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이란과 이집트] [러·中·이란 전체주의의 추락.. ] ....

뚝섬 2023. 3. 22. 13:32

[이란과 이집트]

[러·中·이란 전체주의의 추락, 2022년의 세계사적 의의] 

[이란 신정체제 43년만에 최대 위기… 반정부 시위 속 유럽·중국도 등돌려]

 

 

 

이란과 이집트

 

한 때 혼인으로 동맹 맺었다가… 이란 혁명 후 관계 끊겨

 

①이란의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왼쪽)와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오른쪽) 대통령. ②이란 국기 ③이집트 국기 ④이란의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의 첫 번째 부인인 이집트의 공주 파우지아. 미모가 뛰어나 ‘아시아의 비너스’ 소리를 들었어요. ⑤‘이란이슬람공화국’을 세운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⑥지난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맨 왼쪽)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안보보좌관과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있어요. 가운데는 이들을 중재한 왕이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입니다. /위키피디아, 로이터 뉴스1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지난 11일(현지 시각) 중국의 중재로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어요. 지난 2016년 양국 간 외교가 단절된 지 7년 만이지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으로서 두 국가는 중동 지역의 패권을 놓고 대립해왔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이란이 이번에는 이집트와의 관계 개선을 원한다고 발표해 많은 이가 놀랐어요. 이란과 이집트도 40년 넘게 대립했던 중동의 대표적인 앙숙이거든요. 13일(현지 시각)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이란과 이집트 양국은 서로에 중요하다"고 밝혔어요. 또 "우리는 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조처를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여 관계 회복에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냈어요. 이란은 왜 같은 이슬람 문화권의 이집트와 관계가 멀어졌던 것일까요?

수천년에 걸쳐 얽힌 관계

이란은 유럽·아프리카·아시아의 중간에 있어 다양한 국가의 영향을 받았어요. 그중에서도 페르시아 제국에 뿌리를 두고 있어 여느 이슬람 국가와 다른 문화적 특수성을 띠고 있습니다. 이집트와는 고대부터 수천년에 걸쳐 얽혀 있는 관계예요. 이란의 고대 왕조인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기원전 559~기원전 330)가 이집트를 점령했던 때도 있어요. 기원전 525년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를 정복한 후 100여 년 동안 페르시아 왕들이 파라오를 겸했지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는 이집트에 관대한 정책을 펼쳐 문화와 종교를 파괴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나 그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 1세는 이집트를 강압적으로 통치했고, 이집트인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기원전 5세기 말에 독립했어요.

7세기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한 이슬람 제국의 정복 활동으로 이집트·이란 모두 이슬람화돼요. 두 국가는 새로운 종교와 언어·문화를 받아들이게 되었답니다.

16세기 초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일어난 오스만 제국(1299~1922)이 이집트를 정복했어요. 한편 오늘날 아제르바이잔 일대에서 내려온 시아파 계열의 사파비 왕조(1501~1736)가 이란에 제국을 건설해요.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 근본주의 성향으로, 정복지의 수니파들을 시아파로 개종시키면서 주변의 수니파 국가들과 끊임없이 충돌했는데요. 특히 수니파 국가이자 이집트를 정복했던 오스만 제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결혼 동맹과 이란 혁명

20세기 들어 이란의 팔레비 왕조(1925~ 1979) 때는 시아파와 수니파 국가라는 종교적 차이에도 이란과 이집트는 일반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했었는데요. 이집트와 이란이 결혼 동맹을 맺었던 적도 있답니다. 훗날 이란 혁명(1979)으로 쫓겨나는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는 결혼을 총 세 번 했는데요. 첫 번째 부인이 바로 이집트의 공주 파우지아였어요. 1939년 왕세자였던 팔레비와 파우지아 파루크 공주 사이에 정략 혼담이 오갔습니다. 이는 팔레비의 아버지인 리자 샤(shah·페르시아어로 '왕')가 당시 훨씬 더 부유했던 이집트 왕실과의 강력한 정치적 결합을 원해 내린 결정이었죠. 파우지아 공주는 미모가 뛰어났는데요. '아시아의 비너스'라고 불릴 정도였어요. 두 사람은 딸 하나를 낳았지만 결국 파우지아의 향수병(鄕愁病) 때문에 1948년 공식적으로 이혼했어요.

