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못 받는 공화국… 한국은 애국심이 필요하다]
[분열된 국가의 운명]
사랑 못 받는 공화국… 한국은 애국심이 필요하다
英 최고상의 연극 '디어 잉글랜드'
축구 통해 하나 되는 英 사회 제안
좌우 문화 전쟁 대신 사회 통합을
'사랑받는 공화국' 좀 만들어 보자
올해 영국 대표 연극상인 로런스올리비에상을 받은 ‘디어 잉글랜드(Dear England‧신작 희곡 부문)’를 최근에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2016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통과 이후 어떻게 국가 공동체를 다시 구성할지 영국 좌파의 고민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낡아빠진 우파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곤 하는 애국주의를 현대적으로 되살리겠다는 아이디어는 대담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작품은 2016년 취임해 잉글랜드 대표팀을 바꾼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전 감독을 다룬다. 잉글랜드팀은 최고의 선수들을 가지고도 대회에선 판판이 깨졌다. 심지어 승부차기에서는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한 이탈리아인 감독이 유럽식 전술을 도입하려 했지만, 선수들이 제 잘난 것을 앞세우는 문화 탓에 실패했다.
연극은 감독이 팀을 하나로 묶으려 애국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그린다. 그런데 그 기반은 역사나 민족이 아니다. 대신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2021년 ‘잉글랜드인들에게’라는 제목으로 쓴 공개서한의 내용처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오늘날의 영국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핵심이다. 자부심은 비백인 선수들을 거리낌 없이 포용하고,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동과 연결된다.
작가 제임스 그레이엄은 뚜렷한 진보 인사다. 그는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반성해야 할 과거는 직시해야 하겠지만, 다른 한편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해야만 하는 것들도 있다”며 공교육, 국민건강서비스(NHS), 문화 등에서 나타난 영국적 가치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화 전쟁의 문제는 사람들에게 단순한 이분법에 갇힌 바보가 되길 인위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이라며 좌우 양쪽을 함께 비판했다. 몇 년 전부터 영국 좌파에선 새로운 애국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했다. 세계화와 불평등 확대에 뒤처진 평범한 사람들이 자부심을 되찾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국 사회의 분열을 해소하려면 공동체 재건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사랑받지 못하는 공화국’(브라이언 마이어스 동서대 교수)이라는 말이 잘 드러내듯 우리는 국가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나 상징이 없다. 해방 이후 쌓아 올린 성취는 분명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일궈낸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집단적 가치나 상징이 만들어지고 공유되지 못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민족인데 특정한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의미가 부여되기 일쑤다. 마이어스 교수는 거의 유일한 국가적 상징이었던 청와대를 윤석열 대통령이 없애버린 것을 예로 들면서, 좌우 양쪽에서 국가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해 있다고 지적한다. 1948년 건국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역사학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에 긍정적 가치가 부여되고 공유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의식이 희박하니 가족이나 개인 단위의 각개약진만 남는다. 그럼에도 과거에 국가적 가치의 부재가 문제 되지 않았던 이유는, ‘잘살아 보세’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높은 성장률에 각자 열심히 하는 게 통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 진입하자 갈등이 좀처럼 조율되지 않고 정치가 헛도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와 기억이 없으면 대화와 협상은 불가능하다.
진보 진영이 이야기하는 ‘촛불 혁명’이 민주당의 영구 집권 시도로 전락해 실패한 것이나, 윤석열 정부가 ‘자유’를 외치면서 정작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지 말하지 못하는 건 똑같은 원인에서가 아닐까 한다. 82년생 작가가 만든 연극을 보면서 왜 우리는 비슷한 시도가 없는지 씁쓸한 생각이 든 이유다.
-조귀동 경제칼럼니스트, 조선일보(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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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국가의 운명
[임용한의 전쟁史]
백인들이 북미 대륙에 상륙했을 때 이곳에는 수천만 명의 아메리카 인디언이 살고 있었다. 남북전쟁 후에 골드러시와 인디언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수백만 명의 인디언이 한 줌도 되지 않는 백인 정착자들에게 밀려 동부 지역에서 밀려났다. 백인들의 무기가 아무리 월등했다고 해도 인디언들의 무력한 패배는 불가사의하다. 백인들이 가져다준 전염병에 몰살했다는 설도 생겼다.
바이러스가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인디언 사회의 사회정치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제퍼슨 대통령 시절 서부지역 탐험을 위해 루이스·클라크 탐험대가 파견되었다. 이 탐험대에 새커거위아라는 인디언 여인 한 명이 참가했다. 그녀는 쇼쇼니 부족으로 어릴 때 주변 인디언 부족에게 납치되어 백인에게 팔렸다. 놀랍게도 탐험대는 우연히 그녀의 고향에 진입했고, 그녀는 오빠, 친구와 기적 같은 재회를 한다.
쇼쇼니족은 허약한 부족이어서 산속에 숨어 살다시피 했다. 반면 수족은 두려움이 없는 강대한 부족이었다. 나중에 인디언 전쟁 때 수족은 항쟁의 중심이 되었고, 쇼쇼니는 착한 인디언으로 알려졌다.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는 통합된 국가가 없었다. 부족들은 서로 갈등하고 약한 부족은 철저히 탄압했다. 이것이 백인들이 쉽게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따지고 보면 카이사르가 겨우 15개 군단으로 갈리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똑같다.
레닌은 국가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통치하기 위해 만든 기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말은 뒤집으면 정의로운 계급에 의한 정의로운 독재를 옹호하는 이론이 된다. 아니다. 국가의 진짜 기능은 통합이다. 내적으로 차별과 불균형을 완전히 해소한 국가는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지만, 1차적 목적은 통합이고 여기에 실패한 국가는 멸망했다.
지금 우리 정부는 분열에 재미를 붙였다. 편 가르기가 도를 넘어 없던 갈등까지 만들어서 국민들끼리 싸움을 붙인다. 이건 정말 위험하다. 백 년을 지은 건물도 파괴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다.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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