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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설명 못하는 대한민국 경제 성공] ....

뚝섬 2024. 11. 4. 10:09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설명 못하는 대한민국 경제 성공 ]

[한국 문화 르네상스 300년 주기설을 아십니까 ]

[노벨상 수상자가 먼저 꺼낸 박정희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말하는 ‘부자 나라 되는 비결’]

[현대판 '호국신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설명 못하는 대한민국 경제 성공

 

[강경희 칼럼]

나라 경제 운명 가른 1971년 대선
빨치산 출신 박현채에 기반 대중 경제론 내세운 김대중 후보
중화학 공업론 내세운 박정희 후보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1970년대 대중 경제론이 통치했다면
세계적 제조업 강국 가능했을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 다론 아제모을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A. 로빈슨.

 

2012년 출간된 베스트셀러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등이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자들이 한결같이 ‘한국의 성공’을 거론했다. 독재자가 권력과 부를 장악한 ‘착취적 제도’의 북한, 사유 재산을 인정하고 민주주의를 이룬 ‘포용적 제도’의 한국은 제도의 차이가 국가의 성공·실패를 갈랐다는 학자들 주장에 딱 맞는 사례로 더없이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이론은 한국의 성공을 설명하는데 미흡한 점이 많아 보인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노벨상 수상자들의 ‘한국 칭찬’을 보면서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가정해보게 된다.

 

1971년 제7대 대선은 3선에 도전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정권 교체를 내세운 신민당 김대중 후보가 맞붙었다. “논도 갈고 밭도 갈고 대통령도 갈아보자”는 김대중 후보가 돌풍을 일으켜 장충단공원 유세에 인파가 운집했다. 선거 직전 박 대통령은 “다음번 선거에 나오지 않는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고 당선됐다. 1971년 대선은 이후 10월 유신을 비롯해 한국 현대사를 정치적 격랑으로 몰아가는 분수령이 됐지만 경제적으로는 오늘의 대한민국 번영을 가능케 한 발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선에서 두 후보의 경제 공약이 사뭇 달랐다.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학 공업론’을, 김대중 후보는 ‘대중 경제론’을 내세웠다.

 

김대중 후보의 1971년 대선 공약 ‘대중경제론’은 재야 경제학자 박현채씨가 토대를 제공했다. 박현채는 6·25전쟁 당시 빨치산에 투신했다 하산해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의 민족경제론은 한국 경제를 ‘식민지 종속형 자본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미국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자립 경제를 목표로 삼았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에 오래전부터 문제의식을 가졌다. 안티테제로 주창해 온 청사진이 나의 ‘대중경제론’”이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도 하면 된다”는 의욕과 자신감을 국민에게 불러일으킨 공로는 인정한다. 하지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토대로 한 공업화, 수출 증대, 경제 성장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농민과 노동자의 희생 위에 대기업에 특혜를 몰아줬다. 공업과 농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이 심화했다. 대중경제론은 이런 인식에서 비롯됐다. 대중이 주체적으로 경제 정책의 수립과 운영에 참여하고 공정한 분배를 받음으로써 ‘중산층이 튼튼한 다이아몬드형 사회’를 추구하는 구상이다.”

 

고루 성장하고 콩 한쪽도 나눠먹자는 이상은 근사하나 현실은 나눠 먹을 콩도 별로 없는 처지였다. 1971년 4월 대선 당시 세계와 대한민국 경제 형편은 이랬다. 미·소 냉전 구도하에 GDP 1위가 미국, 2위가 소련이었다. 우리나라 1인당 GDP는 279달러로, 일본(2056달러)의 반의 반도 안 됐다. 동구권은 물론 북한보다 낮았다. 1970년 북한의 1인당 GDP는 384(UN 통계)~636달러(현대경제연구원)로 추산된다.

