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과 메르켈의 독재 인지 감수성]
[우크라이나 전쟁 중재? 중국은 부정직한 브로커다]
처칠과 메르켈의 독재 인지 감수성
히틀러 간파·푸틴에겐 둔감
성범죄 영역에 감수성 있듯 독재 인지에 예민한 감각 절실
北 독재자 경계도 견고해야
윈스턴 처칠에 대해 꼭 해답을 찾고 싶었던 궁금증이 있었다. 그가 2차 대전 발발 훨씬 전부터 히틀러의 위험성을 경고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 어떤 계기로 독재자 실체를 간파한 것일까. 1932년 여름 그는 조상인 제1대 말버러 공작 존 처칠 관련 책을 쓰려고 독일 뮌헨에 갔다. 말버러 공은 18세기 초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 연전연승, 유럽 패자(霸者)를 꿈꿨던 프랑스 루이 14세 야망을 무너뜨린 인물이다.
거리를 행진하는 나치 당원과 환호하는 시민을 보며 그는 충격을 받았다. 그들에게서 광기(狂氣)를 봤다. 이때가 ‘유레카 모멘트’, 즉 깨달음의 순간이 됐다. 그해 11월 처칠은 의회 연설을 했다. “거리에 나온 게르만족 젊은이들이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며 찾는 것은 바로 무기입니다.” 그러면서 무기를 손에 넣는 순간 독일은 과거 영토를 되찾으려 할 것이고 프랑스와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이 일제히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역사는 그의 예측대로 굴러갔다.
처칠의 안목은 전후에 또 빛을 발했다. 이번엔 소련과 스탈린에 대해 경고등을 켰다. 1945년 5월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전보에서 ‘철의 장막’이 드리워지고 있다고 했다. 이듬해 그가 미국 미주리주 풀턴에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철의 장막 연설’ 1년 전이었다. 소련은 물론 미국에서도 “처칠은 전쟁광”이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성범죄 영역에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이란 말이 있다. 이를 본떠 독재의 본성과 위험을 감별하는 안목에 ‘독재 인지 감수성’이란 말을 붙인다면, 그 최고봉은 처칠일 것이다. 그의 탁월한 통찰력과 결연한 투쟁 덕에 자유민주주의는 승리했고 인류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사람이든 국가든 그 실체를 알아채긴 쉽지 않다. 알아도 맞서 싸우기 어려울 수 있다. 상대가 돈이 많거나 자원이 풍부하거나 군사력이 막강한 경우엔 더욱 그렇다. ‘무티(Mutti·엄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전 세계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60여 차례 만났지만 그의 포악함과 야심을 포착하지 못했다. 퇴임 때가 돼서야 “푸틴은 오직 권력만 중요한 사람”이라며 회한에 찬 말을 했다.
재임 중 메르켈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2008년 4월)했고, 독일과 유럽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를 크게 높였다. 러시아에 약점을 보였고,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 그 결과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2008년 8월), 크림반도 합병(2014년 3월), 우크라이나 침략이 발생했고, 세계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슈피겔은 “(메르켈은) 위기의 성공적 관리자에서 이젠 ‘위기의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했다.
독재국가인 그 나라가 후진국이라도 얕볼 수 없다. IT 발달과 세계화 덕에 언제든 핵 같은 무기를 가질 수 있다. 그들이 도발해도 종국엔 물리치겠지만 엄청난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극악해질수록 독재 인지 안목과 그들 횡포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는 중요하다. 재앙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지도자뿐 아니라 국민의 ‘독재 인지 감수성’도 절실하다. 같은 민족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전쟁을 하자는 건가”라는 겁박 때문에 세계 최악의 독재자에 대한 경계심이 약해지기도 했고, 핵·미사일 개발 폭주도 막지 못했다. 우리 주변엔 여전히 독재자를 추종하는 세력이 적지 않고, 그들 지령을 받는 간첩단이 노동계 등 곳곳에서 암약한다.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식의 대국민 사기극이 재현되지 않게 하고, 그런 주장을 하는 세력이 다시 활개 치지 않게 하려면 독재를 보는 우리의 안목이 더욱 견고해져야 한다.
-장일현 기자, 조선일보(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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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중재? 중국은 부정직한 브로커다
[朝鮮칼럼]
겉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시진핑은 모스크바 편애
北 비핵화 관련해서도 中은 말로만 평화·상호존중
푸틴의 약점·고립 이용해 석유 싸게 수입하고
한·미·일 민주동맹 맞서 중·러·북한 축 공고화가 목표

지난 3월 21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크렘린 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공식 회담후 '중·러 신시대 전면적 전략협력동반자 관계 심화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악수하고 있다. 성명에서 두 정상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상황을 긴장시키고 더 길어지게 만드는 모든 행동을 중단할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로이터 뉴스1
최근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12가지 평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종이에 인쇄된 것 그 이상의 가치를 찾기 힘들다. 시진핑 주석은 전쟁을 벌이는 두 나라 사이에서 정직한 중개자 역할을 하기보다는 중국이 자국의 상업적,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멀리까지 갈 의향이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결국 지난주 푸틴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의 고립을 이용해 값싼 러시아 에너지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국민을 상대로 자행된 전쟁범죄와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20일 전의 제14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세계 외교에서 중국이 평화와 번영의 세력으로서 건설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개발도상국에 인프라를 제공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회담을 주최하기도 했다. 그리고 2월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모든 것이 좋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중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평화 협상을 중개하는 데 정말로 관심이 있거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첫째, 중국은 분쟁에서 중립적인 당사자로 자신을 묘사하려고 한다. 중국 정부는 “항상 분쟁을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러나 한쪽이 다른 쪽을 무력 침공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공정성을 공언하는 것은 중국이 모스크바에 유리한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은 공정성을 주장하면서 러시아 경제제재에 반대하고 미국과 나토가 러시아와의 전쟁을 ‘도발’한 책임이 있다는 허위 정보 캠페인을 벌여 왔다. 이는 공정한 것이 아니다.
