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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참전의 감당 못 할 나비효과] [전쟁과 신탁] ....

뚝섬 2024. 11. 4. 10:08

[北 참전의 감당 못 할 나비효과]

[전쟁과 신탁]

[박정희의 '베트남 파병', 김정은의 '러시아 용병']

[대북 전단 필요하지만, 내부 분열 피하는 방식이어야]

[뉴욕의 극한직업, 北韓 외교관]

 

 

 

北 참전의 감당 못 할 나비효과

 

[특파원 리포트] 

 

우크라군 SPRAVDI가 러시아군 장비를 수령하는 북한군의 모습이라며 공개한 영상 중 일부. /우크라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 엑스계정 갈무리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선 투입을 바라보는 유럽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1962년대 미국과 소련 간에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의 유럽판이란 말도 나온다. 양측의 교전이 벌어지고 다수의 사상자가 나오는 순간, 이 전쟁에 대한 유럽인의 시각이 크게 변화하리란 것은 자명해 보인다. 소셜미디어 일각에선 벌써부터 “13세기 몽골의 유럽 정벌 이후 800년 만에 동아시아 군대가 유럽 땅에 들어왔다”는 해석이 나온다. ‘위험한 확전’이라는 시각을 넘어, 북한군 파병에 문명·역사적 의미마저 부여하려 하고 있다.

 

참전은 무기 지원과는 차원이 다른 행위다. 주권국가로서 전쟁의 당사자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문제를 파생한다. 만에 하나 우크라이나가 북한에 대한 보복 공격을 하려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에 발포하는 순간, 우크라이나는 북한 본토 공격을 포함한 다양한 자위권 행사의 명분을 갖게 된다. 우크라이나가 평양 주석궁이나 북한의 핵시설을 타격 목표로 삼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를 검토하는 것만으로 한반도엔 상당한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북한군 사상자와 포로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골치 아픈 문제다. 우크라이나는 북한군 포로를 자국 포로 교환에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 주민은 우리 국민이다. 북한군 부상자와 포로 처리 문제를 놓고 인도주의적, 법적 논란이 일게 될 것이다. 1953년 이승만 정부의 6·25 반공 포로 석방 같은 일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이는 남·북 간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큰 이슈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대규모 무기 지원 같은 ‘대가’를 요구받을 가능성도 배제 못 한다.

 

인권 의식이 부족한 북한 병사들이 민간인이나 포로를 상대로 비인도적 행위를 하게 될 가능성도 걱정된다. 현실이 될 경우 그 반향은 심각할 수 있다. 유럽의 극우는 중동·아프리카 이민자의 유입을 ‘문명적 침탈’로 보아왔고, 최근에는 중국의 ‘경제적 침략’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북한의 ‘유럽 침공’이라는 새로운 스토리 라인이 등장할 판이다. 북한군이 잔혹 행위를 했다는 영상 하나만 돌아도 이 전쟁엔 루소포비아(Russophobia)와 황화론(黃禍論)이 결합된 인종주의 요소가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군 참전이 일으킬 나비효과는 하나하나 따져보기도 힘들 만큼 많다. 합쳐지면 무기 지원과 병력 파견에 계속 선을 그어온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의 입장도 어느 순간 변화할 수 있다. 절박한 러시아가 이런 리스크를 제대로 따져보기는 커녕, 북한군 파병을 ‘병력 아웃소싱’ 정도로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중국 역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러시아와 북한이 지금이라도 ‘회군’을 고민해 보길 바란다. 쿠바 위기 때도 결국 뱃머리를 돌린 것은 소련이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조선일보(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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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신탁  

 

[조용헌 살롱]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한반도 운명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인간은 죽음 앞에 도달해서야 신을 떠올린다. 수천명, 수만명이 죽고 사는 전쟁을 앞두고는 더욱 그렇다. 김정은의 파병 결정을 보고 ‘전쟁과 신탁’이라는 주제가 떠올랐다.

 

서양의 고대사를 보면 국가(민족) 간의 전쟁을 앞두고는 그리스 델피의 신전에 가서 점을 치는 게 관례였다. 기원전부터 시작해서 기원후에 이르기까지 대략 2000년간 델피 신전은 고대 지중해 문명권에서 가장 영발이 센 신탁소였다. 델피에 가보면 2000m가 넘는 파르나소스 산 700m쯤 높이의 바위산 중턱에 신전이 자리 잡고 있다. 신전 뒤로는 온통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서 음산하면서 신기(神氣)가 가득찬 분위기이다. 시민의 합리적 이성을 중시했던 민주주의 발원지인 그리스 문명이 대중의 의견보다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의 뜻을 더 궁금해하고 우선시했다는 사실은 이율배반적이기도 하다.