 

1961년 집권한 박 대통령이 수출주도형 산업화로 연평균 10.2%의 고성장을 이뤘지만 여전히 못사는 나라였다. 1970년에 10대 수출 품목은 섬유류, 합판, 가발 등 경공업이 대부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북한은 1970년 발표한 6개년 계획에서 자력갱생 노선을 택했다. 이런 국내외 정세 속에 김대중 후보는 농촌과 도시의 균형 발전, 노동자가 참여하는 노사위원회, 부유세 도입 등의 대중 경제론을 폈다. 1971년 김 후보가 당선됐다면 1987년 6·29 선언보다 정치 민주화는 앞당겨졌겠지만 과연 박태준, 정주영, 이병철 같은 걸출한 기업인이 활약한 경제 기적이 가능했을까. 전 세계 바다에 떠있는 선박 절반이 ‘메이드 인 코리아’요,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이 세계 선두권을 달리며, 한국 무기를 앞다투어 사가는 오늘의 강한 수출제조업 경제는 1970년대에 박 대통령이 중화학 공업 육성을 목표로 철강·비철금속·기계·조선·전자·화학 6개 분야에 집중 투자한 결과다. 1인당 GDP가 북한을 앞지른 것도 1974년(UN 통계) 내지 1976년(현대경제연구원, 김병연)이다. 1977년에 수출 100억달러와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를 앞당겨 돌파했다. 우리는 자유 무역의 확대라는 세계 흐름에 올라타 성장을 이어갔고, 자력갱생의 북한은 1970년대에 아직 머물러 있다.

 

김대중 후보는 대선 패배로 정치적 고초도 겪고 ‘1971년의 대중경제론’에서 벗어나 1998년 대통령이 되어서는 보다 현실적인 경제 정책을 폈다. 토대가 됐던 박현채의 민족 경제론은 80년대 대학가에 ‘운동권 경제학’으로 꽤 오랫동안 존속했지만 동구권 몰락, 한국 경제의 비약적 성공으로 설득력을 잃어갔다.

 

한국 경제의 성공은 단지 북한과 제도 차이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은 탁월한 리더십 덕에 가능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책에서 “포용적 정치 제도와 포용적 경제 제도는 서로 의지하며 확대되는 선순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경제력이나 문화적 위상은 높아지는데 포용적 정치 제도에서도 정치판은 날로 저질화되고 있다. 제도도 결국 누가 운용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기도, 뒤로 후퇴하기도 한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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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 르네상스 300년 주기설을 아십니까

 

[박성희의 커피하우스]

600년전 세종은 훈민정음·측우기·관현악 작곡
18세기 정조때도 문예부흥… 수원화성은 세계유산
지금 우리는 임윤찬·한강·봉준호·윤여정 보유국
300년 간격으로 찾아오는 한국의 문화 르네상스
축복에 감사…하지만 정치만 바라보면 한숨나온다
 

 

때론 가까운 곳에 명소가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산다. 지난주 방문한 수원 화성이 그랬다. 화성행궁 옆 에어비앤비에 묵게 된 나는 모처럼 수원 화성의 위용을 코앞에서 확인하고 청량한 기운에 흔들리는 갈대숲의 풍광과 성곽 위로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즐기며 가을 정취에 흠뻑 빠져들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러 외국을 가면서도 정작 바로 옆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이제야 제대로 보다니, 부끄럽기까지 했다.

 

한때 주택을 허물지 않고 구조를 살려 개조한 숙박 시설은 어느 관광객이 와도 불편함이 없는 시설과 센스 있는 인테리어로 시스템 운영되고 있었다. 요즘 명소로 떠오른 행궁동 주변은 서울 익선동과 북촌, 가로수길과 경리단길과 한옥 마을을 버무려놓은 인상이다. 역사와 함께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 젊고 늙은 이들을 불러 모으는, 그야말로 ‘문화 융성’의 현장이다.

 

행궁(行宮)이란 왕이 지방에서 임시 거처하는 궁으로, 화성행궁은 정조의 비전과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향한 효심으로 유명한 곳이다. 수원 화성이 있는 팔달구 남창동의 거리명 주소는 정조로와 행궁로 등. 아무리 권세가라도 30년이면 잊히는 세태에 정조라는 이름은 18세기 문예부흥기의 유산과 함께 300년을 가고 있다.

 

그보다 300년 앞선 15세기 역시 괄목할 만한 문화 중흥의 세기였다. 그때 세종대왕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글’이라는 훈민정음을 창제해 국민의 입과 귀를 열어주었고, 농사짓는 백성을 위해 측우기와 천체 관측 기구를 제작했다. 서양보다 앞서 음악을 기록한 정간보를 창안했고, 관현악 곡을 작곡해 문화를 고양했다. 세종대왕 역시 광화문광장의 한가운데 동상으로, 매일 만지는 만원권의 초상으로 우리 옆에서 600년을 살고 있다.