이후 1979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중심으로 이란 혁명이 일어났고, 그는 친서방 성향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렸어요. 호메이니는 이슬람원리주의(이슬람교리를 정치·사회 질서의 기본으로 하는 이슬람화 운동)에 입각한 '이란이슬람공화국'을 세웠어요. 이란의 마지막 왕인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는 이집트로 망명했는데 오랜 친구였던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그를 받아주면서 양국의 외교 관계는 단절됐어요. 같은 해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이란과 이집트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습니다. 이란의 새로운 지도자인 호메이니가 "미국은 큰 사탄, 이스라엘은 작은 사탄"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해 이스라엘과 이란은 사이가 안 좋았거든요. 리자 팔레비는 망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980년 7월 암으로 사망해 카이로에 묻혔어요.

그런데 사다트 대통령도 약 1년 뒤 암살당해 생을 마감해요. 사다트가 주도했던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있었는데요. 이집트 내에 있는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을 이교도 국가라고 생각하고 반감을 갖고 있었어요. 1981년 10월 사다트는 열병식을 관람하던 도중 이슬람주의자 군인들의 공격을 받고 숨졌어요. 이때 이란 정부가 테헤란의 한 거리에 사다트 암살을 주도했던 칼레드 알이슬람불리의 이름을 붙여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어요.

이란·사우디 관계 회복했어요

2016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활동하던 이란 출신 시아파 종교 지도자 셰이크 님르 알 님르(Sheikh Nimr al-Nimr)는 반정부 활동과 테러 주도 혐의로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과 함께 처형됐는데요. 이 사건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단교(斷交)했는데, 지난 11일 화해로 관계가 회복됐지요. 이번 합의에서는 앞으로 상호 대사관 설치, 상호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 등을 약속했어요.

몇몇 국가는 이번 합의가 중동 지역 정세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 기대하는데요. 이집트·이라크·아랍에미리트 등의 국가들이 양국의 화해 소식에 긍정적인 입장을 비췄거든요. 특히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 합의가 지역 내 긴장 해소에 중요한 걸음"이라고 평가했어요.

-윤서원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안영 기자, 조선일보(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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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체주의의 추락, 2022년의 세계사적 의의

 

[朝鮮칼럼]

우크라 항전에 허둥대는 러시아
백지 혁명 놀란 중국
히잡 시위에 정권 위기 이란
서로 별개 사건인 보여도
보편적 가치 자유를 향한
염원이 인류를 하나로 연결

 

다사(多事), 다난(多難), 다재(多災), 다망(多忙)했던 2022년 한 해도 이제 다 저물어간다. 지구촌 곳곳에서 충격적인 사건·사고가 터져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 졸여야 했던 한 해였다. 신나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천문학자들은 은하계 중심에 놓인 태양 400만개 규모의 거대한 질량 덩어리 ‘블랙홀’을 최초로 촬영해 공개했다. 대한민국은 순수 국내 기술로 누리호를 발사해 궤도에 안착시켰다. 중동에서 최초로 열린 월드컵에는 전 세계 관중이 몰려가 마스크를 벗고 환호성을 질렀다.

 

사람들이 지난 일을 그저 쉽게 잊는 듯하지만, 인간은 망각에 맞서 기억하고 기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과거사를 파헤치고 돌아보면서 우리는 저마다 삶의 의미를 해석한다. 훗날 역사가들은 과연 2022년을 어떻게 평가할까. 장구한 인류의 역사에서 올해는 어떤 해였는가?

 

지난 12월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에서 우크라이나 검찰 소속의 한 전문가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포격에 사용한 미사일과 포탄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러시아는 도네츠크와 하르키우 등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대한 공세를 이어나가고 있다./AFP 연합뉴스

 

2022 사건을 들자면, 러시아의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항전, 현재 진행 중인 이란의 시위, 중국 인민의백지 혁명 꼽을 있다. 일면 무관한 개별 사건 같지만, 정보통신의 발달로 전 지구는 이미 촘촘한 그물처럼 긴밀하게 묶여 있다. 세상 어느 지역도 고립된 섬이 아니다. 인과성을 증명할 순 없어도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는 이 세상 사건들은 모두 동시성(synchronicity)의 원리로 의미 있게 연결되어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망동은 수천만 인구의 도시들을 수개월씩 총봉쇄한 중국의 전체주의적 망념과 공명한다. 도덕 경찰을 풀어서 여성의 복장을 감시하는 이란의 종교적 독단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중국, 이란은 국가가 진리를 독점하고,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며, 개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자유적 전체주의 체제이다. 최고 영도자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일인지배(autocracy)라는 점도 세 쌍둥이처럼 닮았다. 현재 이 세 나라가 모두 위기에 빠져 허둥대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지난 9월 21일 러시아에서 대규모 징집령이 떨어진 후 불과 2주일 만에 최대 70만명이 주변국으로 탈출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랐다. 속전속결을 장담하던 푸틴은 이제 서방과의 지구전을 외치면서 공갈로 세계를 위협하고 있지만, 전승은 고사하고 무승부도 불가능한 상태다. 이란의 민중은 석 달째 전체주의적 신정 체제에 맞서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며 격렬하게 항쟁하고 있다. 세계 여러 국제정치 전문가는 이란의 이번 시위가 정권 타도까지 나아갈 있다고 전망한다. 지난달 말 중국에선 “공산당 해산, 시진핑 하야”를 부르짖는 성난 군중의 대규모 시위가 전국 최소 17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놀란 중공 중앙은 졸속하게 제로 코로나 정책을 파기하고 180 정책 전환을 선언했지만, 전염 속도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나라 전체가 공포에 휩싸여 있다.