 

서양에서 ‘역사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헤로도토스. 그의 저술인 ‘역사’는 사마천의 ‘사기’와는 맛이 다르다. ‘사기’가 일관된 순서로 짜인 코스요리 같다고 한다면 ‘역사’는 푸짐하고 떡 벌어지게 큰상에 차려놓은 회갑잔치 잔치상 같다. 생선부터 육류. 젓갈, 겉절이, 나물무침, 발효음식 등등 메뉴가 다차원적이다. 그 다차원 메뉴를 관통하는 저자의 핵심적 문제의식은 신탁이다. 신의 뜻이 전쟁과 인간 삶의 결정적 순간에 관여한다는 운명론이다.

 

리디아의 국왕인 크로이소스가 델피 신전에서 점을 쳐보니 ‘강대국을 멸망시킨다’는 점괘가 나왔다. 이 점괘를 믿고 페르시아의 위대한 왕 퀴로스(고레스) 대왕과 전쟁을 시작했다. 결과는 패배였다. 탄탄했던 자기 왕국이 멸망당하게 된 것이다.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당할 처지가 된 크로이소스는 엉터리 점괘를 알려준 아폴로 신을 원망했다. 이 대목에서 헤로도토스는 멸망당하는 쪽이 자기인지, 아니면 상대방 국가인지를 재차 델피 신전에 가서 물었어야 옳았다고 설명해 놓았다.

 

박정희 대통령도 월남 파병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미국은 압박을 하고, 하자니 걱정되고. 당대의 선승(禪僧)으로 이름이 높았던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선사에게도 찾아가서 상의했다고 한다. 경봉선사는 주장자를 바닥에 세 번 ‘쿵쿵쿵’ 내리쳤다. 박 대통령은 천태종의 상월조사에게도 찾아갔는데, ‘젊은 사람들 피 흘린 값으로 국가는 발전할 것이다’가 대답이었다고 전해진다. 김정은은 신탁도 없이 전략적인 판단으로만 파병했을까?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조선일보(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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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베트남 파병', 김정은의 '러시아 용병'

 

[박정훈 칼럼]

우크라이나 전선이 북한 군인의 집단 탈북 루트가 될지 모른다…
역사 진보의 방향을 거꾸로 짚은 김정은의 도박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우크라군이 올린 북한군 추정 병력 보급 현장-우크라이나 전략소통센터(SPRAVDI)가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수십 명이 지난 10월 18일 러시아군 관계자로부터 군복 등 보급품을 받아가는 모습이라며 공개한 영상. 영상에는 북한 말투로 "넘어가지 말거라" "나오라, 야"라고 하는 음성도 담겼다. /SPRAVDI 텔레그램

 

북한 군대의 우크라이나 투입을 놓고 ‘파병’이라거나 ‘참전했다’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자기 군복을 입고 독자적 지휘 명령 체계에 따라 싸우는 것이 파병이다. 북한군은 러시아 군복으로 갈아입고 신분을 위장해 배치되고 있다. 북한 당국이 파병 사실을 인정한 적도 없다. 더러운 전쟁에 끼어들 명분이 없다는 것을 본인들도 알기 때문이다. 결국 돈 받고 싸워주는 용병(傭兵)에 지나지 않는다. 김정은은 군대 아닌 외화 벌이용 ‘전쟁 노동자’를 파견한 것이다.

 

김정은이 “한국의 베트남 파병을 모방했다”(뉴욕 타임스)는 분석들이 나온다. 1960년대 베트남 참전과 같은 군사·경제 효과를 노린 ‘북한판(版) 베트남 파병’이란 것이다. 턱도 없는 소리다. 베트남에 갔던 한국 군인은 용병이 아니었다. 국회 의결을 거친 공식 참전이었다. 미군과 차별화된 전술로 맹위를 떨친 맹호·백마·청룡부대는 부대 마크도 선명한 우리 군복을 입고 57만여 회 작전을 독자 수행했다. 공산주의와 맞서 싸운다는 대의 명분도 있었다. 북한과 러시아가 쉬쉬 하며 숨기기 급급한 우크라이나 용병과 성격 자체가 다르다.

 

60년 전 베트남 파병은 미군을 한반도에 붙잡아 두려는 박정희 대통령의 승부수였다. 당시 미국은 주한 미군 2개 사단을 빼내 베트남전에 투입하려 했다. 미군이 일단 나가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군사·경제력에서 북에 밀리던 한국으로선 심각한 안보 위협이었다. 박정희는 미군 대신 한국군을 보내겠다는 제안으로 미군 차출을 막았다. 국내 여론도 우호적이었다. 6·25 때 우방국 도움을 받은 우리가 이제 남을 돕는다는 명분은 국민 지지를 받았다. 파병안은 여야 만장일치로 국회를 통과했다.