 

그때부터 300년이 흐른 21세기 현재, 왜소하고 추한 정치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문화 중흥기를 맞고 있는 대한민국을 발견한다. 소설가 한강이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리스트가 환생한 것 같다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쇼팽의 음반으로 그라모폰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윤여정은 오스카상을, 박찬욱 감독은 칸영화제 감독상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비영어권 첫 에미상을 받았다. 사실 그런 수상 소식은 이제 별로 새롭지도 않다. 이른바 ‘K컬처’가 세계로 뻗어나가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오랜 장기인 춤과 노래는 우리 아이돌에게 전 세계 팬이 열광하게 만들고, 영화와 드라마는 창의적 상상력으로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수출한 웹툰은 우리가 이른바 원조이자 플랫폼이다. 그 밑에는 우리 문화의 축적된 근육이 있다. 15세기에는 한글 창제로 문화적 반석을 다지고 18세기 영·정조 때 문예를 부흥시킨 데 이어 21세기 다시 한국 문화의 중흥을 예감한다는, 이른바 ‘한국 문예부흥의 300년 주기설’이 일리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사실 이 개념은 한국미래학회 회장을 지낸 최정호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 1997년 새 대통령에게 띄우는 공개 서한에서 제시한 것이다. ‘21세기 한국 문화의 중흥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공개 서한에서 최 교수는 다가오는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로 전망하고, 민족사에서 한국 문화의 제3 르네상스가 될 기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울러 “군주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만사가 뒤틀리고 인심이 순하지 못하여 악기(惡氣)가 올 것”이라는, 조선 중기 문신 이언적의 일강십목소(一綱十目疏)를 인용하며, 밀레니엄을 열 새 대통령에게 새 천 년을 이끌 ‘심지(心志)’와 ‘심술(心術)’을 주문하고 있다.

 

한 나라의 문화적 중흥을 이끌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전제가 있는데,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이 그것이다. 정치권력은 도덕적이어야 하고, 경제는 풍요롭고 안정적이어야 한다. 경제 정책과 문화 정책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세종은 중농 정책을 통해 보여주었다고 최 교수는 역설한다. 문화와 경제의 시너지는 사실 이미 증명이 끝난 명제라고 할 수 있다. 위 설명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구가하는 문화 중흥은 격동 속에서도 민주화를 향해 꾸준히 발전해 온 우리의 정치와, 눈부신 산업화와 정보화로 이룬 경제적 성공에 힘입은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토끼가 가져다준 문화 부흥인 것이다. 국가 간 경제 발전 차이를 연구한 공으로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제모을루 MIT 교수도 한국을 바람직한 제도에 기반해 세계 역사상 가장 놀라운 경제적 성공을 이룬 나라로 확인해 주지 않았나.

 

아제모을루 교수가 잘 모르는 게 하나 있다. 21세기 문화 중흥 토대를 마련한 사람은 주로 예전 지도자이며, 근래 정치인은 국민의 평균에도 못 미치는 도덕적 기준과 상실을 지닌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애국심과 비전, 도덕성과 공적 의식, 자기희생과 염치, 그 어느 것 하나에서도 옛 지도자들에게 못 미치는 깜냥의 사람들이 요즘 정치인의 평균이다. ‘정치꾼’은 자신의 선거를, ‘정치가’는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는데, 요즘 정치인들은 전자에 가깝다. 그래서 다시 그에게 질문하고 싶어졌다. 그의 연구에서 지도자 요인은 통제된 변인이었는지, 모자라는 정치인들이 계속 집권해도 문화 강국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말이다.

