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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판지'의 진화] [전쟁 1000일, 우크라의 겨울나기] ....

뚝섬 2024. 12. 4. 06:39

['골판지'의 진화]

[전쟁 1000일, 우크라의 겨울나기]

[‘세계 최대 전함’의 패착]

 

 

 

'골판지'의 진화

 

‘파도 모양의 구조역학적 완충작용을 하는 골심지에 두꺼운 종이를 접합해 만든 포장재’. ‘골판지’에 대한 공업 표준 용어집의 설명이다. 골판지는 1856년 영국에서 모자의 부속품 용도로 발명됐다. 모자 안쪽에 감아 통풍을 하면서 땀도 흡수하는 용도였다. 18년 뒤 미국의 한 발명가가 유리병 보호용으로 골심지 한쪽 면에 종이를 붙인 포장재를 만들었다. 현대 골판지의 탄생이었다.

 

▶우리나라에선 1963년까지 골판지가 ‘단보루’로 불렸다. 일제강점기에 골판지를 한국에 들여온 일본인들이 두꺼운 종이를 뜻하는 cardboard를 ‘보루’라고 쓰면서, 여러 층이 있는 골판지를 ‘단(段)보루’ 종이라고 부른 영향이다. 한국 골판지 업체들이 1963년 협회를 만들면서 우리말 ‘골’을 사용해 ‘골판지’라는 새 용어를 만들었다. 중국에선 골판지를 기왓장 모양 비슷하다고 ‘와릉지판(瓦楞紙板)’이라고 부른다.

 

폐지를 재활용해 만드는 골판지는 ‘튼튼하고, 가볍고, 저렴해야 하는’ 포장재의 3대 필수 요소를 모두 갖췄다. 종이 주름이 트러스 구조와 비슷해 내구성이 좋고 충격을 잘 흡수한다. 중간의 빈 공간은 단열 기능을 발휘해 농수산물, 식품 운반에도 적합하다. 재료가 종이라 가볍고 값도 싸다. 워낙 경쟁력 있는 소재라 포장재를 넘어 용도가 계속 확장돼 왔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전사자용 관으로 사용한 이후 골판지 관이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2020년 도쿄 올림픽,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선 선수촌에 골판지 침대가 사용됐다. 세계적 가구업체 이케아에선 골판지로 만든 가구를 계속 선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골판지 드론이 등장했다. 호주 업체가 매달 100대씩 우크라이나군에 납품하는 골판지 드론은 날개 폭 2m, 무게 2.4㎏으로, 자기 무게보다 더 무거운 3㎏의 폭탄을 달고 최대 120㎞까지 비행한다. 1기당 460만원 정도로 가격도 저렴하다. 종이여서 레이더에도 거의 잡히지 않는다. 호주 신문은 골판지 드론이 러시아 비행장을 급습해 전투기 5대를 파괴했다고 보도했다. 가성비 ‘끝판 왕’이다.

 

▶북한이 발 빠르게 나서 지난달 골판지 드론으로 보이는 자폭형 무인기로 BMW 승용차를 공격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그러자 우리 군도 골판지 드론 100여 대를 도입한다고 나섰다. 배달 산업의 번창 덕에 한국은 세계 9위 골판지 생산국이다. 그런 나라의 군이 골판지 드론 아이디어도 못 내고, 전쟁터에 등장한 뒤에도 손 놓고 있다가, 북한이 하니 뒤따라간다. 이런 일이 한둘이 아니어서 한숨이 나온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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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1000일, 우크라의 겨울나기 

 

27일 서울을 찾아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스위틀라나 코발추크 우크라이나 얄타유럽전략(YES) 이사.

 

수도권 지역에 폭설이 내린 지난달 27일, 우크라이나 얄타유럽전략(YES)의 스위틀리나 코발추크 이사가 서울에 왔다. 우크라이나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려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얼마 전 조국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아주 큰 여행 가방을 싣기가 어려워 쩔쩔매는데 기사가 도와 주지를 않더라고요. ‘너무하네’라고 생각하고 노려보니 한 손이 없었어요. 너무 어려 보이는 청년인데. 전쟁에서 부상당한 겁니다.” 어디서 다쳤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하니 그는 “사람이 죽어 나가는 전쟁터에 다녀온 사람은 눈빛이 다르다”고 했다.

