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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 후 대한민국… 이제 국격에 맞는 책무 수행해야] ....

뚝섬 2024. 11. 7. 10:10

 

 

 

 

 

[美 대선 후 대한민국… 이제 국격에 맞는 책무 수행해야]

[트럼프 2기, 경제·안보 충격파 오겠지만 기회로 만들어야]

[더 세지고 더 독해진 美 트럼프 2기 열린다]

[워싱턴 DC의 '크고 흰' 건물… 백악관이 아니었다]

 

 

 

美 대선 후 대한민국… 이제 국격에 맞는 책무 수행해야

 

[朝鮮칼럼]

지금 국제 정세는 민주 對 반민주
중·러·이란 등 권위주의 거세지만 자유·민주는 인류사의 도도한 흐름
美 대선 미칠 결과 염려하지만 단기적 국익만 따지는 管見
10대 부국이라면 걸맞은 책임 필요
한미 동맹 위한 분담금 늘리고 자유주의 국제 질서 공헌해야

 

전쟁 같은 선거였다. 미국은 청홍으로 양분됐다. 경합 지역 표심은 박빙으로 점쳐졌다. ‘동전 던지기(toss-up)’나 다를 바 없다 했다. 세계 최강 국가의 최고 권력을 다투는 싸움이니 그야말로 진검승부였다. 힘센 정치인, 돈 번 기업인, 목청 높은 언론인, 책 파먹는 지식인, 인기 있는 연예인, 입 큰 유튜버까지 혼탁한 선거판에서 실시간 ‘말의 전쟁(war of words)’을 벌였고, 인플레에 시달리는 평범한 시민들도 일터에서, 마을에서, 온라인에서 갑론을박하며 각개 전투를 치렀다. 결과는 트럼프의 넉넉한 승리였다.

 

2017년 2월 이래 미국의 간판 언론 ‘워싱턴포스트’는 1면 제호 아래 민주주의, 어둠 속에서 사망하다란 구호를 내걸고 있다. 극심한 분열과 살벌한 투쟁이 그러한 발상을 부추기지만, 좌충우돌의 극한 대립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민낯이다. 민주주의는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상충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한 표씩 던져서 정권을 형성하는 데서 시작된다. 바로 그 점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죽긴커녕 꿈틀꿈틀 생동하고 있다. 1788년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이래 236년의 세월 동안 미국 시민들은 4년마다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모두 60회에 걸쳐 대통령 선거에 참여해 왔다. 헌법의 준엄한 명령에 따라 치러진 선거의 결과에 그 누구도 감히 불복할 순 없다. 게임의 규칙은 엄격하며 실정법은 강력하다.

 

입헌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는 인류 정치사의 경험과 지혜를 집약하고 있다. 18세기 말 영국의 식민지 아메리카의 연방주의자들은 고대 그리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은 물론 서유럽 근세 정치사의 선례를 샅샅이 뒤져가며 열띤 논쟁을 거쳐 헌법의 초안을 짰다. 군주정을 부정하여 공화정을 수립한 미국의 국부들은 국가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해 정부를 셋으로 쪼개고, 다수당의 전횡을 막기 위해 의회를 둘로 나눴으며, 다수 독재와 폭민 정치를 막기 위해서 ‘법의 지배’를 명시했다. 최소 62만 명이 목숨을 잃은 남북전쟁(1861-1865)을 치르고서 지켜낸 50개 주의 연방(union)이기에 지금도 미국 대선은 전국 득표율과 어긋날 수 있음에도 선거인단 투표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지 3년 후에 10개 수정안을 담은 권리장전을 채택했으며, 이후 200여 년에 걸쳐 17개 수정안을 추가로 인준하여 공화국의 헌정사를 중단없이 이어왔다.

 

세계 최초의 민주 국가 미국에서 선거 민주주의가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은 세계사적 중대성을 갖는다. 민주주의 퇴조가 두드러지는 시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동구,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혼란과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엘살바도르, 헝가리, 세르비아, 튀니지. 튀르키예 등의 민주주의는 질식 상태에 이르렀고, 보츠와나, 조지아, 온두라스, 인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스리랑카의 민주주의도 표류 중이다. 그 틈에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은 ‘악의 동조’를 이루고 반자유의 선전전을 펼쳐서 ‘글로벌 사우스’(개발도상국)의 독재화를 유도하고 있다.