 

세상 곳곳이 전쟁으로 어지러운 이 즈음, 300년 만에 찾아온 문화 르네상스를 축복처럼 누리면서도 정치 쪽을 바라보면 그 축복이 얼마나 지속될지 불안해진다. 어느 자리에서 누군가 말했다. 우리나라는 정치만 바뀌면 돼.” 나도 동감이다.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조선일보(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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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가 먼저 꺼낸 박정희

 

[특파원 리포트] 

 

올해 노벨 경제학상의 영예는 국가 간 불평등 연구에 기여한 다론 아제모을루(57), 사이먼 존슨(61), 제임스 A 로빈슨(64) 등 3인에게 돌아갔다. /노벨위원회

 

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 회견은 시작부터 한국 이야기였다. 아제모을루 MIT 교수는 “한국 경제는 건강하게 성장했다”고 했고, 같은 대학 존슨 교수는 “가난했던 한국이 이뤄낸 업적이 놀랍다”고 했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도 현지 인터뷰를 통해 “한국은 포용적 사회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뤘다”고 했다. 전 세계 기자들의 질문에 수상자 세 명이 입 맞춘 듯 ‘한국의 성공’을 예찬하는 모습이 놀랍고도 생경했다.

 

아제모을루와 로빈슨을 세계적 석학 반열에 올려놓고 노벨상까지 안긴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국가 운명을 정치·사회 제도가 결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택한 한국과 1인 독재 국가 북한의 엇갈린 경제 발전상을 주요 근거로 삼는다. 사유 재산을 인정하고 민주공화제를 이룬 ‘포용적 제도’ 국가 한국은 발전한 반면, 권력과 부(富)가 1인 독재자에게 집중되는 ‘착취적 제도’를 선택한 북한은 쇠퇴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저자들은 한국이 1980년대 민주화를 거친 덕분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이전의 박정희 정권은 소련·북한과 같은 ‘착취적 제도’를 택한 때로 그린다. 이 책이 출간된 2012년 이후 한국의 진보 진영·학계가 앞다퉈 이 책을 인용했던 건 이 때문이었다. 저자들은 당시를 ‘권위주의적 성장’이라고 부르면서, 박 대통령의 국가 주도 개발 정책이 가져온 경제 발전 자체를 부인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그 시기 한국이 이뤄낸 급격한 성장을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했다

 

1968년 7월 9일 경부고속도로 길사터널 공사 구간을 시찰하며 지시를 내리는 박정희 대통령. /조선일보 DB

 

노벨상 발표날 어렵게 성사된 공저자 로빈슨 교수와 인터뷰에서 그가 먼저 박정희 이야기를 꺼낸 건 뜻밖이었다. 로빈슨은 “요즘 박 대통령 시절의 수출 주도 정책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의 박 대통령 기념관을 직접 방문해가면서 그의 발자취를 훑고 있다고 했다. 그는 수차례 ‘정말 성공적인 정책’이라며 당시 한국의 수출 정책이 다른 개발도상국에도 유효한 모델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의 ‘독재’ 논란에 대해 묻자 단호하게 답했다. “그는 독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가 발전’에 정말 집착하고 집착했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지도자가 이렇게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책을 쓴 이후에 그의 생각이 바뀐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국 경제 발전의 공(功)조차 부정하면서 그를 과도하게 매도하는 우리 내부 상황을 의식하고 있는 듯 보였다.

 

로빈슨은 “한국 경제가 엄청나게 성장한 건 박 대통령 덕분이고, 그때의 폭발적 발전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이후의 제도(민주화)였다”고 했다. 그에게 박정희의 ‘한강의 기적’과 이후 김영삼·김대중의 ‘민주화’는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 스스로가 과거를 깎아내리고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동안 먼 나라 외국 학자가 한국의 굴곡진 역사를 더 충실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 설명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해왔어야 하는 일 아닌가.

 

-이민석 기자, 조선일보(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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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말하는 ‘부자 나라 되는 비결’

 

남북한은 ‘제도(institution)’의 역할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입니다. 분단 이전 남북한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다른 제도 속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 격차가 10배 이상으로 벌어졌습니다.” 대런 애스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강연 때마다 남쪽은 온통 불야성이고, 북쪽은 암흑천지인 한반도 야경 위성사진을 소개하며 제도의 중요성을 역설해 왔다.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그는 대중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게 하는 ‘포용적 제도’가 소득·권력의 분배를 개선하고 혁신을 일으켜 부유한 나라를 만든다고 했다. 반면 권력자에게만 부가 돌아가는 ‘착취적 제도’는 기술, 산업의 혁신을 저해해 국가를 가난하게 한다. 특히 세계의 모든 나라가 부국, 빈국으로 나뉜 이유를 설명할 이론적 요소가 한반도의 남북 간 차이에 모두 포함돼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한국이 우쭐할 일만은 아니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올해 5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아직 군사독재 시절의 관치경제, 부정부패의 잔재가 남아 있어 완전한 포용적 경제 제도를 이루기에 갈 길이 멀다”고 꼬집었다. 노벨상 공동 수상자인 같은 대학 사이먼 존슨 교수는 포용적 제도를 구축한 대표적 국가로 한국을 꼽으면서도 강력한 제도를 구축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금방이라고 경고했다.

