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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을 무기로 삼는 트럼프의 협상 기술] [또 틀린 美대선 여론조사]

뚝섬 2024. 11. 8. 09:25

[‘뻥’을 무기로 삼는 트럼프의 협상 기술]

[또 틀린 美대선 여론조사]

[바닥 드러내는 트럼프 허세]

[트럼프 美 대통령의 대북 정책 자업자득]

 

 

 

‘뻥’을 무기로 삼는 트럼프의 협상 기술

 

미국 대통령에 재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꼭 읽어 봐야 할 책이 한 권 있는데 ‘협상의 기술’이다. 대권에 도전하기 훨씬 전인 1987년에 낸 책이다. 이 책을 읽어 보면 그가 부동산 개발업을 하면서 즐겨 사용한 협상의 기술 중 하나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상대편이 겁을 먹도록 사전에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2012년 대선에 처음 출마하면서 “한국은 그들을 지켜주는 미군에 돈을 전혀 지불하지 않는다”고 말한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팩트체크가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는 이번 재선 도전 과정에서는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고 불렀다. 그가 한 말의 의도는 돈을 더 내라는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도가 얼마나 잘 전달되느냐다. 그는 말이 거칠수록 의도가 잘 전달된다고 여긴다.

▷그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후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횡설수설했다. “김정은이 약속을 진짜 지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6개월 후 여러분 앞에 서서 ‘그때 내가 틀렸어’라고 할 수도 있다. 내가 인정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내가 핑계를 댈 거다.” 그에게 말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거나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아무렇게나 둘러대도 상관없는 그런 것이다.

 

트럼프가 거친 말을 자주 하니까 싸움꾼처럼 보이지만 진짜 싸움은 미국의 돈이 아까워서라도 못 할 위인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초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발사 시험에 대응해 미국이 ‘죽음의 백조’라고 불리는 B-1B 전략폭격기를 북한 동해 상공 깊숙한 곳까지 출격시켰을 때다. 문 정부는 ‘6·25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무력시위였을 뿐이다. 무력시위처럼 그의 거친 말은 돈이 많은 드는 진짜 싸움에 이르지 않기 위한 협상의 기술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에 대한 거친 발언도 새겨서 들어야 오판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재선을 위험한 성인물을 보는 기분으로 지켜봤다. 그에게 성추행당했다고 밝힌 여성이 한둘이 아니고 올 들어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2020년 재선 도전 패배에 불복해 의사당 습격을 선동한 혐의는 곧 판결이 나오겠지만 셀프 사면이 확실시되고 있다. 말의 책임성이나 일관성 같은 것은 그에게 아예 없다. 정치가 본래 위험한 성인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사람의 대통령 재선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조선일보(2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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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틀린 美대선 여론조사

 

2016년 11월 12일 프린스턴대의 여론조사 전문가 샘 왕 교수가 반려동물용 귀뚜라미 통조림을 들고 CNN에 출연했다. “제가 틀렸어요. 많은 사람이 틀렸지만, 남들은 저 같은 약속을 하진 않았죠.” 왕 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꿀에 버무린 귀뚜라미를 꿀꺽 삼켰다. 그는 그해 11월 8일 미국 대선을 사흘 앞두고 CNN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할 것이라며 “도널드 트럼프가 이긴다면 벌레를 먹겠다”고 약속했다.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다.

 

▶한국에서도 작은 지역을 대상으로 작은 표본으로 조사하는 총선 여론조사는 종종 틀리지만 전국 대선 여론조사는 대부분 맞는다. 2016년 미 대선 여론조사가 틀린 것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 특유의 ‘선거인단 제도’를 핑계 삼았다. 당시 힐러리는 전국에서 트럼프보다 약 290만 표를 더 받았다. 미국인 전체의 여론을 본다면 힐러리 승리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트럼프는 소수 경합주에서 0.2~0.7%의 미세한 차이로 승리했는데, 여론조사 오차범위에 속한다.

 

▶하지만 4년 후인 2020년 대선에서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다. 여론조사대로 민주당의 조 바이든이 승리하기는 했지만, 여론조사보다는 트럼프 표가 더 많이 나왔다. 바이든이 승리한 주(州)에서도 트럼프가 예상보다 평균 2.6%를 더 득표했고, 공화당 텃밭에서는 6.4%를 더 득표했다. 이를 두고 바이든 지지자들이 코로나 때문에 집에 더 머물러서 여론조사 전화를 받을 확률이 더 높다거나, 트럼프 지지자들은 언론과 여론조사를 불신해서 답변을 안 한다는 등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올해도 여론조사는 ‘샤이 트럼프’를 집어내지 못했다. 선거 막판 ‘초박빙’을 예상한 조사가 많았지만, 투표함을 열어보니 트럼프의 압승이었다. 그런데도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선거 당일 아침 해리스 승리 가능성이 56%로 높아졌다고 했다. CNN이 발표한 당일 출구조사에서도 해리스를 선호한다는 답변이 더 많았다. 진보 언론의 ‘희망’이 반영됐다고 할 수도 없다. 여론조사는 조사 회사가 하는 것이지 언론이 하는 것이 아니다.