 

다시금 국제 정세는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 양상이다. 권위주의의 도전이 거세지만 민주주의는 놀라운 탄력성을 보인다. 지난 8월 방글라데시 시위대는 15년간 군림하던 독재자 셰이크 하시나를 몰아냈다. 수백 명이 죽고 2만 명 이상이 다치면서 얻어낸 민주의 승리였다. 베네수엘라에서도 자유의 투사들은 지난 7월 재집권한 마두로 정권에 대항하여 부정선거의 숱한 증거를 밝혀내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가고 있다. 표면상 독재정권은 강력해 보이지만, 민주주의는 쉽게 사망하지 않는다. 인류 공동의 지혜가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디지털 정보혁명의 시대이기에 더더욱 자유와 민주의 확산은 인류사의 도도한 흐름이다.

 

일각에선 과민한 논객들이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반도에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며 염려증을 보이지만, 단기적 국익만 따지는 관견(管見)일 뿐이다. 10대 부국이라면 그에 합당한 책임 의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한미동맹의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면 기꺼이 분담금을 늘리고, 국제적 원조로 큰 혜택을 입은 만큼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강화에 물심양면으로 공헌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은 유엔군의 도움을 받아서 공산 전체주의의 침략을 물리치고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채택하여 두 세대 만에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를 이룬 세계사에 보기 드문 모범국가이기 때문이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조선일보(2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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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경제·안보 충격파 오겠지만 기회로 만들어야 

 

미 동부 시각으로 11월 6일 오전 2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플로리다에 위치한 웨스트팜 비치 별장에서 승리를 선언하며 웃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해 집권 2기를 맞게 됐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모두 승리했다. 행정부뿐 아니라 상·하원까지 모두 장악, 사실상 트럼프 세상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4년간 최강대국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안보·경제 지형까지 그의 손에 좌우되게 됐다.

 

트럼프 집권 1기는 일방적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돌발 행동으로 인한 충격의 연속이었다. 트럼프는 중국과 무역 전쟁을 선언하고 주변국에도 끊임없이 경제적 압박을 가했다. 동맹국들엔 수시로 안보의 대가를 내라고 요구했다. 두 번째 임기도 그대로일 것이다. 미국과 경제·안보적으로 동맹을 맺어온 우리로선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지금 우리는 미·중 무역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여파로 제1 수출 시장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2기의 보호 무역 강화는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다. 지난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445억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일본·베트남보다는 작지만 한국도 트럼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기본 관세 10~20%를 물리고, 중국산에는 최고 60% 고율 관세를 공언했다. 미·중 간 관세 전쟁이 벌어지면 한국이 중국과 미국에 수출하는 중간재 수출까지 줄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미·중 관세 전쟁이 벌어질 경우 수출이 최대 448억달러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리나라 총수출의 7%에 해당한다. 수출이 이 정도 타격을 받으면 국내총생산(GDP)도 0.4% 안팎이 줄 수 있다고 한다.

 

트럼프는 또 미국 내 반도체·전기차·배터리 공장을 짓는 외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 반도체·배터리 업체들은 미국이 보조금을 약속해 미국에 공장을 지었는데 트럼프가 보조금을 없애면 사기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내 기업들이 받을 보조금은 12조원이 넘는다. 트럼프가 공약대로 미국 외 지역에서 생산된 차량에 100% 관세를 부과할 경우 자동차 업체도 타격을 입을 것이다. 국내 자동차 수출 중 미국 비율은 50%에 이른다. 

 

우선 대미 무역 구조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트럼프가 석유·가스 산업을 키우겠다고 밝힌 만큼, 미국산 원유·천연가스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 트럼프가 국가 전략 산업의 대중 수출 전면 통제를 공언한 점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반도체 분야 등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는 데 시간을 벌어주고, 장기적으로 우리 산업 경쟁력과 수출을 늘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대외 정책은 미국의 안보 지원에 대해 돈을 내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가 동맹국을 바라보는 기준은 가치가 아니라 돈이다. 그런데 내라는 돈의 규모가 너무 일방적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 부르면서 “100억달러는 내야 한다”고 했다. 방위비 분담금을 9배 인상하라는 것이었다. 트럼프를 제외한 미국 관계자 거의 모두는 한국이 합리적인 주한 미군 주둔비 분담금을 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트럼프에겐 통하지 않는다. 취임하면 곧바로 이 문제부터 꺼낼 것이다.

