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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골프] [빗속 골프 홍준표의 ‘과하지욕(袴下之辱)’]

뚝섬 2024. 11. 16. 07:13

[대통령과 골프] 

[빗속 골프 홍준표의 ‘과하지욕(袴下之辱)’]

 

 

 

대통령과 골프

 

코로나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5월의 한 주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이 버지니아주(州)의 한 골프장에 나타났다. 대통령의 ‘주말 여가’에 관대한 미국에서도 “미국 내 사망자가 10만명에 가까운데, 대통령은 마스크도 없이 토·일요일 내내 골프를 쳤다”는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가 전임자 오바마도 “항상 골프를 쳤다”고 항변하자, CNN은 “오바마는 재임 중 8.77일에 한 번, 트럼프는 4.92일에 한 번 골프를 쳤다”는 통계를 들이댔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고의 ‘골프광’은 2차 세계대전 ‘전쟁 영웅’ 출신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다. 그는 취임 이듬해인 1954년 백악관 잔디밭에 퍼팅그린을 설치했고, 재임 8년간 800라운드를 했다. ‘최고사령관’ 대신 ‘최고위 골퍼(Golfer-in-chief)’란 별명도 얻었다. 그는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계획할 때도 골프를 쳤다. 전쟁 중 일시 폐쇄됐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 공병 출신 독일군 포로 42명을 보내 재건을 돕기도 했다.

 

▶1995년 11월 10일 뉴트 깅리치 미 하원의장이 골프채를 들고 기자회견에 나왔다. 예산안이 합의되지 않아 연방정부 운영이 중단될 위기인데 빌 클린턴 대통령이 골프를 치러 갔기 때문이었다. 클린턴은 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벌타 없이 다시 치는 멀리건을 애용해 “멀리건의 왕”이란 별명을 얻었다. 아이젠하워의 진정한 후계자로 꼽힌 것은 오바마였다. 그는 재임 8년 동안 333라운드를 쳤는데, 멀리건 없이 80타 중반~90타 초반을 쳤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 오바마를 비판하며 “나는 일하느라 골프 칠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첫 임기 4년간 261라운드를 돌았고, 2019년 사비 5만달러를 들여 백악관에 ‘골프 시뮬레이터’를 설치했다. 올 초부터 트럼프 지지율이 꾸준히 높게 나오자, 외교관들은 “만약을 대비해 윤석열 대통령도 골프를 연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바이든 행정부를 의식해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이 여러 차례 토요일에 골프를 쳤다고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당이 9월 초부터 “8월에 골프를 치지 않았나”라며 공세 중이었는데, 대통령실이 설명을 않다가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와의 외교를 위해 8년 만에 골프 연습을 재개했다”고 해서 긁어 부스럼이 됐다. 대통령의 주말 골프를 문제 삼을 시대도 아닌데 처음부터 솔직히 “골프를 쳤다”고 하지 못해 거짓 해명처럼 돼버렸다.

 

-김진명 기자, 조선일보(2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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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 골프 홍준표의 ‘과하지욕’

 

3김 시대엔 고사성어 정치가 빛을 발했다. 독재와 싸우던 YS는 대도무문(大道無門·민주화로 가는 큰길에는 문이 따로 없다)을, 2인자 정치에 능한 JP는 상선약수(上善若水·물처럼 순리대로 사는 게 최고다)를 남겼다. 사자성어의 압축적 힘이 일상의 언어에서 사라져 가면서 고사(故事) 정치에도 변화가 생겼다. 활용하는 정치인 수도 줄었고, 가끔 등장하더라도 제맛을 못 내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그제 밤 SNS에 아무 설명 없이 ‘과하지욕(袴下之辱)’이라고 썼다. 한고조 유방의 대장군 한신이 젊은 시절 저잣거리 불량배에게 요구받은 대로 사타구니(袴) 밑으로 지나는 굴욕을 견뎠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 굴욕은 참겠지만, 훗날 초왕이 된 한신처럼 일어서고야 말겠다는 뜻으로 쓴 듯하다. 하지만 지금이 사자성어 정치를 할 때인지, 또 과하지욕 자체가 적절한 비유인지 의문이 생긴다.

▷그가 주장하는 억울함의 시작은 토요 골프였다. 홍 시장은 충청·경북에 폭우가 쏟아진 지난주 토요일 오전 골프장을 찾았다. 대구시에는 큰 물난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고 대구시민 1명의 실종은 보고받기 전이었다고 본인은 해명했다. 전국 사망자가 40명을 넘어서자 홍 시장은 뭐가 문제냐던 태도를 접고 결국 사과했다. 국민의힘에선 ‘재해 중 음주·골프 금지’ 조항 위반 등을 이유로 징계위 날짜까지 잡았다. 당 지도부를 향해 “어이없다”며 훈계조로 말하던 홍 시장이 굴욕으로 느끼는 건 그의 자유다.

 

▷홍 시장은 어제 아침 8시간 만에 그 8글자를 지웠다. 늑장대처와 책임회피로 충북지사와 청주시장이 뭇매를 맞자 그도 버틸 힘이 빠졌을 것이다. 홍 시장은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조간신문 6개를 읽고 그날의 이슈와 방향을 잡고 아침을 맞는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해왔다. 정치세력은 없지만, 정치감각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는 말이지만 이제 스스로 점검해야 할 때다.

▷먼저 경북을 포함한 중부지방에 ‘극한 호우’가 온다는 재난문자를 기상청이 발송한 후에도 빗속 골프를 강행한 점이다. 골프는 1시간여 만에 중단됐다. 하지만 골프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지 ‘이래선 안 되겠다’고 스스로 복귀했다는 설명은 없었다. 또 이튿날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읽은 뒤 지울 정도였다면 전날 밤에도 절제했어야 했다. 특히 사과 회견을 마친 뒤 자신을 한신에 비유하며 ‘미래를 위해 참는다’는 식으로 글을 남긴 건 적절치 않다. 6년 전 대선에서 780만 표를 얻었던 홍준표 시장에게 진짜 굴욕이라면 어느 쪽일까. 국민에게 사과하고, 징계위에 불려가는 것일까. 아니면 민심에서 멀어져 가고, 실수를 잡아낸 뒤 제 위치로 돌아오지 못했던 무뎌진 정치감각일까.

 

-김승련 논설위원, 동아일보(2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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