 

▶여론조사만 틀린 것이 아니다. 미국 역사학자 앨런 릭트먼은 여론조사 대신 자신만의 지표를 개발해 1984~2020년 10번의 미국 대선 중 9번의 승자를 맞혔다. ‘대선 예측의 구루(권위자)’로 불리는 그도 올해는 해리스의 승리를 예측했다가 틀렸다. 트럼프를 지지하지만 지지한다고 말을 안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김진명 논설위원, 조선일보(2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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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드러내는 트럼프 허세

 

'엄포 놓다'는 뜻의 블러핑(bluffing)은 카드 게임의 묘미다. 고도의 심리전과 배짱으로 자신보다 높은 패를 잡은 상대방을 굴복시킬 때 짜릿함은 비할 바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냉철한 상황 판단이 뒷받침되지 않은 블러핑은 말 그대로 '무모한 허세'일 뿐이다. 특히 블러핑 치고 있는 게 상대방 눈에 뻔히 보이면 게임은 끝이다. 한두 번은 성공할지 몰라도 결국 큰코다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부동산업자 시절 블러핑류(類)의 거래 협상 기술로 큰 성공을 거뒀다고 자랑해왔다. 1980년대에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나 초호화 요트 '트럼프 프린세스'를 온갖 기술을 동원해 최초 가격에서 반의반도 안 되는 헐값에 손에 넣었다고 한다. 그즈음 '거래의 기술'이란 책도 썼다. 하지만 미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 책을 내기 전후로 10년간 카지노와 호텔, 아파트 등 핵심 사업에서 11억달러(약 1조3000억원) 넘게 손실을 봤다. '협상의 달인'이라는 자랑에 거품이 많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된 이후 트럼프의 블러핑 무대는 전 세계로 확장됐다. 그는 주요국에 수십% 관세 폭탄을 일방적으로 부과했다가 양보를 받아내면 절반으로 깎아주는 식으로 판을 흔들었다. 작년 김정은과의 첫 회담을 앞두고도 갑자기 '회담 연기'를 발표했다가 북이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자 하루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전임 대통령들과 다른 협상 기술로 미국에 큰 성공을 안겼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가 1년 넘게 가장 공을 들여온 미·중 무역 협상에 대해 언론과 시장은 '시진핑의 판정승'이라는 평가를 일제히 내놓았다. 협상은 중국의 미 농산물 구매와 미국의 추가 관세 인상 보류 등 일부 조건을 주고받는 '스몰딜'로 일단 휴전했는데, 트럼프가 호언장담해왔던 것과 달리 중국이 양보한 게 거의 없다. 재선을 앞둔 트럼프가 경제에 부담을 주는 추가 관세 카드를 쓰지 못할 것을 중국이 간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트럼프는 "위대한 합의"라고 주장했지만 그 허세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트럼프의 공갈 허풍식 협상술이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억지를 부리고 거짓말을 해도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던 상대방들이 이제 대처법을 알아가고 있다. 이란과 북한은 트럼프의 허세를 파악했다. 미국 대통령의 말이 힘과 권위를 잃으면 세계 곳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쿠르드족의 위기가 보여주고 있다. 남 얘기가 아니다.

-임민혁 논설위원, 조선일보(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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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美 대통령의 대북 정책 자업자득

 

'The chickens come home to roost'라는 표현이 있다. roost는 닭장 안 횃대를 뜻하는 것으로, 나쁜 행동이나 저주(bad deeds and curses)는 그 짓을 한 사람에게 되돌아온다는(return to their perpetrator) 말이다. 그래서 '누워서 침 뱉는다(spit while lying facing up)' '뿌린 대로 거둔다(reap as one has sown)' '자업자득(well-earned punishment)' 의미로 쓰인다.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이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정책을 비판하면서 제목으로 달았다.

"개인에게 편중된 외교의 단점(downside of personalized diplomacy)은 그 개인이 약화하면(be debilitated) 외교 역시 그런 꼴이 된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위협도 하고 어르기도 하면서(threaten and coax) 북한 문제 해결 어음을 남발하고 대북 외교를 개인 소유물처럼 다뤘다. 그 어음 만기가 닥쳤다(come due). 대가를 치러야(pay the price) 할 형편에 처했다.

 

트럼프가 탄핵 위기에 처한(be on the verge of impeachment) 상태에서 미·북 실무회담이 스웨덴에서 열렸다. 북한은 이번에도 실패시킬 준비가 돼 있었던 듯하다(seem set up to fail). 미루고 미루다가 단 하루만 하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내(soon afterwards)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발사 성공을 발표했다.

그러고는 협상 직후(shortly after the negotiations) 결렬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는(blame the breakdown on the U.S.) 성명을 발표, 미리 준비했다는 의혹을 일으켰다(raise suspicions).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며(demand more concessions) 어떻게 속일 것인가만 궁리하는(figure out how to cheat) 전형적 협상 전술(classic negotiating tactics)만 되풀이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모종의 어중간한 합의에 끌리고 있는(be attracted to a sort of halfway deal) 듯하다. 사실상의 핵보유국(de facto nuclear-weapons state)으로 남게 해줄 과도적 합의를 바라는(be after an interim agreement) 북한을 상대로 부분적 비핵화와 부분적 제재 완화를 맞바꾸려는(trade partial sanctions relief for partial denuclearization)심산도 있는 것 같다.

북한은 유리한 입장에 섰다고(get the upper hand) 착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탄핵 위기에 몰린 트럼프가 한 건을 절실히 원해서(be desperate for a win) 허둥지둥 거래를 맺으려 할(scramble to cut a deal) 것으로 판단한다면 대단히 중대한 오산(hugely consequential miscalculation)이 될 것이다. 트럼프가 소환장들로 옴짝달싹 못 하게 되면(be up to his ears in subpoenas) 그의 대북 거래는 결국 산산조각이 된다(be torn to shreds).

그리고 연말까지 표결에 부쳐질 탄핵은 트럼프 개인이 주도했던 외교에 조종(弔鐘)을 울리게 될(toll the death knell) 것이다."

-윤희영 편집국 에디터, 조선일보(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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