 

첫 파병 2년 뒤인 1966년, 박정희는 장병 격려차 베트남을 찾았다. 공항에서 맹호부대 주둔지까지 헬기로 이동해야 하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악천후에 따른 사고 위험에다 적의 대공 사격이 걱정된 월남사령관 채명신이 만류했다. 박정희는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한 치 망설임 없이 헬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최전선에서 적과 대치 중인 장병들을 만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전선에 가서 군인들을 격려하는 일 같은 건 절대 못 한다. 제 목숨 걱정도 되겠지만 총알받이 군인에 대한 애정이라곤 한 푼도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려진 대로, 베트남 전쟁의 본질은 복합적이었다. 하지만 정보가 제약돼있던 당시 한국으로선 자유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안보적 고려에서 출발한 박정희의 파병 결단은 대한민국 발전에 ‘신(神)의 한 수’가 됐다. 한·미 동맹은 함께 피 흘린 혈맹으로 격상됐고, 한국군 전력은 획기적으로 현대화됐다. 구식 M1 소총이 M16으로 교체된 것도 이때부터다. 미국에게서 장비 제조 권한을 받아낸 박정희 정부는 국방과학연구소 등을 설립해 군수 산업 육성에 나섰다. 지금 세계 시장에서 꽃피운 K방산의 출발점이었다.

 

베트남 파병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압축 성장도 불가능했다. 장병들이 악착같이 모아 송금한 달러 수당, 기업들이 벌어온 공사 대금이 유입되면서 척박한 한국 경제에 부활의 씨앗을 뿌렸다. 이 귀중한 외화가 초기 자본으로 축적돼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종잣돈으로 쓰였다. 5000여 명이 전사하고 전쟁의 상흔도 컸지만 그들의 고귀한 희생 덕에 고도 성장의 기틀을 세울 수 있었다.

 

김정은도 이런 효과를 누리고 싶을 것이다. 러시아가 1인당 월 2000달러를 지급할 것이라 하니, 1만명 파견이면 연간 2억달러가 넘는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들어와도 북한은 ‘베트남 특수(特需)’ 같은 경제 효과를 이룰 수 없다. 체제 결함 때문이다. 그동안 북의 해외 노동자들이 그랬듯, 군인들이 목숨 값으로 받은 돈도 대부분 김정은의 금고로 들어가 통치 자금이나 핵·미사일 개발에 쓰일 것이다. 개인을 억압하고 성과를 수탈하는 착취적 제도에선 어떤 기회도 경제 번영으로 연결될 수 없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다론 아제모을루 등이 설파한 대로다.

 

김정은은 러시아에게 군사 기술을 받아내려 한다. 핵 잠수함, 탄도 미사일을 완성해 체제 유지에 써먹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우크라이나에 간 군인들이 체제 모순을 북한 내부에 전파하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 나라 자체가 감옥인 곳에서 갇혀 살다 외부 세계를 목격한 젊은 군인들이 어떤 충격을 받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선이 북한 군인의 집단 탈북 루트가 될지 모른다.

 

60년 전 한국은 자유 진영의 편에 서서 번영의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김정은은 러시아의 더러운 침략 전쟁에 끼어듦으로써 지는 쪽에 베팅하고 있다. 역사 진보의 방향을 거꾸로 짚은 김정은의 무모한 도박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박정훈 논설실장, 조선일보(2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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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전단 필요하지만, 내부 분열 피하는 방식이어야 

 

파주 접경지역 주민 등이 지난 10월 31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내 6·25전쟁납북자기념관 앞에서 납북자피해가족협의회 주최로 열리는 대북 전단 살포 행사를 저지하기 위해 트랙터를 이끌고 통일대교에서 나오고 있다. /뉴스1

 