둘째,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국의 평화 계획은 중국이 북한 비핵화와 관련하여 발표했던 선언을 뚜렷하게 상기시킨다. 즉, 성명에는 평화, 상호 존중, 외교 및 ‘윈윈’ 등 꽃처럼 아름다운 언어와 숭고한 원칙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성명은 그 자체로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그와 동시에 실행 가능한 계획이나 구체적인 정책 제안은 뒤따르지 않는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항상 “주권 존중”과 “핵 없는” 한반도를 요구했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계획은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창의적인 비핵화 외교를 펼칠 것을 촉구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마찬가지로 중국은 전쟁 종식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외교 브로커(중개자)가 되기 위한 투자는 정치적, 경제적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우크라이나나 러시아를 대신해 자국의 정치 자본을 지출하는 데 관심이 없다. 예를 들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빼앗은 영토를 반환하거나 푸틴이 민간인 표적에 대한 비인도적인 공격을 중단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중국은 모스크바에 대한 그 어떤 조건도 없이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를 중단할 것을 광범위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국 성명에서 한 가지 건설적인 요소는 핵 확장을 피하라는 요구뿐이었다.
시 주석과 푸틴의 정상회담은 경제 협력과 파트너십 강화에 관한 두 가지 합의를 도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른바 ‘정직한 브로커’ 외교를 펼친 중국의 목표가 여기서 분명해진다. 지금 푸틴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경제는 국제 경제제재 강화로 무너지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전쟁범죄 혐의로 푸틴의 체포를 촉구했다. 중국은 푸틴의 약점과 고립을 이용하고 있다.
중국 외교는 평화 증진이나 ‘윈윈’ 외교라는 지속적인 목표보다는 자국의 상업적 이익이 최우선 목표다. 전쟁 중 모스크바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러시아 석유를 대폭 할인된 가격에 계속 구매해 온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2023년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중국에 가장 많은 석유를 공급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과 함께 2030년까지 러시아의 가스 수출 경로를 유럽에서 아시아로 변경하는 ‘시베리아의 힘 2′ 프로젝트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이 값싼 러시아 에너지에 접근하기 위해 중국이 지불하는 비용은 약소하다. 미국이 중국이 공언한 공정성이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비판한 것처럼 중국은 서방에서의 평판에 약간의 손상을 입긴 했지만, 이는 시 주석에게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 주석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푸틴에게 공개적인 체면을 세워주고, 푸틴에게 ICC 기소로부터 안전한 방문지를 제공할 수도 있다. (전쟁 발발 이후 푸틴이 방문한 유일한 국가는 이란뿐이다.) 이것은 (값싼 러시아 에너지에 접근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작은 대가다. 게다가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를 판매할 계획을 공개적으로 발표할지도 의문이다. 이는 중국에게 득보다 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일부 무기를 러시아에 비밀리에 제공할 수는 있다.)
마지막으로, 푸틴과의 정상회담은 시 주석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나토와 미국의 인도 태평양 동맹국들 간의 결속력에 대한 반대 담론(counternarrative)을 제시했다. 동맹국 간 결속력 강화의 한 예로 한일 간 징용 합의가 있으며, 이는 한일뿐만 아니라 한미일 3국, 쿼드, 다자 경제 안보 연합 간의 협력 수준을 높일 기회를 열어준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일 합의를 진심으로 지지한 반면, 시진핑 주석은 이를 비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시 주석은 이러한 민주적 연합에 대응해 중국-러시아 축의 일관성을 보여주는 데 가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고려 사항으로 인해 중국은 딜레마에 빠졌다. 한편으로는 서방에 대항하는 연대의 표시로 푸틴을 형식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푸틴이 흔들리면 시 주석은 중국이 서방의 다음 타깃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푸틴이 전쟁에서 패배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이 북한에 하는 것처럼 러시아에 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중국은 푸틴(또는 김정은)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지원을 제공하는 동시에 절박한 모스크바(또는 평양)의 파트너로부터 최대한의 상업적 이익을 뽑아낼 것이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회담 당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예고 없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방문은 한때 분리되어 있던 유럽 대서양과 인도 태평양 전역(theater)이 유럽 전쟁의 결과로 어떻게 하나의 전역으로 통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아시아가 미국, 일본, 호주 등이 이끄는 서방 동맹국 블록과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이 이끄는 블록으로 나뉘어 경쟁 그룹을 형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조선일보(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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