 

우리가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지 않으면 미군 감축 카드를 커낼 가능성이 크다. 집권 1기 때 실제로 ‘주한 미군 철수’를 얘기했고 측근들이 “두 번째 임기 우선순위로 하자”고 겨우 말렸다. 주한 미군 철수 카드에 어떻게 대응할지 큰 숙제가 던져졌다. 한·미·일 간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바이든 행정부의 캠프 데이비드 선언 또한 종잇장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친분을 과시하며 “핵 가진 지도자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했다. 취임 후 언젠가는 김정은과 마주 앉을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은 지금 러시아 파병의 대가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군사위성, 핵잠수함 등 첨단 군사 기술을 러시아에서 이전받으려 하고 있다. 트럼프가 이런 김정은과 어떤 타협을 할지 우리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는 ‘미·북 정상회담 쇼’를 통해 미 본토를 노리는 북 ICBM 폐기와 핵 동결 조치로 미국이 안전해졌다고 포장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민 안보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김정은은 이를 노리고 그와 ‘밀당’을 할 것이다. 이러면 우리는 이름뿐인 미국의 핵우산만을 갖고 북핵과 맞서야 한다. ‘이익을 주고받는(give & take)’ 트럼프 식 거래 외교를 역으로 활용하는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트럼프가 주한 미군 철수를 앞세워 비상식적인 방위비 인상을 요구한다면 거꾸로 그 대가로 한국 독자 핵무장 등을 요구할 수 있다.

 

트럼프가 내년 1월 백악관에 입성하면 윤석열 정부는 앞으로 2년여간 그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개성이 강하고 칭찬을 좋아하는 트럼프 같은 지도자와는 개인적 관계가 중요하다. 아베 전 일본 총리는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금 장식 된 골프 드라이버를 선물하고 트럼프를 극진히 대접했다. 윤 대통령이 그런 관계를 만든다면 김정은과 위험한 거래나 주한 미군 철수, 한국에 대한 무역 제재와 불이익 같은 일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경제·안보 정책 전반을 면밀히 파악하고 사안마다 대책을 미리 세워야 한다. 그럴 수 있다면 트럼프 재집권으로 인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조선일보(2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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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세지고 더 독해진 美 트럼프 2기 열린다

 

―‘예측불허 동맹’ 대응 전략 새로 짜야―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6일(현지시각) 플로리다 웨스트팜비치에서 승리 선언을 하고 있다. 2024.11.06. [웨스트팜비치=AP/뉴시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5 대선에서 승리해 ‘트럼프 2기 시대’를 열게 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대선 결과를 좌우할 남부 경합주를 잡은 데 이어 최대 승부처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하면서 승부를 결정지었다. 트럼프는 승리 연설에서 “미국의 진정한 황금시대를 열겠다”며 “미국을 우선시하는 데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공화당은 이번에 상·하원까지 다수당을 차지해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2기는 지금의 민주당 행정부와는 전혀 다른 미국을 예고한다. 4년 전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을 글로벌 리더로 복귀시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미국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건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으로 회귀하게 된다. 트럼프는 취임 즉시 국경을 봉쇄하고 불법 이민자에 대한 대추방 작전을 수행한다고 공언해 왔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담 쌓기와 추방은 국제사회로부터의 재이탈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트럼프 2기는 트럼프 1기와도 다를 것이다. 1기 때만 해도 트럼프 주변엔 이른바 ‘어른들의 축’으로 불리는 인사들이 트럼프의 좌충우돌 변덕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새로 구성될 내각과 참모진은 트럼프 충성파 일색이 될 것이어서 미국 우선주의 색채는 훨씬 강해질 게 분명하다. 여기에 공화당의 상·하원 의회 장악은 물론이고 트럼프 시절 임명된 연방 판사들로 사법부마저 보수 우위 시대여서 트럼프의 폭주를 제어하기는 더욱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트럼프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바이든 시절 벌어진 유럽과 중동 두 개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24시간 내’ 조기 종결을 장담했지만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들의 반대에 쉽사리 휴전을 끌어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특히 트럼프 복귀를 계기로 과거 그와 잘 지내던 독재자들로선 호기를 맞았다는 판단 아래 기존 세계 질서를 교란하기 위한 모험주의적 행동에 들어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런 대표적 위험인물이 바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김정은은 이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보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같은 고강도 핵·미사일 도발로 트럼프 당선에 사실상 ‘다걸기(올인)’한 상태다. 김정은은 6년 전 자신을 국제 외교무대에 세워준 트럼프와 함께 북핵 직거래 외교 이벤트를 다시 꿈꾸고 있을 것이다.

나아가 동맹도 거래 관계로 보는 트럼프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1기 때보다 훨씬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을 대놓고 ‘머니 머신(현금인출기)’이라고 부른 트럼프다. 한미 정부가 이미 합의한 분담금 특별협정을 백지화하는 것을 넘어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압박하며 그 몇 배의 청구서를 들이밀 수 있다.

우리 경제에도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수입품에 10∼20%,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선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한국 제품의 대미 수출, 나아가 중국에 대한 중간재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게다가 트럼프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비판하며 보조금 폐지를 거론해 왔는데, IRA 혜택 등을 기대하고 미국에 대거 진출한 우리 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

트럼프 2기를 앞두고 한미 관계는 불가피하게 급격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미국 새 행정부 측과의 긴밀한 정책 조율을 통해 대북 안보태세부터 유지해야 한다. 나아가 북한군 파병 등 북-러 밀착에 맞선 기존 대응 전략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대의 ‘트럼프 리스크’는 그 불가측성에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기민한 대처가 중요하다.

