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즐기게 된 한국 공기놀이]
[급하니까 한국인입니다만]
세계가 즐기게 된 한국 공기놀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3년 전 첫선을 보였을 때 전 세계가 빠져들었다. 스토리의 참신함과 흡입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계인은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의 다양한 놀이에 낯설어하면서도 매료됐다. 유럽 청년들이 광장에 모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놀았다. 문양을 따라 설탕 과자를 잘라 먹는 ‘달고나’ 놀이는 단연 인기였다. 소셜미디어엔 달고나 만드는 법 동영상이 넘쳐났다.
▶‘오징어 게임’ 시즌2가 지난 주 공개되자마자 90여 나라 1위에 올랐다. ‘한국 게임 하기’ 열기도 다시 불붙고 있다. 이번엔 ‘공기’ 놀이가 최고 인기다. 배우 강하늘이 현란한 손놀림으로 공깃돌 5개를 허공에 던져 낚아채는 동영상은 조회수 1000만회를 돌파했다. 인터넷에는 한 남자가 드라마 속 게임 참가자처럼 녹색 운동복을 입고 나와 K팝 가수 로제가 부른 ‘아파트’를 들으며 공기놀이를 즐기는 동영상도 화제다.
▶공기놀이가 한반도에서 언제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8세기 초 학자 이규경이 집필한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공중에 돌을 던져 손바닥으로 받는다’는 설명과 함께 ‘들어올린다’는 뜻의 공(拱)과 ‘바둑돌’을 뜻하는 기(棋)를 합쳐 ‘공기’라고 소개했다. 조선총독부가 1941년 펴낸 ‘조선의 향토오락’에는 석유(石遊)로 돼 있다. 우리만의 놀이도 아니다. 이규경은 같은 책에서 “일본에는 돌 10개로 하는 척석(擲石)이 있다”고 설명했다. 네팔·태국 등에도 비슷한 놀이가 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서도 등장했을 만큼 역사도 오래됐다. 그런데도 한국의 놀이가 됐다. 드라마의 힘이고 이런 게 소프트 파워다.
▶‘오징어 게임’은 한국 놀이 전시장이다. 등장인물들은 딱지치기·비석치기·팽이 돌리기·제기차기로 운동회를 한다. ‘가위바위보 하나 빼기’도 러시안룰렛 게임과 결합해 목숨을 건 놀이로 탈바꿈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게임뿐 아니라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동요 ‘둥글게 둥글게’까지 “중독성 있다”는 반응을 얻으며 푸른 눈의 시청자들이 흥얼거리는 노래가 됐다.
▶황동혁 감독은 새해 공개될 시즌 3을 이미 다 만들어 놨다고 했다. 전 세계 시청자들이 벌써부터 “또 어떤 한국의 놀이가 등장할까?” 궁금해한다. 우울하고 참혹했던 한 해가 가고 새해 아침이 밝았다. 세계가 우리를 위로하면서 툭툭 털고 일어나 전처럼 매력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기 바랄 것이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상실을 겪은 분들에게도 희망이 깃들기를 소망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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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니까 한국인입니다만
나는 한국인이다. 나를 한국인으로 정의하는 요소는 많다. 거의 매일 김치를 먹는다. 외국인이 한국인을 놀릴 때 “너희는 김치를 매일 먹냐?”고 묻곤 한다. 대부분 한국인은 담담하게 “응” 하고 답할 것이다. 김치 맛있게 먹겠다고 김치냉장고도 발명한 종족이다. 피에도 김치 국물이 흐른다.
더는 김치만으로 한국인을 정의할 수 없다. 색목인 유튜버도 김치 담그는 법을 영상으로 만드는 시대다. 나를 한국인으로 정의하는 요소는 따로 있다. 엘리베이터 사용법이다. 한국인은 닫힘 버튼 누르는 쾌감에 중독된 사람들이다. 계기판 근처 사람에게는 헌법에는 없는 의무도 주어진다. 빠르게 닫힘 버튼 누르는 의무다.
층을 잘못 누르면 다시 눌러 취소하는 기능도 한국의 특징 중 하나다. 해외, 특히 서양에서는 이런 기능을 가진 엘리베이터를 찾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 역시 한국인의 급한 성격이 대중화한 기술이다. 이 나라에서는 뭐든 빨라야 한다. 뭐든 빨리 해결해야 한다.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서 대결이 벌어졌다. 문이 닫히는 순간 누군가 헐레벌떡 문을 다시 열고 탔다. 그는 내가 눌러 놓은 층 버튼을 눌렀다. 다시 누르니 당연히 취소됐다. 나는 다시 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그도 다시 버튼을 눌렀다. 성격 급한 한국인이 양쪽 계기판을 점령한 채 리셋 전투를 벌였다. 한국은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끼리 속도 경쟁을 하며 서로를 닦달하느라 진을 빼는 나라다. 나는 워털루에서 패배한 나폴레옹 심정으로 그에게 통제를 허락했다. ‘백 년 평화’를 위한 결단이었다.
2025년 내 목표는 하나다. 급한 성격을 버리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에서 손을 떼는 것에서 시작하겠다. 완료 3초 전 전자레인지 멈춤 버튼을 누르는 한국인 고유의 전통도 버릴 생각이다. 나는 2분을 꽉 채워서 데운 컵라면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1분 57초 데운 컵라면 맛밖에 모른다. 3초만 더 데워도 컵라면은 더 맛있을 것이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조선일보(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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