 

▷애스모글루와 존슨 교수, 시카고대 제임스 로빈슨 교수 등 이번에 함께 상을 받은 제도경제학 분야의 석학 3명은 연구, 저술을 통해 공조해 왔다.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이들이 국가의 번영과 제도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혀 냈다고 평가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1776년 펴낸 ‘국부론’의 원제가 ‘국부의 본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다. ‘어떻게 해야 나라가 부유해질까’라는 경제학의 근원적 질문에 답을 추구해온 이들에게 노벨상이 돌아간 셈이다.

▷저서 ‘좁은 회랑’에서 애스모글루 교수는 독재적 국가권력을 민주적 사회가 견제하는 것을 구약성서에 나오는 괴수 ‘리바이어던’에 족쇄를 채우는 일로 표현했다. 성공한 국가를 만드는 과정이 그만큼 어렵고 길도 좁다는 의미다. 수상 인터뷰에서 그는 “북한은 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희망컨대 언젠가 더 민주적인 시스템을 갖춘 한국과 통일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문제는 북한 정권이란 리바이어던은 주민을 풍요롭게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외부의 도전을 차단하느라 콘크리트 담을 높게 쌓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동아일보(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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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호국신산'

 

1274년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 황제의 명령으로 여몽 연합군이 일본 정벌에 나섰다. 합포(마산)를 출발해 대마도를 거쳐 규슈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이 원정을 망쳤다. 1281년 여몽 연합군이 2차 일본 정벌에 나섰다. 또 태풍이 불었다. 병사 14만명 중 살아서 온 병력은 3만명에 불과했다. 일본인들은 이 태풍에 가미카제(神風)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본인들에게 신풍은 신성한 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대만에는 신풍 대신 신산(神山)이 있다. 고구마 모양의 대만섬 동쪽엔 남북을 종단하는 중앙산맥이 있다. 3000m 이상 고봉을 200개 이상 거느린 험산 준령이다. 대만 섬 동쪽은 지진대 단층이라 매년 크고 작은 지진이 1만5000번 이상 발생한다. 필리핀 해상에서 발생하는 태풍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도 대만섬 동쪽 연안이다. 그런데 거대한 중앙산맥이 태풍을 막고, 지진 충격을 완화하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그래서 대만인들은 중앙산맥을 호국신산(護國神山)이라고 부른다.

 

▶요즘 대만인들이 호국신산이라고 부르는 대상은 중앙산맥이 아니라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기업) TSMC다. TSMC가 중국의 대만 침공을 막는 ‘전략 무기’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에 AI 반도체를 독점 공급하다시피 하는 TSMC가 중국 수중에 들어가는 것은 미국이 막을 것이란 계산이다. 실제로 미국의 군사전략가 중엔 유사시 대만 반도체 생산 시설을 폭파하는 ‘초토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기업의 호국신산 기능은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여실히 보여줬다. 포드, 보잉 등 미국 기업들은 전쟁 기간 군용 트럭 200만대, 항공기 30만대, 탱크 8만6000대, 선박 6만500척, 대포 19만문을 생산했다. 독일 나치즘의 유럽 지배, 일본 제국주의 확산을 막은 일등 공신은 미국 제조 기업의 가공할 생산력이었다.

 

▶북한 독재자 김정은은 핵폭탄을 호국신산으로 여길 것이다. 한국의 호국신산은 무엇일까. 우리의 진정한 호국신산도 대만처럼 글로벌 첨단 기업들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여전히 세계 D램 메모리 반도체의 70%를 공급하고 있다. 미국은 군함 수리 및 제조를 세계 최고 한국 조선소에 맡기려 한다. 우리는 배터리 산업의 강국이다. 한국 기업이 만든 K-9 자주포, K-2 전차, 천궁 대공미사일, 잠수함, 구축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업의 세금과 생산품으로 나라를 지키니 그야말로 호국신산이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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