 

침략에 항거하는 우크라이나인들, 징집을 거부하는 러시아인들, 종교적 부조리에 저항하는 이란의 여성들, 전체주의적 통제에 맞서는 중국의 학생들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의 신장을 부르짖고 있다. 범인류적 가치에 비춰보면, 그들의 요구는 정당하고 세계사의 상식에 부합한다. 반면 서방 세계를 사탄이라 부르는 러시아의 차르, 위구르족을 탄압하며 “중화민족의 부흥”을 외쳐대는 중국의 황제, 양성평등을 죄악시하며 시오니즘의 음모라 말하는 이란의 제사장은 인류에 반기를 들고 자국민을 인질로 잡은 권력 중독의 독재자일 뿐이다. 겉으로는 막강해 보이지만, 그들은 지금 떨고 있다. 갈수록 민심이 떠나가고 국제적 고립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동차 안테나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달고서, 히잡을 풀어서 손에 쥐고 흔들며, 여러 도시 중국 대사관 앞에서 백지 시위를 벌이며 세계 시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2022 자유를 향한 염원이 전체주의에 맞서는 인류를 하나로 묶었다. 자유는 서구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이며, 인류 보편의 가치다. 북송의 거유(巨儒) 범중엄(范仲淹·989~1052)이 말했다. 외치고 죽을지언정 닫고 살아가진 않겠노라(寧鳴而死, 不默而生)고. 새해 첫날 이른 새벽 큰 풍선에 그 글귀가 적힌 전단을 듬뿍 담아서 멀리 마파람에 띄워 보내고 싶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역사학, 조선일보(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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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신정체제 43년만에 최대 위기반정부 시위 유럽·중국도 등돌려

 

[新중동천일야화]

과거와 달리 여성·청년·소수민족이 시위 중심, 빈곤층도 가세 조짐
유럽, 러에 드론 지원한 이란에 분노중국은 사우디와 손잡아
시대착오적 복식 제한 고치고, 합의 통해 경제난 타개 나서야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에 항의하는 이란인들이 지난 10월 아미니의 고향인 이란 북서부 사케즈를 향해 차량 이동 중인 가운데, 히잡을 두르지 않은 여성이 차 위에 올라가 있다. /AFP 연합뉴스

 

이란이 심상찮다. 혁명 43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발단은 9월 16일 히잡 불량 착용을 이유로 교화시설에 입소했던 22살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였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에 분노한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다. 히잡을 불태우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시위를 벌였다. 정부의 강경 진압은 여성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지금까지(12월 12일 기준, 이란인권행동단체 추산) 어린이 68명을 포함, 490명이 목숨을 잃었다. 저항은 전국으로 퍼졌다. 북서부 쿠르디스탄에서 수도 테헤란 및 남동부 발로치스탄까지 전국 150여 개 도시에서 1000건 이상의 시위가 이어졌고 1만8000명이 구금되었다.

 

본디 시위가 낯설지 않은 나라다. 본격적 시위는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 항의로 72명이 사망했던 2009년 녹색 운동부터 도드라졌다. 경제난이 심화될 무렵인 2017년에도 최고지도자 등 체제 기득권 세력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하며 저항하다 24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9년 파업 시위 때는 정부의 무차별 진압으로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목숨을 시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란 신정 체제가 강고하게 유지되어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공권력의 힘이었다. 바시지 민병대와 보안 경찰은 무섭고 잔인했다. 또 다른 이유로 이란 시위의 특성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선거 부정이나 부패에 항의하는 정치 시위였고 주체는 중산층과 지식인이었다. 다만 혁명 대신 개혁을 원했다. 체제 전복까지 겨냥하지는 않았다. 뚜렷한 리더가 없었다는 점도 이유였다. 지도급 인사들은 정부에 의해 이미 구금되거나 가택연금 상태였다. 저항을 결집할 핵심 인사가 없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동력을 잃었던 것이다.