 

원래 인구가 4000만명 정도였던 우크라이나는 전쟁 약 3년 만에 인구 5분의 1 정도가 증발했다. 전장의 희생양으로 스러진 군인들 외에도 전쟁의 화를 피해 해외로 떠난 이가 많다. 사라진 ‘아들들’의 빈자리는 여성들이 채우고 있다고 한다. 코발추크 이사는 말했다. “키이우엔 택시·버스 운전기사가 여성으로 점점 바뀌고 있습니다.”

 

남겨진 이들의 하루하루는 사투와 같다. “우크라이나도 지금 눈이 많이 오는 계절이지만 ‘낭만’은 없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 울리는 공습 경보를 듣다 보면 음울한 감정이 몰려와 떨쳐내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기반 설비를 집중 공략해 타격을 입히면서 겨울 나기가 더 혹독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키이우의 전기 공급 상황을 알려주는 앱을 보여줬다. 구역별로 언제 전기가 들어오는지를 알려주는 앱이다.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새벽 2시에 샤워를 한 적도 있어요. 제가 사는 집은 20층이라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오가기도 어렵습니다.” 영업을 해야 하는 매장들은 비상 발전기를 사다가 돌린다. 그는 “비상 발전기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아느냐”며 “거리에 울려대는 발전기 소음이 키이우를 상징하는 소리가 됐다”고 했다.

 

아이가 있는 집은 상황이 더 어렵다. 그는 휴대폰으로 받은 친구와 자녀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어린아이 세 명이 캠핑용 간이 침대에 모로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이 아이들이 어디 누워 있는 거냐고 물으니 ‘지하 주차장’이란다. 언제 러시아 드론이 날아들어 집이 날아갈지 몰라 불편해도 지하 주차장에 가서 산다는 얘기였다.

 

어느덧 전쟁 1000일 차를 맞은 우크라이나.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이렇게 긴 전쟁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아직 모든 것에 희망이 있으니까”라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이 현실이 된 지금 국민들은 불확실성 앞에서 섣부르게 좌절하지는 않으려는 의지를 서로 북돋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키이우 시민 중 상당수는 밤이면 난방이 끊겨 얼음장같이 추워진 집에서 나와 지하철역에 모인다”며 사람이 가득한 승강장 사진을 보여주었다. “난방이 안 되기는 마찬가입니다. 하지만 서로의 온기에 기대 쪽잠을 자고 끓인 물을 나눠 마시며 밤을 버팁니다. 우리는 정말로 강인한 민족이라고, 서로의 모습을 통해 믿음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김휘원 기자, 조선일보(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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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전함’의 패착

 

[임용한의 전쟁사]

 

1941년 12월 16일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가 태어났다. 만재 배수량이 7만2809t인데, 독일 제국 최대 전함 비스마르크가 5만300t이었다. 전함끼리 포격전을 벌이는 해전은 이미 구식이 되었다. 해전의 승부는 항공모함에서 출격하는 함재기가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때 일본은 묘한 역발상을 한다. 강력한 전함으로 항모를 일거에 격침시킨다면 어떨까?

야마토 한 척을 건조할 비용이면 항모 두 척을 건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모가 있으면 함재기도 제작하고, 조종사도 양성해야 한다. 둘 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 일본군은 조종사 양성 과정이 지나치게 까다로웠다.

함재기가 적의 항모에 벌떼같이 달려들어도 항모를 격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난제를 제거하면 거대 전함으로 적의 항모를 침몰시킨다는 생각은 꽤 솔깃하게 다가왔을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실전에 투입되자 야마토는 미군 항공기를 피해 다니다가 별 활약도 못 하고 미군 항공기에 의해 침몰하고 만다.

 

물론 일본군은 태평양의 제공권을 자신들이 장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제공권 장악이란 전제하에서 괴물 전함의 활약을 구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필리핀 전투 이후로 제공권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야마토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제공권이 아니라도 전함의 비효율성은 명확했다. 항모에서 발진한 함재기는 적의 항모부터 모든 종류의 군함을 격침할 수 있었다. 전함은 항모와 전함만 격침 가능하다. 구축함만 돼도 빨라서 전함의 주포로 대항하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일본군 지휘부는 거대 전함이 지니는 상징성에 매료되었고 최악의 악수를 두고 말았다. 야마토 대신 항모 2척을 건조했더라면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절대로 패할 수 없었고, 적어도 2년간 태평양의 제해권은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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