통합·폐지할 수 있도록 한 대학 규제개혁안을 발표했다. 현재는 학과마다 교원 확보 기준 등이 달라 학과 통폐합이나 증원이 어려웠는데 이 규제를 풀어준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 등에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대학의 자율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대학을 설립·운영할 때 적용되는 건물 토지 교원 재산 기준도 26년 만에 완화해 대학도 기업처럼 인수합병이 가능해진다. 그동안 낡고 경직된 기준이 대학 간 통폐합이나 온·오프라인 대학의 유기적인 운영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에 대학과 학과 통폐합을 통해 대학마다 특성화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이 트인 것이다.
이번 규제개혁안은 자율적인 구조개혁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옳은 방향이다. 2042년이면 현재 대입 정원(47만 명)보다 대학 입학 가능인구가 31만 명이나 부족하다. 존립 위기에 처한 국내 대학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대학경쟁력 순위에서 46위까지 추락했다. 교육부는 관련 시행령 개정에 속도를 내는 한편 빈사 상태인 대학재정 지원도 확대해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해야 한다.
대학도 이제 규제를 핑계로 혁신을 미루지 말고 미래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지금껏 대학에서는 학과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교수에 맞춰 학생을 뽑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 시대에 뒤떨어진 학과 구조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역량을 교육할 책임이 있다. 다만 대학이나 학과 통폐합은 재학생뿐만 아니라 대입 수험생까지 파장을 미치는 사안이다. 졸속 신설과 폐지로 혼란을 야기하거나 특정 학과로의 쏠림 현상으로 인력이 과잉 공급될 우려도 해소돼야 한다. 특히 학과 통폐합 과정에서 교원 확보 기준이 완화되더라도 교육의 질을 담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이 인재 양성과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자율화의 기반도 마련될 것이다.
-동아일보(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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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첫 흑인 총장

“부모님은 제게 기술자나 의사, 법률가 중 하나가 되라고 하셨죠. 이민자의 자녀라면 누구나 듣던 얘기였을 거예요.” 15일 연단에 선 클로딘 게이 미국 하버드대 신임 총장 내정자(52)는 자신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의 일을 회상했다. 아이티 출신 흑인으로서 미국 사회에서 온갖 풍파를 겪은 부모가 딸에게 인종차별이 덜한 직업을 추천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부모의 기대와 달리 학자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하버드대 386년 역사상 첫 흑인 총장으로 지명됐다.
▷게이는 1992년 스탠퍼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 대학원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의 나는 총장이 되는 길을 걸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고 게이는 회고했다. 실제 하버드대가 1636년 개교한 이후 2006년까지 배출된 27명의 총장은 전원 남성일 정도로 여성에게는 ‘넘사벽’이었다. 2007년 드루 길핀 파우스트 교수가 첫 여성 총장으로 선출되면서 비로소 유리천장이 깨졌다. 또 학부를 하버드대에서 졸업하지 않은 총장은 지금까지 단 2명일 정도로 순혈주의 전통도 강했다.
▷인종의 벽은 더 높았다. 노예제 금지 전 하버드대에서는 노예 70명이 잔일을 도맡아했다. 하버드대가 기틀을 잡을 수 있도록 기부금을 낸 이들은 노예 노동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사업가들이었다. 하버드대는 자체 조사를 거쳐 올해 4월 이런 과거사를 반성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노예제의 유산을 바로잡기 위해 1억 달러의 기금도 조성하기로 했다. 게이가 총장으로 선출된 데에는 이런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미국 학계에서 흑인이 진입하기 어려운 곳은 하버드대만이 아니다. 전체 대학 교수 가운데 흑인은 7%에 불과하고, 흑인이 총장을 맡은 곳은 10% 수준이다. 특히 북동부 지역 8개 명문대를 가리키는 아이비리그에서 흑인 총장이 배출된 것은 2001년 루스 시먼스 브라운대 총장이 유일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이런 장애물들을 모두 이겨낸 게이 내정자를 향해 하버드 내에서 “다양성과 우수함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지나치지 않다.
▷내년 7월 총장으로 취임하는 게이 앞에는 난제가 놓여 있다. 미 대법원은 하버드대 등에서 학생 선발 시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이 위헌인지 여부를 내년 상반기에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게이 내정자는 인터뷰에서 “위헌 결정이 나더라도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했지만 구체적 방안은 마땅치 않다. 미국이 자랑하는 명문대에서 인종 문제가 여전히 이슈가 된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다.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게이 내정자가 해법을 찾을 적임자일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동아일보(2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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