지난달 31일 경기도 파주에서 대북 전단을 날리려던 납북자가족 단체의 계획이 접경 지역 주민과 경기도의 저지로 무산됐다. 북한과 인접한 파주 대성동 마을 주민들이 트랙터 20대를 몰고 와 임진각 입구를 막았다. 이 지역 주민들은 최근 북한이 대북 전단에 대응해 벌이고 있는 대남 확성기 방송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은 “북한의 소음 방송 때문에 못 살겠다”고 했다. 경기도도 대북 전단 살포로 인한 도민 안전 위협을 우려해 최근 파주·연천·김포 등 접경지 3개 시군을 재난안전법상 ‘위험 구역’으로 설정했고, 이에 근거해 대북 전단 살포를 막고 있다.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가 해당 지역 주민들과 경기도의 반대로 무산된 것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북이 위협 발언을 할 때마다 풍선을 날리려는 단체 회원들과 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빚어졌다. 2014년엔 북이 대북 전단 풍선을 향해 사격을 가한 일도 있었다. 북은 지난 5월부터 대북 전단 등에 대응해 오물 풍선을 날리고 접경지 지역 주민들을 향해 소음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장에 접경지 지역 주민이 나와 “소음으로 일상이 무너졌다” “도와 달라”며 무릎을 꿇고 호소한 일도 있었다. 주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불안과 불편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외부와 차단돼 노예처럼 사는 북한 주민에게 김정은 체제의 진실을 알리는 것은 우리의 의무인 측면도 분명히 있다. 대법원도 지난해 “대북 전단 살포는 북한 정권 실상을 알리는 등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북한의 위협이 두려워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이번에 취소된 행사는 사전에 예고된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보여주기식 행사를 하면 불필요한 갈등과 논란만 키울 뿐이다.

 

현재 대북 전단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김여정 하명에 따라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었지만 과도한 표현의 자유 제한이라는 이유로 작년 9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나왔다. 경기도가 재난안전법에 근거해 대북 전단 살포를 막는 것은 지자체 차원의 조치일 뿐이다. 대북 전단을 날리는 사람들은 북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실제 효과를 거둘 방법을 고심할 필요가 있다. 북 대응을 봐가며 시기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2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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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극한직업, 北韓 외교관

 

[특파원 리포트] 

 

지난 10월 2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 김성훈 참사관이 발언권을 얻어 북한대표부 발언에 반박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북한 외무성 소속 림무성 국장. /유엔

 

미국 땅에서 북한이 외교 공관을 갖고 있는 지역은 뉴욕이 유일하다. 북한은 1991년 한국과 별개로 유엔에 가입해 자체적으로 대표부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김성 대사를 비롯해 총 11명의 외교관들이 뉴욕에 나와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사무실은 유엔 본부에서 걸어서 5분 남짓이다. 한국 대표부와 한 블록 차이다. 한국에서는 군사분계선이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지만, 뉴욕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서로 코앞까지 갈 수 있다. 가끔 반북 단체들이 북한 대표부가 입주한 건물 앞에서 시위도 한다.

 

북한 외교관들은 많은 면에서 유엔의 다른 나라 외교관들과 다르다. 각국 외교관들은 대부분 자기 사정에 맞게 살 집을 구하고, ‘맛집 리스트’를 만들어 뉴욕에 있는 다양한 음식을 시도해본다. 북한 외교관들은 맨해튼과 퀸즈 사이에 있는 루스벨트 아일랜드에 모여 산다. 출근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보다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한다. 뉴욕의 높은 교통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목적도 있지만, 딴생각하지 못하게 서로를 감시하라는 의미도 담겼다. 식사도 대부분 건물 안에서 함께 모여 해결한다.

 

그들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도 외톨이 신세다. 올해 초엔 영원한 친구인 것만 같았던 같은 사회주의 국가 쿠바도 한국과 수교를 맺었다. 다자외교의 큰 무대인 유엔에서 북한은 유령과 같다. 가령 유엔 총회 소위원회가 열려도 대부분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결의안 문안 협의에도 빠진다. 가끔 회의장에 나와 한마디씩 하거나, 국제사회의 비판에 답변권을 행사하는 게 전부다. 그것도 북핵을 정당한 자위권 행사로 둘러대는 궤변 일색이다. 그나마 북한의 재래식 무기와 병력이 필요한 러시아가 가끔씩 말동무가 되어 주기는 한다.

 

이런 북한 대표부가 최근 열린 유엔 회의에서 한국의 발언에 허를 찔렸다. 한국이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두고 “병사들은 이미 북한에서 잊혀지고 버림받았다”고 면전에 얘기하자, 북한 외교관은 “북한이라고 부르지 말라”며 엉뚱하게 반박한 것이다. 외교가에서는 “오죽 당황했으면 그런 이상한 반응을 보였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다음 회의에서 북한 외교관은 발언을 하며 부들부들 떨기도 하고 말을 마친 뒤 마이크를 휙 꺾어버리기도 했다.

 

외신에서는 최근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 부대가 북한군과 교전했고, 북한군 대부분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유엔에 나와 있는 북한 외교관들도 이 소식을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유엔 무대에서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 논리를 늘어놓아야 하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1960년대 한국처럼 좁은 공간에 뒤엉켜서 살아야 하는 그들. 매일 출퇴근하며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자본주의를 맛볼 꿈도 꾸지 못하는 북한 외교관들은 국가에서 버림받고 러시아에서 희생당하는 병사들의 소식을 들으며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뉴욕=윤주헌 특파원, 조선일보(2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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