 

-동아일보(2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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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빙이라더니 트럼프 일방적 승리로 끝난 美 대선. 당선 실패 해리스 버금갈 패자는 3연속 어긋난 여론조사.

 

-팔면봉, 조선일보(2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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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의 '크고 흰' 건물… 백악관이 아니었다

 

美 수도의 중심은 연방 의사당… 법치가 근간이라는 메시지 담아
대통령은 '제왕적' 통치자 아닌 법과 전통 수호하는 국정 실무자
 

미 워싱턴 DC 연방의회 의사당 전면에 대형 성조기 5개가 내걸린 장면.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몇 달간 국내외에서 쏟아진 미국 대선 관련 보도를 대할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던 장면이 있다. 방문연구원으로 한 해를 보낸 워싱턴DC에서 도시의 풍경을 보며 거기에 나타난 대통령제의 이상(理想)에 대해 생각하던 기억이다.

 

처음 가본 그 도시 한가운데에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이 있었다. 언덕을 기단 삼아 우뚝 선 그 건물을 한동안 백악관으로 알았다. 미국 수도의 도심 어디서나 눈에 띄는, 희고 크고 중요한 건물이니 당연히 백악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건물은 연방의회 의사당이었다. 워싱턴 DC는 수학의 좌표 평면처럼 직교하는 가로·세로축에 의해 행정구역상 사분면(四分面)으로 나뉘는데, 그 중심이 의사당이다. 이 도시의 주소에서 해당 지점이 어느 사분면에 속하는지 나타내는 NE(북동), NW(북서), SE(남동), SW(남서) 기호가 의사당 주소엔 없다. 원점이기 때문이다. 의회를 수도의 중심으로 삼은 그 풍경은 법치가 나라의 근간이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의사당과 2㎞쯤 거리를 두고 정면으로 마주 보는 자리에 조지 워싱턴 기념탑이 있다.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초대(初代)부터 이어 온 대통령제의 정신이 법치주의와 쌍벽을 이룬다.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워싱턴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절제(節制)였다. 사저 ‘마운트 버넌’ 웹사이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대통령의 임기 제한이 없던 때였고 많은 사람이 종신 재임을 지지했지만 워싱턴은 두 번째 임기가 끝난 뒤 물러나 20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중요한 선례를 세웠다.” 오늘날 그가 좌우를 초월해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단지 첫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다.

 

의사당에서 워싱턴 기념탑을 거쳐 링컨 기념관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약 3㎞ 구간이 수도의 중심축이자 국가 상징물이 밀집한 내셔널 몰(national mall)이다. 백악관은 이 축에서 몇 블록 비켜난 곳에 있었다. 외곽을 경비하는 경찰들 곁을 자주 지나다니면서도 그곳이 백악관이라는 사실을 한참 뒤에 알았을 정도로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일지라도 현직 대통령은 법과 전통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는 실무자일 따름이다. 초유의 선거 불복과 의회 습격으로 미국 정치의 사상적 토대를 흔든 장본인이 재등장한 무대가 이번 대선이었기에 기억 속 풍경이 새삼 생각났던 것 같다.

 

서울은 최근까지 정반대였다. 법치의 중심인 국회는 섬에 격리되고 대통령의 공간이 도시의 중심을 차지했다. 왕조시대 궁궐 터였던 그 자리에서 한국의 대통령은 나라님 못지않게 제왕적이었다. 2022년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을 이전하고 청와대를 개방하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의 대통령제가 드디어 구중궁궐을 벗어난다는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청와대를 떠난다는 측면이 부각된 데 비해 ‘왜 용산인가’에 대한 공감대는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를 1순위로 검토하다가 경호·비용·보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용산으로 결정됐다는 보도를 보면서 내막을 짐작할 뿐이다.

 

어디서든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편의만으로 접근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수도는 그 나라가 지향하는 가치를 공간적으로 드러낸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할 때 참모진·언론과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백악관을 벤치마킹했다지만, 도시라는 맥락에서 보면 백악관과 용산 대통령실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세계의 질서를 이끌어 갈 미국 새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에 워싱턴 DC와 서울의 풍경을 떠올린다. 임기 반환점을 도는 이 정권이 대통령실을 이전한 초심(初心)은 무엇이었는지, ‘용산 대통령실’에 담긴 대한민국의 가치는 무엇이며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상(像)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채민기 기자, 조선일보(2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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