 

이번 히잡 시위 역시 이전과 비슷하게 잦아들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긴 하다. 구심점이 없다. 쟁점도 여성의 복식과 연관된 젠더 문제였기에 정치 논쟁에 비해 초기 폭발력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전과는 다른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거리에 나선 여성들은 용감했다. 평균 15세 내외의 여학생들이 주축이었다. 이들이 나서자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젊은 세대로 확산되었다. 여기에 쿠르드, 발로치 등 소수민족들이 가세했다. 젠더, 세대, 민족 문제가 합쳐졌다.

 

나아가 계급 시위로 확산되면 판은 달라진다. 징후가 보인다. 이번 시위가 예상외로 넓게 확산된 배경에 경제난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폭발력이 강하다. 체제를 지지해 온 빈곤층이 반정부 대열에 서면 양상은 순식간에 변한다. 심각한 경제난으로 삶의 질이 추락한 최근 몇 년간 정부는 딱히 빈곤층을 회유할 묘안이 없었다. 상식적인 방법은 이란 핵합의 재협상을 타결 짓고 제재를 풀어 경제에 숨통을 트는 것밖엔 없다. 그러나 쉽지 않아 보인다. 이념에 사로잡힌 최고지도자와 핵심 옹위 세력이 체제 붕괴의 위험을 무릅쓰고 개혁정책을 펴기는 어렵다.

 

외교도 꼬였다. 이란은 무리수를 두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고전하고 있는 러시아에 미사일과 드론을 공급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럽은 분노했다. 핵합의 재협상 과정에서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3국이 미국과 이란을 설득하며 얼마나 동분서주했던가. 어떻게든 이란을 품으려 했다. 그런데 이란 무기가 유럽을 때리게 된 것이다. 이제 유럽은 이란을 적으로 인식한다. 이란 국민은 기가 찰 노릇일 터다. 국내에서는 지금 자유를 외치며 저항하는 시민들이 죽어가는 판에 침략의 주역 러시아와 손을 잡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는 정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충격적인 소식이 하나 더 전해졌다. 이번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사우디 국빈 방문 이란의 입장에 반하며 걸프 왕정 편을 들었다. 2020년 시진핑은 이란과 25년 동안 4000억달러 규모의 경제 협력을 약속했다. 중국은 반미 성향의 이란을 파트너로 삼아 중동 내에서 일대일로의 입지를 다지려 했다. 그런데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사우디 살만 왕세자가 틀어진 틈을 중국은 사우디와 손을 잡고, 결과적으로 이란의 뒤통수를 셈이다. 본래 이란은 중국을 미더워하지는 않았다. 당시 미국의 제재 복원으로 어려움을 겪던 터라 대안이 없었다. 지금 다급하게 손을 잡은 러시아도 언제 비슷하게 나올지 모를 일이다.

 

내우와 외환이 겹친 이란에 선택지는 많지 않다. 물론 답은 있다. 국민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핵합의를 다시 살려 제재 해제를 통해 경제난 타개에 나서야 한다. 위기감을 느낀 이란 정부는 약간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 히잡 착용 법률 재검토에 들어갔고 단속하던 도덕 경찰도 자취를 감추었다는 후문이다. 핵합의 재협상에서 그간 완강히 거부하던 미신고 핵물질 사찰을 위해 국제원자력기구 인사들이 곧 이란을 방문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아직은 일시적인 변화로 읽힌다. 시위 주동자에 대한 처형이 계속되고 있다. 적법한 사법절차를 뛰어넘는 사형 집행은 국가 살인에 가깝다. 외교 면에서도 적대관계를 양산하고 있다. 유럽도 적으로 돌리고, 그나마 이란을 이해하는 편이었던 미국의 이란 핵 특사 로버트 말리도 돌아섰다. 중국에까지 배신감을 느끼게 상황에서 러시아만 남았다. 뚜렷한 대안이 없다 해도 러시아와의 연대는 결국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다. 시리아에서 이란은 이미 러시아의 몽니를 충분히 경험했다. 숙환과 고령으로 건강이 악화된 최고지도자의 고민이 하루하루 깊어진다.

 

미적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복식 제한은 시대착오적이다. 문화상대주의로 백번 양보하더라도, 규정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형벌을 받고, 심지어 죽어간다면 용납할 없는 일이다. 체제를 지키기 위해 자국민을 학살하는 일은 야만이다. 야만은 결국 국민에 의해 배척당한다. 이란이 야만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변화를 모색하고 새 길을 갈 것인가는 온전히 지도자의 몫이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조선일보(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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